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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에 고모의 사랑과 회한 담다

 

북한산 둘레길 10구간을 걷다가 주택가에서 노란 탱자를 보았다. 담장 위로 절반 이상이 보일 정도로 크게 자란 탱자나무에서 탱자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나무라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선 과수원이나 집 울타리로 흔히 쓴 나무였다.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서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다. 윗동네 큰집 탱자나무 생울타리도 어느 해인가 벽돌 담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5월 하얀 탱자꽃이 필 때 옆을 지나면 꽃향기가 은은하다. 그러나 탱자나무는 꽃이 필 때보다 탁구공만 한 노란 열매가 달려 있을 때가 더 돋보인다.

 

고향 마을 생울타리에 달리던 탁구공만 한 노란 탱자 열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다. 잘 익은 노란 탱자도 상당히 시지만 약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탱자를 따기 위해 아무리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도 여지없이 가시에 찔렸다.

 

윤대녕의 소설 <탱자>를 읽고 오래 여운이 남았다. 소설에서 ‘나’는 늙은 고모로부터 제주도에 보름 정도 머물 생각이니 방을 좀 구해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고모는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열여섯에) 절름발이 담임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다. 그러나 그쪽 집에서 완강히 반대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5년 후 다시 찾아가 보니 담임선생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있었다. 담임선생은 고모에게 퍼런 탱자를 몇 개 따주면서 “이것이 노랗게 익을 때 한번 찾아가마”라고 했다. 그는 얼마 있다가 찾아오긴 했지만, 한숨만 내쉬다 돌아갔다.

 

고모는 스물여덟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이 일찍 타계하자 생선 장사 등을 하며 자식을 키워냈다. 잘 성장한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제 나이가 들어 분당의 40평 아파트에 살 정도로 여유가 생겼지만 혼자 사는 게 힘들다며 제주에 들른 것이다.

 

고모는 간간이 ‘나’에게 자신의 신산(辛酸)스러운 인생을 털어놓는다. 제주에 오기 전 고모는 이제는 늙은 그 담임선생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합쳐 살자”는 말을 뿌리치고 대신 탱자를 한 보따리 따온다. 고모는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라고 말한다.

 

고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준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배추밭에 들어가 곡을 하듯 운다. ‘배추밭에 와서 급기야 고모는 오랜 세월 울혈 졌던 마음을 힘겹게 풀어’낸 것이다. 고모가 담임선생과 야반도주를 언약한 곳이 배추밭이었다. 고모는 육지로 떠나며 “탱자를 가져왔으니 귤로 바꿔가려는 것”이라며 노지 귤 몇 개만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고모가 다시 육지로 떠난 지 석 달 후 ‘나’는 아버지로부터 고모의 부음과 함께 고모가 제주도에 오기 전 이미 폐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이 소설에서 탱자는 고모의 사랑과 회한을 상징하고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고모의 인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도 경우를 잃지 않는 고모의 처신에서 오는 것 같다. 고모가 한 말, “누가 만드신 것인지 세상은 참 어여쁜 것이더구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제는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구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좋은 소설, 수작(秀作)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소설에서 고모가 말한 귤과 탱자 얘기는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귤이 회수(淮水·중국 황하와 양자강 사이에 있는 강)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에 기반을 둔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가 초나라에 찾아갔을 때 이야기다. 초나라 왕은 제나라 출신 도둑을 끌고 온 다음 “왜 제나라 사람들은 도적질만 일삼느냐”고 했다. 이에 안자는 “귤이 회남에서 자라면 귤이 되고, 회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됩니다. 그 까닭은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오면 도적질하는 것은 초나라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적질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왕은 파안대소하며 안자에게 사과했다는 고사성어다.

 

‘위리안치에 사용한’ 가시 돋친 나무, 탱자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야기지만,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탱자나무는 귤나무의 대목(臺木)으로 많이 쓴다. 그래서 북쪽 지방에 귤을 심었더니 접목한 귤나무는 죽고 대목으로 쓴 탱자나무만 살아남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시 돋친 나무에 열리는 탱자는 험한 고모의 삶과 사랑을, 귤은 보다 평탄한 삶과 사랑을 상징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탱자는 신맛이 나고 귤은 달콤한 맛이 난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같이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탱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추운 곳에서 자라지 못해 우리나라에서 주로 경기도 이남에서 자란다. 강화도가 북방한계선인데, 강화도 갑곶리와 사기리에 400년 전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그 아래 심은 탱자나무 중 두 그루가 살아남아 있다. 각각 천연기념물 78·79호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서울에서도 탱자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노랗게 익은 탱자는 독특하고 강한 향기가 오래 가 자동차 같은 곳에 놓아두면 방향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나무가 단단해 명절이나 상갓집에서 윷놀이할 때 흔히 탱자나무를 잘라 윷을 만들었다. 탱자나무 근처에서는 호랑나비를 흔히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호랑나비가 탱자나무 잎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그 잎을 갉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탱자나무가 가장 비극적으로 쓰인 것이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 관료가 큰 죄를 지었을 때 먼 곳에 유배 보내면서 집 둘레를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형벌이 위리안치형이었다. 대표적으로 폐주 연산군과 광해군이 위리안치 형벌을 받았다.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 등을 쓴 우리나라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윤대녕 소설을 즐겨 읽는 것은 그의 소설에 자주 나오는 여행 에피소드, 시적인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꽃을 상징 또는 주요 소재로 쓴 소설도 많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도자기에 빠져 아내까지 잃는 남자를 다룬 <도자기 박물관>에는 사과꽃 향기가 가득하다. <상춘곡>은 선운사 벚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며 10년 전 좋아했던 여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다. 꽃은 나오지만, 탱자처럼 그의 소설도 달짝지근하기보다 시큼한 이야기가 많다. 우리 인생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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