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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학연금, 기금운용 대박, 작년 한 해 2조 원 벌었다”

주명현 사학연금이사장에게 듣는다

그는 늘 웃는다. 아니 웃는 상이어서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와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기분 좋은 심리적 전염이다. 누구든 만나면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해서 교육부 직원들은 그를 ‘3초 친화력’으로 불렀다. 가장 본받고 싶은 교육부 공무원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가 그러하듯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음이 울적해 지면 공을 차고 놀았다. 축구는 그의 인생 깊숙이 각인돼 있다. 국가대표를 꿈꿨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생계형 공무원’이 됐다. 공직 첫 출발은 조그만 시골의 면서기. 사무관만 돼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9급 말단 공무원에서 시작한 인생은 30여 년 만에 교육부 1급 기획조정실장까지 올랐다. 그리고 2021년 3월, 자산 23조 원의 사학연금관리공단 CEO로서 경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주명현 사학연금이사장 이야기다.

 

지난해 4월 취임한 그는 1년 만에 2조 원이 넘는 기금운용 수익을 올렸다. 1975년 사학연금 창립 이래 최고 기록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지만, 사학연금은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봄기운이 기분 좋은 3월 첫 주. 아침나절 안개 자욱했던 전남 나주는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했다. 나주시 문화로 사학연금 사옥 11층 집무실에서 주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이 2조 원을 돌파했다. 저성장·저금리라는 금융환경 속에서 쉽지 않았을 텐데.

“정확히 2조 1,410억 원이다. 수익률로 보면 11.49%를 기록했다. 한때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현금성 자산과 보유채권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기민하게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 국내 주식은 34.43%, 해외 주식은 13.89%의 수익률을 각각 기록했다. 자산운용팀 등 사학연금 직원들의 공이 컸다.”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은 적립방식으로 운영된다. 보험료를 거둬서 일정 기간 상당한 규모의 기금을 미리 쌓아놓고 그 기금을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서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금운용 수익률은 연금재정의 젖줄이나 다름없다.

 

2년 연속 높은 성장세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는 지난 2019년에도 11%의 수익률을 올렸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성과가 아니다. 이참에 2025년까지 5개년 자산배분계획을 수립, 해외투자 및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등 투자 다변화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안정적 연금지급을 위한 책임준비금 확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수가 줄어들면서 사학연금 안정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사학연금의 재정은 국가 지원을 받는 다른 공적연금들보다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출생아 수와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면서 가입자 수는 줄고 있다. 반면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노령 인구는 많아져 재정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우리 공단이 작성한 장기재정추계에 따르면 연금고갈 시기가 2049년으로 종전 2051년보다 2년 앞당겨졌다.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을 탈 사람은 많아져 수지균형을 맞추기 힘들어졌다는 뜻인가.

“연금 부담-수급 구조의 불균형은 사학연금의 가장 큰 위협이다. 1995년과 2000년, 2010년, 2015년 등 모두 4차례 연금개혁이 단행됐지만, 연기금 소진 시점을 연장하는 데 그쳤을 뿐 부담-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적정부담과 적정급여로 개선이 이뤄져야 연금재정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사회적 합의가 관건이다.”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우리 공단에서는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세대 간 형평성 강화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정책연구에 착수했는데 연금액 조정방식 변동 방안을 모색하고 필요한 해외사례도 찾아보고 있다. 연금가입자들이 충분한 노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믿고 지켜봐 달라.”

 

정부가 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도록 설계한 점도 기금 고갈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공단에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지원하도록 명문화된 조항이 사학연금법에 명시돼 있다. 걱정 끼치지 않도록 기금운용을 잘해 나가겠다.”

 

말씀처럼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 53조 7항에 ‘법률 또는 제도적인 사유로 이 법에 따른 급여를 기금으로 충당할 수 없을 때는 국가가 그 부족액을 지원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할 수 있다’라는 문구는 ‘책임준비금을 국가나 자지체가 부담한다’로 돼 있는 공무원연금법과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그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3년 임기 중 1년이 지났다. 취임사를 읽다 보니 고객중심 경영을 강조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경영의 지향점을 고객에 두고 고객의 입장에서 체감하고 만족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단 미션도 ‘안정적 연금복지서비스로 교직원 행복실현에 앞장섭니다’로 바꿨다. 앞으로 교직원 생애주기별 복지사업을 다각화하고 챗봇을 활용한 24시간 고객상담서비스를 추진, 다양한 온라인서비스로 패러다임 전환에 힘쓰겠다.”

 

이사장 취임 이후 사회적 가치실현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던데.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공단직원들과 뜻을 모았다. 나주특산물인 배즙을 대량 구입, 코로나 최일선에서 싸우는 대구와 수도권 의료진들에게 전달하고 화훼농가를 살리기 위한 사랑의 꽃나누기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또 지역 내 취약계층가정 100가구에 성금을 지원하고 장학사업과 재해구호기금을 전달한 바 있다. 아울러 빛가람 도란도란 클래스라는 문화강좌를 개설해 판로가 끊긴 문화분야 소상공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주민들에게는 문화활동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 공단건물에 입주한 기업들에게는 임대료의 50%를 인하하는 조치도 취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본사가 나주에 있다 보니 직원들의 정주 여건 개선도 과제가 아닌가 싶은데.

“개인적으로 직원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게 직장 어린이집이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는 보육시설이 필수 조건이다. 마침 지난해 국회에서 직장보육시설 건립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 숙원을 풀게 됐다. 우수한 여성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등 근로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골 면서기로 출발해 1급 공무원인 교육부 기획조정실장까지 올랐다. 입지전적 인물로 종종 소개되곤 하는데.

“너무들 좋게 봐줘서 쑥스럽기도 하고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한 말로 난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그럴듯한 학벌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남보다 열심히 살아야 했다. 힘들 때면 가슴 속에 딱 두 가지를 새겼다. ‘누구에게나 있을 때 잘하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였다. 운 좋게 교육부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입바른 소리 했다가 출장지에서 인사이동 통보를 받는 곡절도 있었지만, 결국 그분들 덕에 무사히 공직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난 빚이 많은 사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이사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2025년이면 서울 여의도에 사학연금회관이 새롭게 건립된다. 그곳에 대한민국 사학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불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사학의 공이 컸다. 지난 1975년 회원수 4만 명으로 시작한 사학연금이 오늘날 43만 명으로 10배 이상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사학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사학의 역사와 사학연금의 발자취를 기리는 공간을 꼭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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