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혹독한 세대갈등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갈등은 연령과 집단 간의 충돌이 이념과 가치관의 충돌과 중첩되어 일어나며, 사람들은 이러한 가치관의 격차에 곤혹스러워한다. 물론 모든 세대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육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구성원 간 밀도가 높다 보니 조금만 건드려도 파장이 크고 상처가 깊다. 학교와 지역사회, 교육청과 학교, 교원과 교원 그리고 학생, 학부모 등이 촘촘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직에서 갈등은 불가피하고 불가결한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낯선 환경에서 교단은 곳곳에서 예민한 뇌관과 맞닥뜨리게 된다. 교원들 간에는 업무 분장과 같은 외형적 요인은 물론 신구세대 간의 보이지 않는 대립에 힘들어한다. 교사의 위상이 예전과는 다른 지금, 학생들과의 관계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닌 지식전달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학부모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어렵다. 막무가내식 일방통행에 교권이 침해되기 일쑤다. 다양한 갈등 요인이 조금씩 표출되는 교단의 3월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계절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감과 소통, 배려와 나눔, 대화와 양보 등의 덕목을 제시하며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서 어깨동무하고 함께 가는 행복한 동행(同行)을 주문한다. 하지만 동행의 디테일이 문제다. 때문에 갈등 상황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진단과 분석을 토대로 효과적인 예방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호에서는 3월 신학기를 맞아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조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 소통과 협력 속에 조화로운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
교직: 독특한 다세대 일터
교직은 독특한 ‘다세대 일터(multigenerational workplace)’이다(Abram & von Frank, 2014). 교직은 어떤 시점에서든, 적어도 셋 또는 네 개의 세대 그룹이 공존하고 함께 일하게 되는 다중세대로 구성된 일터이자 조직이다(Stone-Johnson, 2016). 최근 교직에는 출생 연도에 따라 베이비붐세대(1943-1960), X세대(1961-1981), 그리고 밀레니얼세대(1982-2004)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Strauss & Howe, 1991; Stone-Johnson, 2016; 김재원 & 정바울, 2018). 각각의 세대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대 정체성 또는 세대 특성을 공유한다.
전후 세대인 베이비붐세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의 충돌과 혼재를 경험한 세대이다. 일과 관련하여 베이비붐세대들은 기성 권위와 위계에 순응적이고,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기존 체제와 규정을 고수하는 범위 내에서 추구하며, 개인 생활보다 일과 직장을 우선시하여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직업윤리를 보인다. 또 한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하려는 ‘평생직장’ 인식이 강하다.
1960~1970년대에 출생한 X세대들은 베이비붐세대에 비해 반항적이고 퇴행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X세대는 베이비붐세대와 대조적인 특성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X세대들은 탈권위주의적이고 규정에 집착하기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거나 때로는 ‘이유 없는 반항’을 보인다. 또한 이전 베이비붐세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인간(organizational man)’으로부터 벗어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특성을 띠기도 한다(Stone-Johnson, 2016).
한편,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밀레니얼세대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주도적이며 다양성, 국제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역량이 탁월하여 기존의 학교, 직장, 공동체의 변화와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 낼 주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부모세대로부터의 적극적이고 구조화된 양육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불확실한 상황이나 도전적인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고 힘든 일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경향을 띤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이들 밀레니얼세대들은 때로 ‘스트로베리세대(겉보기엔 예쁘지만 연약하고 무름)’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직 세대별 특성의 삼위일체
이러한 세대별 특성은 마치 삼위일체와도 같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교직 선택 동기, 직무(또는 일) 인식, 그리고 경력 전망에 반영되어 나타난다(Stone-Johnson, 2016). 그리고 이러한 상이한 세대별 특성은 교원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직업선택 동기. 베이비부머세대 교사들은 교직을 선택한 동기에 대해 교육의 중요성과 사회정의를 위한 사명감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해 X세대교사들은 직업 안정성,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같은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Stone-Johnson, 2016; 김재원 & 정바울, 2018). 한편, 밀레니얼세대 교사들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고용불안이 가중되면서 직업선택 동기에 있어서 안정성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성의 토대 위에서 밀레니얼세대 교사들은 개성을 살려 학교 조직이나 교육 분야에 자신을 한정하기보다 이를 초월하여 다양한 분야(연극, 영화제작, 음악, 문학, 웹툰, 유튜브, 스타트업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 한다(김재원 & 정바울, 2018).
직무 인식. 이와 같이 상이한 세대별 직업선택 동기는 교사들의 직무 인식에 현저한 영향을 준다. 교육자로서의 헌신과 직업적 소명을 강조하는 베이비붐세대 교사들은 업무가 있으면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반면, 소위 워라밸을 중시하는 X세대나 밀레니얼세대 교사들은 퇴근 후의 개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일을 빨리 처리한다. 특히 자기 학급 업무가 아닌 학교 업무로 인해 개인적인 삶이 침해받는 것에 유독 많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선배 교사들의 눈에는 배려심이 부족한, 이기적이고 ‘얄미운’ 후배로 비치기도 한다(장재훈, 2018). 또한 선배 교사들에 비해 공부 잘하고 어려움 없이 자란 교사들이 많아 교과지도는 잘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학부모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생활지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김재원 & 정바울, 2018; 장재훈, 2018).
경력 전망. 이러한 세대별 상이한 직업선택 동기와 직무 인식은 경력 전망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베이비붐세대 교사들은 평생직장인 교직에 재직하면서 행정가로 승진하는 선형적인 궤도를 추구했다. 그런데 권위주의에 반항적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X세대 교사들은 행정가로서의 승진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밀레니얼세대 교사들은 행정가 승진을 포함, 교사 베스트셀러 작가, 스타강사, 교사 영화감독, 교사 연출가, 교사 싱어송라이터 등과 같이 다양하고 대안적인 진로를 모색한다. 신세대 교사들의 낮은 행정가 승진 열망은 행정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학교 행정과 교직 문화에도 현저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베이비붐세대 교사들이 대거 은퇴함에 따라 교직에서도 급속한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서울신문, 2017. 9. 17.). 따라서 급속한 세대 재편에 대비, 충분한 세대 승계 전략을 마련하여 실행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갈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Abrams & von Frank, 2014).
세대 간 대화와 협력
교직은 셋 또는 네 개의 세대 그룹이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고 일하는 독특한 다중세대 일터이다(Stone-Johnson, 2016). 때문에 세대별 상이한 특성으로 인한 갈등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 같은 세대 간 오해와 대화 부족에서 오는 마찰로 인한 갈등은 세대 간 협력과 학습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특히, 앞에서 다룬 선배 교사와 신세대 교사들의 학교 업무를 둘러싼 상이한 접근 방식이나 ‘공부 잘하고 어려움 없이 자란’ 신세대 교사들의 학생 이해 역량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은 가장 두드러진 갈등 요소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신세대 교사들의 인식을 이해하는 것은 세대 간 갈등 예방과 해소에 매우 중요하다. 신세대 교사들의 성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교대 4학년 예비교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다양한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예비교사들은 그들 특유의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에 힘입어 선배들의 따가운 지적에 대체로 흔쾌히 수용하고 달갑게 받아들였다(Abrams & Von Frank, 2014). 그러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당당하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학교 조직 업무를 둘러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띤다는 선배 교사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과 조언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세대 교사들은 자신들이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이해 능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우수한 능력과 자질이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뛰어난 인적자본이자 잠재적 자원이라는 낙관적인 인식도 보여줬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신세대 교사들은 세대 간 갈등의 원인과 해소 방안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고 자신들의 미흡한 부분을 선배 교사들과 협력해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자신들의 긍정적인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교직을 더 활력 있게 만들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교직의 세대별 갈등 해소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없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세대 간 진솔한 이해를 통해 대화의 길을 열고 이를 토대로 협력을 위한 대화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대 간 갈등에 대한 인식에 전환이 필요하다. 항상 이 세대 뒤에 다른 세대가 오고 있고, 그 세대 역시 이전 세대와는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Hargreaves & Fullan, 2012). 세대 간 갈등을 긴 호흡으로 본다면 어쩌면 이전 세대에 대한 반동적이거나 또는 적응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퇴행적인 양상을 보이는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갈등의 프레임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어찌됐든 세대 간 갈등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대화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Stone-Johnson, 2016, p.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