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흑기사’ 촬영지로 최근 몇 년 전부터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슬로베니아. ‘흑기사’의 두 주인공인 김래원과 신세경이 만나고 재회하는 모습 속에선 너무나도 눈부신 호수가 보이고, 아찔한 절벽 위엔 예쁘장한 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성이 동굴 속에 푹 파묻힌, 생소한 모습까지도 보인다. 신기하다. 실제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흔히 ‘동유럽 여행’하면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슬로베니아까지 넣어 4개국을 여행하는 추세이다. 나 역시 이번 동유럽 여행에 슬로베니아를 포함했다.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슬로베니아 명소 4곳은 서로 다른 매력을 맘껏 발산하며 ‘흑기사’에서 나왔던 모습 그대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누군가 ‘동유럽 여행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바로 ‘슬로베니아!’라고 할 정도로 슬로베니아는 아직도 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01 작지만 사랑스러운 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사랑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류블랴나를 걷다 보면 곳곳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용’ 조각상이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아손과 함께 떠난 50명의 영웅이 용을 무찌르고 류블랴나를 구했고, 이후로 이 용은 류블라냐를 수호해주는 의미로 류블라냐의 상징이 되었다.
슬로베니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블레드’, 바다와 맞닿아 있는 작은 도시 ‘피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포스토이나 동굴’, 이 동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성 ‘프레드 야마성’이다. 이 모든 곳을 버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다. 류블랴나 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으면 굳이 해당 장소에서 1박을 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유럽국가가 적용하는 ‘대중교통 할인권’이 없어서 왕복교통비가 꽤 많이 든다.
#02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 휴양마을 ‘블레드’
류블랴나에서 1시간 2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서 도착한 ‘블레드’. 빙하호 위에 떠 있는 작은 섬과 아찔한 절벽 위 옛 성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왜 블레드에서 ‘흑기사’를 촬영했으며, 왜 많은 사람이 힐링하러 이곳을 찾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할 일은 블레드 성에 올라가 블레드 호수와 마을의 전망을 보고, 블레드 성을 내려와 블레드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호수 변에 앉아 발 담그며 동유럽 속 알프스인 이곳을 만끽하는 일이다.
만약 블레드 호수 한가운데에 떠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블레드 섬에 들어가고 싶다면, 슬로베니아 전통 배인 플레트나(바닥이 평평한 배)를 타고 가면 된다. 블레드 섬에는 1534년에 만들어진 ‘소원의 종’이 있다. 이 종을 울리면서 소원을 빌면 성모마리아가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니 꼭 이뤄야 하는 소원이 있다면 한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03 아드리아해의 숨은 보석 ‘피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해외 촬영장소로 유명한 ‘피란’은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3시간이 걸려 도착하게 되는, 류블랴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직행버스가 있어 편하게 갈 수 있다. 아드리아해의 숨은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멀지 않다 보니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피란 구석구석이 베네치아와 많이 닮아있다.
피란에 도착하면 바다 내음이 관광객들을 반겨주고, 푸른 바다와 붉은색 벽돌 지붕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도시인 만큼 바다를 즐기러 온 현지인과 투명한 아드리아해에 발 한번 담그고 싶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수영복을 챙겨갔더라면 아드리아해에서 맘껏 수영해보는 건데 아쉬움이 남았다. 바다 수영을 좋아한다면 수영복을 꼭 가져가길 추천한다.
피란의 유일한 중심 광장인 ‘타르티니 광장’ 벤치에 앉아 피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역동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보다 더 값진 힐링은 없다. 해가 뜨거워 도저히 앉아있지 못하겠다고 느낄 때쯤 피란의 랜드마크인 ‘성 조지 대성당’으로 이동하면 된다. 2유로를 내고 종탑 꼭대기까지 바쁜 숨을 내쉬며 올라가 바깥을 내려다보면 내 눈동자의 반은 드넓은 바다와 하늘의 푸른색으로, 반은 주황 벽돌 지붕의 주황색으로 채워진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이 모습. 시원한 바람이 여기에 계속 있으라며 우리를 붙잡는다.
종탑 꼭대기에서 내려오면 피란의 성벽과 노을을 감상하며 저녁을 맞이한다. 막차를 타고 다시 류블랴나로 향해야 하는 당일치기 여행자는 노을을 감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피란에서만큼은 1박을 하는 여행자들이 참 많다.
#04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동굴 ‘포스토이나 동굴’
알프스산맥의 동쪽 끝자락인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지대에 해당하는 크라스 지방에서 석회암 지형인 카르스트(karst)란 말이 유래되었다. 슬로베니아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많은 곳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류블랴나에서 1시간 거리인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럽에서 가장 큰 ‘포스토이나 동굴’로 향했다. 포스토이나 동굴에서 9km 떨어진 ‘프레드 야마성’도 함께 가면 좋다. 특히 여름 성수기(7~8월)에는 포스토이나 동굴에서 프레드 야마성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겨울에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렌트카를 많이 이용한다. 뚜벅이 여행자라면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길이 5km, 폭 3.2km의 거대한 석회암 동굴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꼬마기차를 타고 이 거대한 동굴을 둘러보는 것이 하나의 코스인데 신기한 경험이다. 꼬마기차를 타고 오디오 가이드(한국어)를 들으면 여기가 한국의 동굴인지, 슬로베니아 동굴인지 모를 큰 착각에 휩싸인다. 하지만 꼬마기차에서 내려 동굴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동굴이란 타이틀 앞에 감탄할 뿐이다.
포스토이나 동굴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의 동굴 탐험이 끝나고 프레드 야마성으로 향했다. 123m 높이의 암벽에 위치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성’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프레드 야마성은 1570년대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성인 만큼 10대 성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프레드 야마성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말은 ‘우와~’ 일 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을 테니깐 말이다. 프레드 야마성은 외부관람도 멋지지만, 내부관람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한국어 오디오가 도입되어 친숙한 한국어로 설명을 들으며, 미로같이 얽혀있는 성 곳곳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동굴 지형과 성이 조화를 이룬 모습에 놀라게 될 것이다.
포스토이나 동굴과 프레드 야마성은 여름 성수기에 운영시간이 더 길고, 셔틀버스도 운행하기 때문에 성수기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에필로그> 슬로베니아 명소 4곳을 모두 방문하려면 적어도 3박 4일의 일정이 필요하다. 각각의 코스가 모두 하루 코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에 두 곳을 갈 수도 있지만, 이러면 일정이 엉켜버리니 하루하루 천천히 슬로베니아를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엄마, 동생과 함께 동유럽 자유여행을 했다. 출발 전 엄마가 많은 버스 이동에 힘들어하실까 걱정했지만, 매일 색다른 슬로베니아에 반하셔서 행복해하셨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너무 만족했었다. 부모님과 함께하기 더할 나위 없는 여행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