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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달걀의 추억

<침묵의 봄> 살충제, 인간의 이기심을 공격하다

찐 달걀 9개

 

"옥순아, 가장 먹고 싶은 것 골라 봐."

1968년 겨울,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전남여중학교 앞 정문에서 만난 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 생각나는 유일한 추억이다. 그 속엔 합격했지만 진학할 수 없는, 그저 학교의 이름만 알리는 역할로 끝난 아픈 유년의 추억과 함께 먹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슬픈 달걀의 추억이다. 내겐 달걀이 계란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이다.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실타래이다. 되돌려 놓고 싶은 장면이다. 그 날 그 달걀을 먹지 않았다면 다른 길을 갈 운명의 여신을 만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 날 나는 학교 앞 가게에서 찐 달걀 10개가 망 속에 들어있는 한 꾸러미를 골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9개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영원히 잊히지 않는, 눈물샘을 자극하고야 마는 추억이 되었다. 그 때 그 학교를 제대로 다녔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고 비포장 곡선도로만 달려서 목적지에 이르는 데 이렇듯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거라는 깊은 아쉬움도 함께. 찐 달걀 9개의 추억은 주경야독으로 이어진 청소년기 블랙홀 9년을 예고한 줄 알았다면 그 날 찐 달걀을 더 적게 먹었으리라. 아니, 먹지 않았을 것이다.

 

달걀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의 밥상에만 올라오던 달걀찜. 집에서 서너 마리 닭을 길러 얻는 달걀은 바구니에 담겨 높은 시렁 위에 보물처럼 모셔 놓던 어머니의 알뜰 살림. 그 달걀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소풍 가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시면 찐 달걀을 내놓던 날이었다. 달걀 반찬을 싸 오던 친구들은 살만한 집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이 싸 오던 점심 도시락에 얹혀 있던 달걀 프라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만큼 달걀은 고기보다 더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그 달걀이 수난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죄 없는 닭들의 수난시대다.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온 대가라서 더욱 참담하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 생길까? 닭들은 또 얼마나 구박 덩어리가 될까? 더 많이, 더 빠른 속도에 불을 붙인 인간의 욕심이 불러낸 참극이다. 닭들에게 참 미안하다. 이 무더위에 한 마리당 사육 공간이 A4 용지 2/3 정도라니! 옴짝달싹 못하니 병충해에 약하고 면역력도 약해서 진드기에 괴로워하며 그저 먹고 싸고 숨만 쉬며 달걀을 낳는 기계로 살고 있으니. 내가 먹은 달걀들에게 미안하다. 닭에게만 살충제를 쓰는 건 아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거의 모든 식품이 그 대상이다.

 

내가 근무하는 무지개학교다. 거기에다 생태환경(에코 스쿨)학교다. 그래서 학교에서 기르는 닭이나 토끼, 식물을 가꾸는 농장이나 비닐하우스에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러니 수확할 수 있는 채소의 양이 극히 적다. 그리고 모양이 온전한 것도 드물다. 살충제나 농약을 쓰지 않고서는 상추조차 제대로 길러 먹을 수 없다. 진딧물이나 각종 병충해로 메말라가는 식물들을 보는 것도 괴롭다. 그러니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살충제나 농약의 유혹으로부터 어찌 벗어날 수 있을까? 진드기로 고생하며 괴로워하는 닭에게 딱 한 차례 살충제를 뿌렸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농민의 하소연에도 차마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 인류는 이제 생태 환경을 교란시킨 원죄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인도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준다는 전제 아래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지 그런 말은 일일이 입에 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미안함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고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공기도 없으면 살 수 없다. 흙이 아니면 살 수 없고 부모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확장해 나가면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 때로는 너의 실패가 나의 이득이 되어 이 자리에 있다. 나의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좌절이다. 기회란 늘 한 쪽 편이니.

 

침묵의 봄은 현재진행형 -일상이 된 유해물질과의 동거



저자인 레이첼 카슨(1907~1964)이 남긴 <침묵의 봄>은 그동안 출판된 환경 관련 책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던진 환경 선언의 드높은 가치를 생각하면 이 책은 환경 분야의 고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살충제로 인해 벌어질 생태계의 몰락을 오래 전에 경고했다. 그 스스로 암과 투병하면서 위대한 이 책을 냈다.

 

날마다 습관적으로 쓰는 합성세제를 비롯해 로션, 샴푸, 염색약, 매니큐어나 모기약, 방향제, 살충제, 농약, 일회용 플라스틱 등 셀 수 없이 많다. 일부 화학제품은 유방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모방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 역할을 한다고 한다.

 

화장품에 들어 있는 파라벤, 향수나 방향제, 일부 플라스틱에 들어 있는 프탈레이트, 드라이클리닝 성분, 가구나 가전제품이 타지 않도록 첨가되는 난연제 성분, 동물에게 투여되는 유전자조작 성장호르몬, 농약과 살충제, 자동차 배기가스 성분이 의심을 받는다.

 

선택의 기로에 선 인류


유전자 변형으로 생산된 콩으로 만든 두부를 먹고 제초제를 뿌린 농장에서 자란 젖소의 우유를 마시고 살충제를 뿌린 닭장에서 자란 닭은 계란을 먹고, 화학 실험을 거친 화장품을 바르고 옷을 입고 사는 모습이 거의 화학제품 속이다. 흰 머리를 감추고자 선택한 염색약 속에 있을 약품들, 표백 처리된 화장지들도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더욱 놀라운 것은 8만종이 넘는 합성화학물질 중 발암성 검사를 받은 물질은 약 2%뿐이며, 1976년 이후 정확히 5종의 물질만이 금지됐다는 미국 상황을 보면 인류는 지금 얼마나 위험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지금 유해물질이 쌓여가는 대지와 강, 바다를 터전으로 인간도 동물들도 함께 뒹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며 초고속으로 달리는 문명의 기차를 이대로 계속 달리다가 다 함께 절멸할 것인지, 달리는 기차를 멈추게 할 특단의 대책으로 그 기차에서 뛰어내리거나 멈추게 할 것인지. 지구환경의 오염으로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식탁에 올라온 모든 식품은 살충제로부터 안전한 음식은 하나도 없다. 흙이 오염되었으니 강물도 바다도 오염되어 횟집의 생선도 바다의 물고기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 알면서도 죽음의 질주를 멈추지 못하고 살던 대로 사는 게 오늘의 인간이다. 어쩌면 인간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만물을 절멸시키는 최악의 존재로 다른 생명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나는 인간으로 사는 게 두렵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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