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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킬러문항을 ‘킬’하다

 

가장 공정한 평가는 존재할까? 이러한 질문에 쉽게 ‘그렇다’라고 답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누구에게 공정한 평가라고 생각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모든 활동이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때문에 그동안 평가의 공정함이란 어쩌면 아이들 줄세우기 수단이나 다름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별력을 위한 킬러문항, 과연 올바른 평가의 방향인가
해마다 수능 출제위원장은 “학교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학교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면 충분히 풀 수 있도록 출제했다”라고 말한다. 주로 수학에서 킬러문항이라고 말하는 문항은 22번과 30번 문항이 손꼽힌다. 수능에서 수학은 30문제를 푸는데 누구에게나 똑같이 10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단순히 계산하면 마킹시간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한 문제당 3분 정도에 풀어야 한다. 그런데 수학을 가르치는 학교 교사들조차도 수학의 킬러문항(특히 30번 문제)을 해결하는데 최소 20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수학에서 킬러문항이란 세 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문제해결과정이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접근방식을 요구하는 문항이거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대학 수준의 이론을 활용하면 좀 더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항을 일컫는다. 


킬러문항은 문제해결과정에서 어느 한 단계라도 막힌다면 30분 이상도 훌쩍 넘길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최상위권 학생은 킬러문항을 제외한 나머지 문항을 빠른 시간에 해결하고 남은 시간을 풀이에 전념한다. 최상위권을 제외한 학생들은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찍는다.

 

문제를 손대는 것조차도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러문항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시모집이 40%로 확대되었고, 대입을 위한 변별력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위해 90% 이상의 학생을 들러리 세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평가의 방향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킬러문항은 교육기회 박탈
매년 출제되는 2~3문항의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학생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향한다. 특히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는 킬러문항 전문학원들이 많아 서울에 거주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방과후에 대치동으로 이동하기도 하며, 지방에 사는 일부 학생들은 학원에서 개강하는 방학특강(썸머스쿨·윈터스쿨)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킬러문항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원을 선택했을까? 공교육 현장에서 수업시간에 킬러문항과 관련한 수업을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필자는 학교현장에서 7년째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매년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과 함께 생활을 해왔다.

 

학교현장을 살펴보면, 한 학급에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부터 지극히 평범한 학생, 그리고 정말 놀랍도록 실력이 뛰어난 학생까지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교육은 상이한  수준과 특성을 가진 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진다. 교실에서는 기초학력 미달학생부터 상위권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기초개념에서부터 응용문제풀이 강의뿐 아니라 수행평가·토론·발표 등 다양한 학습활동이 진행된다. 


킬러문항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이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할 때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공교육은 학생 수준의 편차와 교육과정운영의 적절성에 비추어 볼 때 킬러문항을 다룰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설사 수업에서 다룬다 하더라도 특정 학생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교육기회를 뺏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학교현장의 많은 선생님들은 알고 있다. 수능에서 출제되는 일부 문항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출제되었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풀이방법을 활용한다면 조금 더 쉽게 그리고 빠르게 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이번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2학년도 수능 기하 30번). 하지만 수업시간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위배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소수의 학생만을 위한 수업설계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수능까지 3개월, 시간이 많지 않다 
지난달 교육부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킬러문항이 사교육 근본 원인’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물론 사교육시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사교육의 긍정적인 역할도 존재한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워 일부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도 있을 것이고, 좀 더 높은 수준의 여러 문제를 다뤄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실력 향상을 목적으로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킬러문항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교육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어떻게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그리고 많은 곳에서 수능이 과연 변별력 확보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반대로 킬러문항을 반드시 포함해야만 변별력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킬러문항을 굳이 내지 않아도 현행 학교교육과정 내에서 충분히 어려운 수준의 문제, 중간 수준의 문제 등 다양하게 출제가 가능할 것이다. 즉 킬러문항이 있어야만 변별력을 갖춘 수능이 가능하다는 것은 타당한 논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킬러문항을 제외하더라도 난이도 조절로 변별력을 갖출 수 있는 게 평가의 기본이자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학생이 앞으로 대학에서의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따라갈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 목적인 시험이다. 교육부가 이례적으로 킬러문항을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간 킬러문항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정부 당국에서 시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이러한 교육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시인하고 공개한 만큼 교육계와 모든 국민들은 앞으로의 대책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수능 3개월을 앞둔 지금, 시간이 많지 않다.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학교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면 충분히 풀 수 있게 출제했다”라는 말이 올해 수능에선 지켜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출제자·공급자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등급을 가르기 위한 평가를 진행해 온 것을 반성하고 평가의 본질로 돌아가는 첫 발돋움을 환영한다. 앞으로의 다양한 정책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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