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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간 사람들 1

지금까지 연구에 의하면 약 1만여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 쯤 중국 대만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하나의 땅덩어리였다. 빙하기가 끝나 수천 년 동안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낮은 지대에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서해가 생겨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은 반도가 됐고, 대한해협이 생겨나 동해가 태평양과 연결되면서 일본은 섬나라가 됐다.  

일본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는 이어졌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규슈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규슈 가라쓰(唐津)시에 가면 우리 옛 조상들이 뗏목을 타고 거친 바다에 나가 위험한 항해 끝에 일본에 도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쓰시마(對馬) 섬 때문이다.

 

가라쓰는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180km에 있다. 일본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가라쓰의 ‘가라’는 일본말로 ‘외국’이란 뜻으로 본래는 한국을 의미한다는 게 일본 학계의 정설이다. 현재 가라쓰를 표기하는 한자 ‘唐津’은 옛날에는 ‘한진(韓津)’이라고 쓰고 가라쓰라고 불렀는데, 이후 당나라와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韓’ 자만 ‘唐’으로 바뀌었다고 일본 고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요인 때문에 가라쓰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와의 교류가 활발했다. 훗날 조선 도자기가 처음 전해진 곳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병력을 집결시켰던 히젠 나고야성도 이곳에 있다. 이런 지역에서 일본 최초의 벼농사 유적이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적이 발견된 가라쓰 나바타케에는 ‘마쓰로칸(末盧館)’이라는 이름의 벼농사 박물관이 있다. 기원전 가라쓰 지역에 존재했다는 마쓰로(末盧)란 원시 국가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마쓰로칸은 가라쓰 시내를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 안에 있다. 가라쓰역에서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일본식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동네에 높은 통나무 울타리로 가려져 있어 대문에 ‘마쓰로칸’이란 표지판을 찾아야 한다.  

현장에 와 보면 왜 옛날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는지 고개가 끄덕여 진다. 뒤에는 울창한 산이 있고, 1km 정도 평지를 사이에 두고 바다가 있다. 수렵과 채집, 어업이 가능한 데다 산골짜기로 흘러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논농사를 짓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경남 함안 지역에 존재했던 아라국(561년 멸망) 후예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의 일본 이주를 연구한 정효운 동의대 교수에 따르면 쓰시마섬은 양국 해상 교류를 쉽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멀리 쓰시마섬이 보이듯 가라쓰(唐津)에서도 쓰시마섬이 보인다. 이는 일본으로 배를 타고 간 우리 조상들에게 정처 없는 항해가 아닌 정확한 목적지를 보면서 가는 항해였다는 것을 뜻한다. 

정 교수는 “전라도 영산강이나 섬진강 하구 등의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출발하여 남해안의 섬들을 거점으로 삼아 쓰시마섬까지 가는 해로가 백제가 이용한 주요 해상 교통로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바다의 흐름인 해류도 교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요즘도 가라쓰 해변을 거닐다보면 한국 상표가 붙은 생수병이나 라면 봉지 같은 한국에서 떠내려 온 각종 쓰레기를 볼 수 있다. 이런 증거로 보아 그 옛날 한반도인들도 이 해류를 타고 일본 섬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이 간다.


가야, 고구려, 백제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일부는 자신들의 국가가 멸망하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부흥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멀리 보이는 일본 땅은 그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땅이었다. 그리고 한반도와 매우 비슷한 규슈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건설에 힘을 보탰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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