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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섬뜩한 커밍아웃

 

영화 ‘기생충’을 본 관객들의 관람평이 차고 넘친다.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로 꼽히는 칸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영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극장을 찾는다. 개봉 20일만에 840만 관객을 돌파했다(6월 18일 기준).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늘 많은 이야기들을 양산해왔다. ‘살인의 추억’(2003)이나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때도 그랬고, 흥행에 실패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영화 ‘기생충’은 그의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달라졌다. 세 가지 면에서 그렇다.

 

우선 봉준호는 이 영화를 통해 과연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미장센의 교과서로 불린다. 영화 속 소품, 배경과 빛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피사체를 배치하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는 배우의 연기 합마저 ‘미장센’ 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인 송강호가 홀로 이끌어가는 원톱 영화가 아니다. 박 사장(이선균 분)의 4인 가족과 기택(송강호 분)의 4인 가족의 역할이 적절하게 분배돼 있다. 여기에 문광의 가족 2인이 더해지며 영화는 10명의 배우가 각자의 자리에서 끌어간다.

 

우리는 모두 기생한다?

배우들의 에너지는 넓은 스크린에서 때론 격렬하게 충돌하고 때론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조응하며 13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도무지 멈춰 세울 수 없는 맹렬한 희비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속도감을 가진 기차가 배경이었던 ‘설국열차’가 아니라, 오히려 집이라는 부동의 물성을 가진 정적 공간임에도 관객들은 지루함은커녕 손에 땀을 쥐고 영화에 집중한다. 그렇게 봉준호는 배우들의 서로 다른 연기를 거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지휘하는 데 성공했고, 미국 영화매체인 <인디 와이어>는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선언했다.

 

봉준호 감독 자체를 장르로 명명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봉테일’이다. ‘봉준호+디테일’을 줄인 이 별명은 현장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서 먼저 나왔다. 그는 각도, 조명, 비율에 대한 모든 것을 계산해 그린 콘티북을 현장과 공유해 가장 효율적으로 촬영한다.

 

영화 ‘괴물’에서는 가장 중요한 괴물 CG를 영화 전체에서 125컷이 나오도록 치밀하게 사전준비 후 촬영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숏의 변화를 시도하는 감독들과는 다른 스타일이면서도 ‘천재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이유는, 첫째로 첫 촬영인 크랭크인 이전에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된 영화 한 편의 모든 컷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머릿속 영화를 현장에서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낸다는 것이 그가 천재 감독인 마지막 이유다.

 

대부분 감독들에게 촬영 현장은 포기의 연속이다. 늘 부족한 예산, 배우와의 기 싸움, 숙련되지 않은 스태프와의 갈등에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수많은 좌절을 거치며 그들은 타협을 시작한다. 봉준호는 그렇지 않다. 영화 ‘마더’(2009)에서 국민엄마 김혜자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고 따귀를 맞게 한다. 조연의 이름을 불러주고 식사 때를 지킨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봉 감독을 두고 “자신의 100% 이상을 이끌어내는 감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생충’에는 온통 계급과 자본에 대한 클리셰들로 가득하다. 반지하방, 배설물이 역류하는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방, 전깃줄로 뒤덮인 골목길, 가파른 언덕 위 2층집 등 한국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두 가족의 희비극은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기생충’에는 요즘 한국영화에 흔한 외국 배우도 없다. 짜파구리 같은 소품도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한국영화에 조예가 깊은 평론가 달시 파켓의 적절한 번역으로 해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본 홍콩의 한 영화감독은 ‘이건 홍콩의 이야기!’라고 공감했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영국 감독은 ‘당장 세트만 바꿔 영국에서 리메이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과 설정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이 그가 ‘기생충’을 통해 달라진 두 번째 지점이자 이 영화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의 마지막 변화.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며 자신을 영화에 대입한다. 박 사장 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기택처럼 루저는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발걸음 멈춰도 자신과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한국 사회 어디에 ‘기생’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누구에게 기생하고 있나? 점점 가슴을 채워오는 ‘묵직한’ 모욕감. 아마도 이런 점이 개봉 당시 빨랐던 500만 관객 돌파 이후 주춤했던 상승세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영화의 영어 원제는 데칼코마니였다고 한다. 박 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이 똑같이 포개진다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상류층인 박 사장이 기택 가족에 기생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봉 감독은 질문한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생 또는 공생이라는 인간다운 관계가 무너져 내리고, 누군가 누구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서글픈 세상 속에서는 더더욱.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발버둥치는 어느 일가족의 난리법석 생존투쟁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기생충’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서민들의 서글픈 자화상

사실 자본과 계급에 대한 그의 천착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확인된다.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교수, 아침 조깅을 하며 남의 집 배달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만취해 노상방뇨를 하려다 경비원에게 들키는 검사의 에피소드가 10분씩 이어진다.

 

에피소드의 제목들도 의미심장하다. 교수 에피소드는 ‘바퀴벌레’, 논설위원 편은 ‘골목 밖으로’, 검사 편은 ‘고통의 밤’이다. 세 주인공이 TV 시사 프로그램 출연자로 한 자리에 모이는 에필로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 계급의 민낯과 공허한 대화들이 교차되며 영화는 비로소 완결성을 갖춘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달라진 점은? 더 이상 봉준호는 계급 이동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현남(배두나 분)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고, 윤주(이성재 분)는 1500만원을 주고 교수가 된다. ‘옥자’에서 미자(안서현 분)는 수많은 슈퍼돼지를 구하진 못했지만 옥자만이라도 탈출시켜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산다. ‘설국열차’도 남궁민수(송강호 분)도 결국 꼬리칸 이들과 함께 열차를 전복시키기까지 했다. 봉준호의 전작 주인공들은 연대했다. 편법으로라도 신분상승을 이뤄냈거나, 자신만의 무릉도원으로 도피에 성공했다. 혁명을 이뤄내기까지 했다.

 

봉준호가 그려 갈 다음 세계는...

그런데 ‘기생충’에는 없다. 박 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의 연대는 술에 취한 공상에서나 가능하다. 함께 연대해야 할 문광네는 서로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 상대다. ‘기생충’에서는 봉준호 특유의 위트와 블랙 코미디의 적절한 조화가 주는 재미가 사라졌다. 씁쓸하고 치욕적인 웃음만 남았을 뿐. ‘기생충’은 봉준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 첫 영화인 셈이다. 더 음울하고 냉소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은 절대 변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이 중요하다.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난 영화의 관점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컷에서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카메라가 담아내는 영상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그의 섬뜩한 커밍아웃에 확신이 든다. ‘기생충’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로 그의 향후 영화들은 더욱 무겁게 변할까?

 

황금종려상을 받고 그는 말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사이코’나 ‘현기증’을 찍은 게 본인 환갑 무렵이다. 나도 그 나이 때까지 현역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으면 좋겠고 남들이 했던 것은 안 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한국영화사 100주년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온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물론 반갑지만, 그보다 봉준호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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