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정리하였습니다. 겨울옷을 옷장에 넣고 여름옷을 꺼내 자주 입는 옷을 두는 행거에 걸었습니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이렇게 옷이 많았는지에 놀랐습니다.^^ 하긴 오랜 직장 생활로 인해 매년 몇 개의 옷을 사고 계절이 바뀌면 또 구입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버리지 못하고 옷이 늘어나 옷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참에 과감하게 안 입는 옷을 골라 기부하려 담으니 큰 가방 두 개가 나옵니다. 또 쓰지 않는 가방과 스카프 등도 아깝다 생각하지 않고 정리하니 쇼핑백이 또 하나 가득합니다. 이것을 기증한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곳에 가져다주고 돌아오는 발길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고판매점 가까운 헌책방에 들러 책을 한 가방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제방의 책은 넘치고 넘쳐서 이미 포화상태인데도 또 책을 사왔습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사들여서 소비의 탑을 쌓아 올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소유'라는 책으로 깨우침을 주셨던 법정스님 생각이 났습니다. 초파일 가까운 도심의 절에는 무수한 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 삶이 욕심으로 얼룩지고 미움이 가슴을 찌를 때면 버릇처럼 법정스님의 책을 꺼내 찬찬히 몇 시간을 읽었습니다. 옷장에 가득
숯불을 피워 올린 마당에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가 맛나게 익어가고 모처럼 모인 가족들의 목소리는 ‘애애~~앵’, ‘또옹~~땅 동땅’ 해금과 가야금의 정다운 합주 같습니다. 오월의 들판엔 쫑대 올라온 마늘밭과 그 옆으로 양파밭이 짙푸르고 싱그러운 물결이 넘실거리는 보리밭이 아름답습니다. 뒷산을 하얗게 채색한 아까시 꽃향기의 산책길은 마을 앞에서 주춤거립니다. 오월의 축복 아래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조카들을 앞날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축원하였고 어른들의 건강을 기원하였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면 마음을 다해 슬퍼하며 제가 할 도리를 다하겠지요.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을 읽으며 안티고네의 행동은 과연 옳은 일인가를 계속 생각하였습니다. 오디푸스왕의 딸 안티고네는 테베를 공격하다 전쟁터에서 죽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여 매장을 금지한 외숙부인 크레온 왕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오빠의 시체에 모래를 뿌려 장례의식을 행하였다가 잡히자 죽은 가족의 매장은 신들이 부여한 가족으로서의 신성한 의무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크레온 왕은 조국을 배반한 폴리네이케스를 엄벌하는 강력한 처벌을 통해서
산줄기를 타고 흐르던 초록의 물결은 그대로 희뿌연 아까시꽃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송화가루가 노랗게 창문 틈에 내려앉는 계절입니다. 봄의 초입을 장식하던 꽃들이 진 자리에 잎들이 무성해지고, 서늘한 보랏빛 꽃들이 사위를 메웁니다. 두둥실 꽃등 같이 피는오동꽃과 포도송이처럼 수북수북 쏟아지는 등꽃, 젊은이의 미소 같은 라일락 그리고 울트라 바이올렛빛의 모란이 여왕처럼 피었습니다. 학교는 시험기간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석현의 피곤한 표정 뒤로 건호는 세상 귀찮은 얼굴로 도서관에서 책을 꺼냅니다. 내일 시험이니, 독서보다는 공부를 하라는 저의 성실한(?) 충고에 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 안 하고 싶어요.” “그래, 네가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구나. 책이나 보렴.” 이렇게 말하며 도서관을 내려왔습니다. 초록이 사태를 이룬 강마을도서관에 앉아 저는 독특한 내용의 책을 읽었습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뉴욕 월가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낸 필경사를 찾는 광고를 보고 바틀비가 찾아옵니다. 화자인 변호사는 열정적인 변론보다는 부자들의 계약서, 저당 증서, 부동산 권리 증서를 다루는 편안
식목일 있는 사월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과 들과 집에 나무를 심습니다. 청명과 한식 즈음의 우리나라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벚꽃이 꽃구름을 이루고 배꽃과 복사꽃이 산기슭을 밝히는 무릉도원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몇 년 전 시골 장터에서 몇 그루의 나무를 샀습니다. 매실나무와 양살구, 자두나무 등 제가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사서는 시댁에 가져다 드렸습니다. 살 줄만 알았지 심을 줄을 모르는 며느리가 놓아둔 나무들을 밭둑에 심어시고 가꾸신 시아버님은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자두가 열리는 여름의 초입이면 잘 익은 자두를 따 두었으니 가져가라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올해도 아버님의 하얀 모시옷 같은 매화와 살구꽃이 밭둑에 피었습니다. 붕붕 꿀벌들이 꽃 사이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니고 알사하고 달큰한 꽃향이 저를 감쌉니다. 아버님께서 가꾸시던 나무만 남아 환한 꽃잔치가 벌어진 봄 언저리에서 저는 문득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던 그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메마른 땅을 부활시킨 것은 정치가도 이론가도 아닌 나무를 심는 어떤 사람의 힘이었습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40년 동안 나무를 심어서 황폐했던 땅이 아름다운 거대한 숲으로 뒤덮이는 기적 같
강마을에 봄비가 내립니다. 벚나무의 연분홍 꽃송이가 부르르 몸을 떨면서 꽃잎을 쏟아냅니다. 도서관 창가에 서서 비와 꽃이 섞여 떨어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독서동아리반 아이들은 저마다 책을 펴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읽고 있습니다. 겨우 다섯 명입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독서동아리를 모집하니, 책읽기는 재미없다고 고개를 돌리고 거절하였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이 동아리반에 들어왔습니다. ‘두고 봐라, 이 녀석들! 내가 독서반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이렇게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독서반을 외면한 아이들에게 저 혼자 눈을 흘겼습니다. 동아리 활동이 있는 오늘, 어제 준비한 초콜릿을 하나씩 아이들에게 뇌물로 주었습니다. 책의 달콤함을 나타낸다고 아이들에게 말하며, 독서반이 아닌 녀석들은 부러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샘예, 요리반이 더 맛있는 거 마이 묵는다 카던데예?” “... ^^; ” 독서를 초콜릿으로 유혹하려한 어리석은 선생과 요리반의 맛난 음식을 버리고 도서관으로 온 의젓한 제자가 모여 책을 읽고, 책을 이야기하고 글을 봄날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한 권을 꺼내어 읽고 있던 명화가 종이를 꺼내 옮겨 적고 있습니
하롱하롱 번지는 매화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남쪽의 봄을 점령하였습니다. 매화의 품위 있는 모습도 좋지만 향기를 저는 더 사랑합니다. 매화가 피는 즈음이면 매화차를 마시러 벗들과 모입니다. 꽃봉오리를 뜨거운 물에 담그면 물속에서 매화는 향기를 뿜어내며 빙그레 피어납니다. 매화차를 눈으로 코로 입으로 느끼면 비로소 저는 봄을 맞이합니다. 매화차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품격 있는 봄맞이’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품격(品格)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품격보다는 인품이란 말로 됨됨이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작가 이기주는 『언어의 품격』에서 사람에게 인품이 있듯이말에도 언품(言品)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물은 형제가 굽으면 그리자가 굽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다. 말도 매한가지다. 말음 마음을 담아낸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pp.9~10 믿음을 의미하는 한자 신(信)에는 깊고 오묘한 뜻이 담겨 있다. 모름지기
아침 등굣길 학생맞이를 위해 정문에 서니 ‘깨르륵’ 하고 개구리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립니다. 경칩이 지났으니 봄이라고 성급하게 잠을 깬 개구리가 춥다고 투덜거리는 모양입니다. 봄서리가 하얗게 내린 강마을은 아직은 바람끝이 맵습니다. 하얀 꽃대를 올린 냉이며 광대나물과 봄까치꽃이 모두 하얀 면사포를 두르고 있습니다. 이 서리도 금세 녹겠지요. 그리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 자리에 수많은 봄꽃이 잔치를 하듯 피어날 것입니다. 경남 함안군의 입곡저수지 둘레길을 벗들과 걸었습니다. 산수유가 피었고, 매화는 봉글봉글 하얀 꽃망울 손을 대면 터질 듯 보였습니다. 수선화는 매끈한 잎사귀와 사이사이 꽃망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봄저수지 흔들다리에서 보니 덩치 큰 흰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축제의 전야처럼 그렇게 싱숭생숭한 들과 산은 수런수런 무어라 저희끼리 말하는 소리가 웅웅거렸습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봄도 좋지만 봄이 오려는 그 시점에 산과 들은 젊은이의 눈매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시원하였습니다. 벗들과 작은 이벤트를 하였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집에서 입다가 지겨워진 옷이나 모자, 스카프 등을 들고 와서 바꾸자고 하였더니 모두 몇 개의 물건들을 가져왔습니다.
보실보실 비가 내립니다. 노랗게 마른 마늘밭과 발밑에 납작 엎드린 보리밭 사이 골로 물이 제법 많이 고였습니다. 몽글몽글 솟아오른 매화나무 가지 꽃망울은 이 비가 그치면 그 찬란한 꽃을 툭 툭 터뜨릴 것입니다. 앞산에 진달래도 필 준비를 하며 분홍 치맛자락을 손질하겠지요. 결고운 봄비에 취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교무실에 앉아 강가 은사시나무에 눈을 맞춥니다. 저절로 입에서 “아, 참 좋구나.” 이런 말이 나옵니다. 대지를 적시는 비는 앙상하고 마른 제 마음도 편하게 눅여줍니다. ‘말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커스 주작의 『책도둑』은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냉소적이고 사색적이며 연민으로 가득한 죽음의 신, 그는 죽은 이의 영혼을 영원의 컨베이어벨트로 나르는 일을 업무를 합니다. 그런데 한 영혼을 거두러 간 곳에서 책을 훔치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아주 특별한 도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쟁의 비극과 공포 속에서도 말(言)과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가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그려집니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을 빛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날이 코앞입니다. 시골의 고모님께서 떡국을 몇 말 하셨다며 한 자루를 보내주셨습니다. 흰쌀떡국에 고명을 얹어 먹으니 설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확 다가섭니다. 저희 4형제가 모두 모이는 설날에는 식구들이 이십 여명이 넘습니다. 설거지는 한 번에 산더미처럼 나옵니다.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하고 그 사이에 차례에 쓸 부침개도 부치고 나물과 탕을 준비하는 명절은 바쁘고 부산스럽습니다. 명절이 되니 모처럼 얼굴보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함께 먹으니 반갑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이를 낳는 것과 육아의 대부분은 여성의 몫이고 집안일도 엄마의 일입니다. 명절은 여성의 노동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닐까요. 독서모임 밴드에 한 편의 시가 올라왔습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었습니다. ‘성’에 관한 담론만큼은 발언하는 사람이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단의 성추행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그녀의 발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설왕설래하였습니다. 용감한 여성들이 자신이 당했던 그래서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는 성추행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당했던 일이 다른 사람들은 겪지 말아야하고 우리
“기회는 작업복을 입고 찾아온 일감처럼 보여서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놓치고 만다.” 아침에 읽은 책에서 본 토마스 에디슨의 금언입니다. 이 말은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기회’라는 말의 의미는 화려하고 멋진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감처럼 찾아와 우리를 시험합니다. 고난이 곧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정말 어렵고 힘든 시절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시절을 견디지 않았다면 저의 오늘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쇠귀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감옥살이를 대학시절이라 부릅니다. 신영복 선생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20년간 수감 생활을 하던 중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을 받아 출소했습니다. 출소한 날 수감 생활을 하며 느낀 소회와 고뇌를 편지 형식으로 적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하여 지금도 많은 이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지금의 신영복 선생의 올곧은 단단함을 있게 한 것은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감옥 속에서 겪은 힘들고 길고 아득하고 끔찍한 세월일 것입니다. 그 분의 내면의
오랜 벗들과 몇 년의 계획으로 외국여행을 떠났습니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하롱베이로 가는 길에 벗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이국의 풍경을 감탄하였고, 지천으로 보이는 열대과일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면서 웃음소리가 개울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제 오랜 버릇 중 하나는 여행길에 몇 권의 책을 챙겨가는 것입니다.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여행 가방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번에 챙긴 책 중 하나는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다루었던 책으로 다 읽지 못한 『로봇시대 인간의 일』입니다. 독서모임에서 4차 산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로봇과 컴퓨터가 일상화된 미래에 ‘몇 가지의 직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어디에서나 학습할 수 있는 디지털 유목의 시대에 대학 교육은 필요한가?’, ‘로봇이 일상화되면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가?’ 화제의 중심이 된 것은 ‘로봇과 인간의 감정교환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을 기하급수적으로 학습하여 인간을 압도하는 로봇이 ‘인간의 감정에 대한 학습이 가능할까?’ ‘그 감정을 인간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이 설왕설
강마을은 흐리고 가뭄으로 푸석푸석한 들판이 보입니다. 남녘에는 겨울 가뭄이 심합니다. 눈도 비도 오지 않아 겨울 작물은 비시비실하고 하우스를 하는 지역은 관정도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저희 학교 근처는 낙동강과 남강이 인접해 강물을 공급받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농작물 값이 떨어져서 큰일이라고 학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제는 양상추 하우스를 하시는 학부모님께서 지나다 들렀다면서 양상추 한 박스를 주고 가십니다. 주시면 안 된다고 하니, 이건 상품이 못되어 값이 나가지 않는 것으로 그냥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랍니다. 저녁에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아삭한 양상추에 고기와 마늘을 얹어 먹으니 꿀맛입니다.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 남편의 얼굴을 모처럼 자세히 보니, 주름이 보이고 머리엔 흰 머리가 많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이 사람과 젊은 시절 참 많이도 싸웠는데 지금은 가족으로 시시콜콜한 식성까지도 공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여 만나고 싸우고 다시 소중함을 이해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유머와 통찰이 함께 조화를 이룬 책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철학적 깊이가 있어 읽으며 많은 사유
시절은 동지를 지나고 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어둠이 휘몰아 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는 눈썹처럼 고운 달과 그 옆으로 별무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칠흑 같은 동짓날 밤입니다. 깊고 깊은 어둠, 그 어둠을 거두어 갈 태양의 빛은 내일 아침이면 더 아름답게 떠오를 것입니다. 이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 간절하겠지요. 빛은 어둠을 짝하여 가장 환하게 타오를 것입니다. 지옥처럼 깊은 어둠이 내린 동짓날, 긴긴 밤을 읽은 책이 있습니다. 김경복의 네 번째 평론집 『연민의 시학』입니다. 저 역시 평론에 관심을 갖고 있기에 최근 평론집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평론’은 작가의 세계를 더 깊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작품이 가지는 새로운 지평을 찾아내는 발견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평론집을 읽으면 원석이 장인의 손을 거쳐 다시 아름다운 보석으로 재탄생되듯 작가가 쓴 작품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는 듯 느껴집니다. 『연민의 시학』은 전체적으로 영혼과 한의 미학, 노년의 삶과 죽음, 의식의 점등과 동일성, 여성의 자의식과 치유 등의 네 가지 테마로 시인들의 시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시인과 작품의 세계를 동시 일컬을 수 있는 시의 태동이 느껴집니다. 저자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교회 마다 반짝이는 불빛이 아름답습니다. 저 역시 송년회를 한 곳에서 하였습니다. 벗들과 경주에서 모여 맛난 것을 먹고 술도 한 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보냈습니다. 그 중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은 무척 얼굴이 상해 있었습니다. 20년 사업을 하면서 현재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회사에서 보유하였던 땅과 재산을 처분하여 겨우 운영이 되었다고 하며, 앞으로 더 힘들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아니면 자기만 바라보는 회사식구들을 위해 버텨보아야 하는지 짙은 고민이 어려 있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 한 해를 아직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선 차분하게 돌아볼 틈이 없이 방학 전까지 행사들로 빼곡하고 개인적인 공부도 끝자락에 있어서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2017년의 저와 2018년의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2017년의 부채와 자금을 그대로 연계되어 다시 시작하는 나이겠지요. 계속해서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장석주가 쓴 『들뢰즈, 김훈, 카프카』입니다. 이 책은 질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바탕으로 한국문학의 작품들에 대한 평론이 들어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