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_ 여행을 왜 하는가?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여행을 왜 하느냐고.
인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 인도가 어떻더냐고 물어왔을 때와 비슷한 물음 같았지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금 식상한 비유로 답을 했습니다. 여행을 해도 세월은 가고, 여행을 하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다만, 여행을 하며 보낸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에 비해, 계량화하여 말할 수 없는, 내면적인 어떤 채워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잉카문명이나 그 유명한 우유니사막 같은 것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혹은 아프리카처럼 안데스 남아메리카 그리고 티티카카란 이름들이, 같은 세상이지만 세상 밖인 것처럼 여겨지던 그런 낯선 세계에 대한 그리움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은 어쩌면 사랑과도 닮았네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끌리고 급기야는 그에게 온 마음을 사로잡히는 경우 같은 것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수직으로 땅굴을 파고 나가면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곳이 남미 땅이야”라며 어릴 적에는 이 대륙에 대해 동화 같은 표현으로 말하곤 했지요. 지구상의 가장 먼 곳, 쉬이 다가설 수 없고 그래서 더욱 그리운 사람처럼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생이 끝나기 전에 만나고픈 존재, 결코 이를 수 없을 것만 같던 먼 바다였던 당신이 바로 남미였습니다.
#2 _ 페루의 두 얼굴
남국의 온화하고 즐거운 햇빛입니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시원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엔 저마다 즐거운 미소가 흘러내립니다. 페루 리마에서 시작한 여행. 번화와 남루는 경극 배우의 뒤바뀌는 얼굴처럼 순식간에 드러나곤 합니다. 대통령궁과 리마 대성당 언저리의 식민지풍 세련미 그리고 신시가지의 번화함과 산트로발 언덕길 황막한 산길과 빈민가 모습들의 대조…. 오래된 삶의 모습들이지요.
그리고 또 페루는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안데스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인 이 지역은 연중 비가 내리지 않는 가장 건조한 지역이랍니다. 그러나 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로 관제 시설을 한 곳은 남국의 싱그러운 푸른빛을 자랑합니다. 반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은 모래 먼지 흩날리는 목마른 사막, 황무지의 풍경입니다. 사막과 농경지가 한 풍경 안에 드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구도입니다. 원경으로는 황폐한 사막 구릉이 펼쳐져 있고 근경으로 푸른빛 성성한 농경지라니…. 이런 비현실적 구도의 반복이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됩니다. 1년 평균 강수량이 25~5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불모의 땅이지만, 안데스의 축복으로 흘러내리는 빙하의 물줄기가 있어 푸른 목숨을 출렁이게 하는 것이로군요.
내가 지구 반대편 나라에 와 있단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여기 페루에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 생이 놀랍답니다. 다른 미사여구보다도 더 확실한 여행의 기적이지요. 따뜻한 남국, 강이 흐르는 낮은 곳에 접어들면 무성한 푸른빛이 출렁입니다. 1년에 사나흘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곳 날씨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지요. 내가 있고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 삶의 가장 놀라운 기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두 얼굴이 있습니다. 잉카의 토대 위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로이 새겨진 제국주의 문명. 태양을 모시던 잉카의 제단은 제국주의의 침탈로 몸체를 잃고, 그 위에 아이러니한 제국주의 문명의 상징인 성당으로 트랜스포머가 됩니다. 서구풍으로 광장이 세워지고, 계획된 도시는 삶의 편리와 새로운 문명의 합리성으로 치장되어 칼과 총으로 강제되었던 사실마저 종국에는 아득히 잊게 만듭니다. 원주민들에게 노동을 착취하면서 그 대가로 기독교인이 되게 해 준다는 지독한 모순이 몇 세기 지속되어온 곳. 그 이중성이 모자이크된 이 땅의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쿠스코를 향해 버스가 안데스 산줄기를 넘습니다. 버스에 탄 몇 사람들은 고산증을 호소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저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네요. 그래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줄곧 달려 밤을 새우는 이 길이 안데스 고산을 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해발 4,000을 어떨 땐 5,000m를 넘었다고 고도계를 가진 분들이 말을 하곤 합니다. 버스가 하도 더디게 운행을 해서 차창 밖을 내다봤더니, 세상에나 눈이 내립니다. 적도 조금 아래인 이곳에, 그것도 한여름인 계절에 눈이 내린다면 얼마나 높은 곳에 놓인 길인지를 짐작할 것 같지요? 그런 높고 꾸불꾸불한 길을 17시간가량 짚어 나갑니다. 내게도 옅은 두통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나는 아득한 이 고산의 느낌이 딴 세상에 온 표징이라도 되는 듯 반갑고 즐겁습니다.
희뿌옇게 하늘이 열리고, 마음속 탄성과 함께 높은 안데스의 희끗한 산봉우리가 눈에 듭니다. 대서양을 넘어온 비구름들은 모두 이 산줄기에서 그만 발목을 잡혔나 봅니다. 리마나 나스까에서 찾아볼 수 없던 푸른 빛깔들이 온 산과 언덕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스코(해발 3,400m). 잉카인들이 세상의 배꼽이라 여겼다던, 잉카의 수도에 도착합니다. 고산 도시 특유의 으스스한 한기와 옅은 고소 기운이 먼저 마중 나와 온몸으로 안겨듭니다.
숙소에 짐을 푼 나는 주저함 없이 꼬리깐차로 향합니다. 잉카제국의 신전이었던 터를 깔고 앉은 산토도밍고 성당. 잉카인들은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는 믿음에 따라 쿠스코 도시 전체를 퓨마 모양으로 본떠서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 중심 허리부분에 설계한 것이 바로 꼬리깐차라고 하지요. 철기조차도 없었다던 16세기 잉카문명의 거듭 놀라운 석조 기술. 그 위에 기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또한 너무나도 화려한 정복자들의 문명. 분명 거듭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스페인 침략 전인 잉카제국 시절 꼬리깐차는 잉카제국이 숭배했던 태양(Inti)을 모시는 신전이었습니다. 침략 후 스페인 사람들은 이 꼬리깐차 신전의 본래 건물은 부수고 아주 견고했던 터와 외곽 벽을 기초로 그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짓고 수도원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 큰 지진에 성당은 무너져 다시 세웠지만, 지탱하고 있는 꼬리깐차 신전의 외벽과 기초는 견고하게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리마·쿠스코 등 주요 도시에 이를 때마다 이런 풍경은 계속됩니다. 어디 페루뿐이겠습니까. 남미 대륙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새였으니, 지난 제국주의의 위세를 온몸으로 다시 느끼게 되지요. 나무를 고사시키고서라도 자신의 생명을 더욱 푸르게 하는 기생식물처럼 제국주의자들은 그런 식민지를 설계했나 봅니다. 해가 지지 않을 영원한 제국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웅장한 성당들과 치밀하고도 견고하게 그리고 서구식 감성까지 더하여 만들어진 도심을 보며 느낀 생각입니다. 잉카의 토속 문명 그 토대 위에 파괴와 혼합의 배율이 혼재되어 있는 남미 곳곳의 풍경이 마치 우리의 식민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여행 내내 묘한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