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를 며칠 앞두고 둘째 아이 대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시간 내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출발한다. 하늘은 짙게 흐려 내려앉고 있지만 봄기운이 느껴진다. 들녘도 무채색이 옅어지며 온화하게 다가온다. 벌써 냉이도 나오고 쑥도 돋아나고 있다. 두 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지난 4년간을 떠 올려본다. 새내기의 기쁨을 가졌던 1학년이 지나자 코로나19 펜데믹으로 2, 3학년은 재택 수업을 했다. 흔히 말하는 캠퍼스의 낭만을 절반이나 빼앗기고, 4학년은 교육실습과 임용시험 준비로 고3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고,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다고 했다. 그 4년간의 흔들림의 여정을 오늘 이 시간으로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흔들림을 시작하는 시점에 서 있다. 흐리고 찬 바람이 부는 졸업식장은 축하객과 포토존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로 혼잡하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학사복과 학사모를 쓴 채 찬바람의 끝이 매서운데 교정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기념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젊음의 풋풋함과 생
겨울 열차역 플랫폼의 바람은 너무 차다. 햇빛과 달빛, 기다림과 이별의 사연이 켜켜이 쌓여 달려온 바람은 레일 위를 차갑게 안겨 오고 빠져나간다. 둘째 아이가 도회에서 유학하다 보니 마땅한 버스 편이 없어 집을 찾을 때면 인근 도시의 열차역을 이용한다. 올 때 승용차로 데려오고 갈 때 바래다준다. 종종 있는 이 일이 귀찮을 것 같지만 아이를 만난다는 기쁨에 오히려 반가움과 아쉬움이 넘쳐난다. 플랫폼에서 열차 도착을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하니 노란 선 안쪽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헤어질 때 승차를 알리는 방송에 따라 아이는 ‘안녕히 계세요.’ 메아리만 남긴다. 휑하니 멀어져 사라지는 열차의 후미등을 바라보면 가슴이 멍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만날 텐데 무슨 걱정이냐며 가슴을 추스른다. 부모에게 자식은 성장해도 언제나 보살핌의 대상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표현처럼 모든 일에 힘과 보탬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누가 그랬다. 자식은 바람(風)이라고.내 몸 빌어 이 세상에 나온 한 줄기 꽃바람이라고. 부모는 자식이라는 귀한 알맹이 하나 이 세상에 내보낸 바로 그 순
동지를 앞둔 12월의 새벽 공기가 코끝을 싸늘하게 한다. 고개 들어 나목을 보면 실핏줄 같은 잔가지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삶의 연륜은 얼굴에 그려지고 젊은 날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면 잠시 행복에 들뜨지만 한 해의 끝자락이라 왠지 서글퍼진다. 해마다 12월이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2022년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이 외에 욕개미창(慾蓋彌彰: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누란지위(累卵之危: 여러 알을 쌓아놓은 듯한 위태로움), 문과수비(文過遂非: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내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되게 판단한다) 등 순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했다. 한편, 지난해 교수들이 추천한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가 한패가 됐다)였다. 과이불개는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처음 등장한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고 했다. 과이불개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몇 번 인용된 사례가 있다. 성군으로 불린 세종대왕이 잘못을 인정하고
만추의 끝자락 초겨울로 들어서는 11월의 숲길을 걷는다. 적요(寂寥)의 숲길, 바래지는 풀숲에 핀 보랏빛 들국화는 향기를 더하고 파란 물감을 쏟아부은 하늘에 비행운의 직선이 차갑게 흐른다. 수런수런 한 줄기 바람이 인다. 바람은 아직 화장을 지우지 못한 나무의 이파리를 떨구고 가지 사이를 거쳐 미처 종이에 옮기지 못한 설익은 가을 사랑을 데리고 날아간다. 문득 길은 언제부터 생겼는지 의문이 떠오른다. 문명의 발달 전에는 야생동물의 길로 오솔길로, 지금은 둘레길로 인위적으로 생기고 넓어졌을 것이다. 숲길을 걸어보면 계절별로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다. 진달래 피고 진종일 뻐꾸기 울어 나무에 물오르는 봄의 길은 부드러운 푸석거림 속에 대지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여름의 숲길은 푸르고 젊은 낭만과 열정 새들의 날갯짓 소리 힘찬 성장이, 겨울의 숲길은 곤한 잠 속에 다음을 준비하는 침묵을 적시게 한다. 그리고 이즈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의 숲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 걸어온 흔적을 되새기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이 사색은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움을 준비하고 당부하는 시간이다. 겨울 초입 숲길에 서서 한 해를 걸으며 성숙했을 것이라 자부하지만 마음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설이 있다. 그건 삶이다. 특히 유교로 점철된 조선의 신분사회에서 여자의 삶은 존재조차도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이어져 온 사회적 통념은 아직도 그 흔적을 남긴 채 여성에게는 여전히 유리 천장으로 존재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 어릴 때 어머니는 여자는 죄가 많아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체념 섞인 말씀을 종종 하셨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어떤 남자를 만나는 지에따라 달라진다고 하셨다. 평생 길쌈을 하면서 그 한을 알지 못한 음조로 중얼거리며 ‘글을 안 다면 책을 써서라도 내 한스러운 삶을 남기고 싶다’고 하셨다. 이런 어머니의 삶은 딸에게도 대물림 되었다. 50년대 말 누나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식모살이, 성냥공장, 스웨터 공장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결혼해살면서도 내가 배웠다면 이렇게 남편의 월급만 바라보며 살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이런 양성평등의 삶에 대한 복잡다단한 생각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란 소설이 던져준 공감이었다. 4대에 걸친 굴곡진 여자들의 삶을 들여 다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여인들의 삶은 우리의 민족사이며 굴곡진 우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증조모
남해국어교육연구회(회장 정순자)가 제576돌 한글날을 앞두고 지난 9월 30일 남해교육지원청에서 관내 초등학생 47명을 대상으로 '고마워 한글, 다함께 즐겨요!' 한글날기념 백일장 행사를 실시하였다. 이날 행사는 2년 만에 대면으로 이루어져 의미를 새롭게 하였는데 인사말에서 정순자 회장은 다양한 국제행사의 수상으로 한글의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도 한글을 배우려는 모습이 활발함이 자랑스럽지만, 아직 우리 생활 속에 잔재한 일본식 표기의 말을 찾아내어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는 바른 모습을 보이자고 하였다. 그리고 이날 고마워 한글 백일장 행사의 시제는 운문은 날씨, 산문은 바램이었다. 행사후 심사소감에서 심사위원들은 공모전에 비하여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으며 자신의 일상 생활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내용이 많았다고 하였다. 심사결과 각 부문별 장원으로 운문부 성명초 5학년 이아임, 산문부 창선초 5학년 이예지 학생으로 선정되었다. 각 부문별 차상 이상의 작품은 꽃밭 43호에 수록 발간 예정이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인 가슴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이 노래는 수십 년 전 가수 나훈아가 불려왔던 고향역 가사이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노랫말의 여운이 시골 간이역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물결을 떠올리며 추억의 애잔함을 몰고 온다. 완행열차가 다니는 간이역, 철로 이음매에 부딪히는 철커덩거림이 빨라질수록 마음은 벌써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지나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고향집 동구밖에 선다. 이런 설렘과 기다림은 아마 50대를 넘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 세월이 흘러 고향에는 이뿐이도 곱뿐이도 사라진 지 오래며, 고속철도로 간이역은 없어지고 예전처럼 눈물겹도록 반겨줄 사람은 모두 떠나고 없다. 더구나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코스모스 핀 가을길과 추석에 대한 정서를 살펴본다는 것은 장마철 잉크 빛 가을 하늘을 그리워하는 모양새다.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은 코스모스이다. 꽃말은 소녀의 순정이다. 코스모스 하면 어릴 적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 연습한 기억이 새롭다. 학교에 오갈 때 동무
장마가 끝나자 하늘은 더없이 파래지고 솟아오르는 흰 구름은 상큼한 바람을 탄다. 이제야 여름의 주름진 얼굴이 펴진다. 그 얼굴 한가운데 8월은 뜨거운 태양 아래 짙푸른 녹음을 두르고 진한 향기로 익어간다. 자연에 있어 시간은 중요하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풀과 나무, 실과들은 자연의 시계에 순응하며 자신의 할 일에 한 치의 게으름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자신의 기대 가치에 따라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의미 부여를 달리한다. 그 이유는 모두가 가진 진실한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고귀한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 언제나 지혜로움과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7월의 마지막 주말, ‘지구와 함께하는 알뜰장터’가 유배문학관 잔디밭에서 열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뜨거운 햇볕 때문에 망설였을 것인데, 태풍의 간접영향으로 낮게 드리워진 구름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풀밭에 설치된 이동식 물놀이장은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음악과 더불어 풍덩풍덩, 아이들의 즐거움은 여름 더위를 날리고 있었다. 꽃보다 더 예쁜 얼굴, 활짝 핀 웃음꽃은 여름 하늘을 덮는다. 그래 너희들이 보물이다. 저 짙푸른 여름의 녹색보다 더
유월 초 다랭이마을은 바쁜 듯 느긋함을 품고 있다. 먼바다는 연무를 두른 채 다가오는 여름을 피워올린다. 봄 가뭄이 심한 탓에 천수답인 다랭이논은 아직 모내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지난봄 유채꽃으로 층층의 물결을 이루었던 다랭이논은 메말라 있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체험활동이 아니면 농사일을 경험할 수 없는 시대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사는 고장의 뿌리, 남해 섬사람의 억척스러운 다랭이정신과 바래정신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전날부터 들뜬 아이들과 함께 다랭이마을에 도착한다. 설흘산 중턱 도로에서 시작된 골목길은 경사를 이루며 꼬불꼬불 바닷가로 이어진다. 사람과 지게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메아리친다. 햇볕은 따갑지만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에 서면 설흘산에서 내려온 명주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눈이 흘러내려 설흘산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품은 응봉산과 더불어 마을을 감싸준다. 출발하기 전 아이들에게 밥무덤과 삿갓배미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밥무덤에 왜 쌀밥을 묻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풍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랭이마을 밥무덤은 세 군데가 있다.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는 돌을 쌓아 감실처럼 만들어 밥을
오월 열셋째 날 아이들의 웃음이 잔디밭에 진하게 물든다. 한소끔 훈풍이 일 때마다 울긋불긋 꽃양귀비와 작약꽃이 청잣빛 하늘에 하늘거린다. 왜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월은 행사가 많다. 지난주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었는데 이번 일요일은 언제나 개운치 않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을 앞둔 한 주를 마치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올해는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라 다소 마음이 가볍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본래의 의미를 알려줘야 했기에 노래를 부르고 미리 준비한 종이 카네이션 도안을 나누어주면서 스승의 날과 카네이션의 의미를 간단히 알려준다. 카네이션을 드리는 풍습은 약 100년 전 미국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교회 모임에 온 어머니 오백 명에게 흰 카네이션을 선물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녀는 꽃의 색깔은 진리와 순수, 넓고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향기는 어머니의 기억과 기도를 상징하며, 꽃잎을 껴안고 송이 째 시드는 모습은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껴안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했다. 이후 윌슨 대통령은 1914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정하였는데, 이날 행사에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빨간 카네이션을, 돌아
앞산 뒷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작은 활화산처럼 번지는 꽃의 향연이 사월을 물들인다. 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분분히 꽃비를 뿌리고, 연분홍 복사꽃은 새색시 얼굴처럼 담장 낮은 집 봄 마당을 훔친다. 사월의 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시기가 계절의 화양연화라 할 수 있겠다. 깊어가는 봄, 오늘도 봄날 하루는 저만치 걸음을 옮기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봄바람의 살랑거림을 볼 터치로 마주했던 며칠 전이었다. 같이 걷던 아내가 갑자기 당신의 삶에서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대답으로 제일 행복할 때가 당신과 연애할 때였지만 불안한 두근거림이 있었고 곰솥을 데우는 은은한 행복은 지금이라 했다.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꽃처럼 빛나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봄꽃의 향연을 보며 내 인생에 있어서 화양연화는 언제였던가 의문을 던진다. 삶에 있어 좋은 날들은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고 저녁 바다처럼 흘러간다. 덧없다 속절없다는 말처럼 머리카락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꺼풀에 내려앉아 잡아당긴다. 어느덧 유리창엔 먼지가 앉아 돋보기가 필요하고 사물을 살피려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어
봄바람에 느티나무 연둣빛 새잎이 나풀거린다. 그 바람 속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 숨결이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간간이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 시대의 훈장처럼 겨울 강풍에 날아와 가지에 걸린 마스크가 벌렁거린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으로 인한 자가격리 사흘째이다. 방역지침과 거리두기 개편으로 연일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져 걱정이다. 그래도 딴에는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하였는데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막는다’는 말처럼 그 불똥이 내게 오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하였을까? 처음 당해보는 자가격리라 평소 생활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마치 군중 속의 섬사람이 된 느낌이다. 더구나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철부지들을 생각하니 애간장이 탄다. 하지만 이 코로나보다 더한, 교직에 있는 모든 선생님이 힘들다는 3월도 대상포진과 싸우면서도 출근하였는데, 지금 주저앉은 이 모습이 믿기질 않는다. 그리고 사월의 시작과 함께 아이들과 같이 교정 화단에 솟아나는 새싹과 민들레꽃, 할미꽃, 고사리 같은 새잎을 관찰하며 봄을 맞이하려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자신에게 원망을 던진다.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겨울 흔적 희끗희끗한 동산엔 소리 없는 봄들의 도란거림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봄의 전령사 매화, 산수유꽃에 이어 하얀 목련꽃이 따스한 봄볕에 물들어 천상의 소리처럼 퍼진다. 늦은 3월의 어느 하루, 종종거리며 보낸 오후의 흐느적거림은 흩어지는 구두 굽 소리조차 이명으로 멀어지게 한다. 매년 이맘쯤이면 언제나 지나는 골목이 있다. 그 깊은 골목 안에는 폐가인 듯 마른 풀만 무성한 집이 있다. 그 집이 눈길을 끄는 것은 마당 서쪽 가장자리에 담장 높이의 서너 배를 훌쩍 넘는 목련 한 그루 때문이다. 이 목련은 매년 3월이 되면 겨울 끝 봄의 시작이란 알림을 전해준다. 올해도 이 나무는 작년과 비슷한 시기에 봄을 활짝 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작년에는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눈여겨 봤는데, 올해는 대상포진이란 짖궂은 녀석에게 일격을 당하여 놓치고 말았다. 만개한 목련꽃을 쳐다보며 셔터를 누른다. 한 뿌리, 한 몸뚱이에서 나온 가지에 매달린 꽃봉오리들은 모두 같은 시각에 만개 하는 일은 없다. 아마 일조량에 따라 그 순서를 달리하여 그럴 것이다. 부풀어 올라 열리기를 기다리는, 반 정도 열린, 완전히 열린 꽃봉오리를 보며 고통의 인
겨울밤 긴 침묵은 세상을 꾹꾹 눌러 스물네 시간의 빛을 짜낸다. 어둠은 새로운 눈과 귀를 주며 슬픔을 기쁨으로 보라고 절망을 희망의 노래로 들으라 하며 먼지 쌓인 추억을 들추어낸다. 섣달은 음력 12월로 설이 드는 달이라는 뜻으로 ‘설달’이라고 불렸다. 한 해를 열두 달로 잡은 것은 수천 년 전부터지만 어느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잡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중에는 동짓달인 음력 11월을 첫 달로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음력 12월을 한 해의 첫 달로 잡고 음력 12월 1일을 설로 쇠었다. 후에 음력 1월 1일을 설로 잡았지만 음력 12월을 ‘섣달’로 부르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설달’이 ‘섣달’로 불리는 것은 ‘ㄷ’과 ‘ㄹ’의 호전 현상에 의해서이다. 일 년 열두 달 중 제일 춥고 밤이 긴 달이 동지섣달이다. 동짓달 겨울밤은 도란도란 이야기가 밤하늘 별처럼 수를 놓고, 섣달 겨울밤은 설을 준비하는 설렘과 기다림으로 손가락을 꼽으며 보내는 달이다. 설을 앞두고 텅 빈 촌집을 찾았다. 인적이 끊긴 흙 마당은 가랑잎을 덮어쓴 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푸석거리고 문풍지가 떨어진 격자무늬 방문 창호지는 누렇게 바랜 지 오래되었
“예쁘고 바른 글씨는 아니지만 한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기계를 통해 인사드리기 송구스러워 몇 자 적어봅니다.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신 선생님을 만나 우리 아이가 잘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일 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지난 1월 첫째 주 2021학년도를 마감하는 종업식 날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편지를 주고 갔다. 그 속에는 손글씨로 쓴 아이 엄마의 편지가 웃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보내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렇게 손 편지를 받으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 가슴이 뭉클했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는 동안 학부모로부터 이런 손 편지를 받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찡한 감동이지만 한편으론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하는 이오덕 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오덕 님은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이 출세란 것을 해서 이름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농사를 짓든지, 노동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간에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웃과 정을 나누면서 자연을 사랑하면서 넉넉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