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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을 따라 흐르는 우정과 탈주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강마을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송도마을 벌 가운데 한 곳만 가을걷이가 남았습니다. 비어 있는 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철 농사를 위한 비닐하우스가 세워지겠지요. 벌써 추수한 논 중 몇 마지기에는 마늘 싹이 보입니다. 비닐을 씌워 골을 타고 구멍을 내어 심은 마늘들은 제법 초록초록 합니다. 비닐을 깔지 않고 짓는 농사를 보기는 어려운 것이 요즘의 농촌 풍경입니다. 비닐은 모든 곳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농사가 끝난 들판에서 걷어낸 비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쓰레기 산을 이룹니다. 처리도 힘들고 보기에 흉합니다. 자연과 인간은 같이 살아가야하는 벗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가끔 친한 벗을 잊어버릴 때가 있지요. 요즘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들이 그러합니다. 물도 하늘도 땅도 마음대로 홀대합니다. 소중한 벗을 잃고 난 뒤에야 벗의 소중함을 알게 될까 무섭습니다.

 
경남 창원시 완월동에 사는 동네사람 몇이 모여서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한 해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냥 한 달에 두어 번 책 한 권 정해서 읽고 시도 낭송하고 이렇게 합니다. 가을밤이면 맥주집에서 가을시를 읽고, 봄꽃이 피면 봄꽃이 보이는 찻집에서 꽃에 관한 시를 두런두런 읽기도 합니다. 이번 달의 책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입니다. 제가 처음 책 소개를 했을 때 반응은 였습니다. ‘얘들이 읽는 책 아냐?’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유목적으로 탈주하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술주정뱅이 아빠의 폭력과 친절하고 예의바른 과부댁으로부터 탈주하는 헉과 도망자 흑인 노예 짐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잭슨섬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하고 함께 미시시피 강으로 탈주의 길을 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은 새로운 세계와 접속합니다.

헉이라는 질서를 벗어난 보호자 없는 백인 아이와 새로운 삶을 찾아나서는 어른인 도망자 흑인 노예 짐 사이에는 나이, 인종 모든 것을 떠나 서로 벗으로 인정하는 장면이 저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헤어져서 밤새 강을 헤매다 새벽녘 뗏목에서 잠든 짐을 발견한 헉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짐에게 어제 우리가 찾아다닌 것은 꿈이었다고 장난을 합니다. 그러자 짐이 말합니다. “나는 너를 잃어버린 줄 알고 그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네가 무사히 돌아와서 너무 기뻐 엉금엉금 기어가 네 발에다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거짓말로 늙은 나를 곯려줄까 생각만 하다니, 너는 친구를 부끄럽게 만드는 쓰레기다.” 이 말에 헉은 자신이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가를 깨닫고 검둥이 짐에게 가서 머리 숙이고 사과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좋습니다. 자연은 한 소년을 위대한 인간으로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한 소년의 가습에 벗이 오롯이 들어오게 됩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상강지절을 지나 깊어진 자연 앞에서 저의 가을걷이를 생각합니다. 봄에 뿌린 씨앗들은 나름의 열매를 맺기도 하고 어떤 것은 뜨거운 여름 가뭄에 소리 없이 사라졌네요. ^^ 내일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벗들과 우정에 대한 독서 토론을 할 것입니다. 가을 시도 한 편씩 낭독하고요. 제 가을은 몇 가지 추수할 것이 남은 것 같습니다. ^^ 모두 행복하고 향기로운 가을되시기 바랍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지음, 김동욱 옮김, 민음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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