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일정을 위해 이도백하에서 아침을 맞는다. 밖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 지금 날씨로 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뿐이다.
이곳 이도백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물줄기(白河) 두 개가 합류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이도백하는 발해의 중경(中京) 흥주성지(興州城址)가 남아있으며 안도현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백두산 북파 방면 해발 500m 지점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로 백두산 등정을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다.
날씨 때문에 걱정하자 가이드는 지금 여기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워낙 고산지역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화니 출입이 허용 되면 가야 한다고 한다. 짙은 흐림 속에 있는 이도백하를 등지고 백두산 천지 등정의 첫 관문인 서파 산문으로 간다.
가는 도중 어제 명동촌과 용정의 아쉬움 속에 일제강점기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 끼친 말이 떠오른다. 그의 친손자가 현재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이다. 그는 1944년 7월 24일에 일본의 제9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전쟁 수행을 위한 징병·징용 및 근로 보국대의 기피자를 마구잡이로 색출했으며, 심지어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공포해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에게 정신근무령서를 발부했고, 이에 불응시는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 징역형을 내리기도 했다.
이 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총독부에서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며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실로 반성을 모르는 민족의 전형이다.
서파산문을 향하면서 일본의 만주침략 과정과 간도협정, 만주사변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자중지란에 의해 청나라나 조선이 일제에게 당한 것이다. 이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면 남북이 같은 마음으로 뭉쳐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존해야 한다.
서파산문을 향하는 90여 분 동안 날씨 변화무쌍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과 햇살이 숨바꼭질한다. 구름 사이 해를 보며 일행은 환호를 한다. 서파 산문에서도 해는 구름 속에 숨기를 반복한다. 입장을 기다리는 긴 행렬에 서서 삼십 여분 기다린 끝에 상부 2,100m 주차장을 향하는 셔틀버스를 탄다. 곧게 뻗은 마과목과 고사목, 연리목을 보며 고도를 실감한다. 그러다가 경사가 가파른 높은 지역에 도달하자 수목한계선을 지났는지 나무는 없고 전부 초원이며 피고 진 야생화가 지천이다. 공기는 청아하다. 멀리 보이는 천지는 구름 속에 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싶어 하는 인파의 행렬이 천지를 앞두고 1,442계단에 개미 떼처럼 오른다. 흡사 인파에 떠밀려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 같다. 무릎 통증이 전해온다. 오르다 쉬기를 반복한다. 좌우에 보이는 산은 파란 잉크 빛 하늘 속에 있다. 삼십 여분을 오른 끝에 천지를 볼 수 있는 곳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천지를 본다는 것도 만만찮다. 조망 좋은 가장자리를 차지한 중국인들은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국인 특유의 억양과 거친 몸짓은 배려란 없다.
어찌어찌 비집고 들어간 순간 흰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 속에 둘러쳐진 산과 호수는 명경지수 그 자체로 비경을 드러낸다. 탄성이 나온다. 어떤 언어적 표현으로도 묘사하기 어렵다. 어쩜 저렇게 맑을 수 있을까? 눈이 시원하고 가슴이 트인다. 조금만 더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신 셔트를 누르고 물러난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구름에 가렸다 드러내는 비경, 하지만 이 천지도 1962년 조중변계조약에 의해 54.5% 북한이 나머지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아쉽지만 내려가는 일도 만만찮아 걸음을 돌리다 바로 옆의 37호 경계비를 본다. 한쪽 면은 중국 반대쪽은 조선이 빨간색으로 음각되어 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이다. 북한 쪽으론 넘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분단이라는 아픔을 맛보는 순간이다.
내려오는 길은 내려다뵈는 경치를 관망할 수 있어 좋다. 후들거리는 다리도 쉴 겸 서늘한 바람에 한들거리는 구절초를 닮은 야생화를 담는다. 거센 바람과 한파 때문에 높이 자람을 하지 못한 야생화들은 민들레처럼 납작 엎드려 피고 진다. 눈에 내려다뵈는 풍경을 죄다 가져가고 싶다.
모든 일행은 다시 모여 올라온 길을 돌아 내려가다 늦은 점심을 먹는다. 금강대협곡 입장구 바로 앞이다. 비빔밥이라고 주는데 비주얼이 이상하다. 우리나라가 아님을 더듬으며 불만을 지운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 화산 분화시 넘친 용암이 흘러 깊은 계곡과 기암괴석을 품은 곳이다. 시원스럽게 뻗은 마과목과 백양나무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볕이 싱그럽다. 백두산의 청정한 바람과 숲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여유와 한산함이 있다면 좋으련만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들로 숲 사이 난 좁은 길이 몸살을 앓는다. 이런 좋은 곳에 왔으면 묵언으로 눈과 가슴만 즐겁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욕심 많은 바람인가?
피곤이 몰려온다. 아쉬운 백두산 천지를 뒤로 서쪽으로 향하는 해를 보며 오늘 숙박지 퉁화시로 향한다. 퉁화로 향하는 창밖 경치는 전형적인 중국풍이다. 넓은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고 곧게 뻗어 자라는 자작나무 숲이 하얀 줄기를 드러내며 녹색과 대비된다. 퉁화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과 해바라기 꽃밭이 이색적이다. 해넘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저녁 시간 햇볕에 빛나는 하얀 자작나무의 속삭임이 하루의 고단함을 토닥여준다.
아직도 꿈을 꾼 것 같은 구름 속에 드러난 천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언제쯤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를 통해 천지를 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