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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봄기운이 한창이고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4월. 제주교육대학교에서는 21일부터 24일까지 도외답사라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도외답사란 말 그대로 제주도를 벗어나 제주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문화 및 교육적 자원들을 다른 지역에서 체험하고 배우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각 과에서 자신의 과의 특성에 맞는 일정을 자율적으로 세운다. 도외답사와 기존의 수학여행과의 차이점은 답사한 지역의 단편적인 지식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곳을 교사가 되어서 어떻게 교육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올해의 도외답사는 사회과 교육과의 답사를 중심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회과 교육과는 파주를 중심으로 하여 고양, 서울 등지에서 평화교육, 다문화 교육,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2박 3일간의 일정을 세웠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간 곳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 문화원이다. 이곳을 답사한 목적은 다문화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발맞춰 다른 낯선 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함이다. 평상시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중남미 쪽 인디오들의 문화와 식민지배 이후의 중남미 문화를 접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을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파주 교하 신도시에 있는 유비파크이다. 그 곳은 유비쿼터스 시스템이 현실화 될 가정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는 평소 우리가 꿈꿔왔던 편리한 가정의 모습과 도시의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다음 일정은 역시 파주에 있는 황희 정승 유적지다. 그 곳은 황희 선생 일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역사 교육을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점차 황희 선생이 청백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교과서에서 더 이상 황희 선생의 청렴결백에 대해 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지금, 과연 이 또한 교육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 날 일정은 평화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임진각 및 경기평화센터, 도라 전망대, 제 3땅굴, 도라산역 등을 돌아보았다. 임진각에 있는 자유의 다리에서는 실향민이 직접 적은 통일에 대한 염원의 편지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편지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그리고 임진각 바로 옆에 있는 경기평화센터에서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전시해 놓았고, 외국의 다른 사례 등을 보여 주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곳에 대한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한 학우는 “임진각과 경기 평화센터에 유엔참전군을 위한 위령비와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여러 문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이는 그 곳에 견학 온 많은 학생들이 북한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갖게 될 까봐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임진각과 경기평화센터 바로 앞에 있는 놀이공원은 그 곳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경건함을 훼손하는 것 같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라며 그 곳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제 3땅굴과 도라전망대, 도라산역이었다. 제 3땅굴은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파 놓은 꽤 깊은 땅굴을 직접 체험해 보는 곳인데, 그 곳에는 많은 외국인들도 관광을 오는 곳이다. 그 곳의 땅굴 규모를 통해 당시 남북한의 대치 상황을 엿볼 수 있어 초등학생들에게 남한과 북한의 대립했던 역사를 소개하는데 훌륭한 장소다. 도라전망대에서는 북한의 모습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개성공단과 송악산을 맨눈으로 볼 수 있어 북한과 남한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도라산역은 비록 지금은 평양까지 가는 기차가 없지만 곧 평양행 기차가 운행을 할 것 같다는 희망을 주는 곳이다. 분단과 관련된 곳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북한과 전쟁, 통일에 대하여 어떤 방법으로 초등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교과서와 연계하여 가르칠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던져준 둘째 날 일정이었다. 마지막 날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을 관람하였다. 이날 답사의 목적은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가장 큰 이유였던 창덕궁의 역사적 의미와 후원의 아름다운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관람을 하였다. 이곳과 얽힌 역사적 사건을 해설사 분의 해설을 들으면서 왕과 왕비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고, 한일 합방의 슬픈 역사 또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후원에 관광온 많은 관광객들은 그곳에 펼쳐진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건축물을 조화롭게 세웠다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사회과 교육과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평화교육, 다문화 교육,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답사를 마쳤다. 다른 학과의 일정을 소개하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도외답사를 통해 제주교육대학교 학생들은 많은 교육적 자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런 행사는 제주교육대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교육대학교에서도 많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서울시내 초.중.고교 10곳 가운데 8곳 이상이 석가탄신일(2일)부터 어린이날(5일)까지 나흘간 연휴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시내 초.중.고 1천268곳 중 82%(1천35곳)가 월요일인 4일을 학교장 재량의 자율 휴업일로 정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주말인 2일이 수업이 없는 '놀토'(매달 둘째 넷째 주말)는 아니지만 석가탄신일과 겹친 데다 어린이날이 화요일이어서 4일 하루를 재량 휴업일로 쉬면 모두 나흘간 '단기방학'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4일 자율 휴업하는 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 83%(485곳, 312곳), 고등학교가 77%(238곳)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중부교육청(용산.종로.중구내 41곳)과 성북교육청(강북.성북구 내 43곳) 관내 학교는 각각 3곳만 제외하고 모두 4일을 자율 휴업일로 정했다. 지난해 초등학교 중에서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을 전후해 나흘 이상 학교 문을 닫고 쉬었던 곳은 전체의 15.6%(89곳)에 그쳤다. 이에 따라 시교육청은 각급 학교에 연휴기간 등교를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학교 시설을 개방하고 맞벌이 부부 자녀와 저소득층의 '나홀로' 학생을 위한 중식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또 각 지역교육청은 학교장 재량의 자율 휴업일에는 학교가 아닌 각 자치구가 중식을 지원하기 때문에 관내 학교를 대상으로 재량 휴업일에 홀로 지내게 될 학생들을 사전에 파악해 지자체에 통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일 자녀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부와 '나홀로' 학생에게 나흘간의 단기방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뉴딜정책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주도로 추진한 정책이다. 생산과 소비가 마비되고, 국민이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공공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소비를 촉진시키고, 생산을 장려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위기에 처한 경제를 국가 주도로 슬기롭게 대처한 사례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절실했던 정책 현재의 우리 상황을 보면 1930년대의 대공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되지 않고, 가동되면 공장이 멈추면서 실직자가 급증하고, 소비시장도 위축되어 판매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 등 대규모 공공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대공황과 같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은 교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이다. 교육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듯이 어려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일도 교육을 통해 이루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후버댐을 만들어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듯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해 국난 극복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다운 교육,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교육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미래기획위원회에서 마련한 ‘교육뉴딜’ 방안은 절실하며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육뉴딜에서 제안하고 있는 주요 사업은 교육시설 및 환경개선, U-learning 환경 조성, 방과후 교수 • 학습 프로그램 지원, 실험 • 실습 • 체험 활동 지원, 청년 일자리 창출, 지역 교수 • 학습지원센터 설립, 교과교실제 도입 등이다. 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제안된 사업들이다. 그동안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교육다운 교육을 하기가 어려웠고 여러 차례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선진국을 능가하는 교육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제안된 방안은 이런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교육뉴딜 정책의 성공 중요한 점은 국가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교육여건을 선진화해 국제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수행할 있도록 교육뉴딜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정치(政治)한 계획과 추진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추진사업의 방향과 내용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교육뉴딜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단기 사업이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과 더불어 선진 교육체제 구축의 토대를 마련하도록 추진사업의 방향이 설정되고 내용이 구성되어야 한다. 이번에 추진되는 사업이 일시적으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교육의 틀을 개편하는 초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설과 여건 개선, 일시적인 일자리 창출의 사업보다는 교육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교육력을 강화하는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예산확보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돼야 둘째, 사업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제안된 방안이 일 년 내에 추진되어야 할 사업 중심이며 소요예산도 이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뉴딜의 성격을 보면 위기 처방의 단기적인 사업이 더 필요하지만 교육의 경우는 장기적인 계획 하에 단기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큰 비전 아래 단계별로, 시기별로 추진해야 할 사업과 예산의 규모가 추정돼야 종합적인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재원의 규모를 추정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업추진의 관건은 예산이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고는 어떤 구상이나 훌륭한 사업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교육뉴딜에서 제안된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2009년도에 필요한 6조 원의 예산도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1조 원밖에 확보할 수 없다는 소식이 들린다. 6조 원도 노후교실을 교체하고 교과교실을 확보하는 수준이다. 이번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은 교육뉴딜의 사업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를 예측하고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산 경남여고 조갑룡 교장입시 고민이 없는 한국과학영재학교 교감에서 인문계고교 공모교장에 도전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영재학교에서의 3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남다른 과학 영재들, 70% 이상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교사진, 카이스트에서 파견됐거나 외국인인 교수들 등 학교구성원 모두가 함께 융화되기엔 너무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었죠. 이들 모두를 이끄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챙겨야 하는 학교 살림 규모도 일반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고요. 하지만 그 덕분에 풍부한 경험을 쌓아 어떤 일이든 해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최고의 영재교육을 통해 배운 노하우를 살려 일반 학생들도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입시에 묶여 운신의 폭이 좁은 일반 인문계고보다 교장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는 개방형 자율학교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경남여고에 오시면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저는 취임식에서부터 ‘사람이 왜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키우라는 의미에서 ‘No Dream, No Gain’을 주제로 3주 동안의 모든 학급을 돌며 특강을 했죠. 학교 운영을 할 때도 꿈을 심어주고 비전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과제연구 우수학생들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다녀온 것도 그런 의미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학교는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곳” 말씀하신 것처럼 학생들의 미국 아이비리그 탐방이 화제가 됐습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보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인센티브라고 생각합니다. 공모교장으로 오기 전부터 구상해왔던 일이에요. 열심히 한 만큼 알아주고 격려해주면 아이들은 신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되죠. 가장 좋은 교육은 학생이 잘할수록 도와주고 더 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남여고의 경우 과제연구 우수학생, 성적 우수학생, 친구들끼리 서로의 공부를 돕는 2+2 상생학습에서 최고의 학력신장을 한 학생들, 과제연구 최우수팀 지도교사 등 모든 면에 인센티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형식적인 인센티브가 아니에요. 미국 중에서도 아이비리그를 간다든지, 일본은 조선통신사의 행로도를 따라 탐방하며 민족적 혼을 키우고 도쿄대, 교토대 등을 둘러보고 옵니다. 아이들이 또 다른 경험을 쌓고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죠.” 경남여고의 특색 교육과정인 과제연구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과제연구는 과학고 등에서 주로 진행하는 연구교육프로그램인 R&E(Reserch Education)인데 ‘학생 1인 1과제 연구’라는 이름으로 학생들 스스로 흥미 있는 연구 주제를 정해 과제를 설계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저희 학교는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요. 공부하기도 바쁜 인문계 고교에서 무슨 과제연구냐고 하겠지만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와 결과물들을 보면 아마 놀라실 것입니다. 과제연구를 통해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알아가고, 공부하는 데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지죠.” 교사선택형 보충수업을 하시는데 반대는 없었습니까? “물론 반대의견도 많았습니다. 토론을 통해 실(實)보다는 득(得)이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학교 일이 교장이 주도한다고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 결정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면 학교 연수에서 전체 선생님이 난상토론을 합니다. 모두가 한마디씩 언급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토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교과통합형 수업, 코티칭(Co-teaching)을 계획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 왔을 때 또 하나의 목표가 경남여고만의 수업브랜드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부터 5월에 일주일간 수업공개를 하고 있는데 200여 명이 참관합니다. 힘들지만 교사들이 자신감을 찾고 있어요. 교과통합형 수업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했는데 통섭(統攝)의 시대에 앞으로 더욱 요구되는 교육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98년 미국에서 연수받을 때 대학교수가 두 명 또는 다섯 명까지도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코티칭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효과를 기대하십니까? “영어 교과서에 과학 관련 내용이 있다면 대부분 적당히 넘어가거나 과학 선생님에게 물어봐서 수업을 합니다. 그렇지만 과학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것과 영어 선생님이 들어서 전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30분은 영어 선생님이, 15분은 과학 선생님이 수업합니다. 나머지 5분은 두 교사가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하죠. 코티칭을 위해 간(間) 학문적으로 두 교사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고 굉장히 발전적인 일입니다. 경남여고 교사라면 누구나 1년에 두 번은 의무적으로 코티칭을 해야 합니다.” 개방형 자율학교여서 학부모나 학생이 학력신장에 대한 기대가 높을 텐데 예술적 감성을 학교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으셨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더 ‘감성의 시대’로 갈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형 글로벌 인재의 필수 요건인 창의성도 예술적 감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적인 마인드를 심어주고 싶어 ‘1인 20제 가지기’1), 단체 오페라 관람, 시인 초청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똑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학생, 선생님들에게 감성교육을 할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래형 교육과정이 화두인데 앞으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요즘 시대의 문제아는 공부 못하는 학생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미치는 사람이 21세기의 신(新) 천재라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서 우리는 ‘N0. 1’ 인간이 아니라 ‘Only One’ 인간을 키워야 하죠. 아이들이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공부만 시키다 보니 자신의 길을 찾는 데 오래 걸립니다. 앞으로 미래 교육은 특히 아이들의 소질을 계발하고 창의성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성적 • 문화적으로 노출을 많이 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학교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나 한계가 있다면. “정부차원의 연속성 있는 정책지원이 부족합니다. 실험적으로 새 시대에 맞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장에 적용하면 결국 현실적인 대학입시 문제에 부딪힙니다. 학교가 앞서 나가는 만큼 입시제도가 빨리 개선되지 않아요. 이제라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돼 다행이지만 좀 더 다양하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쪽으로 대학 입시가 정착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교장의 리더십이 점점 강조되는 추세인데 교장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교장의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영재학교에서 몸부림치다보니 리더십이라기보다 같이 살아가는 방법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교장으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생각의 차이를 틀리다고 규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큰 그림과 방향은 제시하지만 그 외에는 담당자가 열심히 하도록 전적으로 믿고 맡깁니다. 상대를 인정해주고 믿음을 보여주면 책임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공감대가 쌓여가죠.” “정보는 생명, 메모하는 습관은 나의 경쟁력” 아이디어 뱅크로 통하시는데 자기개발의 노하우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정보는 생명입니다. 6년 전부터 시작한 메모 습관은 아무도 못 따라오는 저만의 경쟁력입니다. 자다가도 일단 메모해 놓고 다시 찾아봅니다. 또 하루에 13개 정도의 신문을 봅니다. 신문을 보면 상식과 정보도 얻고 누구보다 빨리 트렌드를 읽게 되죠. 마지막으로 이외수씨, 신경림 시인 등 각 분야의 고수들을 찾아가서 인생에 대해 한 수 배우고 옵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르친다는 것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배운다는 것은 수그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배우면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자세를 낮추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어떤 본(本)을 보여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인생을 살아가는 선배로서도 실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선생은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30년 이상 교직에 몸담아 보니 이제야 조금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최근 중국의 국가 경쟁력이 크게 확대되고, 이러한 국력 신장의 영향으로 중국인들의 대외적인 자신감이 강화되면서 중국 사회에서는 소위 ‘중화문화’라는 중국 전통문화를 부활시키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위해 과거에는 소홀히 여겼던 중국 전통문학, 예술, 체육, 과학기술 등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이러한 것은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중국인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통문화 부활 노력은 교육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중국어 교육 강화, 번체자 교육 실시 논의, 중국 전통문화 교육 강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음악 분야에서도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경극(京劇)을 초 • 중학교 교육과정에 추가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화문화 부활’ 일환으로 전통문화 교육 강화 경극을 교육과정에 추가하려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는데, 중국 교육부는 2008년 3월부터 2009년 7월까지를 목표로 베이징, 톈진[天津], 헤이룽장[黑龍江] 등 10개의 성(省) 또는 시(市)의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서 경극을 학교교육과정에 도입하기 위한 시범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에 대한 중간 점검차원에서 올해 3월 초 베이징시에서 경극 교육 시범학교 수업 발표회 및 경극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 1년간의 경극을 교육과정에 적용한 시범학교 운영 결과를 발표했는데 시범학교를 운영해 보니 경극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높아졌고, 예술을 존중하는 습관이 형성되는 등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는 긍정적인 결론을 얻었다. 베이징시 교육과학연구원의 기초교육연구센터 음악교육연구실의 션이민[沈一民] 주임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까지 진행된 경극 교육 시범학교 운영은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현재 베이징시 교육위원회는 80만 위엔(한화 약 1억 6000만 원)을 들여 중국희곡대학에 베이징시 지방교육과정 경극교재를 만들도록 위탁한 상태다. 현재 제작 중인 경극 교재의 내용을 살펴보면 수록된 총 22곡의 경극 가운데 전통적인 경극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현대 경극은 30%, 새로 만든 역사극이 10%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중국 교육부가 초기에 제시한 경극 15곡에서 20%가 빠지고 새롭게 7곡이 추가된 것이다. 이 같은 베이징시의 노력 덕택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올해 9월부터 베이징시의 초 • 중학교에서는 이 교재를 바탕으로 경극 수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교육과정에 시범 도입된 경극, 평가는 긍정적 교육과정에 도입된 경극은 현재까지는 음악과에 한정되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원래 방침에 따르면 초 • 중학교에서 새롭게 실시하는 경극 교육은 특정 교과에 한정하지 않고 범교과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이는 경극은 음악, 미술, 무용 등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적인 예술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초 • 중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경극 교육의 내용 역시 특정 교과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경극에 필요한 가면이나 복장과 관련한 교육은 미술 교과에서 교육하고, 경극의 가사와 관련된 내용은 어문(국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등 경극은 교육과정에 적합한 범교과적인 성격을 지닌 하나의 새로운 교육 내용이라는 것이 베이징시 교육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아울러 베이징시에서는 경극의 학습과 관련한 평가를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경극이 중국의 초 • 중학교 교육과정에 정식 도입돼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경극 수업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것이다. 경극 교육 시범학교 학생들의 경극 수업에 대한 의견 조사에서 대부부의 학생들은 경극 수업이 재미는 있지만 배우기는 어렵다고 응답하고 있다. 초등학교 1 • 2학년에서 배우는 경극은 유명한 곡으로 이미 학생들이 많이 들어 보았고, 부르기도 어렵지 않으나,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생소하고 어려운 곡이 많은 탓에 학생들이 듣기에는 좋으나 직접 시연하거나 부르는 데는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극이 교육과정에 도입되는 것을 우려한 여론 가운데 하나가 경극의 내용은 학생들이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실연(實演) 과정에서 경극 특유의 발성법 때문에 성대가 다 자라지 않은 초등학생 및 변성기인 중학생들이 따라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시범학교 운영에서도 이런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와 관련해 시범학교의 교사들도 학생들이 경극을 배우는 데 흥미는 가지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학습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정식 도입하려면 풀어야 할 난관 많아 또한, 경극을 가르칠 교사 인력의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경극은 일반 음악과는 달리 특수한 기능을 필요로 하는 예술의 한 분야이다. 따라서 경극을 수업에서 가르치려면 많은 학습을 통해 경극을 습득한 숙련된 교사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례로 현재 시범학교에서 경극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경우 2주간의 경극 교육 연수를 통해 경극을 접했고, 그 이후에는 교사들 스스로 공부하고 터득해가며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베이징시의 경우 지난 1년간의 시범학교 운영에 투입된 48명의 교사들 가운데 38명이 이전에는 경극을 전혀 접해보지 못하고 단기간의 연수를 통해 교육을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베이징시는 앞으로 경극을 지도할 교사들에 대한 장기 교육 등 전문 교사 인력 양성을 위한 새로운 대안 마련을 위해 분주하다. 이와 같은 중국 초 • 중학교에서의 ‘경극 교육’이라는 전통음악교육 강화 소식을 접하면서 10여 년 전 우리나라 교육계를 강타했던 국악 교육 강화 조치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그동안 우리나라의 초 • 중학교 음악교육 내용이 우리의 전통 음악을 소홀히 한 채 서양음악 일변도로 흘렀다는 지적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음악교육과정에 국악적 요소를 대량으로 삽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전통 음악교육의 강화라는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전통음악은 어렵고, 복잡해 배우거나 가르치기 힘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만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한 바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교육의 경험을 고려할 때 현재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치밀한 준비 없는 경극 교육의 도입 및 강화는 앞으로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케인즈“이리 떼의 자유가 양 떼에게는 죽음을 뜻하듯 경제적 자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무제한적 경쟁은 승자의 탐욕과 패자의 굶주림으로 양극화될 뿐이다.” 이 말은 자칫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던 당시에도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대표적인 경제학자입니다. 다만, 그는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인간의 축재욕은 제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가 자본주의를 통해 ‘선한 삶’을 실현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친교와 사랑, 미의 추구, 지성의 훈련, 경제적 안정이 필요한데, 시장이 조장하는 배금주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므로 어느 정도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선한 삶’의 추구에 필요한 경제적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제와 같은 사회적 안정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1차 대전 후 독일에 대한 배상금 요구 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짧은 설명으로 케인즈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 5명이 논쟁을 벌이면 그 중 2명은 케인즈의 이론을 놓고 서로 싸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였으니까요. “장기란 현재의 사태에 대한 잘못된 지침이다. 장기에는 결국 우리 모두 죽는다”라는 케인즈의 말이 시시각각 변하는 그에게 딱 알맞아 보입니다. 하이에크 “자연적으로 발생한 시장에 대한 통제는 인간을 노예의 길로 몰고 갈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시조라는 하이에크의 이론은 IMF 이후 우리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론일 것입니다. 작은 정부, FTA, 구조조정, 개방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되는 것들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하이에크입니다. 하이에크는 국가의 통제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위적인 통제보다는 시장과 법에 의해 사회가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하이에크의 생각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합니다. 완전하지 못한 이성을 통한 인위적 조작이 전체주의나 사회주의를 만들어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에크는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나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고전적 자유주의를 훼손한다면서 다수결 민주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물론, 다수결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자체는 아니지만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은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춰 보았을 때 재밌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1900년대 이후 세계의 경제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공황으로 자유방임사상이 흔들리자 케인즈주의(뉴딜정책)가 대세를 잡고, 정부 실패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자 작은정부를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다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케인즈주의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의 운명이 참 얄궂어 보입니다. 하이에크는 자신과 케인즈를 각각 ‘오직 한 가지 큰 사실만 아는 고슴도치’와 ‘많은 것을 아는 여우’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이 여우와 고슴도치의 싸움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요? 신자유주의에 앞장서던 정치가나 학자들이 별 스스럼없이 ‘뉴딜’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정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이런 구분이 무의미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기나긴 논쟁에서 누가 우세해지느냐에 따라 선생님께서 내시는 세금이나 0.1%가 아쉬운 은행 이자, 고용 안정성 등에 작지 않은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 우리에게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래방에도 시가 있어 젊은 시절에 시인이 아니었던 사람 누가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대개는 시를 잊고 산다. 시와 담을 쌓고 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시를 써 보겠다는 의욕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이따금 만난다. 반가워서, 시를 써 본 적이 있는가 물으면 대개는 고개를 가로 젓거나 초등학교, 중학교 정도에서 시를 써 본 적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로 얼버무린다. ‘글은 손으로 쓴다’는 화두를 잊은 것이다. 시를 써 본 적이 까마득하다는 이들에게, 다시 시를 자주 읽는가 묻는다. 답은 아주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을 못 낸다고들 한다. 시간을 내어 시를 읽을 정도면 시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무튼 시는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시를 이야기하고 시를 써 보는 나로서는 이따금 아득한 느낌에 빠지곤 한다. 시가 뭐기에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간 것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시는 우리 주변에 널리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미 우리들 삶이 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는 노래다.” 노래가 있는 곳에는 늘 시가 있다. 다만 우리가 잘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묻히고 말 뿐이다. 시와는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도 노래방에 가서 노래 몇 곡 못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부르는 노래가 유행가인가 팝송인가 가곡인가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노래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잘한 노래, 잘 부른 노래는 그 자체가 시적 자질을 보증하는 단서가 된다. 노래 잘하는 사람, 노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가수(歌手)라 한다. 가수를 예술가라 하고, 시인도 예술가에 든다. 그러니까 시 잘 읊는 사람이나 노래 잘 하는 사람이나 예술가 축에 든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노래를 할 줄 아는 이는 누구나 시를 알고 시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말 그러한가? 모임에서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할 때, 사람들은 노래 내용에 따라 감정을 잘들 조정한다. 기쁨과 슬픔의 영역을 넘나들며 열에 들뜨기도 하고 처연하게 가라앉아서 노래를 하기도 한다. 노래 내용에 내 감정을 전이하고 다시 거기 빠져들어 열창(熱唱)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시를 읊는 것과 흡사하다. 감정이 섞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말을 할 때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노래도 나의 심정을 직접 토로하는 경우도 있고 남의 마음을 내 노래에 담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작곡가나 작사자가 아니면 대부분 남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남의 노래를 부르되 그것이 마치 나의 기쁨과 슬픔인 것처럼 노래한다. 노래에서 나는 남과 심정적으로 하나가 되어 기뻐하고 슬퍼한다. 시인이 쓴 것을 내가 읽으면서 혹은 낭독하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의 정서적 소통의 한 전례(典例)가 된다. 시인의 시를 내가 읽는 데도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나아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하물며 나의 심정을 시로 쓴 경우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쓴 시를 내가 읽어야 절실한 감정이 살아난다든지 체험이 우러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과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남의 승리에 환호를 하기도 하고 남의 슬픔에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공감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공감력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성을 증거하는 중요한 징표이다. 인간의 예술활동은 절실한 자기표현을 통해 공감을 얻어내는 행위이다. 공감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를 자아 가운데 아우르는 행위가 예술행위이다. 자기표현은 남에게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나는 이러이러하게 느낀다, 그런데 당신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가, 내 표현에 동의를 해 달라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이 예술행위다. 예술행위가 관객과 감상자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 사람이라도 독자가 없다면 시인은 시인일 수 없다.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이 독자라도 독자가 있어야 시적 행위가 가능하다. 시는 공감이고 대화이기 때문이다. 노래와 시가 상통한다는 이야기는 기실 진부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노래가 본질적으로 시와 상통한다는 점을 설명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넘어간다. 거듭하건대 시는 노래다. 노래를 할 줄 아는 모든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알고 쓸 수 있다. 한잔 하고 나서 노래방에 다녀 나오면서 시원하다거나 가슴이 좀 트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면, 그게 노래의 힘이다. 그런 힘은 시에도 있다. 노래를 하는 것처럼 시를 읽고, 노랫말을 만들어보는 것처럼 시를 써 보기로 하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게 있다. 1997년에 발표된 노래니까 10년 넘겨 애창되는 노래다. 정지원의 작사로 되어 있고, 안치환이 작곡하고 노래한 곡이다. 우선 가사를 옮겨 놓고 읽어 보기로 한다(여기 옮겨 놓은 가사를 따라 노래를 불러 보거나 노래를 들어 보면서 가사를 음미하기 바란다. 형식을 따로 갖추지 않고 인용하기로 한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 .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 사랑.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 사랑. 이 노래는 리듬이 힘차고 패기가 있어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 좋다. 노래하는 사람으로 상정되는 대상에 대한 의미부여가 당당하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누군들 강물 같은 자기 노래를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다가 이들이야말로 알게 된다고 하면, 노래하는 이들은 자연 그렇게 자신을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이 노래를 하는 동안 당신은 이 노래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셈이다. 그런데 무엇을 아는가, 알게 되는 내용을 뒤에 제시함으로써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대를 하게 하면서 음미하는 중에 노래가 진행된다. 호기심을 부추기기 위한 방안인지 내용이 그렇게 쉽게,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강물을 품고 있어서 강의 위치로 자리바꿈을 한다. 강물은 산과 어울려야 제대로 된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강산’이라는 말이 실감을 하게 된다. 강이 조용히 바라보는 산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낮에는 오히려 침묵으로 ‘내내 어두웠던 산’들인데 저녁이 되면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꾼다. 산 그림자가 질 시간은 아니니까 산의 기억이 혹은 산의 정기가 강으로 스미어 낮에 꾸지 못한 꿈을 꾼다. 산이 강에 잠기어 꿈을 꾼다는 데부터는 시적 발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이 들어간다. 누가 부둥켜안는가? 산과 강이, 아니면 강물 속에서 산들이? 아무튼 부둥켜안는 주체가 누군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는 중에 노래는 멜로디를 따라 흘러간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하는 노래 때문에 이미지의 확실한 논리는 리듬에 밀려 나간다. 그런 풍경은 강 같은 노래를 지닌 사람이라야 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는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실로 화제를 바꾼다. 그 사람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되어 있다.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게 된다는 것인데 맥락이 단순치를 않다. 형식상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이 알게 되는 사실을 나타내는 목적절로 되어 있다. 그 절에 포함된 주어는 ‘사랑’이다. 그런데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는 존재”는 사람으로 짐작이 된다. 헌데 사람이 ‘꽃눈을 닫’을 수는 없다. 더구나 잎을 키우는 것은 나무다. 사랑으로 자라는 나무가 “숲이 되고 산이 되어” 강에 비치고 강물과 교감하는 그런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환희성(歡喜聲) 그것이 메아리일 터이다. 이런 맥락의 뒤에 거듭되는 핵심구절이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기에 앞에서 분석해본 사실들이 충분한 근거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그대’이고 ‘바로 당신’ 이며 ‘바로 우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수사학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렇다. 이 정도로 분석을 해 보아야 뜻을 알 수 있는 가사로 되어 있는 노래를 아무 거침없이 부른다는 점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뜻을 묻기 전에 느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시도 그렇다. 전체적으로 산뜻하다, 명랑하다, 처연(悽然)하다, 비애감(悲哀感)이 든다 등 전체적인 분위기로 접근하고, 그러한 분위기와 느낌이 발생하는 구조는 시를 공부하는 과정에 부과되는 과업이다. 노래를 하듯이 시를 읽으라. 그리하여 그 리듬을 몸에 저장하라. 몸에 저장될 때는 시의 어느 한 부분이나 요소가 아니라 ‘시 전체’가 저장된다. 몸에 저장된 시들이 때를 만나면 저절로 당신의 시가 되어 싹터 나온다. [PAGE BREAK] 짜증스런 일상도 노래가 되나 문학을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이다. 모든 노래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도 고정관념의 일종이다. 시가 아름다운 정서의 표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모든 감흥이 시가 된다. 짜증스런 일상을 노래하고 시로 읊을 수도 있다. 장기하라는 신예가 작사를 하고 작곡을 한 노래 가운데 싸구려 커피가 그러한 예에 속한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반복)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희꾸무리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저거는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하고 찧을 것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 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 볼 때 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면은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 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이하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등을 반복한다. 마치 이상의 소설 날개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무 할 일도 없이 빈둥대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주인공의 짜증스런 일상을 지루하게 늘어놓았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는 비유는 시적 자질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제부(라이트모티프)에 해당하는 구절,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를 아무런 변조 없이 몇 차례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은 일상적 사건의 특징이다. 낡은 표현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식으로 지나가는 일상의 특징이 그러하다. 일상의 구조와 노래 가사의 구성이 유사성을 지니기 때문에 실감을 불러온다. 이러한 지루한 일상의 나열이 노래가 되는 까닭은 타성적 상투성을 깨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과장하지 않는 것이 이 노래의 미덕이다. 시가 별거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출발하라. 좋으면 좋다고, 뭐가 좋은지 생각하면서 반복해서 써 나가라. 분통이 터지면 분통이 터진다고 되풀이해서 말해보고, 가능하다면 노래처럼 흥얼거려 보라. 가락이 생기면 일단 써 놓고 그게 시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뒤에 찬찬히 살펴보아도 늦지 않다. 노래로 시의 형식을 익히자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좀 다른 맥락에서, 시는 일정한 형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형식은 우리와 친숙하고 어떤 것은 너무 익숙해서 그게 시 형식인지를 인식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런 예가 시조(時調)다. 안민영의 시조 가운데 하나를 예로 든다. 바람이 / 눈을 몰아 / 산창에 / 부딪치니 3 / 4 / 3 / 4 찬 기운 / 새어들어 / 자던 매화를 / 침노하니 3 / 4 / 5(3) / 4 아무리 / 얼우려 한들 / 봄뜻이야 / 앗을소냐 3 / 5 / 4 / 4(3) 오른편에 적은 숫자는 음절수이다. 괄호 안의 숫자는 시조의 자수율 원형에 해당한다. 두 군데 변형이 나타난다. 종장의 첫 구절이 3음절로 맞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 시조를 호흡단락을 중심으로 분절하여 빗금으로 표시하면 4음보(四音步) 율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컨대 ‘4음보 3행’으로 쓴 시라면 시조형식의 기본을 갖춘 셈이 된다. 한문의 경우는 한자(漢字) 하나하나가 독립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자 수를 맞추기가 쉽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명사에 조사가 붙고 동사는 활용을 하는 중에 글자가 추가되기 때문에 자수를 정확하게 맞추어 율격을 조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호흡단락을 중심으로 율격을 조성하면 설명이 포괄성을 띤다. 가곡으로 널리 불리는 가고파는 이은상의 연시조를 가사로 삼은 것인데, 그 첫 수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내 고향 / 남쪽 바다 / 그 파란 물 / 눈에 보이네 꿈엔들 / 잊으리요 / 그 잔잔한 / 고향 바다 지금도 /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 가고파 자수는 정확하게 맞지 않지만 음보는 위에 보는 것처럼 분석이 된다. 한국시에서 엄격한 의미의 정형시는 없다. 형식적 유연성이 한국시의 특질인 셈이다. 형식은 필요하되 그것이 가변성이 크다면, 짐짓 해보는 식으로 시의 틀에 맞추어 글을 만들어 보는 데서 시쓰기는 시작된다. 자유시의 시대에 무슨 시조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되지 않는 소리를 할 때 그를 비웃어 ‘시조하고 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우리가 깨버려야 하는 고정관념이다. 사람들이 한 천 년쯤 해온 일은 까닭이 있는 법이다. 시조의 역사를 천년으로 본다면, 그 천년의 존재이유를 탐구할 것이지 시대가 변했으니 버려야 한다고 납들 일이 아니다. 글쓰기 어렵다고 한숨 푸념 뱉다가도 한나절 궁굴려낸 생각들 보석이 되면 보게나, 그대 가슴에 수를 놓는 별무리 이런 정도의 어설픈 시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공연히 쑥스럽고, 그게 무슨 소용이 쓸모가 있는가 망설이는 동안 당신의 시적 재능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서서히 마모된다. 하얗게 바래고 닳아 없어지는 그대의 재능을 새파랗게 싹이 돋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듯이 그렇게 시를 써 보시라. 운율이니 이미지니 상징이니 함축성이니 하는 등의 전문용어는 다 잊어버려도 좋다. 흉내도 방법이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금 당장 컴퓨터를 켜고 글을 써 보라. 형식을 유념하자면 먼저 ‘노래틀’을 만들고 시작하라. 이러한 틀 속에 당신의 시적 상상력이 보석처럼 박히기를 바란다. 모종을 심듯이 철에 맞춰 하나하나 쌓아 가다보면 당신은 어느 사이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낯선 나라의 다른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제 갓 자기가 속한 사회의 문화를 배워가기 시작한 어린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고충은 성인보다 몇 배는 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수많은 외국인이 거주하고, 가르쳐야 할 외국인 자녀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전혀 다른 문화, 다른 언어를 사용해 온 외국인 자녀들이 우리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교육은 필수적이지만, 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아직 부족하다. 특히, 외국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의 고민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이에 외국인 특별학급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교 두 곳을 소개하고 다문화 교육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민족은 다르지만 이 아이들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안산 원일초등학교 많은 산업시설만큼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 1동에 위치한 원일초등학교(교장 권상근)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정한 ‘외국인근로자 자녀 특별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원일초 외국인 특별학급에는 현재 9개국에서 온 14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는데, 특별학급이라고 해서 일과를 완전히 특별학급에서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일반학급에 원적을 둔 채로 수업을 듣다가, 특별학급 수업시간이 되면 교실을 옮겨 수업을 받는다. 수업은 주로 생활과 언어 적응을 위주로 이뤄지며, 숙달 정도에 따라 2개조로 나누어 진행한다. 외국인 근로자 특히, 불법체류자의 경우는 한국어를 쉽게 습득하지 못하고 한국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자녀에게도 그대로 옮겨지기 때문에, 특별학급 운영의 초점은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적응에 맞춰져 있다. 한국어를 모르는 부모, 후행학습에 한계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굳이 한국어 수업을 따로 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한국어 발음이 대단히 정확하다. 하지만 아직 글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어 교육은 필수라고 한다. 보통 한국어를 제대로 알아듣는 데 1년, 숙달해서 사용하는 데 3년 정도가 걸린다. 좀 더 열심히 하면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도 집에 돌아가면 부모들이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아 후행학습이 이루어지질 않는다. 한국의 농촌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해 이룬 일반적인 다문화가정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여기에서 학급운영의 고민이 시작된다. 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특별학급에서 수업을 받으면 언어숙달에 3년의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도 나머지 3년 동안 노력해 다른 학생들과 원활한 수업이 가능하지만 학령이 높은 상태에서 입학하는 경우가 많이 이 또한 여의치가 않은 실정이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준별 개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거나, 입학을 하더라도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학교 진학에 큰 어려움 언어문제 외에도 어려움은 있다. 법규상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6년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데, 학령이 높은 상태에서 입학하는외국인 근로자 자녀의 경우는 6년을 채우기에는 일반학생들과 나이차이가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고, 중학교에 진학한다 해도 중학교에는 아직 외국인 자녀를 수용할 만한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일반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한다. 학교교육에 확 달라지는 아이들 학교에 들어 온 후 태도가 확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손소연 담임교사는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문호가 개방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특히 불법체류자 자녀의 경우 2년 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데, 학교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국내에 체류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인근의 원곡초등학교에 특별학급이 새로 지정되어 좀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일초 권상근 교장은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담당교사 혼자 가르치려니 언어문제 등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원곡초등학교에도 특별학급이 생겼으니 국적별로 서로 나눠 가르치자고 건의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끝으로 권 교장은 “비록 민족은 다르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구성원으로서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될지도 모를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학교에 대한 즐거운 기억으로 교육외교를 실천” -대전자운초등학교 육,해,공 삼군의 교육기관이 모여 있는 자운대 안에 위치한 대전 자운초등학교(교장 정종진)는 외국에서 국내로 유학 온 외국군 자녀 특별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군부대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자운초의 외국인 특별학급은 다른 학교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비록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인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자신의 나라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영관급 이상 군인들의 자녀이고 1~2년 정도 단기체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한국화하는 것이 주목적인 다른 외국인 특별학급과는 교육목적이나 과정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 애정을 갖도록 하는 교육 자운초 정종진 교장은 특별학급의 운영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 ‘교육외교’라는 말로 답한다. 앞으로 자기 나라에서 중요한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어 교육 등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은 실시하지만, 굳이 짧은 시간 내에 한국화를 시키려하기보다는 우리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사물놀이 발표회, 유성 장날 체험, 태권도 교육, 국악수업 등 체험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등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자신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자운초의 외국인 특별학급은 2007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정 교장이 외국인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우리말 교육을 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지난해 처음 만들어졌고 올해는 2개 반으로 확대 편성됐다. 학년 구분 없이 보통 5~9개국 10~20명의 학생으로 운영되며, 현재는 요르단, 터키, 브라질 등 5개국 13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다. 자운초 역시 특별학급에 속하더라도 원적은 일반학급에 두고 오전 시간에만 교실을 옮겨 수업을 받는다. 우리나라에 온 지 얼마 안 되고 영어가 가능한 학생들이 많아 수업은 보통 영어로 진행되는데,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각자의 모국어와 영어, 한국어로 차례로 읽어보는 방식으로 학생의 이해를 돕는다. 외국인 학생을 통해 국제적 시각 키워 특별학급 운영이 외국인 학생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학생들도 외국인 학생과 함께 생활하며 외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 국제적인 시각을 키우는 데 효과가 크다고 한다. 특히 매월 돌아가며 외국인 학생과 국내 학생을 단짝 친구로 정해 서로 편지나 선물을 주고받고 집에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 친구와 1:1 단짝친구 맺기’는 다른 일반 학교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학습기회이다. 또한 터키의 날, 브라질의 날 등 매월 한 차례 다른 나라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 음식과 복장을 경험하는 행사를 개최해 세계의 여러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가르치는 기쁨에 외교를 한다는 보람이 더해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우리의 예절을 가르치는 등 학급운영에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가르친다는 즐거움에 더해 외교도 함께 한다는 보람을 느낀다는 임수진 교사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소록도역사관, 한센병 자료관 지난 호에 이어 소록도를 찾아갑니다.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검시실과 감금실 맞은편에는 자료관이 있습니다. 자료관은 제1관 소록도역사관과 제2관 한센병자료관으로 나뉩니다. 소록도역사관은 병원 현황, 원생의 생활 모습, 영부인 기념대, 사건과 인물,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고 한센병자료관은 한센병 관련 역사적 인물, 치료기구, 문예작품, 도서, 한센병의 과거와 현재, 한센병치료제 등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작지만 소록도와 한센병에 대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소록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곳입니다. 소록도역사관에서는 소록도 사람들이 쓰는 말에 대해 정리해 놓은 패널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소록도에서 생활하는 환우들을 일컬어 ‘문 씨(文氏)’ 또는 ‘한 씨(韓氏)’라고 부르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예전에 한센병 환우들을 비하해 문둥이, 나환자 등으로 부른 것에 대해 자신들을 좀 더 높여 부르는 의미로 문 씨라고 불렀고 이후 한센병의 원인을 발견한 학자의 이름에서 한 씨라는 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답니다. 또, 이 섬에서 ‘모집(募集)’이라는 말은 1930년대 병원 확장 당시 전국에서 수차에 걸쳐 행해졌던 강제수용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모집되어 온 환자들은 대개 젊고 건강해 중증환자의 병간호 또는 병원 내 잡다한 작업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한센병이란 이름은 노르웨이의 세균학자인 한센(1841~1912)에게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는 1873년에 나결절(癩結節)의 세포 내에서 한센균을 발견해 한센병이 유전이나 천형병이 아니라 단순한 전염병임을 밝혀낸 사람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세종대왕 때 최초로 국가적 차원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관리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치료소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제주도에 나질(환센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제주 안무사가 계를 올려 말하기를, 주 및 정의와 대정에 나질이 흥행하고 있습니다. 만일 병을 얻은 사람이 있으면 전염될 것을 두려워해 해변의 사람이 없는 곳에 옮겨 놓습니다. 그 환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위 낭떠러지에 떨어져 모습을 잃으니 진실로 가련하고 불쌍합니다.’ + 중앙공원의 명암 소록도를 찾는 외부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중앙공원일 것입니다. 중앙공원은 소록도 해수욕장과 더불어 외부에 개방되는 대표적 명소입니다. 공원은 소록도갱생원 시절인 1936년 12월 1일에 착공해 3년 4개월의 공사 끝에 1940년 4월 1일에 완공되어 ‘부드러운 동산’이라 불렀답니다. 연 6만여 명의 불구원생이 강제 동원되었는데 산림을 깎아 6000평 규모의 용지를 조성하고 완도, 득량만, 주변 도시에서 암석을 채취해 운반했으며, 관상수는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반입해 식재했다고 합니다. 이후 1971년과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공원용지 확장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공원에는 솔송, 능수매화, 황금편백, 반송, 삼나무, 돈나무, 매화, 나한송과 같이 독특한 형태의 관상수를 비롯해 공덕비나 시비, 방문기념비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 뒤에는 수많은 원생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더욱더 애절한 마음이 듭니다. 공원을 조성할 당시 원장으로 있던 일본인 수호 원장은 악명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4대 원장으로 1933년부터 8년 9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온갖 강압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을 동원해 소록도 내의 각종 공사를 추진한 장본인입니다. 환자들에게 기금을 강제 징수해 1940년 8월 20일 자신의 동상을 세운 후 매월 20일을 ‘보은감사일’로 정해 환자들로 하여금 참배하게 했습니다. 또 연간 140만 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벽돌 공장을 지었으며, 벽돌 제조, 자재 하역, 골재 운반, 도로 개설, 도배 등 힘들고 험한 공사에 원생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이 확대되자 송진을 채취하고 연간 1500장의 토끼가죽과 3만 포의 숯을 제조하는 등 전쟁 군수 물자 생산에도 동원했었다네요. 이렇게 1차, 2차, 3차 확장 사업을 전개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집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소록도를 세계 최고의 나요양시설로 만들겠다는 그는 결국 참다못한 원생 이춘상에 의해 살해되고 맙니다. 이에 반해 소록도에는 원생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하나이 원장 창덕비가 남아 있습니다. 제2대 원장이었던 일본인 하나이 원장은 1921년부터 1929년까지 8년 동안 재직하면서 원생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는데, 일상생활에서 일본식을 강요하던 초대 원장과 달리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이를 상당히 완화하고 본가와의 통신이나 면회,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허용하고 교육의 기회도 넓혀줬다고 합니다. 이러한 원장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원생들 스스로 모금한 돈으로 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광복 후 일제 잔재 청산정책에 의해 비석이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원생들이 몰래 땅에 묻어둔 것을 5 • 16 이후에 발굴해 중앙공원 입구에 다시 세웠다가 1988년 원래의 자혜의원 옆에 옮겨 세워두었습니다. 역대 원장들은 저마다의 천국을 가꾸기 위해 애썼겠지만 결국 그것은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청준의 소설당신들의 천국에서 드러나듯이 천국을 가꾸어 나가려는 데 병원 측과 환우들 간의 갈등은 명약관화한 과제였을 터입니다. ‘우리들의 천국’을 건설한다면서 결국 자신을 영웅화하고 환우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환우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타협이 없는 천국 건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속 조 원장의 오마도 간척사업도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PAGE BREAK] 구라탑+ 소록도를 찾은 사람들 중앙공원에는 소록도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간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적비도 있습니다. 다미안공적비와 세마공적비가 그것입니다. 또, 공원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구라탑(救癩塔)은 1963년 8월 1일에 완공되었는데 미카엘천사가 사탄을 밟고 있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환우들의 자립을 위한 오마도 간척사업을 펼칠 때 국제평화봉사단으로 소록도를 찾아온 국제워크 캠프단이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병원 측과 의논해 세웠다고 합니다.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사방으로 드러나 있어 한센병을 현대의학으로 뿌리 뽑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돋보입니다. 생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록도를 두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그의 방문 이후 소록도의 환우들과 일반인들과의 차별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교황이 방문했던 성당 건너편에는 육영수여사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이미 불구가 되어버린 의지할 곳 없는 고령자들을 위해 양지회 기념회관을 마련해준 영부인을 기리는 비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준공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준공 3개월 전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소록도를 직접 찾은 최초의 영부인은 이희호 여사였습니다. 여사는 2000년 5월에 소록도 방문했는데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자원봉사회관 건립을 약속한 후 2001년 11월 완공했습니다. + 한하운 시비 한하운은 대표적인 한센병 환우였습니다. 그가 쓴 나의 슬픈 半生記에 처음 한센병을 진단받았을 적 상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성대 부속병원을 찾은 한하운은 기타무라 박사에게서 처음으로 한센병 판정을 받게 됩니다. 박사가 신경을 만지고 바늘로 피부를 찌르고 했지만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사는 마치 재판장이 죄수에게 말하듯이 문둥병이라 하면서 소록도로 가서 치료하면 낫는다고 했답니다. 뇌성벽력 같은 선고 앞에 앞이 캄캄해진 시인은 그 판정을 부정하고 부정했다고 하네요. 공원에는 그의 대표작 보리피리 시비가 있습니다. 그가 쓴 또 다른 시에서는 한센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죄인처럼 살아가야 했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 소록도의 학교 소록도는 등록문화재, 즉 근대 보물로 가득한 섬이기도 합니다.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 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 구 소록도갱생원 사무본관 및 강당, 구 소록도갱생원 만령당, 구 소록도갱생원 식량창고,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 구 소록도갱생원 등대, 소록도 구 녹산초등학교 교사, 소록도 구 성실중고등성경학교 교사, 구 소록도갱생원 원장관사가 모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 녹산초등학교는 1935년경 사설 보통학교로 건립된 초등학교로,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설립한 초등학교라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961년 8월 3일 문교부의 사립 인가를 받았고 이후 1987년 2월 더 이상의 입학생이 없어 폐교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녹산중학교는 1946년 9월 17일에 설립해 1967년 5월까지 병원에서 운영하고 1967년 6월부터 성실고등공민학교로 정식인가를 받아 교회에서 운영했습니다. 성실고등성경학교는 1957년 5월 교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소록도교회에서 설립했고 이후 인문고등학교 교육과정으로 전환했으나 80년대 말 더 이상의 입학생이 없어 폐교되었습니다. 이와 별도로 병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병이 전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들을 격리할 영아원과 보육소를 운영했습니다. 환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즉시 영아원으로 보내져 만 3세까지 양육된 후에 보육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지금 소록도에는 학생들이 있는 유일한 학교로 소록도분교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로 아주 작은 학교이지만 섬 이름만큼 예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모 대학에서 건물 벽에 그려 준 재미있는 그림들은 같은 분교에 근무하고 있는 제게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정식으로 개통되었습니다. 다음에 소록도를 찾을 때는 승용차로 갈 것 같군요. 이제 한결 가까워진 그 길로 인해 소록도가 섬사람들과 바깥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편리해진 교통으로 이 섬이 더 이상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천국으로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소록도의 붉은 벽돌 건물들, 중앙공원의 울창한 숲, 해수욕장의 소나무 숲이 자꾸만 저를 유혹하고 있네요. 여름방학이 오면 얼른 떠나고 싶습니다.
정년을 앞둔 시점에서 호적정정을 한 경우 정년 산정의 기준 시점 최근 대법원에서는 공무원이 호적을 정정해 출생일을 변경한 경우 정년도 이에 맞춰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원심에서는 정년퇴직일은 생물학적인 연령이 아니라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원고가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래 약 36년간 신규임용 당시 호적상 생년월일이 기재된 공무원인사기록카드의 내용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정년퇴직일을 약 1년 3개월 앞둔 시점에 이르러 호적상 생년월일을 정정하고 호적정정 후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해 정년의 연장을 요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공무원의 인사사무 처리규칙에는 인사기록 변경 신청기간을 제한하지 않고 있고 원고가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 도 없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지방공무원 인사기록 및 인사사무 처리규칙 [별표 3]이 지방공무원의 정년퇴직 시 구비서류로 가족관계기록사항에관한증명서 중 기본증명서 1통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지방공무원법상 정년은 지방공무원의 정년퇴직 시 구비서류로 요구되는 가족관계기록사항에관한증명서 중 기본증명서에 기재된 실제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며 정년 산정일의 기준을 판시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호적정정을 하더라도 임용 시 기록한 나이를 기준으로 정년을 산정하는 것으로 다뤄 온 기존 개념에 큰 변화를 가져 온 판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판례 : 2008두21300 공무원지위확인) [PAGE BREAK] 사립학교 교장 임기만료 시 신분의 상실 여부 사립학교법 제53조 제2항의 규정에 근거한 학교법인의 정관에 임기가 정해진 사립학교 교장은 그 임면권자에게 임기가 만료된 자를 다시 임명할 의무를 지우거나 그 요건 등에 관해 아무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이상, 그 임기가 만료된 때 재임명을 받아야 하고 재임명을 받지 못하면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교장으로서의 신분관계가 종료되어 당연퇴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사립학교법 제52조, 교육공무원법 제6조와 제7조 등에서 사립학교의 교장과 교장 이외의 교원의 임용자격과 임용절차를 달리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립학교의 교장으로서 그 임기가 만료되면 그 임면권자에게 그 임기가 만료된 자에 대해 교장 이외의 교원으로 임용할 의무를 지우거나 그 요건 등에 관해 아무런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이상 별도의 임용절차가 없다면 임기만료와 동시에 교원으로서의 신분도 확정적으로 상실됩니다. 한편 최근 대전지법에서는 사립학교 교감의 임기제가 사립학교법에 명시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정관을 통해 임기제로 운영하는 것을 위법 • 무효로 단정할 수 없다며 임기만료 후 평교사로 발령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참고판례 : 대법원, 1994. 5. 13 / 대전지법 2008가합669 강임처분무효확인) 재임용거부처분 취소판결 후, 재임용되기까지의 기간이 공무원연금법상 재직기간에 산입되는지 여부 기간을 정해 임용된 국ㆍ공립대학의 교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임용기간의 만료로 교원으로서의 신분관계가 종료됩니다.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원의 재임용이 거부되었다가 그 재임용거부처분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취소되었어도 임용권자는 다시 재임용 심의를 하여 재임용 여부를 결정할 의무를 부담할 뿐, 위와 같은 취소 판결로 인하여 당연히 그 교원이 재임용거부처분 당시로 소급하여 신분관계를 회복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재임용거부처분 취소판결을 거쳐 재임용된 교원이라도 임용기간 만료로 교원으로서의 신분을 상실한 후 재임용되기 전까지의 기간은 공무원연금법 제23조 제1항에 정한 재직기간에 산입할 수 없습니다. (참고판례 : 2009두416 재직기간합산불승인처분취소)
“최초의 사회주의체제 파리코뮌, 티에르의 중앙정부와 싸워 결국 승리하다.” 가정의 이야기일 뿐 파리코뮌은 2개월여 만에 사라졌다. 파리코뮌의 뿌리는 프랑스 • 프로이센전쟁이었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전쟁(1866)에서 승리한 후 통일의 완성을 위해 계획한 그 다음 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이었다. 당연하지만 프랑스는 자국의 동쪽에 통일된 독일이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고, 따라서 오스트리아를 꺾은 후 프로이센이 결성한 북독일연방에 저항한 남독일의 영방들과 유대를 강화하는 등 독일의 통일을 가능한 막으려 했다. 통일과업 시작 때부터 프랑스와의 일전이 불가피함을 인지하고 대비해온 비스마르크에게 프랑스 • 프로이센(보불)전쟁의 직접적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스페인왕위계승 문제였다. 스페인인들이 1868년에 그들의 여왕을 몰아낸 후 왕위가 비어 있었는데, 1870년에 이르러 프로이센 왕가 호엔촐레른가의 레오폴드 공(公)이 국왕 물망에 올랐다. 빌헬름 1세하지만 레오폴드는 스페인 국왕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가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반(反)독일적 정서가 강했던 프랑스에서 반(反)레오폴드 • 반독일 여론이 들끓었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의 친척인 레오폴드가 스페인 왕이 될 경우 프랑스는 호엔촐레른가의 프로이센과 스페인에 포위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레오폴드는 프랑스의 반대가 심하고 유럽의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자 1870년 7월 12일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프로이센 왕가가 스페인 왕위를 영구히 겸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받고 싶어 했다. 독일주재 프랑스대사 빈센트베네디티는 확답을 받기 위해 7월 13일 온천장 엠스에서 휴양 중인 빌헬름 1세를 방문했다. 빌헬름은 베네디티에게 “나는 호엔촐레른가의 수장으로써 동의했을 뿐 프로이센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만약 레오폴드 부자(父子)가 후보수락을 철회할 의향이면 나도 수락할 것이다”고 말했다. 빌헬름 1세는 프랑스 대사와의 회견내용을 몰트케 등과 함께 베를린에 대기하고 있던 비스마르크에게 타전케 했다(엠스전보). 프랑스의 선전포고를 유도하는데 그 전보를 이용하기로 한 비스마르크는 그 다음날 전보의 앞뒤 내용을 잘라 발표했다. 양인 사이에 있었던 정중한 의례가 빠져버린 ‘엠스전보’엔 “산책하는 중에 가로막으며”, “대단히 성가신 태도로…(중략)… 요구하다”, “나는 그런 개입이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며 꽤 완강히 요구를 거절했다”는 등의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 전문은 독일인에게는 프랑스대사가 자국 국왕에게 무례한 짓을 한 것으로, 프랑스인에게는 자국 대사가 모욕당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 독일의 여론도 일변해 반(反)비스마르크세력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프랑스 타도를 외치는 주전론이 기세를 올렸고 프랑스의 경우 국민의 분노가 충천했다.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의 끝 장면이 파리의 들끓은 반(反)독일 정서를 전해준다. 시민들은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하고 외쳤다. 그 1주일 뒤인 1870년 7월 19일에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선전포고했다. 그리하여 독일 통일을 위해 비스마르크가 기획하고 연출한 제2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전쟁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최강의 프로이센군은 노도와 같이 프랑스로 진격했다. 더욱이 전쟁이 일어나자 남독일 영방들이 나폴레옹 3세의 기대와는 달리 프로이센 편에 가담했다. 피는 역시 물보다 진했다. 독일군은 3개 군단으로 나뉘어 프랑스로 진격했다. 2개 군단은 로렌으로 쳐들어가 바제느 휘하의 프랑스군을 메츠에서 포위했다. 메츠에서 포위된 프랑스군을 구원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직접 나섰으나, 프로이센군은 스당에서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그를 포로로 잡았다. 개전 후 한 달 반쯤인 9월 2일의 일이었다. 제3군단도 알자스로 침입해 맥마흔이 지휘한 프랑스군을 괴멸시켰다. 파리가 포위된 상태에서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파리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저항했으나 군사적 열세에 식량까지 떨어져 1871년 1월 28일에 결국 항복했다. 이어 그해 2월 12일에 휴전조약을 비준할 국민의회가 보르도에 설치되고 티에르가 임시행정장관에 임명되어 뒷수습에 나섰다. 그리고 국민의회는 조약을 비준했으나 프랑스인들의 분노와 저항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한편 독일은 오랜 꿈을 성취해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 전체를 아우르는 독일제국을 탄생시켰다. 비스마르크가 통일과업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의 일이었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프랑스의 항복 열흘 전인 1월 18일에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영광을 과시하던 베르사유궁전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하고(제1제국인 중세의 신성로마제국을 계승한 제2제국이었다) 황제로 즉위했다. 통일의 영웅 비스마르크는 후작작위와 함께 제국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때 이미 히틀러의 제3제국을 태동시키고 있었다. 프랑스는 1871년 5월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체결된 평화조약으로 알자스 전체와 로렌의 일부를 독일에 양도하고 배상금(50억 프랑)도 지불했다. 프랑스의 국민적 굴욕감은 크고 지속적인 것이었다. 국경을 사이에 둔 이웃 나라, 오랜 대립의 역사를 기록해온 나라와의 전쟁에 참패한 후에 땅을 빼앗기고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나라의 국민이 느낀 패배감과 복수심, 그리고 굴욕과 분노가 눈에 보일 듯하다. 알퐁스 도테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독일에 병합되어 다음날부터 독일어를 배워야 했던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빌려 알자스 • 로렌 사람들의 참담한 심정을 전해 준다. “어린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위해 수업을 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알자스와 로렌 주(州)에서는 이제부터 독일어 외에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베를린으로부터 시달된 것이에요… 오늘은 프랑스어를 배우는 마지막 수업이 됩니다… ”교실 저쪽 구석에서는 오제영감님이 안경을 끼고 앉아서, 자신의 아베세 독본을 두 손으로 들고 이 조그만 어린애들과 함께 글자 읽기를 하고 있었다…. 별안간 학교의 괘종시계가 열두 시를 치고, 이어서 알젤뤼스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프로이센병사의 나팔소리가 우리 교실의 창 밑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멜 선생님은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교단 위의 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그렇게 크게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여러분’하고 그는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나는… 나는…”그러나 무엇인가가 그의 숨을 막히게 했다. 그는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그는 칠판 쪽으로 돌아서더니 한 조각의 분필을 집어 들고 있는 힘을 기울여 한껏 큰 글씨로 이렇게 쓰는 것이었다.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 그리고는 머리를 벽에 눌러대고 잠시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있더니, 이윽고 말없이 우리에게 신호하는 것이었다.“끝났어… 모두 돌아가거라.” [PAGE BREAK] 하지만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이 끝은 아니었다. 임시정부의 항복 선언과 민의회의의 휴전조약 비준을 수용하지 않으려던 노동자와 시민, 그리고 무장해제 당한 국민군 등은 결국 1871년 3월에 폭동을 일으킨 뒤 ‘파리코뮌’으로 불리는 자치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사회주의자와 일부 급진적 중산층이 주도하고 노동자 • 하층시민 • 군인 • 자영업자 등이 참여한 파리코뮌은 임시정부와 국민의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파리시의 자치권을 주장했다. 이후 리용, 마르세유, 툴루스 등지에서도 코뮌이 출현해 패전 프랑스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871년 3월 1일에 파리에 입성해 주둔하고 있던 프로이센(독일)군은 파리 시민들의 무언의 적의와 저항 가운데 3일에 철수했다. 그로부터 프랑스, 특히 파리는 중앙정부와 파리코뮌의 각축장으로 변해갔다. 3월 18일, 임시정부는 프랑스국군에게 파리에서 농성하던 코뮌 측 군대의 대포를 압수하도록 명령했다. 국군과 시민군 사이에 마찰이 있었으나 그때는 큰 충돌 없이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양측 대표가 파리시청에서 회합한 후 코뮌 측의 중앙위원회가 결성되고 중앙정부는 베르사유로 퇴거했다. 중앙위원회는 즉각 포고문을 내어 인민의회, 곧 코뮌의회의 의원선거가 실시될 것이며 중앙위원회는 그때까지 잠정적으로 활동할 것임을 공지했다. 파리코뮌 의원선거가 며칠 후인 3월 26일에 시행되었다. 노동자 출신이 20석을 차지했고 자영업자와 중산시민 출신이 나머지 70석을 점유했다. 28일에는 20만의 시민이 파리시청 광장에 모인 가운데 코뮌수립 선포식을 거행했으며 29일에는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아래에 군사 • 재정 • 식량 • 노동 • 교환 • 교육 • 외교 • 사법 • 보안의 9인 위원을 두었다. 코뮌은 이어 징병제와 상비군제 폐지, 인민에 의한 국민군 설치, 미지불 집세의 일시 연기, 공무원 급료의 최고액 설정, 종교재산의 국유화, 주인이 방기한 공장의 노동조합 관리, 부채의 지불유예와 이자 폐기, 노동자의 최저생활 보장 등의 정책을 시행하거나 관련 법령을 제정했다. 중앙정부와 파리코뮌의 대결로 프랑스는 일시 무정부적 상태에 빠졌으나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파리에서 철수했던 중앙정부군이 전열을 정비한 후 코뮌 측을 압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자스에서 프로인센군과 싸웠던 멕마흔이 지휘한 정부군은 프로이센군의 지원 아래 5월 21일 파리로 진격해 파리코뮌 세력을 포위했다. 이후 파리 교외에 독일군이 주둔해 있는 상황에서 중앙정부군과 코뮌군은 생사를 건 처절한 살육전을 전개했다. 정부군은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피의 시가전을 통해 한 거리 한 거리를 탈환해 갔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시민이 살상되었다. 코뮌 측도 파리대주교를 포함한 많은 인질을 처형했다. 저명인사를 포함한 3만 명의 시민이 죽은 ‘피의 1주일’ 후 파리코뮌은 붕괴되었다. 파리코뮌은 해체되었으나 그 후유증은 이후 30여 년 동안 프랑스를 괴롭혔다. 정부 측과 파리코뮌 측은 서로 상대의 과잉행위와 비행을 비난했고, 파리시민들 사이의 불화는 프랑스의 정치와 사회에 오랫동안 악영향을 끼쳤다. 사실 프랑스는 위그노전쟁 때의 신 • 구교도의 싸움, 프랑스혁명 때의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의 투쟁,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기밀을 판 혐의로 1894년에 체포된 이래 드레퓌스의 유 • 무죄를 놓고 정계와 학계가 벌인 심각한 대립,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알제리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대립 등 ‘프랑스 • 프랑스전쟁’으로 불리는 국론의 분열과 대립을 자주 겪었지만 파리코뮌 사태도 그 중의 하나였다. 파리코뮌이 실패하지 않았을 경우 프랑스와 서유럽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파리코뮌은 흔히 최초의 사회주의체제로 평가되지만, 파리코뮌이란 사회주의체제의 실험이 성공했을 경우 사회주의는 더 빨리, 그리고 더 확고하게 뿌리를 내려 인류 복지에 이바지했을까? 혹은 46년 후 볼셰비키의 소련공산체제가 한바탕 실험으로 끝났듯이 파리코뮌 또한 결국은 무익한 실험으로 막을 내렸을까?
학교에서 특별한 교육 운동 펼쳐보자 1983년 미국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A Nation at Risk)’라는 보고서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된 이후, 세계 여러 나라도 교육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교육개혁 및 교육정상화를 국가적 수준의 거시적 관점에서 추진하는 이유는 교육이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산업화 시대의 기업 등 ‘집단’보다는 우수한 개인, 즉 ‘인재’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더 진행된 미래 사회에서는 뛰어난 인재 한 사람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 빌 게이츠의 예에서 보듯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을 주요 과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 교육계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적 관심이 교육에 모아지고 있으니, 어쨌거나 여러 가지 지원이 예상되고 좋은 정책이 개발되고 실행될 것이고, 우리 교육이 개혁 • 개선되고 정상화되면 교육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교육개혁정책은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집단들의 조직적인 이의 제기 및 반대에 부딪혀 수년간 논의만 이루어질 뿐 실질적인 교육 개혁 결과를 뚜렷하게 나타내기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 및 교육정상화 방향은 대체로 국가 - 교육청 - 학교 - 교실로 이어지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이를 교실 - 학교 - 교육청 - 국가순으로 아래서부터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본고에서는 학생과 선생님이 만나는 지점인 교실에 주목해 정상적인 교육을 수행하려는 ‘교실승리운동’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학교에서 보다 특별한 교육운동을 펼친다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교실승리인가? 초 • 중등 보통교육 수준에서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교육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느 부분의 질을 높여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지만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곳, 즉 교실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보았다. ‘교실의 질=선생님의 질+학생들의 질’로 이것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교육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현장전문가(선생님)와 미래의 리더(학생)들이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교실 구성원들의 유능감과 에너지가 넘친다면 교육의 질은 당연히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교실승리란, 구성원인 선생님과 학생들이 믿음에 기초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르치고 배우려는 에너지가 충만하고 유능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선생님도 학생도 ‘유능감’을 느껴 보람과 자신감을 느끼는 교실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국가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훨씬 접근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가 전체의 질을 제고하려는 거시적 접근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고 방대해 물꼬 트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교실 교육의 질을 높여 보자고 한다면 누구에게나 교실이라는 분명한 대상이 떠오르고 또한 고려해야 할 요소도 선생님, 학생들, 환경 정도로 단순해 다루기가 용이하다. 둘째, 교육개혁 및 교육 정상화를 현장의 실정에 맞게 추진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현장에 기반을 둔 정책은 다른 정책보다 실현 가능성 및 효과성 면에서 우수할 가능성이 높다. 현장의 문제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은 현장 전문가들이 잘 알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들을 개발해 이들의 자발적인 열정과 노력을 이끌어 낸다면 보다 질 높은 교육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고전적 의미에서의 교육 3주체의 협동적 노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학생, 선생님,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라고 말한다. 과거 산업시대에는 이들 3주체가 같은 방향으로 교육에 참여하는 경향이었다. 하지만 지식정보화 사회가 도래하고 사회적으로 선생님들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결과, 학부모들은 학교교육과 선생님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고 사교육 등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선생님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학부모들이 다른 교육 기회에 관심 가지게 되면서 교실교육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새로운 3주체의 협동적 노력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도 모든 국민들이 교실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교실승리 관점이 유리하다. 넷째, 관심의 초점을 교실에 둠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심어줄 수 있다.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확대된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태어나서부터 학교에 들어와서까지도 교과서 이외에 배워야 할 과목이 너무 많아 ‘과잉 학습’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교과 공부와 기타 학습 중 어느 것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교과서(교육과정)를 여러 교수 학습 자료 중 하나로 덜 중요하게 생각해, 선생님도 학생도 학부모도 교과서를 예전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교실승리운동을 통해 초 • 중등 보통교육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이 교과서임을 공고히 하면 학생들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교육과정 → 교과서)를 가지게 할 수 있다. 목표가 분명하면 이를 성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성공적인 신뢰 되찾기를 위한 전제 조건 일반적으로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달성한 것을 성공, 성취, 승리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교실에서의 활동들이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은가? 교육 계획이 효과적인가, 효과적이지 않은가? 선생님들이 열정이 있는가, 없는가? 학생들이 몰입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학부모들이 교육적으로 참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등 둘 중에서 전자의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승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선 교실승리운동의 전제조건부터 살펴보자. 조건 1 선생님, 학생, 학부모 모두의 목표는 학생들이 교육과정, 즉 ‘교과서’를 행간의 뜻까지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보통교육에서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교과서)이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바이블과 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교실 구성원 모두가 이해하는 것이 제일의 조건이다. 이루어야 할 목표가 분명하면 달성할 가능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조건 2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학생과 교실 밖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선생님들이 심리적 ‘보약’을 먹은 것과 같이 열정과 사명감이 높아질 것이다. 조건 3 모든 어른들(선생님, 학부모, 지역사회)은 학생들이 배우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어진 교육과정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때 학생들은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조건 4 학교행정가, 지역사회, 교육청, 국가 등 교실 밖의 구성원 모두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수 • 학습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가능한 지원을 해야 한다. 선생님을 돕고 학생을 도울 일이 무엇인지 각자의 처지에서 고려해 보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어떤 모습이 교실이 승리한 상태일까? 앞에서 우리는 교실승리운동의 전제조건을 숙지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과연 ‘교실승리’ 상태일까? 교실승리 1 교실 구성원 모두는 교과서가 우리 학생들이 배워야 할 목표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선생님, 학생, 학부모의 협동적 노력을 통해 이를 충분히 달성한다. 뒤처지는 학생은 동료 학생으로부터 배우기, 선생님 도움받기, 부모님 도움받기로 이를 보충할 기회를 갖는다. 또한 교과서를 충분히 익힌 학생들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심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교실승리 2 선생님은 학생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선생님은 ‘선행 학습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는 그들이 교육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스스로 배우는 방법은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구체적으로는 교과서 범위에서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예습과 복습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다음 수업에 활용한다.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을 들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 아침 자습 시간은 학생들 자신이 계획한 내용을 실천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수업 시작 전에는 결석한 학생이 없는지 확인하고, 아프거나 집안에 걱정이 있어 학습할 준비가 덜 된 학생이 있는지를 살펴 학습 분위기를 조성한 후 수업을 시작한다. 수업 중에는 예습한 것을 활용해 진행한다. 수업이 끝나기 직전에는 하루 학습 중 성공적인 사례들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격려한 후 귀가하도록 한다. 선생님과 학생 간 신뢰 관계가 형성되도록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배려한다면 선생님들은 진정한 보람을 맛보게 될 것이다. 교실승리 3 학생들은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을 들이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교과서를 배우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고, 이를 예습 • 복습 및 아침 자습 시간을 통하여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힌다. 과목에 따라서는 교과서 내용을 암송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현재 기초 • 기본학습이 되지 않은 학생이 많은 것은 교과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는 교실을 만드는 것도 교실승리의 상태에 속한다. 학생들 간에 잘하는 과목은 가르치고, 자신 없는 과목은 배우는 열린 마음이 있는 교실이 바로 승리한 교실이다. 또한 스스로 공부하면서 ‘아하’를 자주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는 교실, 이곳이 승리한 교실이다. 교실승리 4 선생님을 섬기는 풍토가 조성된 상태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섬기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선생님을 섬기는 마음이 있는 순간 선생님의 말씀 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하려고 하고, 표정 하나에서도 배우려 하기 때문에 ‘선생님 섬기기 풍토’는 배움의 시작점이 된다. 학부모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선생님이 매우 귀중한 사람이고, 선생님의 모든 것을 따라 배워야 잘 배울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지도해야 한다. 또한 부모가 선생님을 존중하는 본보이기를 하면 자녀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선생님을 섬기는 풍토 조성에는 예산이 들지 않는다. 단지 심리적인 응원이면 충분하다. 교실승리 5 매일 매시간 새로운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하는 것만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집중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제대로 학교수업을 받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추가적인 학습은 낭비가 되거나 과잉학습이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교실승리의 조건과 상태에 기초해 수립한 2009학년도 본교의 교실승리 전략과 시스템을 간략히 소개한다. 사례. 서울 연가초등학교의 교실승리 전략 전략 1 ‘교과서를 꿰뚫어라’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제일 중요한 것이 교과서인 것을 학생, 선생님, 학부모 모두가 동의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연수와 가정통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했다. •교과서를 행간의 뜻까지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인 학습지도 전략을 마련했다. 선생님의 교실 내 활동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침 활동, 수업시작 전 활동, 수업 중 활동, 수업 종료 전 활동 과제 제시 방법 및 평가 결과 통지 등에서 선생님들이 자율과 창의를 발휘해 ‘나만의 교수 방법’을 찾도록, 그 예를 교육과정에 제시했다. 필수 활동은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들이기 3단계로서 교과서 내에서 예습, 복습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활용한 수업을 하도록 했고, 아침 자습 시간엔 선생님이 함께하며, 학생들이 제출한 계획서를 자기주도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고 선생님은 이를 확인하도록 했다. •선생님들 간의 다양한 교수 방법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평가회를 연 2회에서 4회로 확대하고 예산도 배정했다. 1학기 중간과 2학기 중간에 각 반에서 특색 있게 운영하고 있는 ‘나만의 교수방법’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과서를 확실히 익히도록 돕기 위해 예습, 복습 및 오답 공책을 학교가 제작해 배부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예습하고 복습하면서 ‘나만의 학습 방법’을 찾도록 했으며, 아침 자습은 선생님의 부담을 덜고 학생들의 자주적인 학습 습관을 익힐 수 있도록 계획 및 실행은 학생이 하고 선생님은 확인만 하도록 시스템화했다. •교실승리를 위한 예산을 별도로 책정해 담임선생님이 상을 주고, 특색 있는 교실을 운영하도록 했으며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신장된 학생과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학부모를 학교장이 표창할 수 있도록 했다. •각 반 2명씩 150명으로 구성된 교실승리 학부모회를 조직해 스승 존경 및 섬기기 캠페인을 매월 1회 실시하고 학년 • 학급 수업도우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서 교실을 지원하고 선생님 섬기기 운동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선생님을 존경하고 섬기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사는 교실수업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며 자주 ‘아하~’를 경험하여 공부하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학부모들이 교과 관련 사교육은 줄이고 자녀가 교과서를 꿰뚫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칭찬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인 학부모 연수를 실시하고 가정 통신 등을 통해 소통 할 수 있도록 했다. 전략 2 ‘한마음 한뜻으로’ : 기준(원칙)이 있는 학교생활 ‘질풍노도’로 집약되는 청소년기의 특징이 초등학교 6학년 단계로 내려왔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는 생활지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기존 선생님들이 6학년 담임을 기피해 새로 전입한 선생님들이 담임을 맡다 보니 생활지도에 더욱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다. 이에 본교에서는 선생님들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 전략과 제도적 뒷받침으로 이를 최적화 하고자 했다. •생활지도가 어려운 학년이지만 적극적인 설득으로 2008년 6학년 담임들과 기존 선생님 다수가 6학년 담임을 다시 지원했고, 새로 전입한 선생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기존 선생님들이 많으니 훨씬 안정적이다. •선생님들, 전교 어린이들,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 연가어린이 생활규칙을 만들었고 등교에서 하교까지 지킬 수칙을 만들어 코팅하여 전교생 가정에 배부, 학생 생활지도의 기준으로 활동하도록 했다. 느슨해진 학교의 생활지도 못지않게 가정에서의 훈육이 약화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5~6학년 수준만 되면 부모님에게 저항하고 심지어는 담임선생님에게도 반항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학교에서 마련한 언행 기준과 등교에서 하교까지의 수칙을 마련한 것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를 근거로 학급 규칙과 가정 규칙을 만들어 학생 지도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규칙 책받침 제작 예산을 편성해 운영했다. •학교 규칙의 두 가지 특징은 자기 일을 스스로 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규칙을 어기면 ‘생각마당’을 쓰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봄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알게 하며, 학부모와 연계해서 가정에서 지도할 수 있도록 학부모에게 통지하고 선생님이 보관하도록 했다. 실질적인 지도를 학부모가 하게 함으로써 선생님과 학생 간 불미한 ‘체벌’이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했다. 공교육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사실에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공교육이 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고 지금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수준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여러 정권이 교육을 국가 운영의 주요 과제로 삼고 교육 개혁을 시도했지만 아직도 공교육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데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절한 공교육 제자리 찾기 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공교육 제자리 찾기 방안의 한 가지 방법으로 교실승리를 제시했다. 교실승리는 모든 국민이 공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만큼 관심의 초점을 교실에 모으자는 것이다. 선생님, 학생, 학부모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만큼 공교육이 발전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교실승리운동이 아래로부터의 공교육 제자리 찾기 운동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학교가 함께 실행해 보기를 희망한다. 교실이 승리하면 학교가 승리하고, 학교가 승리하면 교육청 및 지역사회가 승리하고, 그다음은 국가 공교육이 승리할 것이다. 공교육이 제자리를 찾는데 ‘교실승리운동’이 한몫을 했으면 한다. 교실승리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원하는 분들은 연락해 주시기 바란다.
교과부 소관 2009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이 최종 44조 1296억원(학자금신용대출기금 제외)으로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기침체로 인한 내국세 세수 결손을 감안해 당초 예산 45조 2836억원에 비해 1조 1377억원이 순감한 44조 1460억원 규모 추경안이 예결위를 거치며 다시 164억원이 감액됐기 때문이다. 예결위는 차상위 저소득층 무상장학금 710억원 증액 등 6개 사업에서 959억원을 증액했다. 노후학교 리모델링 지원사업에 150억원을 증액하고 학습보조 인턴교사 채용사업에도 20억원을 얹어줬다. 대신 당초 2000억원이 계상된 교과교실제 지원사업은 500억원이나 삭감됐다. 또 군단위 소규모학교 통폐합 예산도 120억원이 삭감되는 등 5개 사업에서 모두 1123억원을 가위질했다. 미취업대졸생 조교 등 학내채용 사업 323억원, 평생학습 중심대학 육성 81억원 등 8개 사업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초중등 교육 단계의 취학 대상 탈북 학생들이 1천600여명으로 추산되지만 이달 현재 전국 435개 학교에 1천143명이 재학중인 것으로 집계돼 취학률이 7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만길 한국교육개발원 통일교육연구실장은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북한이탈학생의 증가와 교육의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통일교육포럼에서 이같이 밝히고 "나머지 500여명은 일부 대안교육기관에 취학한 학생을 제외하면 학교교육 밖에서 방황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교육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 실장은 또 재학중인 학생들이라도 학교교육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한 탈락자가 지난 2007년 4월 기준으로 초등학생 3.5%, 중학생 12.9%, 고등학생 28.1%로 나타나 학년이 올라 갈수록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북 학생들의 학습부진과 부적응에 대해 한 실장은 "학습 공백기가 길어 기초학력이 부족한 데 원인이 있다"며 "북한에서 지난 10여년간 경제침체와 식량위기 등으로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탈북이후에도 중국 등 제3국에서 난민생활로 인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이러한 북한이탈 학생에 대한 개별지도가 이뤄지지 않는 등 이들을 교육할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보통 동급생보다 나이가 많은 탈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력에 따라 학년이동이 자유로운 '무학년제'를 운영하거나 정규학교에 적을 두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대안학교에 위탁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탈북 학생들의 부모가 북한에선 자녀교육을 전적으로 학교에 맡겼던 경험 때문에 남한에서 학부모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 이들에 대한 학부모 교육을 실시할 필요도 제기하고 지역사회의 사회복지기관이 학부모와 학교를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탈북학생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은 특히 "대량아사 사태가 발생한 90년대 출생 학생들의 경우, 성장기의 영양실조가 뇌에도 영향을 미쳐 학습지진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식량난으로 육체적, 정신적 타격을 입은 북한 내부의 청소년에 대한 지원과 교육적 대안을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능검사나 다면적 인성검사(MMPI) 등이 모두 남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북한이탈 청소년에 맞는 검사지가 없어 객관적 실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사례발표에서 탈북 학생인 건국대 1학년 신호남씨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학습부진에 시달리는 나에 대해 학교측에선 영어회화 무료 수강외엔 특별한 조치를 해주지 않았고 북한이탈주민 특별전형으로 진학지도를 해주는 선생님도 없었으나 대안학교의 자원봉사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최영실 NK지식인연대 교육부장은 "한국에 온 지 벌써 9년인데 탈북자 학부모로서 북한에서 사교육을 몰랐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아들을 학원에 보내지 못한 게 많이 후회된다"며 탈북 학부모 대상의 교육 필요성에 공감했다.
-티끌모아 태산 따뜻한 마음을 품는 심성 심어줘- 인천부평서초등학교(교장 곽영길)에서는 굿네이버스에서 주관하는 “행복한 나눔 가족 100원의 기적” 동전모으기 행사에 2009년 4월 1일부터 4월 28일까지 전교생 1,000여명의 학생들은 아끼고 아껴서 모은 자신의 저금통을 고사리 같은 정성어린 손에 들고 와서 개인별로 사랑의 모금함에 사랑을 가득 담아 넣었다. 6학년 신하은 어린이는 “모금함에 십원짜리, 백원짜리 동전들만 있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아요. 100원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과자 먹을 돈을 아껴서 모았거든요.”라며 자신의 저금통을 기부하면서 뿌듯하게 말했다. 5학년 조윤경 어린이도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기회를 통해서 세계로 저의 눈을 넓힐 수 있었고,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앞으로도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 행사를 밑거름으로 하여 부평서초등학교 학생들이 타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누는 기쁨을 느끼며, 따뜻한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는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최근 ▲학원 교습시간 제한 ▲방과후 학교 민간위탁운영 ▲내신 축소 및 외고 수학, 과학 가중치 폐지 등을 담은 사교육비 경감대책 추진을 시사해 논란이다. 자율형사립고와 국제중 설립, 학업성취도 평가 공개 등 수월성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교육 수요를 잡아야 한다는 현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장 한나라당과 교과부가 미래기획위의 ‘오버’를 지적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데다, 되레 공교육만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만큼 보다 교육현장을 고려한 보완대책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사교육 경감 대책이 조만간 나올 것 같은데요. 김학일=심야학원 교습금지 등 강력한 방안과 함께 공교육을 활성화해 사교육을 잡겠다는 의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방과후 학교 외에는 내세울 만한 공교육 활성화 방안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또 학교 교육활동의 90%가 교육과정 운영인데 이에 대한 과감한 자율화 방안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그렇고요. 노종희=학원 교습시간 제한 등은 학생들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대책이 사교육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규제나 조치 위주의 사교육 대책은 반짝 효과를 거둘 수는 있으나 이제껏 그랬듯이 또 다른 부작용을 생산해 낼 개연성이 높으니까요. 김선이=사교육에 경감 대책은 지난 30년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나왔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사교육 경감 방안 역시 실효성 면에서 매우 회의적이고요, 부작용도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명준=그래서 사교육비는 날로 팽창해 지난해 20조 9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IMF 때도 사교육비는 매년 상승했을 정돕니다. 특히 올해는 영어교육의 활성화로 11.8%나 증가했다는 자료도 있어요. 결국 사교육을 잠재우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교과부만이 아니라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해결에 나서야 하는데 당정청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으니 실효성이 우려됩니다. -학원 교습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는 시행령 제정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이명준=무엇보다 법령 제정이 우선돼야 할 겁니다. 2007년 서울 강동교육청은 밤 10시까지로 규정된 학원교습시간을 지키지 않았다며 모 학원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학원 대표가 교습시간을 제한하는 조례가 법률의 위임이 없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는데요, 그 결과 재판부는 위임규정 미비로 교육청의 명령을 무효라고 판시한 적이 있습니다. 치밀한 법령개정과 단속방안을 검토해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 할 것입니다. 김학일=동감입니다. 학생들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이는 진작 이뤄졌어야 합니다. 다만 실효성을 어떻게 담보하느냐는 과제입니다. 법적규제나 단속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원에 대한 제재로 풍선 효과는 있겠지만 미미할 것으로 봅니다. 오히려 현재 지방에서는 잘 정착된 일반계 고교의 야간 자율학습이 앞으로 일부 학원업자나 학부모 단체 등의 중상모략 등으로 파행을 겪을까 우려됩니다. 노종희=학원 교습시간 제한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감독과 단속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이것이 현재의 행정력으로 실현가능할지 우려됩니다. 교습시간을 제한하면 음성과외와 같은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인데, 이는 분명 과외비의 고액화를 초래하게 것이기도 하고요. 김선이=저 역시 학원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규제하는 방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의 행정력으로 단속이 실질적으로 이뤄질지도 미지수고요. 오히려 음성적인 사교육으로 고액과외가 성행해 부유층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염려 섞인 목소리가 많습니다. -학원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방과후 학교 강화방안도 나왔습니다. 외부 학원의 우수한 프로그램이나 강사를 활용하겠다는 건데요. 노종희=방과 후 학교를 활성화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만 학원 프로그램과 강사를 활용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합니다. 학교 내 교육 프로그램은 역시 교사들의 손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을 잡무로부터 해방시키고 적정한 보상책이 제공돼야 할 것입니다. 이명준=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젠 학교에 담당부장이 임명될 만큼 방과 후 학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학원 강사를 활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학교를 학원화하는 우를 범하기 보다는 교육의 장(場)인 학교가 중심이 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각종 잡무에서 벗어나 수업방법 개선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방과 후 학교에서 전문강사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학일=앞서 다 말씀들을 해 주셨는데요, 정리하자면 방과 후 학교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부장제도의 신설과 인력풀의 확보, 그리고 소요되는 재정지원입니다. 전문 학원 업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만 학교장 관리 하에 프로그램이나 인력풀을 활용하는 시스템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특히 예․체능 영역의 경우, 초․중학교별로 분화해 특성화된 내용을 집중 지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이 이동하게 하면 매우 효과적일 것입니다. 다만 이로 인한 학교관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요청될 것입니다. 김선이=외부 학원 강사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설익은 방안으로 보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경쟁시키겠다는 취지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스타 강사들의 수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고나 있을까요? 그들의 수업은 혼자의 힘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그들은 국내 유명 대학의 석박사 출신 조교들을 채용해 그들의 강의를 연구하고 분석해 매일 새롭게 강의 내용을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학교는 어떤가요. 교사들은 일 년에 수천 건이 넘는 잡무에 눈 코 뜰 새 없고, 말썽꾸러기 지도와 학부모 상담으로 수업에만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이런 수업환경 개선 없이 무조건 외부 학원 강사를 영입하면 학교 수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보긴 했는지 의문입니다. 수업개선 로드맵부터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대입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낮추고, 상대평가 방식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도 얘기되고 있습니다. 외고 입시에서 수학, 과학 가중치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 중이고요. 이명준=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내신 강화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내신 반영비율을 낮추면 낮출수록 학교교육은 무너지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 점에서 내신 반영비율은 유지돼야 합니다. 또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대평가 방식을 또다시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도 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아울러 특목고 입시는 공교육의 기본인 일반계고교가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같은 맥락에서 적용돼야 합니다. 수학, 과학 가중치는 외고 입시에서 폐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김학일=내신 축소 등은 수능과 논술의 영향력 증대를 의미하고 이는 사교육을 증대시킬 것입니다. 그보다는 정기고사 축소와 수행평가 활성화가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목고에 대해서는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운영을 하도록 철저히 지도해야 합니다. 수학 및 과학 가중치를 없애고, 일부 시도처럼 필기시험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가하면, 전문교과 이수에 대한 철저한 확인을 통해 이를 어길 시는 인원감축, 재정지원 중단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노종희=우리의 사교육 문제는 대입제도를 요리 저리 뜯어고쳐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때는 언제고, 이제는 무슨 논리로 또 낮춘다는 말입니까. 대입제도의 개편은 하급학교 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교육 대책 차원이 아니라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사교육 문제해결에 있어서 대입제도는 결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김선이=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며 내신 반영 비율을 낮추겠다니 아이러니합니다. 외고입시에서 수학, 과학 가중치를 없애는 방안도 조금 엉뚱하고요. 실제 외고 입시에서 수학 가중치가 2점 정도인데 그것으로 당락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사교육 경감을 위해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요. 이명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의 원인을 학벌주의 대학서열체제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교육 감소를 위해서는 능력주의 구현과 대학서열 완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고요. 하지만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는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국민의 인식과 정부의 교육정책 사이에 소통부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장기적으로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공교육 강화 정책, 입시제도 개편, 학벌위주 사회구조 개선 등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학일=최소한 학교에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권을 주되 과목 최소화와 학생, 학부모의 수요에 맞춘 교육과정 운영에 나서야 합니다. 교사들은 수업전문성 제고에 뼈를 깎는 노력부터 해야 하고요. 초․중학교의 경우 단일학교 중심의 방과후학교가 아닌 권역별 또는 지역별 거점학교를 정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우수교사(강사)가 참여하도록 하고, 참여 교사에 대한 인사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이 강구돼야 합니다. 또 입시와 관련해서는 영어인증제의 빠른 도입과 인문사회과정 및 예․체능의 수리영역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대신에 대학 학부 및 학과 특성에 맞는 내신 반영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목고 가중치 부여와 필기고사 폐지도 실시하고요. 이렇게만 해도 사교육비의 70%는 줄 것이라고 봅니다. 노종희=단방약을 찾으려는 조급증을 버리고, 문제가 어렵고 복잡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back to basics) 중장기적 혜안이 필요합니다. 사교육 문제의 해법이 특별히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현장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 공교육을 살려 내는 교육개혁을 이루어내면 사교육 광풍은 자연히 진정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론화를 통해 종합적인 ‘공교육 회생 프로젝트’를 국가적 의제(national agenda)로 설정하고,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멀고 험한 개혁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김선이=답은 공교육 정상화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사교육을 무조건 배척하고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예체능을 포함해 개인 능력차로 인해 생기는 보완재로서의 사교육 수요는 인정하되, 무너진 공교육의 원인을 찾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참석자 노종희 한양대 교수 김학일 남양주 와부고 교장 이명준 서울 서초고 교사 김선이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사무총장
2010년까지 자율학교를 2500개로 늘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수학, 과학, 외국어 등 특정분야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교사자격을 부여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교과부는 1일 단위학교 자율운영체제 확립을 위한 3단계 학교자율화 추진방안(시안)을 발표했다. 1단계(교과부 지침 정비), 2단계(장관 권한 교육감 이양)를 거쳐 3단계는 “단위 학교의 인사․재정․교육과정 자율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교과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핵심과제도 크게 ▲자율학교 확대 ▲교육과정 자율화 ▲교원인사 자율화 ▲현장 지원 행정체제 구축으로 설정됐다. 먼저 기존 자율학교 외에 추가로 △학력향상중점학교 △사교육 없는 학교 △교육과정혁신학교 △전원학교 등이 자율학교로 확대 지정된다. 이를 통해 현재 282개(전체 초중고의 2.6%)인 자율학교를 내년까지 25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들 학교에는 추가적인 재정지원과 정원의 50%까지 교사를 초빙할 수 있으며, 정원 외 기간제 교사도 채용할 수 있게 된다. 또 국민공통기본 교과별 연간 수업시수를 초중학교는 20%, 고교는 35%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이 허용된다. 다만 추가 지정되는 자율학교는 학생 선발 자율권(전국 단위 선발)이 폐지돼 일반학교와 동일하게 조정된다. 나머지 80% 일반학교에 대해서도 인사, 교육과정 자율권이 확대된다. 모든 학교장에게 정원의 20%까지 교사초빙권을 부여하고, 시도교육청 지침상의 전입요청권, 전보유예요청권을 법령상 학교장 권한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반일․격일제 근무형태의 정원 외 기간제 교원의 임용을 활성화하고, 최대 14호봉으로 제한한 교육청 지침도 개정하기로 했다. 교사 신규 채용 시, 근무예정 학교 또는 지역을 미리 정해 공개전형을 실시하고, 전문계와 예체능 계열 특성화고나 특목고 등에는 외부전문가를 단기 연수를 통해 교사 자격을 부여해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공통기본교과별로 연간 수업시수의 20%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이 허용되는 것도 의미가 크다. 또 교과별로 학년, 학기단위 집중 이수를 확대하고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 운영할 수도 있게 된다. 한편 재정 부분에서는 세부사업별로 배분하는 사업비를 학교교육비로 통합 배분해, 2010년까지 목적사업비 비중을 40% 이내로 할 방침이다. 교과부는 시안에 대한 권역별 토론회(1일 부산, 7일 서울, 8일 대전, 12일 광주)를 거쳐 5월말 최종 자율화방안을 확정․발표하기로 했다. 이에 교총은 “단위 학교의 자율체감도를 높이는 방안”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교과별 수업시수 20% 증감허용에 대해서는 “일부 교과 교원의 수업이 가중되고, 일부 학교의 경우 주지 교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20% 교사 초빙권에 대해서도 “우수 교사가 특정 지역, 학교로 몰릴 경우, 형평성 문제와 교사간 위화감 조성의 부작용이 있다”며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부 전문가 교사 자격 부여는 교원양성과정에 없는 특정분야에 한해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끼르, 끼르, 끼르 ~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소리가 잠자는 나의 영혼을 깨운다. 아! 이 소리는? 마치 까마득한 우주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듯 다가오는 경쾌한 음색의 주인공은 분명 매가 틀림없다. 황조롱이 매다. 녀석이 나를 찾아 온 거야! 놀라움과 반가움에 반사적으로 눈을 뜬다. 방안은 고요하고 날은 훤하게 밝아 늦잠을 잦음을 알 수 있다. 머뭇거릴 수없는 그 순간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킨다. 녀석을 빨리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녀석의 비상하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호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 그리고 베란다를 향해 잰걸음으로 다가가 사방을 훑어본다. 예상은 하였지만 역시나 매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반대편 창문가로 달려가 아예 머리를 내어 밀고 이리 저리 살펴보지만 녀석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공허한 마음에 밖을 바라보니 아침 햇살이 눈부신 창밖엔 성큼 가을이 다가와 있었다. 녀석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이내 허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한다. 부엌에는 나의 이러한 괴이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사람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요일의 느지막한 아침상을 차리고 있다. 황조롱이 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몇 년 전 내가 이곳 녹번동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부터였다. 이곳은 수려한 북한산자락이 가지처럼 길게 뻗어 내려와 머문 언덕위에 아파트가 우뚝 서 있고, 도로하나 건너 백련산이 코 닿을 듯 맞닿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아파트 고층에 사는 사람일수록 뒤로는 병풍같은 북한산의 그 위용을 느끼면서, 앞으로는 백련산을 마치 자기 집 정원처럼 바라다보며 살고 있는 것이 어쩌면 행운이라면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인연 덕분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계절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다. 봄의 전령 진달래, 가을 억새, 눈, 비 오는 날의 서정과 해질 녘의 낙조를 거실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도심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일이였던가? 때로는 아파트 창문 가까이 무리지어 지나가는 철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행운도 가끔 맛볼 때가 있다. 늦은 여름 날 오후에는 아파트 키만큼 높이 뜬 고추잠자리가 우리 집 거실을 훔쳐보듯 날고, 이른 아침 한 쌍의 왜가리는 어디론가 분주히 날아간다. 그런데 오늘, 비록 조우는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황조롱이매도 이곳을 지나가며 그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 이사 와서 숲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예전엔 소홀이 지나쳤던 자연현상들이 요모조모 소중히 다가온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난 듯 가슴 뿌듯하다. 그래서 자연과 교감하려 더욱 산을 자주 찾는다. 산은 가지만 본격적인 등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로 앞산과 뒷산을 산보하듯 그냥 오르는 편이다. 그곳에 가면 요정과도 같은 순수한 영혼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 정상부근에서 황조롱이 매를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나를 더욱 흥분시킨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면 늘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련산 산중턱쯤에 다 닿으면 정상으로 향하는 주등산로가 있고 그 옆으로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작은 숲속 길이 있는데, 나는 곧장 정상으로 가는 길보다 숲속의 작은 오솔길을 돌아 정상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나있습니다 이곳에오면 프로스트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른다. 두 갈래 길에 서서 숲속으로 나있는 작은 길을 보면 왠지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기운이 감돈다. 황토색 짙은 길 입구 모퉁이에는 철지난 낙엽들이 흩어져 쌓여있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잎이 무성한 갈참나무숲길을 지나면 야생초가 흐드러지게 자라는 초원지대가 넓게 펼쳐진다. 그 곳엔 흰 꽃, 노랑, 붉은 꽃들로 인하여 갑자기 사방이 환하게 밝아진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갖가지 피는 꽃이 다르고, 하나같이 청순해 보이는 야생화의 서식지에서 나는 멍하니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저만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가 바람에 흩날리며 파르르 소리가 난다. 뒤이어 약초 향 짙은 바위틈 사이로 난 길을 돌아 드디어 정상에 도달하면, 어느새 시원한 산바람이 다가와 나그네 땀을 씻어 주고, 저만큼 높이 떠 자유로운 비상의 나래를 펴는 황조롱이를 만날 수 있는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이곳에 오면 마음의 평화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이 곳 백련산 정상에서 황조롱이 매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새해 벽두였었다. 모처럼 눈이 탐스럽게 내려 온 산야가 은백색의 낯선 세상으로 변하고, 해도 뉘 엇 뉘 엇 서산으로 몸을 감출 무렵, 고즈넉한 저녁 숲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 때 산 정상에 있는 너른 바위 위를 유유히 선회하는 녀석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아! 그래 매가 틀림없어 그때 회색빛 창공에 높이 떠 큰 원을 그리듯 비행하는 녀석은 이곳이 바로 자신의 영역임을 말하려는 듯 당당하게 보였다. 매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산을 오를 때부터 무언가 예감이 좋았던 것이 바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이 곳 백련산은 매들의 오랜 고향이자 그들의 서식처였었다. 아마도 매는 인간들이 살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 북한산과 백련산을 무대로 그 종을 연연히 이어오며, 수많은 시간 속에서 순탄치 않은 생을 살아 왔을 것이다. 사람들도 매들이 사는 이곳을 매바위골이라 부르며 매를 신성시하였던 것도 당연한 처사였으며, 왕실에서도 매를 이용한 사냥터로 이곳을 역대 왕들이 즐겨 찾았다고 하니 이 아니 역사적 숨결이 배어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 후 매바위골의 전설은 매가 없는 쓸쓸한 기억 속에서 개발의 붐을 타고 점점 더 희미하게 사라져만 갔다. 오늘날 행정구역상 응암동이라는 명맥만 유지한 채 말이다. 그런데 드디어 매가 돌아온 것이다! 귀소본능으로, 영특하게도 그들 조상들의 텃밭인 이 곳, 응암골을 잘도 찾아온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녀석을 볼 수 있는 기대감으로 매가 사는 이 산을 자주 찾게 되었고, 그 뒤에도 이곳에서 외로이 먹잇감을 찾던 녀석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여름이 오고 숲에는 먹잇감이 많아지자 매들의 활동이 더욱 분주하였다. 어떤 때는 두세 마리에서 많게는 대, 여섯 마리 까지도 떼를 지어 먹이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아마도 새끼 매를 데리고 먹이 잡는 훈련도 할 겸, 가족나들이를 하였는가보다. 끼르, 끼르 하면서 그들만의 신호음을 보내면서 말이다. 새들의 소리도 각양각색이다. 까치소리 다르고, 뜸부기, 두견새소리 다르듯이, 매의 소리는 더욱 특징이 있다. 끼르, 끼르, 하는 그 소리가 맹금류의 왕자답게 단호하고 힘차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 소리는 숲속으로 빠르게 전달되어 숲에 사는 먹잇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 금방 머릿속에 그려지고도 남는다. 나는 솔직히 매의 소리를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 해 전 북한산을 등반하다 문수봉 부근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곁에 있던 등산객중 한 사람이 때마침 암벽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새끼 매의 울음소리를 듣고서는 나에게 매 소리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 주었었다. 그때의 새끼 매 소리도 지금처럼 끼르, 끼르 하였던 거 같다. 난 그때, 매의 소리를 알게 해준 그 사람을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저 분은 어찌하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매의 소리를 알아듣는가? 그래서 나도 그 소리를 기억하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아 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차츰 잊혀져갔다. 그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 되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매가 내 곁으로 다가왔고, 그날 이후 나는 녀석을 만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는 것이다. 어떤 날은 산위에 올랐건만 혹시라도 기대했던 녀석이 보이지 않을 때면, 왠지 허전하고 서운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내 마음 만큼이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안고 하산하기도 하였다. 가끔 산을 오르지 못하는 날엔 산 아래 먼발치에서나마 녀석을 볼 수 있을까 먼 산정을 바라보곤 한다. 꿈을 꾸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던가? 내 마음이 녀석에 대한 생각으로 넘쳐나고 어느 듯 애틋한 정으로 쌓여갈 무렵, 콧대 높고 도도한 녀석도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정상에서 선회하는 녀석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순간 나와 녀석의 눈이 렌즈 속에서 그만 마주쳐 버렸다. 순간 서로가 감전된 듯 나도 놀라고 녀석도 놀란 듯,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참동안 공중에서 정지한 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난 며칠 후 쯤 이었을 것이다. 그 날도 오늘처럼 일요일이었는데, 느지막하게 거실에 나온 나는 웬 검고 낯선 물체가 우리 집 베란다창가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가만히 보니 바로 그 녀석이었다. 황조롱이 매였다. 녀석은 앞산 쪽을 바라보며 부리로 자기 몸의 털을 부비기도 하면서 쫑긋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맹금류의 예의 그 날카로운 발톱은 알루미늄 화분대를 움켜잡은 채, 매서운 눈으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자태가 여간 늠름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쪽저쪽으로 발을 옮기면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려는 듯하였다. 저 몸짓은 무엇을 말함일까? 나에 대한 배려일까? 자기를 알아주는 한 인간에게 보내는 감사의 메시지일까? 가까이에서 보는 녀석의 모습은 생각보다 키도 크고 무게도 제법 나가는 듯하였다. 머리와 날개는 잿빛이었지만 목과 배 쪽은 황갈색의 귀티 나는 모습이 정말 멋스러웠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살금살금 집사람을 나오게 한 후, 거실에 앉아 녀석이 날아갈 때까지 숨죽이며 녀석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한 차례 더 우리 집에 찾아온 녀석을 직장에 있는 나에게 집사람이 속삭이듯 알려왔었다. 그러던 녀석이 웬일인지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녀석이 나의 단잠을 깨우며 녀석의 건재함을 알리려 나에게 날아온 것이다. 어둠이 내리기시작하면 새들은 숲으로 잠행한다. 숲은 모든 생명체를 포용한다. 그 속에는 온갖 새들과 수많은 곤충들 그리고 넉넉한 식물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아주 특별한 세계가 연출되는 곳이었다. 황조롱이 매와 인연을 맺은 덕분으로 숲의 세계를 좀 더 알게 된 것도 나에겐 큰 보람이었다. 매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매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신호이며, 그것은 우리의 자연 생태계가 예전처럼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오늘 아침, 우리 아파트 위를 날아간 황조롱이 매들은 백련산에서 먹잇감을 사냥하고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문수봉 암벽으로 날아가면서, 즐거움과 기쁨의 몸짓으로 끼르, 끼르를 연발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는 지금도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 새끼매가 입을 벌리고 끼르, 끼르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수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전 교과의 교과교실제를 도입한 충북 단양중(교장 김병규)이 관심을 끌고 있다. 단양중은 올 3월부터 학생들이 개인 시간표에 따라 전 교과를 이동하여 수업을 듣는 ‘1교사 1교실형 교과교실’을 실시하고 있다. 교사 연구실 확보로 전문성 신장의 계기를 마련하고, 지속적인 수준별 수업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교실 활용에 있어서도 교수·학습 자료 비치·활용이 용이하고, 교과 특성에 맞는 환경을 갖추는데도 유리하다. 26개 교실은 교사들이 업무와 연구, 수업, 학생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됐다. 또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6개의 남녀 탈의실, 전교생 개인 사물함 및 신발장 등을 설치했다. 부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교무실도 과감히 줄였다. 도내 첫 시도인 만큼 단양교육청 및 군청에서 2억원을 지원해줬고, 주변 학교의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 교장은 “교과교실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생·학부모·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5%가 찬성해 적극적으로 실시하게 됐다”며 “처음 1학년 신입생들이 조금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과교실의 또 다른 장점은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교사가 교실에 있기 때문에 쉬는 시간 동안 안전사고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학생들도 쉬는 시간에 교실을 이동해 운동장이나 학교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 “학교 주변 매점에서 항의를 받을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처음 걱정했던 상담 활동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교사들에게 교과교실제가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쉴 틈도 없이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고, 수업 내용이나 방식에 대해서도 동료 교사들과 직접 비교대상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다는 생각에 차츰 적응하고 있다. 고생하는 교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친 김 교장은 “사교육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선생님이 희망이라는 사명감으로 노력해주는 선생님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단양중의 다음 목표는 예체능을 중심으로 한 교과 집중 이수다. 이는 교과교실 활용도를 더욱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교과교실제의 정착과 함께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김 교장은 “교과교실제의 성공 여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부담도 크지만, 선생님들과 합심해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