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분 만에 끊은 코펜하겐 왕복티켓
나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즉흥적으로 시작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후배가 이번 여름에 덴마크에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생각과 말이 잘 통했고, 특히 여행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던 친구라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항공권을 검색했고, 예약하고 결제하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출발 날짜와 도착 날짜는 여름 방학 기간이고, in과 out은 코펜하겐이다. 그렇게 나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시작되었다.
6개월 만에 만난 후배는 전보다 더 밝아졌고, 행복의 나라 덴마크에서 살아서 그런지 더 행복해 보였다. 바이킹의 후예이면서 뷔페의 원조 국가에서 뷔페를 먹은 후에 자전거를 타고 뉘하운(Nyhavn)으로 갔다. 뉘하운은 코펜하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으로, 가지런한 운하 양옆으로 알록달록한 건물이 촘촘하게 서 있다. 운하 곳곳에는 작거나 크고, 오래되거나 최신의 배와 요트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박해 있다.
친화력이 좋은 후배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대만 친구, 일본 친구, 일본과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는 덴마크 친구, 그리고 덴마크에서 씨앗호떡을 팔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알리고 있는 한국 친구까지. 15명이 넘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의 소울푸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물론 내가 가져온 삼겹살의 소울메이트, 소주와 함께! 즉흥적으로 시작된 스칸디나비아 여행의 첫 번째 도시, 코펜하겐에서의 밤은 즐겁게 마무리된다.
#2. 베르겐 산 정상에서 소주잔 돌리기
덴마크에서 노르웨이로는 페리로 이동했다. 덴마크의 최북단 히르츠할스(Hirtshals)에서 저녁에 출발한 페리는 피오르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여 다음 날 낮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속 아렌델의 모델이 된 노르웨이 베르겐(Bergen)에 도착한다. 아침에 일어나 갑판에 올라 해안가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노르웨이 국기를 펄럭이며 힘차게 항해하는 선박을 보니 피오르의 나라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베르겐 항구에 내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데, 나에게 어떤 여자가 말을 건다. “혹시 베르겐 도서관이 어디야?” 나는 “보다시피 나도 여행자라 베르겐 처음이라서 잘 모르지만, 베르겐 시내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그 근처에 있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온 안드레아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함께 시내까지 가자고 한다. 그렇게 베르겐에 도착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친구가 생겼다.
안드레아는 저녁에 베르겐 산 정상에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할 거니까 나도 함께하자고 한다. 어차피 베르겐 산 정상은 케이블카를 타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베르겐 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고, 여기에서 베르겐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베르겐 산 정상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캠프장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고, 그곳에는 이미 여럿이 캠프를 즐기고 있다. 안드레아는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해줬고, 나는 비장의 무기,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꺼냈다. 맥주만 잔뜩 쌓아놓고 마시고 있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인들은 한국인의 술, 소주를 너무도 신기해했다. 나는 그들에게 소주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일명 소주잔 돌리기!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서 인사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두에게 한 잔씩 따라주고, 또 한 잔씩 모두 소주잔을 받았다.
다시 돌아온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르겐의 구시가지와 이를 둘러싼 북해 바다는 이제 막 노을이 지려 하고 있었다. 이런 은은한 야경도 매력 있고 멋지다. 마지막 케이블카가 도착하기 전까지 베르겐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노을이 보이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적당히 취한 우리는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 좀 더 가까워졌다.
#3. 피오르에서 만난 투머치토커
베르겐은 송네 피오르(Sognefjord)로 가는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베르겐역에는 이제 막 피오르 여행을 마치고 오슬로에서 온 사람들과 피오르를 보려고 베르겐을 떠나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베르겐역을 출발한 기차는 순식간에 노르웨이의 울창한 숲으로 파고든다. 기차는 곧 보스(Voss)에 도착했고, 여기서 다시 구드방엔(Gudvangen)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보스에서 구드방엔으로 가는 버스는 아찔하게 좁은 도로를 천천히 굽이굽이 돌면서, 거칠지만 아름다운 피오르 협곡을 보여준다. 버스가 왼쪽으로 커브를 돌 때는 오른쪽 창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돌 때는 왼쪽의 사람들에게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렇게 좁고 아찔한 도로를 지나서 구드방엔에 도착한 후에는 다시 플롬(Flam)으로 가는 페리를 탔다. 페리에 오르자마자 갑판 맨 앞으로 가서 피오르 가운데를 거침없이 항해하는 기분을 느꼈다. 평소 책에서만 보던 피오르의 모습과 피오르에 걸쳐있는 현곡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플롬역에서 사진을 몇 장 찍으면서 음악을 들으며 미르달(Myrdal)로 가는 산악열차를 기다렸다. 고풍스럽게 생긴 녹색 기차는 천천히 가파른 철길을 오른다. 경사가 가팔라지는 만큼 경치는 더 아름다워졌고, 사람들의 감탄사도 점점 커졌다.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 중 유독 한 남자가 눈에 띄었는데, 그는 브라질에서 온 사회학과 교수 알랭이다. 한국에서 온 지리 교사로 나를 소개하며 금세 그와 친해졌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멋진 폭포 앞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셀피를 같이 찍었다. 라틴의 피가 흐르는 두 수다쟁이는 십년지기 친구처럼 미르달역에 도착할 때까지 온갖 이야기를 나눴다. 역에 도착하니 오슬로로 가는 도중에 기차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기차 운행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조그만 역에 발이 묶여버린 많은 사람이 노르웨이 철도청 직원들에게 화를 내며 항의했지만, 긍정적인 두 라틴의 후예들은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알랭은 브라질의 국민 술 까사샤를 꺼냈고, 나 역시 소주를 자랑스럽게 꺼냈다. 종이컵에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술을 따르고, 무엇을 위한 축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배를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술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며 나누어 마시면서 두 남자는 각자 국가의 교육, 경제, 그리고 여행과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어느새 오슬로로 가는 기차가 곧 운행된다는 방송이 나온다.
#4. 오슬로의 청소부와 신자유주의
3시간 연착된 기차는 오전 1시가 훌쩍 넘어서야 오슬로에 도착했다. 베르겐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슬로에서의 계획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냥 무작정 걷다가 예쁜 건물이 있으면 사진을 찍거나 앉거나 혹은 누워서 음악 듣고, 글도 끄적거리고,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 같이 다니면서 놀고, 이게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우선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조개를 형상화한 곡선 형태인 데 반해,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는 기울어진 직선과 전면의 유리로 모던함과 단순함을 강조한 형태이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늘도 예뻐서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 경사진 바닥에 누웠다. 하늘을 바라보고 음악을 들으며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찍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가 여기 오면서 봤던 자전거 대여가 생각났다. 외국인인 나도 쉽게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오슬로판 따릉이를 타고 오슬로 구시가의 골목들과 성벽을 따라 달렸다. Ankersleva강 옆을 따라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다가 마침 그 옆을 지나가는 한 무리의 여행객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내가 어색한 포즈로 서 있으니까 좀 생동감 있는 포즈를 취하라면서 파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다가와 나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그 여자들은 영국 런던에서 노르웨이로 여행 온 친구들이란다. 런던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과 사진을 서로 찍어주면서 금세 친해졌고, 오슬로 시내를 함께 다니기로 했다. 그녀들도 별다른 계획이 없다.
계획에 없던 영국의 그녀들과 그렇게 반나절쯤 같이 보낸 후에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호스텔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너무 차분하다. 내가 바라던 그런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호스텔 카페에서 쉬고 있던 UCLA 유학생 크리스틴, 첼리스트 젱을 설득했고, 젱이 오슬로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라우도 데려왔다. 라우가 오슬로를 가이드시켜주겠다면서 우리를 이끌었고, 젱은 자기가 자주 가는 저렴한 피자집이 숙소 근처에 있으니 피자를 테이크아웃해서 가져가자고 한다. 나는 배낭에서 빠질 수 없는 소주를 꺼냈다.
그렇게 넷이서 잔디밭에 앉아 맥주와 소주와 피자를 먹고 있으니까, 공원을 청소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소리친다. 여기서 먹지 말고 바로 옆이 자기 집이라며 그 앞에 앉아서 먹으라고 한다. 곧 일을 끝마치고 아저씨도 우리의 조촐한 파티에 합류했다. 얼떨결에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 집 앞 바닥에 앉아서 파티를 벌였다. 역시 그 아저씨에게도 소주를 권했고, 역시 술을 좋아하는 바이킹의 후예라서 그런지 결국 아저씨는 소주 한 병을 원 샷 했다.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는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나는 한국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최근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크리스틴이 이건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화두가 제시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청소하시는 분의 표정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 사회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라우가 아저씨의 월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대뜸 물어본다. 아저씨는 노르웨이는 힘든 일일수록 돈을 많이 받는 편이고, 자기는 경력도 꽤 오래되어서 평균 이상은 받는다면서, 그래도 받는 금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게 노르웨이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의 집 앞 바닥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몇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5. 스톡홀름의 편의점에는 맥주를 안 판다고?!
기차가 스톡홀름(Stockholm)역에 도착할 때쯤 피오르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아유미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지금 스톡홀름에 있는데 혹시 나도 스톡홀름에 도착했으면 같이 여행하자는 것이었다. 며칠 전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인데, 그걸 기억하고 메시지를 보내주다니!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아유미와는 감라스탄(Gamla Stan)이라는 스톡홀름 구시가지에서 만났다. 서유럽이나 동유럽의 구시가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경관이었다.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을 걷고 있으니 마치 중세시대 유럽의 마을 속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골목들이 이어진 대광장에는 과거 한자동맹의 흔적이 남아있는 증권 거래소 건물을 비롯하여 대성당과 왕궁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다. 현대적인 도시 스톡홀름에서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감라스탄은 마치 서울 도심 속 창덕궁의 모습과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의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촛불이 켜져 있는 아늑한 식당 내부에 들어서자 능숙한 웨이터가 우리에게 예약했냐고 물었고, 자연스레 음료를 시킬 것인지 물었다. 음료의 기본 가격은 5만 원부터였고, 그것은 스틸 워터. 물이 무료로 제공되는 일본에서 온 여자와 심지어 반찬까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한국에서 온 남자는 결국 물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가장 기본적인 청어요리가 15만 원이고, 미트볼이 10만 원이다. 두 메뉴를 각각 시키고, 양이 부족할 것 같아서 감자수프를 하나 추가했다. 청어요리는 청어를 세 가지 방법으로 조리한 것에 치즈가 곁들여진 요리인데, 냄새가 정말 비리기도 했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그렇게 물도 없는 목 막히는 식사는 30만 원이 넘는 영수증을 받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
물도 없이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거금을 쓴 우리는 속이 타고 목이 너무 말랐다. 자연스레 맥주가 생각나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갔지만, 맥주가 없었다. 다른 편의점에 가봐도 상황은 똑같았다. 편의점 직원에게 왜 술이 없냐고 물어보니 스웨덴은 다른 유럽과 다르게 술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서, 미국처럼 정해진 곳에서만 술을 판매한다고 한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먹기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걸어서 스톡홀름 중심에 있는 ‘Liqure Store’로 갔고, 드디어 시원한 캔맥주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도 없이 식사를 끝낸 후에, 1시간 가까이 맥주 하나만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걸은 후에 마시는 맥주는 지금까지 마셨던 그 어떤 맥주보다도 짜릿하고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