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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신을 꿈꾸는 인간

미래의 역사, <호모 데우스>

우리의 오래된 신화들이 혁명적인 신기술과 짝을 이루면?  


 이 책은 결코 예언서가 아니다. 부제로 붙은 미래의 역사에 꽂혀 이 책을 읽는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꼭대기에서 보여주는 백과사전적 지식과, 동양과 서양, 역사와 철학 종교와 과학 심리학, 의학 등 학문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종횡무진 편집력으로 호기심이 많은 독자를 불러낸다. 그의 의견과 주장에는 반드시 실험적 자료와 문헌적 사료들이 등장해서 믿음을 안겨준다.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저자는 엄청난 연구 자료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친절하게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해석과 판단은 스스로 내리라고 암시한다. 내가 살아 왔고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삶의 궤적을 시대 배경에 맞춰 보여준다. 역사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의 산꼭대기에 독자를 앉혀 놓고 내려다보게 만든다. 그는 분명 훌륭한 선생님이다.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가야할 길의 길목에 서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소개하는 책이다.

 

인류가 쌓아온 사상과 신화들이 시대에 따라 이루어져온 신기술과 만나 혁명적 발전(또는 퇴보)을 이루어낸 현재의 위치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지만 결코 쉽게 읽을 수도, 가볍게 읽지도 못하게 한다. 독자의 수준에 따라, 인생관, 종교관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성찰을 낳게 하는 책이다.

 

죽음과 행복을 바라보는 시선

 

필자가  필사하여 소개하는 다음 글들은 신앙을 가진 독자에게는 불편할 것이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거나 생각하게 하는 글, 다시 곱씹어 볼 문장만을 필사하는 필자의 주관적 안목에 꽂힌 글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과 문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이 둘은 죽음을 형이상학적 신비로 간주하지 않으며, 당연히 죽음에서 인생의 의미기 나온다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죽음은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만 하는 기술적 문제이다. -41쪽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신을 숭배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사후 세계는 없으며, 행복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설파했다. 고대 사람들 대부분은 에피쿠로스의 생각을 거부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기본전제가 되었다. 에피쿠로스에게 행복 추구는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었다. 반면 현대 사상가들은 그것을 집단적 과제로 간주한다. -51쪽

 

<우주에는 신이 없다> <만들어진 신>을 읽은 독자라면 위의 글에도 저항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필자 역시 신이나 하나님이 없다고 단정을 내리기까지 겪은 허무감과 고통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것은 의미부여나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확신이 필요했다. 이 세상에 신은 반드시 있어야 제대로 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그래야만 된다고 믿고 살아온 50년 이상의 삶이었기에 내려놓는 데도 몇 년이 걸렸다. 신과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기대며 사는 삶이 얼마나 평안했던가. 마치 힘들 때 안길 수 있는 가족이나, 나의 아픔을 들어줄 친구가 있는 것처럼! 인간은 허무를 딛기 위해, 살아낼 희망을 위해 신이 필요했다는 나름의 해석을 내리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지구는 없어지는 그 날까지 태양의 주위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전할 것이다.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전하고 공전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날마다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하면 지루하고 허무하다. 그러나 의미를 부여하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인간이 만든 달력에 의하면 그렇다. 끝없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여행자가 인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라는 비행기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의 유전자 안에는 시작부터 여행자였던 오래된 기억이 세포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그러니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리라.

 

신이,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이 이처럼 불공평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신의 부정으로, 아니 더 앞으로 나가 원래부터 신이 창조한 세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상에 널려 있는 억울한 죽음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일어나는 천재지변, 착한 사람들이 당하는 매서운 세상의 도리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추악한 범죄를 신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선하기만 한 것도, 악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영생을 누릴 수 있거나 환생할 수 없음은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가 보여준다. 인간만이 예외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생명과학에 따르면, 행복과 고통은 단지 그 순간에 어떤 신체감각이 우세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반응할 뿐이다. 거꾸로, 과학에 따르면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승진하고, 복권에 당첨되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 몸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감각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59

 

행복을 바라보는 시선도 극히 과학적이다. 확장해서 해석하면 행복은 곧 뇌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는 곧 몸과 마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음동의어로서 하나라는 뜻이다. 산다는 것은 뇌가 사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니 행복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인 셈이다. 이는 인본주의를 넘어선다.

 

인간이 행복과 불멸을 추구한다는 것은 성능을 업그레이드해 신이 되겠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멸이 신의 특성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노화와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물학적 기질을 신처럼 제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인조인간 만들기) 그리고 비유기체 합성이다. 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것은 이미 현실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원숭이의 몸에서 떨어져 있는 생체공학적 손발을 뇌에 이식된 전극을 통해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몸이 마비된 환자들도 생체공학적 팔다리를 움직이거나 생각의 힘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다. -71쪽

 

21세기 인류가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거라는 예측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 소외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첫째, 이런 일들은 21세기에 개인들이 실제로 할 일이 아니라, 인류가 집단적으로 할 일이다.

둘째, 이것은 역사에 대한 예측이지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셋째, 추구하는 것과 확득하는것은 다르다.

넷째,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이 책의 예측은 예언이라기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에 대해 논의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86~87쪽

 

솔직히 마음과 의식에 관해 과학이 아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오늘날 정설은 뇌의 전기적 반응에 의해 의식이 생기고, 마음의 경험들은 어떤 필수적 데이터 처리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일군의 생화학적 반응과 전류가 어떻게 고통이나 분노, 또는 사랑 같은 주관적 경험을 만들어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10년 내지 50년 안에는 확실한 설명이 나올 것이다. -155쪽

 

돌촉을 붙인 창으로 매머드를 사냥하던 인류가 2만 년 만에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탐사하게 된 것은 더 능란한 손재주나 더 큰 뇌 덕분이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오늘날 인간이 이 행성을 지배한  것은 인간 개인이 침팬지나 늑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민첩해서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여럿이서 협력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가 때문이다. -187쪽

 

역사에는 대규모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예외 없이 더 잘 협력한 쪽에 승리가 돌아갔다. 호모 사피엔스와 여타 동물들 사이의 충돌만이 아니라, 인간집단들 사이의 무력충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것은 로마인들이 뇌가 더 크거나 도구 제작 기술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인들이 더 효과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188쪽

 

지식에 투자하라


세계를 크기가 고정된 파이로 보는 전통적인 세계관은 이 세계에 오직 두 종류의 자원만 존재한다고 본다. 바로 원재료와 에너지이다. 하지만 실은 세 종류의 자원이 존재한다. 원재료, 에너지, 그리고 지식이다. 원재료와 에너지는 고갈된다. 사용하면 할수록 줄어든다. 반면 지식은 성장하는 자원이다.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난다. 실제로 당신이 지식의 총량을 늘리면 그 지식은 당신에게 더 많은 원재료와 에너지를 준다. 나노기술, 유전공학, 인공지능이 다시 한 번 생산혁명을 일으켜, 영원히 팽창하는 초대형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들을 개척할 거라고 믿는다. -295쪽

 

이 세계의 자원은 원재료, 에너지 그리고 지식이라고 단정 짓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지식 자본은 이미 피터 드러커도 부의 원천이라고 한 바 있으니 새로울 것은 없다.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원재료도 지식이 분명하다. 교육의 중요성이, 기술과 인문학의 통섭과 융합으로 상상력과 창의성이 선두주자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21세기의 주력상품은 몸, 뇌, 마음이 될 것이고, 몸과 뇌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디킨스의 영국과 마디의 수단 사이의 격차보다 훨씬 클 것이다. 실은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간의 격차보다 클 것이다. 21세기 진보의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신성을 획득하는 반면, 뒤처진 사람들은 절멸할 것이다. -378쪽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의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435쪽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물음은 필자도 늘 하는 질문이다. 인간은 교육을 받고 성공한 다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와 명예를 누린 다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여가 시간이 늘어난 인간은 잉여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감스럽게도 저자는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니 제시하지 못했다. 그가 써낼 다음 책에는 그 답변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 답변은 역사학자인 저자 몫이 아니라 철학자의 숙제이거나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몫이다. 실은 그 답을 예견하고 끝까지 읽었다. 저자도 나도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만 같아 답답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미래의 길을 맛보기로 보여주었으니 인간을 넘어 신이 되고 싶은 자(호모 데우스)를 꿈꾸는 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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