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곽성복씨 합격했네!" 대리점 대표 연수마저 포기하고 곽성복씨를 태우고 해남으로 출장을 다녀온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 목소리는 흥분하다 못해 떨리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잘 했네요.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전화가 끊긴 뒤로도 한참 동안 나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겨울 찬바람을 이겨낸 민들레처럼,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하늘을 향해 두 손 벌린 그의 도전 인생에 하늘도 무심치 않았음에 나도 모르게 감사의 기도가 나왔던 지난 금요일. 전임지였던 마량초등학교 8남매 어머니인 곽성복씨. 그는 금년 2월 25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병마에게 남편 김일남씨를 잃었다. 나는 그의 막내인 미심이를 1학년 때 담임하면서 가정형편을 알게 되어 지역신문과 인터넷 신문에 알리면서 방송 매체까지 연결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기사를 쓴 바 있다. 나의 졸필이 메마른 땅을 적시는 작은 샘물이 되어 세상의 누군가에게 희망의 등불을 켤 수 있다면, 그 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자판 앞에 앉았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가 국가의 보조금과 비정규직으로 벌어들이는 약간의 소득만으로 남편의 병간호와 8남매를 건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이 병마에 시달리는 동안 강진
영암왕인축제 현장에서 열린 학생왕인 선발대회 축하 행사에 참여한 덕진초등학교사물놀이팀 공연중 덕진초등학교는 2007년 12월부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답니다. 5,6학년 1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영암의 자랑거리로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을만큼 열심히 배우고 있지요.
이것만은 꼭 한다 - 받아쓰기 220일 ,읽기 책 낭송시키기, 교과서 동화 외우기 지도, 띄어 쓰기 지도 까지 2008년 4월 8일 화요일 아침, 모짜르트,피아노 협주곡 21번 A장조를 들으며 아이들과 함께 아침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아침독서 시간이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현민이가 이제 책을 읽는다. 교실에 들어오기가 바쁘게 수다를 떨기 바빴던 모습이 아니다. 눈빛도 차분하고 진지해졌다. 아침에 읽은 책의 내용에서 무엇을 알았는지 은비와 준희는 독서학습지에 부지런히 뭔가를 적는다. 두꺼운 책을 들고 제법 열심히 읽어내는 인재도 이젠 아침부터 방방 뛰던 3월 초의 모습이 아니다. 전날 책을 골라두고 집에 가라고 했는데 미처 고르지 못한 은지는 5분 이상 책을 고르다 결국 잔소리를 들었다. 이제 겨우 28일째 아침독서 시간을 운영했지만 벌써부터 눈에 보이게 옹골찬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서 행복하다. 이제는 오히려 수업을 시작하기 미안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여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아침 독서를 끝내고 숙제와 일기장, 독서학습지를 자랑하려고 내놓는 아이들. 그 다음 시간은 바로 전날 숙제로 나간 읽기책의 한 쪽을 돌아가면서 읽거나 외우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6학급 41명의 작은 학교이다. 작은 학교라서 좋은 점이 많다. 가족적인 분위기, 아담한 풍경,차분한 학습 분위기 등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다.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가족처럼 살다보니 서로 아끼는 모습이 여간 아름답다.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서로 도와주려는 모습이 보기 좋은 학교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각 선생님이 맡아야 할 업무 분장이 보통 학교의 두, 세 배는 된다는 점이다. 큰 학교와 다름 없이 시행해야 하는 공문과 협조 업무는 같은데 몇 명 되지 않은 교직원이 일을 맡다보니 아무리 일을 줄이려고 노력해도 기본적인 업무량은 어찌할 수 없다. 학교에 주어지는 업무가 학생 지도와 관련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처리해야 할 담당업무와 보고 공문의 기일을 놓치지 않으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때로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있는 것인지, 업무처리를 위해 있는 것인지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부장교사를 맡으면서 고학년 담임을 하는 선생님은 그야말로 얼굴 색이 안난다. 부장교사직을 고사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행
연일 터지는 납치 소동, 성폭행 소동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깡그리 무시된 채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려는 몰지각한 사람들 앞에 어리고 힘이 약한 사람, 특히 어린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그 피해자들이다. 더구나 가장 보호받아야 할 어린 새싹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부족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끔직한 범죄 현장을 날마다 보도하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게 된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새순을 피워 올리는 버드나무 여린 잎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 땅의 희망인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어른들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는 처참한 광경을 어찌할까? 이는 우리 사회가 안전불감증을 너머 도덕불감증의 징후를 드러내는 지극히 걱정스러운 사태라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바빠서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놓쳐버린 아름다운 미덕과 가치관의 실종이 이렇게 아프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만 뜨면 경제 이야기요, 물질 이야기로, 경쟁의 논리와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달려온 총체적인 문제가 아닐까?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저변에 상처받고 소외받은
바야흐로 봄이다. 방이나 교실, 도서관에 조용히 앉아 독서하기보다는 지천으로 널린 봄꽃들의 손짓에 마음이 가는 계절이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이렇게 아름다운 봄이 갈수록 짧아져서 제대로 봄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여름이 다가선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의 봄도 그렇게 짧지 않던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어린 시절은 금세 가 버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젊음의 계절, 여름이 금방 오기 때문이다. 인생의 사계절 중에서 봄은 어린 시절에 해당되리라. 평생을 살아갈 토양을 만들고 튼실한 씨앗을 뿌려서 다가올 젊음의 계절을 준비하는 봄. 좋은 습관을 길들이고 바르고 건전한 생각을 키워 가야 하는 시절이다. 바로 그 토양은 부모와 선생님, 사회와 국가의 몫이다. 꽃들은 자신이 꽃을 피워야 할 그 날을 잊지 않고 꽃을 피워낸다. 아무런 말없이 그 숭고한 일을 해내면서 우리를 가르친다. 그렇게 자신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고 몸으로 보여준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차가운 겨울비에도 작디 작은 꽃망울을 매달고 서서 겨울을 이겨낸 옹골찬 기백을 보드라운 꽃잎 속에 숨겨놓고 그 자리에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도,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향해 웃는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야
아침 8시, 봄 기운이 완연한 교정을 지나 교실에 들어서면 조용한 교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봄꽃들이 인사를 합니다. 밤 사이 꽃대를 쑥쑥 올리며 아쉬운 3월을 붙잡기라도 할듯 내 발길을 당기는 작은 꽃들에게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선사합니다. 잠시후면 학교 버스에서 내려 교실로 들어선 아이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침 독서를 시작합니다. 이제 20여 일을 함께 살아온 2학년 어린 아이들이지만 담임 선생님의 취향을 눈치챘는지 아침이면 독서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나도 그런 아이들과 함께 독서하는 봄날 아침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서둘러 출근을 합니다. 우리 반 아침 풍경 아침마다 달려가는 내 교실 거기엔 음악과 다섯 아이들 숨소리 그리고 사랑스런 봄 아가씨가 운동장 가득 봄 냄새를 안고 서 있지요. 큰 바위 얼굴로 서 있는 월출산 아지랑이 아롱대는 봄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시집을 읽는 기쁨을, 몰입하는 즐거움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나는 바람난 봄 가시내가 됩니다. 오늘이 참 소중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활짝 핀 목련화와 샛노란 수선화, 작은 왕관을 쓴 것처럼 여린 꽃망울을 달고 서 있는 산수유 한 그루를 들여다보고 아이들과 함께 꽃들에게 편지를 썼지
초등학교 선생님이 쓰는 교실일기- 만남 7일째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 가필드(1831~1881)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너희들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고 물었을 때, 소년들은 "위대한 학자가 되겠다, 세계 갑부가 되겠다, 훌륭한 정치가가 되겠다, 용맹한 장군이 되겠다." 등 각자의 포부를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필드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 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높은 자리에서 큰일을 하고 명성을 세상에 떨쳤다고 해도 그 사람됨이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라면 개나 소와 같은 동물과다를 바 없기 때문에 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소원입니다." 하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큰 기대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들어선 새 정부를 맞이한 지 이제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정부를 끌고 갈 수장들의 면면들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말들이 많다. 글로 옮기기에는 부적절한 단어들이다. 배를 끌고 갈 선장들이니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人事가 萬事'라고 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됨'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분들이 이룩한 부와 명예, 지위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평범한 국민 누구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만남 2일째- "에이, 또 맛 없는 것이다." "토할 것 같은데 어쩌지?" 급식실에서 식판을 받기가 무섭게 미리부터 음식과 담을 쌓는 우리 반 아이가 내뱉는 말입니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을 많이 쓰다보니 자주 티격태격 다투고 울상을 짓는 게 다반사입니다. 아직 가정방문을 하거나 학부모 총회를 통해서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으니 가정적인 요인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욕심도 많고 의욕적이어서 한 번 말한 것은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스펀지 같은 아이랍니다. 나는 우선 한 가지씩 차분하게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밥 먹는 태도부터 긍정적인 자세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음식에 대한 고마움에서부터 배고픈사람 사람들 이야기까지, 하나씩 조용히 접근해 가기로 했습니다. 영리한 아이라서 금세 내 의도를 알고 적응하려는 모습도 귀엽습니다. "은지야, 아프리카 아이들은 우리 돈 백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단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되겠니? 이 음식을 먹게 해주려고 부모님은 추운 데서 일을 하시고, 조리사님은 맛
새 아이들과 만난 지 5일째 입니다. 키 크고 활달한 김인재, 이름처럼 영리하고 눈치 빠른 김현민, 차분하고 예의 바른 서준희, 누구한테나 무슨 일에나 안테나를 세우고 사는 탁은지, 언니처럼 의젓한 최은비까지 모두 다섯 명입니다. 창 밖으로 월출산이 턱 버티고 서서 오늘도 저 바위들처럼 진중하게 그 자리를 잘 지키는 선생이 되라고 큰바위 얼굴을 하고서는 나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서 걸레를 들고 먼지를 닦아내며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다듬느라 바쁜 3월입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면 단위 학교입니다. 학생 수가 적어서 아이들은 모두 일대 일 개별학습으로 철저한 학습지도가 이루어져서 기본학습 능력이 매우 우수합니다. 아쉬운 점은 단체 경기나 게임을 하기 어렵고 친교의 범위가 좁다는 점입니다. 전교생 42명의 작은 학교이지만 깨끗하고 아담한 교정과 잘 웃고 인사도 잘 하는 아이들이 참 예쁘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2학년이지만 일기 쓰기도 매우 잘 해옵니다. 1학년 때부터 철저한 받아쓰기와 독서 지도가 잘 되어서 받침 글자도 잘 틀리지 않고 글을 잘 씁니다. 특히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어서 사교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직무연수에 참가 중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은 설렘이 없다. 겨울방학 때 읽으려고 몽땅 사들인 책을 보다가도, 좋아하는 연수 프로그램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흥이 나질 않는다. 뭔가 가슴이 막히고 체한 느낌으로 답답하다. 이런 답답함은 나만의 느낌일까? 학교일로 답답한 것도 아니고 어느 해보다 우리 반 아이들과 행복했던 2007년이었으니 교실 문제도 아니다. 가족들도 잘 지내고 건강하다. 내부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든 것은 역시 대통령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연일 발표되는 '교육문제'가 나를 우울하게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교육부를 해체한다느니, 초등학생까지 학업성적을 공개한다느니, 교육문제도 시장경제 원리로 간다는 살벌한(?) 소식들은 교육개혁을 표방하며 7차 교육과정의 정신을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현직교사들에게는 너무나 파격적이다. 아니,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이 앞선다. 선생인 나는 공무원이므로 국가에서 요구하는 교육방법과 시책에 따라 자세를 바꾸어 교단에 서면 되는데, 마음이 어두운 이유는 무엇인가. 변화의 속도가 가장 느린 곳이 학교라고들 하지만 정권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얼굴을 바꾸지 말아야 할 곳도 학교라고 생각한다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며를 쓴 저자, 차동엽씨는 신부이자 인천카톨릭대학교 교수님입니다. 텔레비전에서 그분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더욱 친근했는데 저자의 약력 또한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공대 졸업을 시작으로 카톨릭대학교, 오스트리아 빈대학 박사 학위 취득 후 사제로 서품되신 분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그분의 이력이 이 책을 집어들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삶의 희망을 잃고 힘들었던 처녀 시절 밤마다 무작정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망을 이겨내던 시골읍의 성당에서 인자한 눈빛으로 어눌한 우리 말 발음으로 위로해 주시던 멕시코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해 냈습니다. 수녀님들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어여삐 보아주셔서 일자리를 맡겨 주셨던 30여 년 전 성당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이 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인자한 사랑과 자비로움을 선사해 주셨던 그 오랜 기억 속의 외국인 신부님과 중년을 훨씬 넘기셨던 그 수녀님들은 이제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을 이 시각. 나는 이 책을 집어들며 내 십대의 언덕에 서 계신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내 기억 속의 신부님들은 세상의 빛이었으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성자
마량토요음악회에 출연한 부채춤 공연 장면 “선생님, 오늘은 창작 무용을 하실 거예요?” “어제 모둠끼리 창작 무용 하는 게 참 좋았어요.” “그랬니? 선생님도 여러분들의 실력에 날마다 놀라는 중이랍니다. 자, 오 늘은 학예회 출연 연습을 위해 잠깐 복습을 한 다음에 자기 짝과 모둠, 여섯 명 모둠으로 2분 창작 시간을 갖겠습니다.” “선생님, 또 다른 대회에 출연할 계획 없으세요?” 매주 화, 목, 금 3시 20분이 되면 1학년 우리 교실로 찾아오는 12명의 아가씨들과 나누는 대화랍니다. 지난 9월 초부터 시작한 방과후학교 시간에 한국무용 중에서 부채춤을 배우기 위해 3학년부터 5학년 여학생 12명과 함께 시간을 나눈 지 벌써 3개월입니다. 학교에서 새로 사준 부채를 들고 귀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가락의 장단을 익히며 기본 동작 하나하나 배우며 동작을 익히다보면 40분도 짧았습니다. 부채가 잘 펴지지 않는다며 칭얼대는 3학년 아가씨들, 눈병이 돌아서 조퇴를 한 짝꿍 때문에 꽃모양을 만들 수 없어 낙담도 하면서 그렇게 한 달 동안 열심히 부채춤을 배워서 기본 동작을 거의 익혔을 무렵, 교육청에서 방과 후 학교 발표대회를 하니 출연 종목을 정하느라 고심할 때였
"스트레스는 삶의 요구를 처리하는 메커니즘" 이라고 (에코리브리 펴냄)은 설명한다. 소득이 높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신체는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인 코르르티솔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분비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 남자는 30대, 여자는 20대에 스트레스를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스트레스클리닉이 실시한 검사 결과이다. 20~30대를 인생의 황금기로 본 것이다. 사계절로 설명한다면 20~30대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 따라 자신의 황금기를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무서움 없이 달려드는 나이가 그때라고 생각해서 황금기로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시기가 곧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니 힘든 시기를 잘 보내고 능동적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자에게 두둑한 열매가 열린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그 성장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는 뜻이니 자신에게 주어진 스트레스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도전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이다. 교직이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풍토는 사라져 감에도 불구하고 초,중,고 학생들이 가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6학급이다. 그런데 요즈음 괜히 눈치(?)가 보여서 괴롭다. 6명의 교사와 유치원 교사 1명이 서로를 평가해야 하는, 다면평가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다른 선생님들을 본의 아니게 평가해야 하고 나도 그 평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곳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평가 받는 이 같은 처사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근평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누누히 말하지만 석연찮고 기분 나쁜 것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선생님들 각자가 이루어낸 실적과 성과물을 근거로 자필평가서를 근거로 하여 서로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성과급을 정할 때도 말이 많고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면평가는 너무 심하다. 다면평가에 불응하면 어찌 되는가? 다만 내가 평가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나는 어떤 선생님도 평가할 수 없다. 어떤 한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소신, 그가 이루어낸 교육을 눈에 보이는 잣대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제자들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실적물(상장이나 대회 출전 등)로 계산할 수 있는 걸까? 가르치는 학년 수준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