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경쾌했다.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은 표정과 자신감이 넘쳤다. 현안에 막힘이 없었고, 진단과 해법은 직구로 승부했다. 대구 특유의 사근사근한 어투가 적당한 비음과 섞이면서 피아노 건반처럼 통통 튀었다. 중학교 교사로 출발해 국회의원·여성가족부 장관을 거쳐 교육감까지 석권한 인물이지만, 딱딱한 권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원시원하고 성격 좋은 누나, 힘들 때면 찾아가 수다 떨고 싶은 이웃집 언니, 그런 사람을 보는 듯했다.
강 교육감과 인터뷰가 잡힌 11월 7일은 교육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괄 일반고 전환을 발표한 날. 그는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에 분노했고, 신뢰 잃은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입 정시확대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인 것은 국제 바칼로레아(IB).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 미래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착돼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학부모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사도 사람인만큼 실수할 수 있는데 사회가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며 채찍보다 이해와 응원을 호소했다. 다만 서울 인헌고등학교처럼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 성향을 심어주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모든 교육정책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강 교육감. 그래서일까? 틈만 나면 학교 현장을 찾아 학생 한명 한명의 손길과 눈길을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교육부가 자사고·외고 일괄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가 정책의 핵심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신뢰입니다. 그런데 이번 자사고·외고 폐지는 그런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습니다. 사실 자사고를 만들라고 강권하다시피 한 것은 정부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죠. 그런데 이제 와서 문제가 있으니 일반고로 다시 돌아가라고 합니다. 학교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아닌 말로 자사고나 외고가 입시학원처럼 운영되고 있다면 그것을 못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우선 아닐까요. 또 지금 정부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교육자치입니다. 그렇다면 자사고·외고에 대한 결정권도 시·도교육청에 맡겨야 합니다. 지역 여건에 따라 목적에 맞게 운영토록 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이죠. 무엇보다 이번 결정이 학생들의 다양한 학교선택권을 박탈해 버렸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음에도 굳이 자사고·외고를 없애려 하는 이유가 뭘까요.
“언론에서는 제2 고교평준화라고들 하는데 전 ‘과도한 고교평준화’라고 봅니다. 고교서열화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고교교육의 자율성과 특성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나 다름없죠. 대통령 공약이라 할지라도 현실과 맞지 않거나 잘못됐으면 수정해야 하는데…. 고집 피울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교육이 정치에 너무 많이 휘둘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현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교육 본질에 입각해 지속가능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거에 상황을 정리해버리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양극단을 오가는 정책들이 나오고 국민들만 혼란스러워집니다. 물론 교육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정권 입맛대로 교육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결국 교육의 본령을 훼손시키는 일이 됩니다. 교육은 정치의 미션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닌데, 생각할수록 안타까워요.”
이번에 보니까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해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던데 그렇다면 다음에 들어서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결정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럴 여지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우리 역시 오는 2024년까지는 지금의 정책 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할 생각이고요. 그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한 고민도 지금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입 정시확대에 우려를 표명했던데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교육감에 출마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이 수능 준비를 하면서 행복해 할까요? 수많은 문제풀이 연습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따지고 보면 수능은 끊임없는 인내의 시험입니다. ‘대학을 위해 모든 것을 참아라. 대학 가면 네 세상이다’라는 말로 우리는 얼마나 아이들을 옥죄어 왔습니까. 세상은 다이내믹하게 변해가는 데 모든 욕구를 끊임없이 눌러야 하는 게 수능입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일탈로 가는 것이고, 이겨내고 대학에 가면 그 순간 공부를 팽개쳐 버립니다. 이 극단적인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래역량을 길러낼 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입시제도를 가장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교육감은 학력고사 세대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한때는 단순한 입시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교육감이 되고 나서 생각을 바꿨어요. 세상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데요. 30년 전 제도를 지금 그대로 적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만약 BTS가 그 시대에 활동했다면 지금처럼 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이미 굉장히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특성을 가진 사회로 전환했습니다. 그런데 교육만 과거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강은희 교육감 하면 국제 바칼로레아(IB)가 떠오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에서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정해진 답만을 요구하는 ‘객관식 정답찾기’’ 프레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던 중 초-중-고 단계별 유기적 연결성을 지닌 IB 프로그램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전 과목 논·서술형 시험을 실시하면서도 다층적이고 구조화된 평가방식이더군요.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한 IB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미래형 교육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IB 프로그램 연수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 정책을 결정할 때 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게 진짜 맞나…’ 하면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반문해 보곤 하죠. IB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지금이라도 멈출까’ 하는 생각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했죠. 그래서 직접 선생님들과 함께 연수도 받아 본 것이고요. 무엇보다 저의 정책적 판단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학생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걱정스러웠어요. 지금은 만족하고 확신도 있습니다.”
대구의 IB 추진 상황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교육청은 학교 희망에 따라 IB 프로그램 관심학교 및 후보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관심학교 20개교를 선정·지원했으며, 올해는 35개교로 확대하고 후보학교도 9개교를 새롭게 선정했습니다. 후보학교 2개교는 지난 5월 IB 본부로부터 공식 후보학교 승인을 받았고, 나머지 7개 후보학교도 올해 안에 IBO에 승인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3개 고등학교가 IB 국제 공식 인증학교로서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5년이 지난 2024년 2월에는 고등학교에서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이수한 첫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IB를 접해본 교사들은 많이들 어려워하던데요.
“수십 년 가르쳐온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교수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어렵지 않은 교사가 어디 있겠어요. 평생 걸어 다니던 사람한테 자전거 타고 다니라고 하면 처음엔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IB 수업을 하는 교사들에게는 더 많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제 생각으론 한 3년 정도 가르쳐봐야 손에 익지 않을까 싶어요. 다소 시행착오가 있다 하더라고 수업의 퀄리티는 예전보다 훨씬 나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도전을 두려워 않는 대구 교사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원래 대구 선생님들이 화끈하다 아닙니까. 제가 그런 분들 만난 거 자체가 큰 행운이고요. 교육감으로서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의 울타리가 되고,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도록 걸림돌도 치워주고,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건네줄 수 있는 그런 교육감이 되고 싶습니다.”
최근 서울 인헌고에서 교사의 정치편향 발언을 두고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교사의 정치활동은 절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교실에서는 민주시민으로서 인류 보편의 타당한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착하게 살고, 부모에 효도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등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거죠. 물론 국시를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특정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교사가 의도적으로 학생들에게 정치적 성향을 주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걸 구분 못 하면 안 되는 거죠.”
학교현장도 자주 방문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참 예뻐요. 교육감 왔다고 수줍어하는 학생, 주뼛거리며 악수하는 학생,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애쓰는 학생 등등 참 보기 좋죠. 언젠가 공고에 갔을 때 한 학생이 우연히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어딘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씨 오늘 참 빛나 보여요’하며 토닥여줬더니 그날 이후 정말 딴사람처럼 열심히 공부하더랍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그런 존대를 받아본 것이 그날 처음이었다는 거예요. 아이들의 눈길 하나, 손길 하나하나를 정말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교사와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학부모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교육을 보는 눈이 좀 더 따뜻하고 관용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자주 가져 봅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하고 그러죠. 그런데 사회는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요. 조그만 삐끗해도 ‘선생이 그럴 수 있어’ 하면서 침소봉대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보다는 교사들의 전문성과 열정을 믿고 이해하고 응원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할 때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