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68학번 내 대학 동기생이다. 그의 오래된 ‘짐보따리 이야기’는 한참 우스워서 듣다 보면, 무언가 아리고 슬픈 것이 눈물을 불러온다. 나는 J의 ‘짐 보따리 이야기’를 세 번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재미와 감동이 조금씩 다르게 묻어났다.
'무엇보다도 1968년 그즈음의 시대적 애환과 풍물, 인심과 정서가 얼마나 여실한지, 그 시절 짐과 삶의 상관이 잘 들여다보인다. J의 ‘짐 이야기’에는 궁색하고 고단한 그 무렵 시골 출신 대학생들의 생활 풍경들이 정직하게 비쳐 들어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시절의 정서’가 애틋하게 스며 있다. J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박 교수, 자네 알지. 내 고향 집이 저 먼 남쪽 해남(海南)에 있다는 거. 해남에서도 끝자락 완도로 넘어가는 동네, 북평면이야. 지금도 벽지이지만 1968년 우리가 대학 1학년 때 얼마나 궁벽한 곳이었는지. 그해 겨울방학 끝나고, 시골집에서 서울로 와야 하는데, 어머니가 무언가를 이것저것 챙겨서 짐 보따리에 싸 주시는 거야.
서울 변두리에서 자취하는 아들을 챙겨 주시는 가난한 어머니의 마음은, 줄 게 없어 허전하면서도, 없으면 없는 대로 온갖 걸 다 찾아서 챙겨 주시는 거 있지? 박 교수, 옛날 우리 어릴 적 촌에서 짐 꾸리던 거 생각나지? 가방 같은 거야 먹고 죽으려도 없고, 비닐 쪼가리도 없던 때였잖아. 농가에서 쓰던 비료 포대나 시멘트 포대 겉 종이로 물건들을 싸고, 그 뭉치들을 가느단 새끼줄로 묶고, 마대나 삼베 보자기로 씌워 짬 매고, 다시 바깥은 무명 보자기로 싸서 큰 짐 보따리 하나를 단단히 만들어 내었지.
새벽같이 나섰지. 그때는 내 고향에서 서울 오려면 열너덧 시간은 족히 걸렸네. 어머니가 꾸려 놓은 짐이 두 보따리야. 한 짐으로 묶기에는 너무 많고, 또 김치를 주어 보내려고 하니 보따리 하나를 더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신 거야. 꽤 묵직해. 그놈을 들고서 버스가 지나가는 마을 앞 도로까지 가서 기다렸지. 그 버스를 타고 나주 영산포역까지 한참을 가는 거야. 거기서 목포에서 올라오는 호남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야 했거든. 그게 가다 보면 야간열차가 된다 말이여. 시골 버스가 시간 지켜 오는 법은 없었지. 그저 일찌감치 나가서 기다려야 해. 그렇게 해서 영산포 가는 ‘광주여객’ 시외버스를 올라탔어. 김치 보따리 들고 따라 나온 어머니를 향해 손 흔들고. 어머니는 짐 간수 잘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고….
시골 버스는 포장 안 된 지방도로 자갈길을 흔들흔들 가는데, 나는 흔들리는 중에도 짐 보따리 두 개, 굴러가지 않도록 꼭 붙잡고 가는데, 가다가 버스가 고장으로 시동이 꺼져서 모두 내려서 고치도록 기다리고…. 아따 참, 그래도 불평 한번 않고 갔었지. 영산포역에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탄 것이 오후 두 시쯤인데, 여기서 일고여덟 시간은 걸려야 서울에 도착해. 차 안은 만원이라, 서서 가는 건 당연하지. 나는 짐 보따리 둘을 객차 좌석 머리 위에 있는 짐 시렁에 올려놓았어.
이제부터는 짐 보따리도 나하고 한 몸이 되어서, 기다릴 때 같이 기다리고 실려 갈 때 같이 실려 가는 거야. 나도 짐도 같은 처지인 듯하고, ‘내 짐이 내 분신이다’ 하는 생각도 들더라니까. 대전쯤 왔을 때 마침 자리가 나서 나도 간신히 앉았어, 손님들은 계속 번갈아 타고 내리고, 나는 워낙 고단했던 참이라 졸음이 쏟아지는 거야. 깜박 졸았는가 했는데, 갑자기 주변이 수선스러워지고, 누군가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깼었지.
정신을 차려 보니, 객차 시렁에 얹어놓은 짐은 여러 개 수북한데, 그중 한 짐에서 조금씩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아래로 떨어질 참이야. 보니, 그게 나의 짐이야. 어머니가 싸주신 김치가 들어 있는, 그 짐이야. 오가리(작은 김칫독)에 넣어 단단히 묶은 건데, 길 위에서 오죽 흔들렸으면 저리되었을까. 아! 이런 낭패가 있나. 창피했어. 하지만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 했어. 내가 벌떡 일어서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렇게 말했다니까.
“어구! 나는 이게 내 짐인 줄 알았더니 내 것은 아니네. 바로 옆에 있는 내 짐은 멀쩡한데, 어떤 양반이 짐을 이렇게 허술하게 묶어서 김칫국물 번져 떨어지게 했나? 아, 이 짐 임자 누구요? 양심도 없나? 이 짐 내려서 내 발밑에 둘 테니 짐 주인은 내게로 오시오.” 나는 급한 대로 번져 나온 김칫국물을 닦아 내고,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그 짐 보따리를 내가 관장하는 형국으로 이끌었지. 수습은 했지만, 찜찜했어. 내 짐을 내 짐 아니라고 거짓말한 거니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어. 내 앞자리에 앉은 중년 아저씨가 나를 계속 지켜보는 거야. 애초 김칫국물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게 생겼다고, 짐 주인 누구냐고, 난리를 피웠던 사람이야. 완행열차라 승객들은 금방금방 타고 내리는데, 그는 좀체 내리지도 않았어. 장거리 승객인가. 수원을 지나면서부터 나는 초조해졌어.
나는 용산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이 아저씨가 내리지 않으면 나는 이 짐 보따리를 포기하고 내려야 한다. 거짓말했으니 자업자득이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어머니가 어떻게 해서 마련해 준 짐인데. 영등포역을 지나고서는 나는 미칠 것 같았지. 하나님 저 아저씨를 빨리 내리게 해 주세요.
열차가 노량진역에 도착했을 때였어. 내가 내릴 용산역에서 하나 전에 있는 역이야. 내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아! 이 아저씨가 내리는 거야. 나는 정말 하나님께 진심 감사했어. 나는 김치가 들어 있는 그 짐 보따리를 끌어 올려 꼭 껴안았어. 마치 내가 내다 버린 자식을 다시 찾아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날 밤 나는 종암동 자취방에 도착하여 그 짐 보따리를 세워 놓고 큰절을 했다네. 사람과 오래 같이 움직이는 짐이란, 그게 그냥 짐이 아니라니까.
짐 보따리를 오브제로 한 미술작품 하나를 본다. 이 작품은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에 있다. 한국계 작가인 마이아 루스 리(Maia Ruth Lee)가 2019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전시한 작품, ‘Bondage Baggage’가 바로 그 작품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묶은 짐’, 또는 ‘꽁꽁 싼 짐 보따리’라는 뜻이 되겠다. 주제나 이미지 면에서 상당한 세계성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이미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마이아 루스 리는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선교사인 부모와 함께 파푸아뉴기니·싱가포르·네팔 등에서 거주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네팔의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Tribhuvan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보았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짐을 작품화한 것이다. 네팔 노동자들은 해외에서 돌아올 때 이삿짐 꾸러미를 포장하면서 분실이나 훼손을 우려해 이런 단단한 묶음 포장을 한다고 한다.
작가는 이 ‘짐 보따리’를 형상화함으로써 이주노동자와 이민자들의 삶을 보려 한다. 그들이 사용했을 포장용 방수포·직물·판지·밧줄·테이프 등을 주목하고, 그것과 더불어 그들의 ‘짐’을 재현한다. 이때부터 ‘Bondage Baggage’는 단순한 짐 보따리가 아니라, 지구촌 내 다양한 디아스포라(Diaspora)에 대한 문제를 부각한다. 작가 또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이다. 디아스포라 체험을 예술적 주제로 승화해 내는 데에 남다른 작가 의식을 보여 준다.
마이아 루스 리의 작품을 보면서, 짐 보따리에 대한 나의 역사적 상상력을 던져 본다. 1903년 하와이 이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던 사람들의 짐 보따리를 생각해 본다. 1905년 멕시코 유카탄의 애니깽 농장으로 떠났던 우리 선조들의 이민 짐 보따리는 어떤 허기가 들어 있었을까. 19세기 말 이후 북간도 일대로 살길을 찾아 떠났던 식민지 백성들의 짐 보따리는 어떤 궁핍이 들어 있었을까.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던 17만 동포들이 시베리아 철도 화물열차에 오르면서 지녔던 짐 보따리에는 어떤 불안이 들어 있었을까.
6·25 피난 행렬에서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인)했던 짐에는 무슨 간절함이 들어 있었을까. 1960년대 독일에서 광부로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떠났던 선배들의 짐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나중 귀환하는 그분들의 짐 보따리는 또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을까. 1980년대 이후 중동의 뜨거운 건설현장에 기술자 근로자로 가서 돈을 벌었던 내 동시대인들의 짐 보따리는 얼마나 아픈 사정들을 담고 있었을까.
짐은 지니까 짐이다. ‘지다’라는 동사와 ‘짐’이라는 명사가 서로 오가는 사이, 짐은 인간의 행보를 고단하게 한다. 짐은 무거워서 짐이다. 그러나 그 짐이 있어서, 그 짐에 기대어, 인간은 길 위의 생을 보전한다. 내 짐은 내 실존의 삶이 이동하는 동안 그림자처럼 나에게 붙는다. 그래서 짐은, 좋든 싫든 나의 분신이다. 정신의 짐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