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 새학기가 되면 선생님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아마 환경구성일 것이다. 자기 반의 환경은 교사의 교육관과 교육방침에 따라 소신껏 조성을 할 수 있다지만 학교 복도나 계단에 조성해야하는 환경물들은 교육적 효과뿐 아니라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담당교사뿐 아니라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매달려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업무인것이다. 전문적인 업체에 맡겨서 환경구성을 하는 학교도 있다지만 어느 학교나 똑같은 천편일률적인 환경구성과 예산문제까지 있어 교사들에게 맡기는 학교가 많은 실정이다. 가뜩이나 학기초에 처리해야 할 일과 익혀야할 업무가 산적해 있는 마당에 학교 환경까지 선생님들에게 떠 넘겨져 버리면 교육활동에 많은 지장이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데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에 위치한 도척초등학교(교장 조찬래)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학기초 교무회의를 통해 선생님들의 아이디어만 모으면 나머지 환경구성은 교장선생님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 평소 컴퓨터 그래픽에 능숙하신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해서 직접 학교의 환경을 구성한다. 봉사, 효, 독서등을 주제로 각 층마다 구성되어 있는 학교의 환경구성물들은 교장선생님
우리는 흔히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연수나 누구누구의 말씀등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말인 것이다. 예전에는 고개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교사의 질이 아닌 교장의 마인드로 교육의 질이 좌우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어느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교사의 말을 들어보면 교장이 이것 저것 보이기 위한 무분별한 행사나 융통성없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업무와 행정적인 사안들로 인하여 혹사당하고 있단다. 그 동료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보다 형식적인 계획서, 한글자도 틀려서는 안되는 기안문 작성(결재시 하나하나 다 따진단다.) , 시도때도 없이 불러내리는 회의 등으로 녹초가 된단다. 학생들을 즐겁게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교장의 마인드로 인해 교육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모두 다음해에 떠날 준비만 하고 있단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다던가 ? 그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교에 오기 싫단다. 학교에서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여러 교육 행사(?)나 방침등에 시달려 학생들도 녹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교사의 질
교육을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보편타당성 있는 가치나 철학적 배경에 근거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의지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미세한 시류의 변화에 영합하여 갈팡질팡 제 갈 길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 줄곧 정치적 변화기마다 덩달아 춤을 추었다. 어쩌면 집권자들의 구미에 맞도록 각색 연출 연기의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이슈에 따라 절대적 가치는 사라지고 상대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교육정책이 난무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가치라고 해서 불변의 진리는 아닐 것이다. 인류 문명의 발달은 가치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변화가 특정 계층의 왜곡에 의해서 단기간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에 대한 부적응 현상을 심하게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제까지의 최고의 가치가 오늘은 최저의 가치로 추락한다면 사람들의 가치관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곧 사람들의 보편타당성 있는 가치관은 없어지고 이질적인 가치관의 형성으로 사회적 혼란이 야기 될 수 있다. 교육을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동
학부모님께 띄우는 3월의 편지 "이번에 5학년 3반을 맡은 교사 아무개입니다. 일년 동안 귀한 자녀와 서로 눈높이를 맞춰가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일 준비물은 무엇 무엇입니다. 아이가 제대로 챙겼나 살짝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희 아이 새 담임선생님께서 보낸 문자 메시지입니다. '어떻게 학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생각을 다했을까?'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발 빠르게 움직이시는 젊은 선생님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 아니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3월의 문이 열리자마자 학교는 갑자기 북새통입니다. 겨우내 호흡을 멈췄던 물레방아가 기지개를 켤 사이도 없이 다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탐색전 또한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교사들은 새로 맡은 아이들 파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파악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은 담임교사가 어떤 사람인가 몹시 궁금해 합니다. 그렇다고 불쑥 학교를 찾아가기도 어렵고, 전화를 걸기도 어색한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것이 입니다. 저는 저희 아이의 선생님처럼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3월은 학교운영위원을 선출하는 시기이다. 학교 구성 주체들은 학운위원을 ‘제대로’ 선출해야 한다. ‘제대로’ 학운위원을 뽑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두 측면에서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학운위원으로서 역할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제도이든지 간에, 그것은 요새(要塞)와 같아서 잘 짜여 지고 각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적절하게 배치돼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학운위원을 뽑을 때 적법한 선출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위학교 학운위 구성에 관한 규정들을 준수해 학운위원을 선출해야만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선출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출과정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학운위는 제대로 기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를’ 학운위원으로 뽑을 것인가? 법령에 규정된 학운위원이 될 수 없는 자, 또는 당연히 퇴직해야 하는 조건 등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의 소극적인 관점보다는 학운위원으로서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보다 적극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교원위원이든, 학부모위원이든, 지역위원이든지 간에 학운위 제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을 뽑
올해는 과학기술부가 정한 ‘화학의 해’다. 또한 올해 7월에는 제38회 국제화학올림피아드가 국내 최초로 영남대에서 개최된다. 올림피아드 조직위원회는 올림피아드와 화학의 해를 기념해 과학연극 ‘산소’(연출 김광보)의 순회공연을 기획했다. 연극 ‘산소’는 미국 스탠퍼드대 칼 제라시 교수와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코넬대 로알드 호프만 교수 등 세계적으로 유명 과학자들이 원작을 썼다. 2002년 대한민국 과학축전에서 초연된 이후 “과학도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평을 받으며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받아왔다. 연극의 내용은 1777년 스톡홀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쉘레와 프리스틀리, 라부아지에는 스웨덴 왕의 초청으로 함께 모여 있다. 세 화학자는 각자 자신이 가장 먼저 ‘산소’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2001년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노벨상 100주년을 기념해 노벨상 설립 이전에 공헌을 세운 과학자에게 ‘거꾸로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한다. 심사위원들은 현대 화학혁명의 근원인 ‘산소’의 발견에 초점을 맞추지만 비슷한 시대의 세 화학자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처음 산소를 발견했던 스웨덴의 쉘레, 산소의 존재를 공식적인 논문으로 처음 발표한 영국의 프리스
팀을 짰습니다. 신입 직원들의 수준도 모른체 말입니다. 교장·교감 선생님이 양편으로 갈리고 남·녀의 수도 나눕니다. 실력이 기운다고 바꿀수도 없습니다. 1년 동안 오늘 짜여진 대로 한 팀이 되어서 매주 수요일날 친선 배구를 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나이 드신 분들이 더 잘하십니다. 새내기 신규교사(여)들은 서브가 약해 코트 중간에서 넣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저는 경력자라고 서브는 잘 넘어갑니다. 경쾌한 웃음소리, 아찔한 비명 소리, 다 즐겁습니다. 푸른 하늘에 던져진 하얀 공을 바라 보는 시선들이 아름다운 오후입니다.
충남도교육청은 내년부터 2009년까지 연차적으로 모두 140명의 초등교원을 줄이겠다고 8일 밝혔다. 이는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기준에 따른 초과 교원(현재 326명)이 발생, 교원 인건비 교부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충남도의 실소요액 대비 교원 인건비 교부금은 1천250억원이 부족하다. 도 교육청은 이 때문에 사업성 예산을 인건비로 돌려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교육관이 이 정도라니 실망스럽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교원들을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표현했다니 소가 들어도 혀를 찰 노릇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코리아'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교포들에게 고국땅에서 받은 선생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이국땅에서 겪어야할 온갖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육의 힘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다. 물적 자원이 전무한 나라, 전 국민의 90%이상이 농업에 종사할 정도로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하게된 비결이 무엇인가? 정치인들의 능력이 뛰어나서인가? 기업가들의 선진 마인드 덕분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배워야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국민들의 활화산같은 교육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육열에 불을 지핀 사람들이 누구인가? 박봉을 쪼개가며 2세 교육에 헌신했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선생님이다.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하자. 세계 최고라는 교육열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앞장서서 이끌고 또 자신을 아끼지 않는 희생을 감수했기에 가능했다. 그런 선생님들의 헌신을 알고 있기에 적어도 기성 세대만큼은 아직도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알퐁스 도테가 지은 ‘마지막 수업’을 공부하였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독일 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여 독일어를 쓰라고 했기 때문에 아텔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눈물을 글썽이며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적고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칩니다.”라고 하며 수업을 끝내었다는 글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불행하게 프랑스가 독일의 지배를 받으면서 프랑스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던 역사! 몇 자의 글과 말이 아이들의 가슴에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감동적인 수업은 정말 멋있고 위대한 수업이었다고 생각된다. 정보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지나친 경제 중심, 물질 추구로 경쟁을 부추기다 보면 오히려 인간의 미래는 어둡고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자연이 주는 각종 재해의 경고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 나라도 그간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해 내었다. 그러나 그 뒤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하나 둘 씩 드러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