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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박하선 | 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인도양의 진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도 대륙의 눈물'이라고도 불리는 섬나라 '스리랑카.' 이곳에 기원전 236년 인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에 의해 불교가 전해지면서 그 찬란한 문화가 피워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그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의 문화유산들이 도처에서 지난날을 그립게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누와라(캔디)'를 잇는 일대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유적군이 몰려있어 이 지역을 일컬어 '문화삼각지대'라 부른다. 소승불교의 고향 '아누라다푸다' 아누라다푸라. 약 2500년 전에 이곳은 스리랑카 최대의 도시였다. 그 문명을 상징이라도 하듯 거리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탑은 하늘을 향해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고, 수많은 조각은 어느 것이나 부처의 미소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 기반을 다진 불교, 즉 우리가 흔히 '소승불교'라 말하는 상좌부 불교는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남인도에서 쳐들어온 침입자와의 거듭된 전쟁 끝에 1400여 년에 걸친 영화의 막을 내리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도처에서 지난날의 영광을 느껴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이 아누라다푸라 유적지를 둘러보지 않고서는 스리랑카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 아누라다푸라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성지 '미힌탈레'가 있다. 1934년, 정글 속에서 잠자고 있던 유적군이 발굴된 이래 스리랑카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의 하나로 여겨지며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석양녘에 기도하기 위해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산정의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서서 광활하게 펼쳐지는 불국의 땅을 바라볼 때의 기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한다. 정글 속에 묻혀 있는 불교의 영광 10세기 말에서 11세기에 걸쳐 남인도의 쵸라 왕조가 대군을 보내 신할라 왕조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를 정복하게 되자 이 신할라 왕조는 어쩔 수 없이 수도를 '폴론나루와'로 옮겼다. 이때부터 폴론나루와 시대가 열리고 타이나 미얀마 등에서 승려들이 찾아올 만큼 불교 도시로 번영을 누려 스리랑카 불교 문화의 전성기를 맞았다. 정글 속 곳곳에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는 왕궁이나 거대한 불탑, 불상들이 그 시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폴론나루와 시대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13세기 후반에 다시 인도 쵸라 왕조의 침략을 받아 이 섬의 중앙부로 쫓겨나고, 폴론나루와의 영광은 점차 폐허의 도시가 되어 정글 속에 묻히게 되었다. 불가사의한 바위산 정상의 유적 이 문화삼각지대에서 가장 독특한 곳은 '시기리아'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의 요새 '시기리아 록'이다. 주위의 숲과 상당히 대조적인 적갈색의 이 바위산은 높이가 195m로 하늘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솟아있는 기막힌 모양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바위산 꼭대기에 5세기 중엽에 화려한 왕궁을 짓고 살았던 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억지로 왕좌에 오른 '카샤파' 왕자는 동생 '목갈라하나'의 보복이 두려워 이 요새에 성을 쌓았다. 경사가 급한 바위를 사자 발톱 모양의 돌계단을 거쳐 거의 기다시피 하며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숱한 의문에 싸여있을 뿐인 궁궐의 흔적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담불라'의 석굴 사원 역시 갑자기 우뚝 솟은 듯한 거대한 적갈색의 바위산에 있다. 이 절은 기원전 1세기에 신할라 왕인 '발라감 바후'에 의해서 지어졌다. 왕은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타밀 군의 침략에 밀려 이곳으로 피신한 뒤 다시 왕권 회복을 꾀했다고 해서 감사의 뜻을 모아 이 사원을 짓게 했다고 한다. 벽화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바래갔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극채색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굴에 들어가면 그것들이 놀라운 박력으로 다가와 신성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불교 설화를 그린 수많은 벽화 가운데는 신할라인과 타밀인 사이의 전쟁을 그린 것도 있다.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이 오래전부터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식민시대의 아픔이 남은 '누와라' 문화삼각지대의 종점이며, 스리랑카 마지막 왕조의 도읍이라 할 수 있는 '누와라'는 '도시'라는 뜻인데 지금은 '캔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배어있는 곳이다. 19세기에 이 곳 누와라가 영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으면서 신할라인들은 식민지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스리랑카 지배를 시작한 영국은 스리랑카의 종교나 전통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특히 자신들의 언어대로 지명을 많이 바꾸었는데 영국 식민지 시절 전까지 수도였던 누와라를 캔디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누와라에는 식민지 세월을 당당하게 이겨낸 '달라다말리가와'라는 사원이 있다. 일명 '불치사'라 불리는 이 절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다. 4세기에 인도 오릿사의 칼링가로부터 전해진 석가모니의 치아는 스리랑카의 왕조가 도읍을 바꿀 때마다 함께 옮겨졌다. 불치를 유달리 귀하게 생각하는 스리랑카인들은 이 곳 참배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스리랑카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이는 여정에 따라야 하는 곳이다. 이 여정은 스스로의 발견을 위한 여행이고 삶을 찾는 길이다. 곳곳에 스며있는 상좌부 불교의 자취. 그리고 가냘 퍼 보이지만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꿋꿋이 지켜온 문화. 그 모든 문화의 내음을 듬뿍 담아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고 있다. *마음으로 보는 문화 유적, 문화삼각지대(CULTURAL TRIANGLE)는 새교육 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송광용 | 서울교대 교수 다사다난했던 2005년도가 지나가고 이제 2006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해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듯이 교육 분야에서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원평가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어 교육부총리, 교원 3단체장, 학부모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학교교육력제고특별협의회’를 구성․운영하며 교원평가제 도입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논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부는 시범적용 강행을 선언하였고, 이에 학부모단체는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교원단체는 이를 적극 저지하고 나서 이들 3자간에 긴장을 고조시켰다. 대학구조개혁이 강조되며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추진본부’를 발족하였고, 법인화를 주요골자로 하는 국립대학구조개혁법안은 많은 국립대학교수들로 하여금 대규모 거리시위를 벌이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4년부터 논의되어 온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관련 집단 간의 공방이 계속되어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은 우리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그동안 안일했던 우리의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그에 대한 조치로 범정부대책반을 구성하고 초․중등학교의 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또한 일반행정에 교육행정을 통합해야한다는 논란 속에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개정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으며, 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 지난해 처음으로 실행되었는데 개정된 법으로 인한 교육재정의 부족분만도 약 3조원에 달해 각 시․도교육청을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하게 하였고, ‘교육재정 GDP 6% 확보’라는 대통령 선거공약을 무색하게 하였다. 그리고 2008학년도 서울대학의 대학입학안과 관련하여 본고사형 논술고사를 금지하는 교육부와 서울대의 갈등이 심화되어 서울대 폐지론까지 대두되기도 하였으며, 이것은 고교평준화제도를 유지해야한다는 주장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주5일제 수업제도가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7월부터 월1회 시범적으로 도입 실시되어 앞으로 교육과정의 운영과 수업에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했으며, 1기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지리멸렬하였다는 비판과 함께 제2기가 25명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기도 하였다. 지난 한해에 있었던 교육 분야의 주요 사건들은 모두가 우리 교육의 명암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미래의 희망을 현실로 바꾸어 가기 위해서는 교육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밝은 측면은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어두운 측면은 냉철하게 원인을 분석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며 교육과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 내용을 소망해 본다. 첫째, 모든 교육활동은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 달성에 충실해야 한다. 최근 들어 우리는 교육의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지나칠 정도로 교육의 수단적 가치만을 강조해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인간완성, 자아실현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실현을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한다. 둘째,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에서 교육을 기획하고 평가하여 교육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높여야한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효과의 장기성과 성과의 비가시성을 특징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가 지나치게 성급한 마음에 즉흥적으로 또는 단기적인 안목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놓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육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충분하고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조속히 개정하여 내국세의 교부율을 획기적으로 상향조정해야만 한다. 넷째, 교원의 법정정원을 대폭 증원하고, 교원의 충원율을 100%가 되도록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교원 1인당 학생수는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한참 뒤져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개별화가 요망되며, 이를 위해서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대폭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앞으로 교육이 우리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교원․학부모․사회 모두가 협력하여 교육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필요가 있다. 서로가 불신하고 남의 탓만 한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더욱 해결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해에는 교육 분야에서도 즐겁고 보람찬 일들로 충만하여 올해가 국가발전과 도약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는 한해가 되도록 우리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자동차나 컴퓨터 없이 살았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과 환경만큼이나 크게 바뀐 것이 음식이다. 농업 혁명 이후 곡류, 육류 섭위 늘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두 번에 걸쳐 크게 바뀌었다.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업 혁명 때, 그리고 약 200년 전 시작된 산업 혁명 때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인간이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 중동에서 밀을 재배하면서부터다. 쌀은 7000년 전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옥수수는 멕시코와 아메리카에서 7000년 전쯤부터 재배가 시작됐다. 초기 농경민은 그 이전의 사냥꾼보다 키가 작고,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또한 수명이 짧고, 전염병에 취약하고, 철 결핍으로 인한 빈혈에 시달리고, 치아에도 에나멜 결함 등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화석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하지만 급격히 불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농업뿐이었다. 농업 혁명 이전의 석기시대와 비교해 볼 때 인류는 과일과 야채, 식이섬유, 불포화 지방산, 비타민, 미네랄 섭취량이 줄고 곡류, 포화 지방산 섭취량이 급속도로 늘었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진화영양학자인 보이드 이튼 교수는 1988년 에서 현재의 음식 가운데 55%가 석기시대 때 먹지 않았던 음식이라고 밝혔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곡식을 적게 먹은 대신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튼 교수에 따르면 구석기인들은 동물성·식물성 단백질에서 열량의 33%를 얻었고 46%는 탄수화물에서, 21%는 지방에서 얻었다. 미국심장학회도 이런 구석기인의 식사 비율이 건강에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야채와 과일로 비타민 섭취 늘려야 한국인의 식사는 어떤가? 현재 한국인의 영양 권장량에 따르면 하루 열량의 15%를 단백질에서, 65%를 탄수화물에서, 20%를 지방에서 얻도록 권고하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탄수화물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다. '밥이 하늘이다'란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인은 밥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하지만 단언컨대 밥은 결코 하늘이 아니다. 굳이 먹으려면 현미로 먹고 그보다는 과일과 야채가 더 좋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3배나 많은 과일과 야채를 먹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이 먹던 과일과 야채는 무려 100종이나 됐다. 지천에 깔린 것이 야생의 과일과 야채였던 것이다. 과일과 야채는 석기시대 음식의 65%를 차지하는 주식이었다. 요즘에는 이렇게 다양한 야채와 과일을 구할 길이 없다. 현재 미국에서 정부가 권장하는 5종의 야채와 과일을 매일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은 9%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17종의 곡물이 90%의 식량을 공급하고 있다. 밀, 옥수수, 쌀, 보리, 콩, 사탕수수, 수수, 감자, 귀리, 카사바 등이 그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곡식에 칼로리의 80%를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곡물만 먹게 되면서 인간은 복합 비타민제 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 과일과 야채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곡식보다 훨씬 풍부하다. 반면 곡물에는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C, 비타민 B12, 카르테노이드, 나트륨과 칼슘 등 미네랄이 매우 적다. 곡물만 먹을 경우 자칫 필수 영양소의 결핍에 빠질 수 있어 하루 열량의 70% 이상을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특히 탄수화물 과잉 섭취가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비만과 당뇨병이다. 흔히 살이 찌는 원인을 지방 과다 섭취라고 생각하지만 더욱 중요한 원인은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당을 여러 개 합쳐 놓은 것이다. 탄수화물 과잉이 당뇨병의 주 원인 인체는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한다. 체내에서 당장 쓰이지 않는 탄수화물은 포도당이 여러 개 연결된 글리코겐 형태로 간과 근육에 저장된다.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운동을 하는 데 쓰이고,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뇌를 작동하는 데 에너지로 쓰인다. 뇌는 무게로 보면 인체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를 쓴다. 특이하게도 뇌는 에너지를 포도당으로부터만 얻는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수험생에게 엿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간과 근육이 포도당을 저장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탄수화물이 필요 이상으로 몸에 들어오게 되면 인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방법뿐이다. 지방으로 변환시켜 체내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를 담당하는 것이 인슐린이다. 탄수화물을 먹어 혈당치가 상승하면 췌장이 인슐린 호르몬을 만들어 혈액에 공급한다. 인슐린은 본질적으로 포도당 저장 호르몬이다. 과잉 섭취한 탄수화물을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굶주림에 대비해 지방 형태로 바꿔 저장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게 인슐린의 역할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섭취한 탄수화물의 40% 가량을 지방으로 전환한다. 탄수화물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인슐린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느려 더욱 더 많은 인슐린을 생산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인슐린 저항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사람의 가족들을 보면 대개 당뇨병 환자가 많다. 인슐린 저항성을 보상하기 위해 체내에서는 더욱 많은 인슐린을 만들게 되고 결국 췌장이 혹사돼 인슐린 생산 능력이 떨어지면서 당뇨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비만, 특히 복부 비만인 사람들은 인슐린 저항성이 높다. 또한 탄수화물은 단백질보다 체내에서 빨리 분해되므로 쉽게 허기를 느낀다. 식사 시간이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배가 심하게 고플 경우 아까 어떤 식사를 했는지 보면 대개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를 한 경우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배가 고프다고 자꾸 탄수화물을 더 먹게 되면 뚱뚱해지게 된다. 당뇨병이 대표적인 현대병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농업 혁명으로 곡식을 많이 먹게 되고 특히 산업 혁명 뒤 정제, 도정한 흰 빵과 백미를 많이 먹게 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비만과 당뇨병을 예방하려면 밥과 빵의 양을 줄이는 대신 과일과 야채를 더 많이 먹고 운동을 통해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태워야 한다. 파이토케이컬이 암과 노화 예방 미국 애리조나 주에 사는 피마 인디언은 미국인보다 당뇨병 발병률이 8배나 높다. 반면 멕시코의 피마 인디언은 같은 종족인데도 건강하게 산다. 왜 그럴까? 애리조나 주는 대부분이 사막이다. 피마 인디언은 사막에 살면서 기근과 가뭄에 견디기 위해 가능하면 몸에 많은 지방을 축적해야 했다. 그러려면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섭취해야 했고 비만한 사람이 더 생존에 유리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인디언들의 식사 패턴이 바뀌면서 이들은 그 이전까지 먹던 콩과 닭 대신 빵을 먹기 시작했고 운동량도 매우 부족해졌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 집단이 되고 말았다. 반면 멕시코에 사는 피마 인디언은 전통적 주식인 콩과 감자, 옥수수와 닭을 먹었고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어 운동을 훨씬 많이 한다. 그래서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뇨병이 별로 없다. 몇 년 전 세계암연구재단과 미국암연구재단은 4500건의 연구 논문을 분석해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으면 당뇨병뿐 아니라 암, 심장병, 고혈압을 예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요즘 암이 늘어난 것도 갑자기 야채와 과일 섭취량이 줄고 암 예방 효과가 거의 없는 곡물을 주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야채와 과일이 암과 노화를 예방하는 이유는 파이토케미컬 때문이다. '식물(phyto)이 생산하는 화학물질(chemical)'이란 뜻의 파이토케미컬은 인체 세포에 나쁜 영향을 주는 산화 작용을 억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마토의 리코펜 성분이다. 리코펜은 남성의 전립선암과 여성의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 포도 껍질과 씨나 적포도주에 많은 폴리페놀 성분은 체내에서 해로운 활성 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억제한다. 또 동맥 혈관 내의 혈전을 없애줌으로써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따라서 과일 가운데서도 토마토와 포도를 많이 먹는 것이 몸에 가장 좋다. 칼륨 섭취는 늘리고 소금은 줄여야 또 하나 석기시대에 비해 먹거리 패턴이 달라진 것이 있다. 전해질이다. 전해질은 우리 몸속에서 물에 녹아 이온 상태가 되면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물질이다.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 활동은 세포 간의 전기 신호를 통해 이루어진다. 근육을 움직이고 눈과 귀로 듣는 것도 세포 간에 전기가 통하기 때문이다. 석기시대인은 전해질로 하루 7000㎎의 칼륨과 600㎎의 나트륨을 먹었다. 반면 요즘 현대인은 2500㎎의 칼륨과 4000㎎의 나트륨을 먹는다. 현대인은 칼륨의 섭취가 부족한 것이다. 칼륨은 바나나, 건조한 과일, 오렌지, 땅콩, 말린 콩, 완두콩, 육류, 고구마에 많다. 나트륨 섭취가 7배나 늘어난 것은 염화나트륨, 즉 소금의 과잉 섭취 탓이다. 나트륨 과잉 섭취는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의 원인이다. 소금이 부족한 아마존 원주민과 목축민에게는 고혈압 환자가 없다. 소금을 과잉 섭취하게 된 것은 야채나 고기 같은 음식을 오래 보존하고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요즘은 냉장고가 있고 많은 향신료가 나와 있어 굳이 소금을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영어 속담에 'We are what we eat'이란 말이 있다. 무엇을 먹느냐가 곧 인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99.99%의 유전자는 농업과 산업 혁명이 시작되기 이전에 주로 사냥꾼과 채취자였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석기시대 사람들의 식사, 굳이 석기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전통 음식을 배워야 한다. 밥상을 차릴 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선조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지 한번쯤 생각해 보자. 그것이 우리의 DNA를 갖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다.
신아연 | 호주칼럼니스트(ayounshin@hotmail.com) 어느 나라가 비슷하겠지만 호주 학생들의 새해는 방학으로 시작된다. 호주 학제는 총 4학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차례에 걸쳐 방학을 하게 된다. 그 중 7월 중순 경에 시작되는 겨울 방학과 12월의 여름 방학이 상대적으로 길며, 특히 여름 방학은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느긋한 시간을 제공한다.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인 호주는 1월이 가장 더운 때이며, 따라서 지난 해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두 달간의 긴 여름방학도 올 1월을 기해 절정에 올랐다. 호주 학생들의 방학생활은 초․중고생들 간에 큰 차이가 없다. 말하자면 방학기간 중에 해야 할 숙제나 과제물, 일기쓰기 등이 전혀 없고, 부족한 학과의 보충이나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이나 개인 과외수업을 받는 일도 없다. 대학 입시가 코앞에 닥친 예비 고3생(11학년)들도 방학이라 해서 공부에 시간을 쪼개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맞물리는 이맘 무렵이면 학생들 뿐 아니라 인구의 절반이 휴가에 취해 국토 전역을 누비면서 거국적인 휴가행렬이 절정에 달한다. 새해란 모름지기 ‘일단 놀면서 시작하고 볼 일’이라는 듯 나라 분위기가 온통 이러하다 보니 학생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졸업식과 대학입학시험 결과 발표까지 해를 넘기지 않고 12월 방학 전에 모두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1월 한 달은 가족들과 느긋하고 부담 없는 휴가를 보낸 후 2월 초에 바로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공부와는 거리가 먼 방학이지만 이 때를 이용한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호주는 법적으로 만 14세가 되면 파트 파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데, 학기 중에도 방과 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빵집이나 커피숍에서 판매 일을 하거나,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푸드점과 문구류 취급점, 슈퍼마켓 등에서 용돈 벌이를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면 일하는 시간을 늘려 돈 버는 재미와 노동의 가치를 보다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일자리 얻기 경쟁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전에 지원서를 내놓고 연락을 기다린 후 기회가 주어지면 다수의 경쟁자를 제치고 면접을 통과해야 비로소 본격적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중․고생들의 급여수준은 시간 당 대략 9달러(약 7200원) 정도로 방학 중에 꼬박 일한 돈을 모아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을 사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년을 꾸준히 모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중고 자동차를 사거나 외국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알뜰 계획파도 있다. 돈벌이를 처음 시작함과 동시에 납세번호가 발급됨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에 대해서 꼬박꼬박 세금을 냄으로써 학생들은 사회생활의 한 단면을 경험한다. 법적으로 일할 자격이 주어지는 중․고생들 뿐 아니라 용돈을 벌기 위한 초등학생들의 열성도 이에 못지않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일거리는 세제와 양동이를 들고 집집을 돌면서 차를 닦아 주거나 잔디 깎기, 쓰레기통 수거 등을 비롯해서 애완견 산보시켜주기와 동네에서 휴가간 집에 남겨진 애완동물 돌보기 및 먹이주고 놀아주기 등 앙증맞은 아이디어도 있다. 특히 방학 중에는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질 겸해서 가족단위로 가가호호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도 있다. 5 내지 10종 가까이 되는 각종 광고지와 무가로 배포되는 지역신문 등을 담당 배포 구역 어귀까지 부모가 차에 싣고 날라다주면 자녀들끼리, 혹은 부모와 자녀가 한 조가 되어 각 가정을 돌면서 우체통에 인쇄물을 꽂는 것이다. 아이들을 도울 겸 따라나선 부모들은 산보삼아 동네의 수 십호, 수 백호를 돌아다니는 동안 다이어트와 운동효과가 절로 나타나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게 된다며 어린 자녀들의 아르바이트를 적극 반긴다. 한편 호주의 또 한 가지 색다른 방학 모습으로 휴가를 이용한 친지 방문을 꼽을 수 있다. 평소에 자주 뵐 수 없는 조부모나 친척들을 방학 기간 중에 방문하여 모처럼 대가족 속에서 여름휴가 한철을 보내는 것이다. 호주인들의 휴가개념은 보통 2주 정도, 길면 한 달 이상을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2박 3일이나 길어야 일주일 정도 쉬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다보니 휴가를 겸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는 경우가 많다. 평소 핵가족 생활만 해오던 아이들에게 확대 가족의 의미와 친척, 친지들과의 다양한 관계와 의미를 자연스레 익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이다. 부부 중심으로 생활하는 서양인들은 흔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개념이 희박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도 되지만 호주인들의 끈끈한 가족사랑은 우리 못지않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맘 무렵이면 나라 전체가 휴가 분위기로 술렁이는 가운데 가족간의 재회를 위해 국토를 종횡무진 누비는 일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더러는 외국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호주 학생들이 선호하는 외국 관광지는 단연히 미국이 으뜸으로 개학 후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학생들 이 풀어놓는 여행담은 급우들의 인기와 부러움을 동시에 받는다. 그 밖에도 가까운 뉴질랜드나 발리를 비롯한 태평양 인근의 섬나라들과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가족단위 호주인들의 각광받는 관광명소에 속한다. 호주 학생들의 방학은 뜨거운 아르바이트 열기와 조부모 사랑과 사촌들과의 회합을 다지는 시간으로 대부분 채워진다는 점에서 학기 중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는 학원공부와 짓눌리는 과외수업에 시달리는 한국 학생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사뭇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중국에서의 ‘소질교육(素質敎育․Quality Education)’은 1999년 국무원이 발표한 ‘교육개혁의 심화와 소질교육의 전면적인 추진을 위한 결정’에 따라 국민들의 소질을 높인다는 취지 하에 추진되어 온 것이다. 이 ‘결정’에 따르면 소질교육은 학생들의 창조력과 실천능력의 배양에 중점을 두는 교육으로 ‘이상’, ‘도덕’, ‘문화’, ‘기율’ 등 지․덕․체를 골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소질교육도 본래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입시교육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지난여름 장쑤성[江蘇省]의 성도 난징[南京]에서는 올해 대학입시에 참가한 인원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를 받은 학생들의 수가 지난해에 비해 600명이나 감소하여 성 전체에서 꼴찌를 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난징의 학부모들은 해당 교육관청에 소질교육이 자신들의 자녀를 망쳤다며 항의하는 동시에, 학교와 교육관련 부문들은 소질교육에서 입시교육 위주로 교육의 방향을 바꾸어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보충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라고 강력히 촉구하였다. 한편 후베이성[湖北省]의 성도 우한[武漢]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수 십 년 동안 어문(語文)을 가르쳐온 리우쇼우치[劉守琪]라는 교사가 연달아 학생들에 의해 매체 상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그동안 소질교육에 대한 신념을 토대로 일관되게 학생들의 창조력과 실천능력을 강조해온 교사라는 점에서 이 투서사건은 사회 일각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본래 그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고3 중점반(重點班)의 어문(語文) 교사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그가 추구하는 소질교육이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쳤고, 보통반에서 조차도 학생들의 언론에 대한 투서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를 상대로 투서한 학생들에 따르면 자신들은 대입시험을 앞 둔 1분 1초가 아까운 고3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소질교육이라는 명분 하에 수업시간에 교과서의 내용과 무관한 내용만을 강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투서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리우쇼우치 교사는 최근 중국 교육의 흐름이 학생들의 폭넓은 독서와 깊이 있는 사고보다는 교과서의 내용만을 암기하여 시험 임하도록 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이러한 병폐를 극복하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교과서 내용 외의 다양한 내용들을 가르치고 있노라고 항변하였다. 즉, 자신은 학생들에게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건들을 계기로 최근 중국 교육계에서는 소질교육의 효용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특히 우한의 투서사건은 소질교육의 당위성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켰는데, 과거에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학생 및 그 학부모들은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리우쇼우치 교사가 가르치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살아가면서 그의 가르침이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학생들의 투서내용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교사가 수업시간에 교재에 있는 단편적인 내용만을 가르치고 시험을 통해 이를 측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상상력 및 창의력을 고갈시켜 사회생활에 있어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며 소질교육을 통한 다양한 경험 및 창의력 제고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고3 학생들은 마땅히 시험을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들에게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중국 사회에서는 아무리 풍부한 상상력과 사회생활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입시를 통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라는 것이다. 때문에 리우쇼우치 교사가 소질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실시하고 있는 교육의 내용들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이므로 그는 마땅히 이에 대해 반성하고 고3 학생들의 실정에 맞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과 관련하여 다른 한편에서는 소질교육과 입시교육을 병행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입시라는 것이 중국 교육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교육은 필수적인 것이라는 전제 하에 소질교육과 입시교육을 동시에 실시하자는 의견을 주장한다. 즉, 입시를 목전에 두지 않는 고1이나 고2 때까지는 소질교육 위주의 교육방식을 취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의 각 방면에 있어서의 소질을 계발하도록 하고, 고3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면 학생들의 소질향상이라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고, 학생 및 학부모들의 호응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도 입시의 결과가 모든 걸 좌우하는 중국교육의 현실에선 비현실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현재 중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질교육은 한마디로 학생들에게 ‘고기를 잡아 줄 것인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나 이상적인 측면에서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교육목표도 입시교육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별 수 없다는 것이 이번의 ‘소질교육이냐, 입시교육이냐?’의 논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소질교육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소질교육을 미래 중국교육의 중요한 흐름으로 계속 유지시켜 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 27일 베이징에서는 인민일보사 주최로 ‘소질교육대토론회’가 열려 중국의 교육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현행 중국 소질교육의 문제점 및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앞으로도 소질교육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과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학교, 가정 및 각급 정부의 공동노력 하에 전 사회적으로 소질교육 추진을 위한 협력과 양호한 주변 환경을 만들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 같은 중국정부의 소질교육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또한 어떤 성과를 발휘하게 될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윤종혁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지난 2005년 10월 26일 일본 문부과학대신 자문 중앙교육심의회는 현재의 의무교육에 대한 개혁과 관련된 최종 답신 ‘새로운 시대의 의무교육을 창조한다’는 보고서를 작성·제출하였다. 중앙교육심의회는 2003년 5월부터 초등중등교육개혁 추진 대책에 대한 의뢰 등 세 가지 과제를 검토하고 그에 대한 심의 결과를 2년 6개월 여 만에 최종 발표한 것이다. 이미 필자도 일본의 의무교육 개혁안이 각 지방정부의 구조 개혁 등과 결부되어 정치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예민한 국민적 관심 사항으로 부각되었음을 소개한 바 있다(2005년 5월호 참조). 이번 최종 답신은 크게 보아 의무교육의 목적·이념에 대한 재검토, 새로운 의무교육의 방향, 의무교육의 구조 개혁, 의무교육에 대한 국가·도도부현(都道府縣)·시구정촌(市區町村)의 명확한 역할과 협력관계의 강화, 의무교육의 기반을 정비하는 중요성, 의무교육비용 부담 방식에 대한 개혁 등 6가지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간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삼위일체 개혁’과 맞물려서 지방재정으로 이양을 강조하였던 의무교육비 부담정책은 현행 국고보조 및 부담 원칙을 재천명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는 의무교육비 부담 원칙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점, 재원확보를 확실하면서도 예측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지방의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 등 세 가지 관점에서 현행 국고부담 원칙이 타당함을 강조하였다. 답신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변혁·불확실성·국제경쟁을 위해서 헌법 제26조가 요구하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의무교육의 목적과 이념이라고 표명하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국가·사회의 형성 주체를 육성하는 의무교육의 역할이 아주 크다고 보았다. 국가는 이에 대한 책무로서 의무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①기회균등 ②수준 확보 ③무상제 원칙을 보장하고, 국가·사회의 존립 기반이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새로운 의무교육의 방향은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여 아동의 사회적 자립을 보장하고, 개개인의 다양한 힘과 능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일본의 의무교육은 학생들이 학습의욕과 생활습관이 확립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문제행동이 심각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특히 공립의무학교에 대한 불만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동이 잘 배우고 잘 놀면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연마할 수 있는 교육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서 의무교육은 질 높은 교사가 가르치는 학교,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활동하는 활기 넘치는 학교를 전제로 육성해야 한다. 답신은 의무교육이 학교의 교육력(학교력)을 강화하고, 높은 자질을 가진 교사(교사력)를 확보하여 이를 통해서 아동의 풍부한 ‘인간력’을 육성하는 것이 개혁의 목표라고 명시하였다. 여기에서 아동의 인간력은 아동이 학교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주요한 영역으로서의 지적 능력(학습력) 외에도 인성, 사회성, 창의성, 미래 생활에 대한 준비성, 생활 개척력 등 다양한 사회생활 적응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답신은 그런 측면에서 의무교육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선 의무교육 시스템에 대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을 정비하는 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한다. 그리고 시구정촌(市區町村)·학교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하는 분권 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교육 결과에 대한 검증을 국가의 책임으로 하는 방식을 통해 의무교육의 질을 보증하는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무교육의 중심적인 담당자는 학교라고 분명하게 명기한다. 학교는 국가·도도부현, 시구정촌과의 협력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즉, 국가는 의무교육의 근간을 보장하는 책임을 지고, 도도부현이 지역 내 광역 조정의 책임을 충분히 부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구정촌과 학교는 의무교육의 실시 주체로서 더욱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시스템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답신은 또한 교직원의 양성·배치, 학교시설, 설비, 교재 등 의무교육의 기반을 확고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래서 의무교육 재원조치를 포함하여 국가·도도부현·시구정촌이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직원으로서, 교육의 성패는 자질 능력을 갖춘 교직원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답신은 교직원의 양성·배치, 그리고 급여 부담에 대한 방식이 교육기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였다. 답신의 가장 큰 관심 대상은 의무교육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을 개혁하는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답신은 의무교육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의무교육제도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국가의 교육책임을 지속적으로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지방 부담을 통해 의무교육 교직원 급여비 전액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함을 명시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교직원 급여비의 부담률 절반을 국고에서 부담하는 현행 제도는 아주 우수한 보장 방법이며, 앞으로도 유지해야 할 제도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지방의 재량을 확대하기 위한 차원에서 총액재량제를 더욱 개선해야 함을 요청하였다. 답신은 현행 국고보조 및 부담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 2004년 11월 일본 정부·여당 합의안으로서의 ‘삼위일체의 개혁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한 경제계 중심의 지방 6단체는 당초 의무교육 근간을 유지하면서 세원 이양에 따른 일반 재원으로의 확충과 지방 자유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답신은 세원 이양을 할 경우 47개 도도부현 중 40개 도도부현이 현행 제도에 따른 배분액보다 적은 세원 이양금액을 받게 되며, 이에 따른 지역간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둘째, 의무교육의 기회균등과 수준을 유지·향상시키는 것은 국가의 존립에 관한 중대한 기본정책이다. 의무교육의 성과는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국가 전체에 관련된 것으로서 의무교육의 경비 문제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또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직원이 안정적으로 직무에 종사할 수 있는 기반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비슷한 관점에서 의무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가장 확실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무교육에 대해 사용 목적이 특별하게 명시된 재원 보장제도, 즉 국가 부담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이 외에도 답신은 의무교육비 부담제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추가 제안을 하고 있다. 우선 교재 구입비와 도서 구입비 등 교육환경을 정비하는데 필요한 경비도 해당 총액을 확실하게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공립학교 시설을 정비하는 경우도 지방의 자유재량을 확대하면서도 국가 수준에서 특정한 목적을 지닌 사업에 대한 재원을 보장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특히 아동·학생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진 등 재난 대비를 위한 사업은 반드시 국가가 책임을 지고 추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현재 이 답신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교육개혁의 기본 과제로서 추진하고 있는 의무교육개혁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특히 일본 경제·기업계 및 일반지방행정분야의 거센 압력을 극복하고 의무교육 부담금 제도를 현행 체제로 유지할 것을 권고한 것은 여전히 논란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미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문부과학성이 기본적으로 이 답신 내용을 그대로 계승·수용할 것이기 때문에 의무교육 재정개혁은 당분간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은순 | 공주대 교수 19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한창일 때 나는 대학원 숙제를 하느라 서울의 달동네 언덕을 오르내렸다. 달동네에 사는 유아들의 공부방 실태를 알아보려는 것인데 공부방은 직접 참관하지 못하고, 공부방 전체의 소식을 조금씩 모아놓은 ‘지역사회 탁아소 연합회’에 들러 이런저런 소식을 듣고, 자료를 모았다. 연합회 사무실이라는 곳이 대단히 가난하여 갈 때마다 빵이나 과일들을 사들고 갔으며 여러 탁아소에서 만든 자료들을 한 묶음씩 받아왔다. 공부방을 찾아간다고 이곳저곳 둘러본 동네는 그야말로 가난에 찌들고, 집집에 실직하여 쉬고 있는 가장들이 자신에 대한 분노와 우울로 타인이 말을 붙이는 것이 어려울 정도의 굳은 얼굴로 가끔씩 얼굴을 내비칠 때면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같은 달동네에 한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무료 탁아소를 개설하고, 해당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이 되어 순번을 정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수들은 대학과 연결하여 부모교육을 담당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수업시간에 발표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탁아소를 중심으로 하여 가정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자’는 것이었다. 발표의 내용을 요약하면 교수들이 그 동네에 집을 얻어 무료 탁아소를 열고, 20명의 아이들을 받아 아이들의 생활을 돕고, 공부를 도와주는데 학생들이 시간을 할애하여 선생님이 되어 주었단다. 교수들은 부모들을 교육하여 부모 중의 몇 명은 인턴으로 선정하여 추후에는 학생들이 맡고 있는 교사의 일을 돕도록 훈련시키고, 또 리더십이 있는 부모들에게 탁아소의 운영관리를 가르쳐 주어 마지막에는 교수와 학생이 탁아소를 지역주민의 손으로 운영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단다. 배운 사람에 대한 거부감, 값이 싼 곳을 빌려야 했으므로 툭하면 이곳저곳이 터지고 깨지는 탁아소 교실, 발품을 팔아 모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탁아소에 대해 만족하기 시작하자 주변의 사설 교육기관에서 해당 관청에 무허가로 고발하여 겪은 고초들…. 이렇게 어려움을 마주하고 해결해나가자 미운 눈으로 바라보던 주민들이 점차 고운 눈이 되어 관청에 나가서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고, 수많은 서류들을 찾아가지고 와서 사설 기관을 설득하는 일에 동참을 하고 고마워하기 시작했단다. 처음에 부모교육을 시작했을 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부모들이 한 명도 참석을 하지 않아 당황 하였단다. 하루를 벌어야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데 한가하게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며, 그 필요성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교수들은 작전을 바꾸어 부모교육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일당을 주기로 하였다. 놀면서 돈도 번다고 하니 참석률이 높아졌다. 왜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한가, 왜 탁아소가 중요한가를 피부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몇 명의 부모들이 하루 일당으로 준 돈을 슬며시 놓고 가기 시작했단다. “자기들을 이렇게 생각해주어 고맙다”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저녁일이 끝날 즈음에 탁아소에 들러서 의자가 부서졌는지, 문고리가 망가졌는지 들러보는 엄마들이 생겼으며 슬며시 부서진 의자를 집으로 들고 가 목공일을 하는 아이의 아빠에게 부탁하여 고쳐놓았다. 학생선생님들은 “○○의 아빠가 고쳐주셨어요. 매우 고마운 일이지요. 그 아빠에게 감사의 박수를 쳐드립시다”하고 수업시간에 칭찬을 아끼지 않자 그 아이는 탁아소에서 어깨가 펴지고 다른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서 엄마, 아빠에게 전달하였다. 점차 구멍난 지붕을 고쳐주는 아빠들이 늘어났으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동네에 유명인사가 되는 일들도 많아졌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로 스스로를 학대하며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하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탁아소의 임원이 되고, 드디어는 작은 탁아소이지만 학교의 주인이 되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할 일들을 찾아 해결하는 동안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탁아소들이 연합하여 그 화려한 올림픽의 뒤안길에서 소외되어 분했던 마음들을 모아 탁아소연합회의 올림픽 잔치까지 열었다. 이 프로젝트를 후원한 곳은 한국이 아니고 독일의 한 단체였다. 내가 교환교수로 있는 이 대학에서 ‘Poverty Simulation’이라는 제목의 수업이 있었다. 30명쯤 되는 학생들이 그룹으로 나뉘어 가난한 가정의 한 구성원이 되어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선생님이 되었을 때 학생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일종의 역할극이었는데 책을 보고 듣는 강의가 아니라 역할극을 도입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학생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에 대한 사전 조사가 없어 얼마만큼 그들을 이해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실직한 가정의 12살 중학생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미끄러져서 뼈를 다쳐 집으로 왔는데 그 이상의 아무런 조처는 없었다. 극빈자 가족의 무료 의료기관 활용 등에 관한 실제 사례들을 조사하였으면 보다 심도 있는 수업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학부생들에게 이러한 역할극을 해보게 하는 것은 자료만 보고 강의만 듣는 것보다는 훨씬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역할극에 필요한 자료들은 ‘STEP' 즉, 세인트루이스 교사지원 프로그램에서 만들어 제공하고, 수업이 끝나자 회수하였다. 다음 수업에 사용할 때에는 그 동안에 추가되고 알게 된 사례가 더해져 점점 더 세월이 지나면 ‘Poverty Simulation Program Kit’가 되어 판매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선생님들은 수많은 자료를 만든다. 더러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훌륭한 경우도 있다. 한국도 같은 전공을 하는 선생님들 즉, 교사․교수․연구원들이 서로 연결하여 연구와 자료를 축적해 가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 속의 교육 상품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선생님들은 학생의 교육을 바탕으로 한 연구와 개발에 전념하고 이러한 지식을 모아 상품으로 개발하고 후원하여 연구하고 공부하는 선생님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산학연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보낸 유인물을 보니 교육 프로그램에 'The Marketing Club'이라는 것이 있다. 이 지역 교육지원단체 즉, 'Distribution Education Club of America(DECA)'에서 후원하여 한 그룹의 학생들이 1학기에는 'MarketingⅠ'을 하고, 2학기에 'MarketingⅡ'를 한다. 이 학교는 상업고등학교도 아닌 일반고등학교이다. 학생들은 'Fantasy Football'이라는 주제로 자신들의 축구팀을 구상하여 로고를 만들고 축구팀을 위한 티셔츠, 바지, 신발 등 상품을 개발한다. DECA는 일정한 날을 정하여 이 지역에 있는 대형쇼핑몰을 빌어 11개 학교 학생들의 마케팅 실력을 겨루게 하고, 여기서 상을 받은 팀들은 후에 전국교육단체(state DECA)에서 여는 마케팅 시합에 나가 다시 실력을 겨루게 한다. 상업을 중시하는 나라답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심사관이라면 순간의 호객을 위한 달변이 아니라 지속적인 단골고객을 확보하게 하는 상품에 대한 전문성과 일에 대한 성실성, 판매자에 대한 신뢰 등에 큰 점수를 줄 것이다. 친구를 방문하러 뉴욕에 갔을 때 친구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예일대학교를 방문하였다. 부활절이 낀 휴일이었음에도 많은 건물들을 직접 안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어서 대단히 기뻤다. 법과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학생들은 현직의 판․검사, 변호사 앞에서 직접 재판을 수행하고 그들의 평가를 받는 수업 공고문을 보았다. 이러한 수업은 학생들에게는 생생한 조언을 들을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며, 현직 법원관계자들에게도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진지함과 참신함, 열정의 세계 속에 있는 어린 후배들에게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주변의 동료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신선함과 때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우는 다른 시각을 접하게 하여 세상을 이해하는 눈을 넓혀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주조촌초 송민호 교장 전주조촌초등학교 송민호 교장(61)은 지역 교육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컴퓨터 박사다. 컴퓨터가 젊은 교사들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교감 시절인 6년 전 처음 자판 앞에 앉은 송 교장. 독학으로 워드부터 시작해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등을 익혀나간 송 교장은 이제 젊은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들을 상대로 정보화 강의까지 하고 있다. 송 교장의 컴퓨터 실력은 2002년 정보통신부 주최 ‘전국 실버 인터넷 검색대회’ 금상 수상과 2005년 ‘어르신 정보화 제전’ 대상 수상 등으로 증명됐다. ‘어르신 정보화 제전’은 지역 예선을 거쳐 전국에서 참가한 55세 이상의 어르신 150명이 인터넷 검색과 문서작성 능력을 겨룬 대회다. 말이 어르신 대회이지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 검색과 이미지 처리 작업 등을 해 낼 수 있다. 송 교장은 “교장이 컴퓨터 좀 하니까 교사들과 대화도 잘 통하고, 학부모들도 학교교육에 더 신뢰를 갖는 것 같다”며 “컴퓨터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은 젊은 교사들에게 교수․학습에서 필요한 각종 프로그램을 안내 해줄 때”라고 밝혔다. 송 교장은 개인 홈페이지(http://songho.hihome.com)는 물론 학교 홈페이지 관리도 직접 한다. 아예 디지털 카메라를 늘 갖고 다니며 크고 작은 행사나 교수․학습 장면 등을 찍는다. 송 교장은 요즘도 전주, 김제 지역의 교장 19명과 함께 만든 ‘모악정보활용수업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회원들의 학교에서 수시로 교사 연수를 실시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송 교장은 “세계화, 정보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학생을 기르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앞장서서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낙진 leenj@kfta.or.kr
“우리 학생들이 국제무대에 서는 날을 기대하죠” 풋살을 사랑하는 모임 - 풋사모 풋살은 경제적이고 안전한 스포츠로 속도감이 매우 뛰어나 농어촌 소규모 학교 아이들에게 적합한 구기종목이다. 이에 풋살을 보급하기 위해 2000년 9월 박현섭 교장외 7인으로 ‘풋사모(풋살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이름으로 동호회가 결정되었고 현재 4대 고경룡(정읍 용곽초 교장) 회장과 31명의 회원이 구성되어 있다. 풋사모는 정읍 용곽초에 구장을 조성하고 매월 정기적 모임을 통해 저변확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정읍교육장배 풋살대회에 참가하는 팀에게 풋살공 등을 지급하고, 대회진행에 따른 심판 보조 및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5년 11월 10일 교육감배 동아리 풋살대회에서도 심판 및 봉사활동, 그리고 풋살공을 지급하였다. 풋사모의 목표는 각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체육활동으로서의 풋살을 널리 알리고, 풋살과 관련된 진학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 아직은 동호인들이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지만, 풋살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풋살 훈련의 기초적인 스텝트레이닝 기구를 이용하여 학생들이 기본적 움직임의 균형발달을 가져올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훈련적용 방법들을 연구함으로써 신체적 균형발달의 중요성을 지향하고 있다. 일선학교에서 시골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동료 간에 협동과 규칙 등을 배울 수 있는 풋살을 널리 확대하고자 하는 풋사모 회원들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우리 풋살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희망해 본다. 풋사모 가입은 풋사모 총무를 맡고 있는 신재구 교사(정읍 용곽초/scg0291@hanmail.net )에게 문의하면 된다. *이 공간은 교원동호회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현재 활동하고 계신 동호회를 알리고자 하는 동호회에서는 새교육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 (02)575-4185, ·이메일 = esy@kfta.or.kr
##조은경 전북대 사학과와 동 대학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전주 근영중 교사로 있다. 국제이해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3~2005 한일 평화교재실천교류회 참가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학회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일본의 《교육과 문화》《교육평론》에 논문을 쓰기도 했다. ##구로사와 노부아키 닛쿄대학과 도쿄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경학예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야마나시카쿠인대학 교수로 있으며 생애학습센터장을 맡고 있다. 평화교육․평생교육 분야의 일본 내 주축멤버다. 《국가 시민사회와 교육의 위상》《인간소외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등의 저서가 있다. ##나가이 순사쿠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후쿠오카시립중학교 교원(교사)으로 있으며 현재 후쿠오카 교직원 조합 서기장, 일교조 전국 교육 연구회 평화교육 공동연구자, 후쿠오카 다문화 공생교육연구회 대표, 인권존중추진위원회 위원 등 평화교육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신뢰와 협력으로 양국관계 개선 기대 조은경-구로사와 교수님, 나가이 서기장님 안녕하세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일토론회에서 뵙고 이곳 전주에서 또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움이 더 큽니다. 그동안 모두 건강하셨지요. 두 분 선생님과의 인연도 어느새 3년째이군요. 구로사와-그렇군요. 조 선생님과는 2003년 한국교총과 일교조의 제1회 평화교재실천교류회에서 처음 만났죠. 나가이 선생은 워낙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으로 저와는 수년을 알고 지내왔고 공통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어요. 후쿠오까에 계시지만 동경에서 자주 만납니다. 나가이-조 선생님,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워요. 그리고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호남 지방을 가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저야말로 바쁘신 일정에도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곳까지 와 주셔서 기쁩니다. 전주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문화와 교육의 도시입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전주에서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고들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문화가 매우 발전한 곳입니다. 저와 함께 식사도 하시고 이곳의 교육현장과 명소도 둘러보시지요. 나가이, 구로사와-예, 특히 조 선생님이 자랑하는 전주의 비빔밥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조-물론입니다. 저는 상생의 시대에서 비빔밥이야말로 나눔의 정신이 깃든 한국의 음식이요, 세계의 음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가이-상생(相生), 즉 일본에서는 공생(共生)이란 말로 표현하는 데 한일 양국만큼 그에 맞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후쿠오까에서 부산은 선편(船便)으로 3시간에 불과한 거리입니다. 우리 양국은 지정학적인 거리를 생각해도 그렇고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어 왔습니다. 조-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 국민의 정서상 늘 일본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상호신뢰의 구축과 협력의 노력을 통해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 두 분께서 활동하시고 계시는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구로사와-일본교직원조합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에 결성되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들은 전쟁에서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소중히 하는 교육 목표를 향해 꾸준히 활동해 왔지요. 특히 “제자를 다시는 전쟁터에 보내지 말라!”는 슬로건을 채택해 평화교육에 힘을 쏟아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그중에서도 특히 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지향하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최대 규모의 교원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가이-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 공격을 하는 세력이 대두되었습니다. 즉 ‘조선침략은 정당하였다’라든가 ‘강제 연행은 없었다’ 등을 주장하면서, 또한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자리매김 해야 한다고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 인식을 주장하는 일본 내의 사태는 미래를 책임 질 어린이에게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 점이 심히 우려됩니다. 조-네, 한일 수교 40주년인 2005년 초엔 기대도 컸고 양국의 우호관계에 크게 고무되었었는데 한류(韓流)가 한류(寒流)로 급변한 여러 가지 원인은 특히 교과서 문제와 영토를 둘러싼 양국의 긴장 그리고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정의 해’라는 말이 무색하였던 날들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우정의 해’ 무색 구로사와-일교조는 이러한 일본 내의 우익 세력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안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후세에게 그대로 전해줘야 평화 교육이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면면히 이어질 양국의 세대들이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거리감을 없애기를 희망합니다. 나가이-올 초부터 후쇼사 역사교과서 저지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10%를 상회할 수 있다는 우익 세력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저희들은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한국 국민의 협조 아래 결국 0.4%로 매듭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일본 우익의 전략적 성공 등을 고려해보면, 4년 후 교과서 채택에 관한 준비를 당장 내년부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그렇습니다. 일본 평화진영과 한국의 모든 국민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성과입니다. 나가이 선생님 말씀대로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격한 상황일수록 흥분보다는 한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모색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역사교육도 많이 발전하였습니다. 즉 과거를 무조건 주입하는 교육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교육으로 인권과 평화에 관한 부분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에서의 왜곡을 반박하고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데 충분한 노력을 우리 스스로가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로사와-서울 한일 토론회에서 나왔던 ‘만남’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오르는군요. 저는 재작년에 처음 한국에 왔었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김포 공항까지는 제가 날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 카쿠인 대학까지 통근하는 거리보다도 짧더군요. 2년 전부터 조 선생님과 한달에 한번씩 교환하는 편지가 참으로 정겹습니다. 서로 만나서 얘기하고 이웃이 된다는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요즘 저희 아내는 한국 드라마에 심취되어 있는데 덩달아 저도 어느새 한국 드라마의 팬이 되었습니다. 조-저는 민간 외교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담 없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서로 양보도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와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개인의 만남과 이해로부터 끈끈한 그 무엇인가가 이어져 큰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구로사와 교수님이 저를 만나면서 한국의 문화에 더욱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는 말씀을 하실 때면 정말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나가이-현재 한일 양국은 모두 식민지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전후세대들이 인구 구성상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후 세대들에게는 과거사는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을 때에 대다수 학생들은 이웃 나라에 대한 무지가 압도적이었어요. 일본 내에서도 참혹했던 전쟁의 역사적 교훈이 무색하지 않도록 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즉 일본은 전쟁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세대에게 역사 교육을 바르게 시키고 가해자 의식의 원점에서 출발하여야 하는 것이죠. 저는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학교 교단에 섰었습니다.[PAGE BREAK] 정부의 노력 못지않게 민간외교도 중요 조-나가이 선생님의 실천과 노력을 들으니 저 역시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일간의 상호신뢰의 문제가 난항을 겪는 이유 중의 하나가 양국의 교육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의 불행사의 문제를 모두 배제한 채로 앞으로 잘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우리 역시 과연 왜곡되지 않은 떳떳한 역사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과거를 과거로서 올바르게 인식할 때만이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교사들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가 그런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체계적인 역사 교육이 필요합니다. 구로사와-동감입니다. 잘못된 교육을 받은 일본 국민이 침략의 실행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천황을 인간이 아닌 신(神)이라고 학생들에게 믿게 하고 일본이야말로 현대의 신이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라고 가르쳐 왔던 사람들로부터 아시아의 비극이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전후의 역사 교육은 사실에 의거한 정확한 인식과 사회의 주인공인 국민으로서의 역할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하여 왔습니다. 조-그런데 교수님 주변에 거주하는 20대에서 30대의 일본인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근대, 현대사를 배운 적이 없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역사 교육의 중요성에 비하여 학교의 커리큘럼이 불충분한 면이 많아 여러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지 말씀해 주십시오. 구로사와-역사 시간에 고대사부터 배우면서 수업 시간이 부족하여 만주사변 같은 경우는 접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제1차 세계대전까지로 수업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최근에는 전국의 교사들의 노력에 의해 상당히 개선되고 있습니다. 중학교도 선택 수업을 할 수 있는데 그 시간을 이용하여 보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학 입시에서 why, how 보다는 who, what, when. where 등 단편적인 암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흥미가 없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조-입신과 구직난이 반복되는 우리 현실에서 소신 있는 역사교육은 난관이 많습니다. 고정된 틀 안에서 기술된 교과서만을 외우며 진실을 헤쳐 나가고 미래를 기대 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진적인 변화와 노력에서 해결책을 찾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중・일의 역사 연구자와 교사, 시민 단체의 공동 집필의 결실인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는 참으로 큰 성과이며 교사가 각자 책자의 내용을 선별하여 수업에 활용하는 방안 등은 역사를 바로 보고 알기에 도움이 됩니다. 나가이-일본에서는 어떻게 하면 역사 학습의 지적인 호기심을 높이고 배우고자 하는 생각이 들게 할까를 두고 교사들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학생이 성장하는데 맞춘 교재를 교사가 준비하여 보다 내실을 기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정확하고 건전한 판단력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수업 실천으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조-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 상호 인식과 이해라는 두 분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정부 차원의 과거 청산 문제, 재일 한국인 문제, 역사 교육 문제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협조 등 여러 당면한 과제가 있습니다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민간 차원의 대책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접촉에서 이루어지는 민간교류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가이-한일간의 오랜 역사에서 선린우호의 역사를 재조명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진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수업을 참관하며 느낀 점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사전(事前) 지식 없이 그 내용을 학습하였다면 분명 아이들은 적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학생들은 이전에 우호 관계의 학습을 충분히 한 상태라고 들었지만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통신사행을 통한 조선 후기의 문화 교류 등은 세계 역사상 흔치 않은 선린우호의 사례입니다. 구로사와-전주에 내려오기 직전 나가이 선생님과 참배하였던 조선의 민예(民藝)를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지가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다는 것을 한국의 학생들은 많이 알고 있나요? 아사카와 다쿠미에 관해서는 상당히 많이 연구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그 일대기를 영화화하는 계획이 이미 실천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업시간에 그와 비슷한 내용을 학습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 이뤄야 조-글쎄요. 실은 교사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침 저는 올 3월말 일본 요코하마의 선생님이 방한하시는 시점에 계획을 세워 저희 학교에서 아사카와 다쿠미에 관한 수업을 공동으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참으로 놀라워했고 많은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일본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같은 나이의 한국, 일본의 학생들의 이해 정도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업의 주제와 내용 선정을 무엇으로 할지 지금 고민 중입니다. 그러한 사례와 실천이 양국에서 확대되어 간다면 또한 아시아적 차원에서 실천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 일입니다. 나가이-올 여름 북경에 다녀왔는데 역시 한일 평화교재 실천 교류회와 같은 성격으로 양국 회의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한국, 일본, 중국이 함께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함께 이해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역사 속에서 우호 관계를 찾아내고 후세들에게 전해주는 교육 환경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구로사와-저는 그동안 유럽에 가볼 기회가 많았어요. 모두 아시겠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는 우리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1960년대 초 프랑스와 독일은 국교 정상화 회담 이후 대등한 교류와 상호 협력의 관계 아래 선의의 경쟁상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인식과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조-일본은 한국과 아시아와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과거사에 대한 청산과 입장 표명을 분명하게 하고 상대방의 이해를 얻어내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한국 역시 진정한 화해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계 조류에서 시야를 넓히고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한일관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들과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마이산에 도착했습니다. 참 진귀하고 신기한 돌탑들입니다. 구경 후에는 전주비빔밥을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분 선생님과 가진 우정과 화합의 만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연수 | 생태사진가 양식장이 주된 사냥터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소리도 없이 양식장의 5배가 넘는 하늘을 배회하다가 물고기가 수면위로 부상하려는 순간에 낚아챈다. 이 때 물고기가 하늘의 움직이는 그림자를 느낄 수 없도록 멀리 사선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그야말로 쏜 살보다 빠르게 내리꽂는다. 날개도 활 모양처럼 굽혀 공기저항을 최소화 한다. 멀리서 물속의 움직이는 물고기들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도 발달됐다. 대부분 수리류들이 그렇듯 멀리 있는 물체를 클로즈업해서 볼 수 있는 망원렌즈와 가까이 다가와서는 광각렌즈로 바뀌는 줌 기능을 지녔다. 물수리 이동기 때는 전남 신안군 한 숭어양식장에 한꺼번에 3~4마리의 물수리들이 나타나 하루에 10마리 이상의 숭어들이 제물로 바쳐진다. 양식장 사장님은 숭어 값으로 따지면 하루에 10만원이 넘는 금액을 물수리에게 퍼주는 꼴이 되지만, 단 한 번도 물수리를 성토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과 더불어 먹고 산다며, 어린 시절 강 하구에서 숭어가 올라오는 물길 따라 찾아오던 물수리를 그리워한다. 전 세계에 단 1종 뿐 물수리는 전 세계에 단 1종 밖에 없다. 북아프리카, 유라시아대륙과 북미에 폭넓게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한 때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서남해안의 가파른 절벽에서 소수가 번식했지만, 곳곳이 개발된 지금은 번식지를 찾을 수가 없다. 가을철 러시아에서 월동하러 남하한 녀석들이 동서해안이나 강을 따라 멀리 제주도까지 이동하면서 탐조객들에게 이따금씩 포착되는 것이 전부다. 제주도 성산읍 하도리 양식장에서는 비교적 긴 기간인 11월부터 4월까지 이들을 관찰할 수가 있다. 물수리의 이동경로 중에 하나인 제주도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먹이를 포획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면위로 부상할 때 노려 몸길이 58~60㎝, 펼친 날개 길이는 147~169㎝나 되며,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머리와 배만 하얗고 온 몸이 짙은 갈색이다. 특히 머리에는 눈 주위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짙은 갈색의 눈 선이 있다. 다른 수리류에 비해 날개는 폭이 좁고 길며, 꼬리는 짧다. 해안가나 하천 하류에서 비교적 눈에 띄는 까닭은 바다에서 회귀하는 숭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수면위로 부상할 때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지만, 몸 전체가 물속으로 '첨벙' 빠지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2~3회 시도에 성공하지만 경험이 없는 유조들은 물고기의 부상 타임과 자신의 비행속도를 적절하게 계산하지 못해 여러 차례 실패한다. 물속에서 창공으로 비상해서는 여지없이 온 몸을 '부르르' 떨어 깃털에 스며든 물기를 제거한다. 공기저항 고려하는 비행술 물고기를 낚아채서 비행할 때는 공기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유선형의 물고기 머리가 앞쪽으로 가도록 조정한다. 잡은 물고기는 근처 갯벌이나 모래톱에서 시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멀리 이동해 방해꾼이 없는 나뭇가지 위에서 해치운다. 해안가에서는 떼 지어 집단 서식하는 갈매기들이 비린내를 맡고 달려들어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갈매기들은 떼 지어 쫓아 가다가 일정한 지역을 벗어나면 대부분 되돌아오는데, 경험이 없는 물수리들은 떼 지어 달려드는 갈매기들에게 놀라 잡아온 물고기를 떨어트려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때 떨어진 물고기는 갈매기들 차지가 된다. 나뭇가지 위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흔적도 없이 다 먹어 치우지만, 실수로 바닥에 떨어트릴 경우 이를 주워 먹지 않고 새롭게 사냥을 떠난다. *날렵한 물수리의 모습은 새교육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cafe.daum.net/parque) 비록 로마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포에니 전쟁(BC 264~146)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중소농민의 몰락과 토지의 집중화 현상 때문에 각지에서 소작농과 빚에 허덕이는 시민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공룡처럼 비대해진 로마 공화정이 위기를 맞이하였다. 권력의 달콤함에 중독된 공화정 그 이유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째, 어떤 조직이 방만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문어발식 경영으로 기업이 비대해지면 효율적인 경영이 어려워지고 고비용·저효율의 늪에 빠져들게 되어있다. 둘째, 포에니 전쟁이 끝나자 더 이상 로마를 상대로 대적할 나라가 없었다. 즉, 경쟁상대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나태함은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타락하게 만든다. 당시 지중해 세계의 부자나라 카르타고를 점령하고부터 이미 로마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서히 정복에 맛을 들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2세기에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정복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키아 일대를 정복하더니 헬레니즘 문화를 접하고 로마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마는 무력으로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오히려 문화적으로는 망해버린 폴리스가 정복자를 정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로마인들의 사치와 쾌락풍조는 로마 전체로 확산되어 낮에는 전차경기나 격투기 시합에 탐닉하였으며 밤이면 밤마다 광란의 향연으로 새벽을 맞이하였으니, 바로 이러한 상류층의 사치와 환락 풍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계층이 생겼다. 이전에는 귀족이건 평민이건 근검절약하며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했지만 이제는 '일하는 사람 따로, 노는 사람 따로'가 된 것이다. 공화정의 탈을 쓴 독재정치 시작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개혁이 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었다. 이는 빈농과 소작농을 없애는 방안으로 일정량을 초과하는 토지를 국가에 반환토록 하고 토지가 없는 농민에게 분배하려고 하였으나, 원로원과 사회 기득권과 부유층의 반대로 실패하고 그들 형제는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개혁시도의 물꼬를 터놓았다는 데서 역사적 의미를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렇게 표류하던 미완성의 개혁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불러왔는데, 마침내 민중은 군부를 통한 개혁을 기대하게 되었고 로마의 공화정은 1인 지배체제로 전환됨으로써 제정시대로 돌입하는 첫 단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원전 110년에서 105년 사이에 로마의 속주였던 갈리아(프랑스), 아프리카의 누미디아, 소아시아의 폰투스 등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로마인들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을 받게 되자 민중들은 군부를 통한 개혁을 기대하게 되어 결국 마리우스와 술라의 1인 통치로 이어지게 되었다. 더욱이 기원전 73년에 일어난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은 군부세력의 전면등장을 부채질하는 사건이었는데, 2년간에 걸친 반란은 로마 시민들이 군부에 구국의 결단을 촉구함으로써 로마의 민주정이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때 야심만만한 정치혼란의 해결사가 등장하였다. 그가 바로 마리우스의 조카인 카이사르(Caesar, Gaius Julius : BC 102~44)였다. 그는 민회의 지지를 받아 원로원을 억압하고 카이사르-폼페이우스-크라수스의 제1차 삼두정치를 출범시켰으나 크라수스는 파르티아에 원정하여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던 도중에 파르티아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여 카이사르-폼페이우스의 양자구도가 되었고,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원로원과 정적을 치기 위해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하여 실권을 장악하였다. 한편,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주하였으나 그곳에서 암살당하고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정복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5세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여왕으로 세웠으며 소아시아 원정에서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로마로 개선한 카이사르는 원로원으로부터 종신집정관이며 최고신관(最高新官, Pontifex Maximus)이 되고, 기원전 44년에는 전 로마군의 최고사령관(imperador - 황제의 어원)의 칭호를 받음으로써 실질적 군주제의 형태로 국정을 운영하였으나, 공화정을 수호하려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에게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암살당하고 말았다. 제2차 삼두정치의 승자,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기원전 1세기의 로마는 대외적으로는 영토상의 팽창은 사실상 정지되었으며, 대내적으로는 공화정이 붕괴되고 제정으로 정치형태가 옮겨가는 많은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그의 부장이었던 안토니우스와 양자인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부하였던 레피두스가 로마의 영역을 셋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삼두정치체제로 로마를 이끌었으나 야심에 찬 옥타비아누스는 이러한 체제를 깨뜨리고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시 이집트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의 시종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왕조였으며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을 추격하여 이집트에 왔을 때, 클레오파트라를 총애한 카이사르가 이집트 왕실의 내분을 정리하고 그녀를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여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의 관할지인 이집트를 방문하여 클레오파트라와 깊은 관계에 빠지고 말았다는 데에 있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것을 구실로 이집트 정벌을 감행하였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는 아내를 버리고 옛 상관(카이사르)의 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안토니우스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정적을 제거한다는 치밀한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안토니우스의 부인 옥타비아는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였음).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는 아그리파가 지휘하는 옥타비아누스의 함대에게 참패를 당하고 안토니우스는 자살,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를 이용한 자살로 두 사람의 비련은 막을 내렸다. 악티움 해전의 승리는 결과적으로 전 지중해 세계가 로마의 세력권에 완전 통합되었으며, 로마 안에서 공화제를 고수하려는 공화파의 입지가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로마로 개선한 옥타비아누스는 정치적 깜짝쇼를 벌였다. "본인은 로마를 위해서 해악을 끼쳤던 안토니우스를 평정함으로써 국내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므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으며 본인에게 위임된 모든 권한을 원로원과 자랑스러운 로마 시민에게 반환하는 바이오." 이러한 옥타비아누스의 정치 쇼에 대해서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그에게 공화제에서 가능한 직책과 권한을 부여하였다. 특히 그가 부여받은 칭호 가운데 임페라도르와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는 실질적인 제정시대로의 돌입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은 공화제라는 명분에서 이루어진 권력집중의 독재체제였다는 말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치세, Pax Romana 기원전 29년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독재권력을 싫어하는 로마인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자신을 프린케프스(제1시민)라 칭하면서도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통치권을 강화하였으며 종교적으로는 제국의 대사제로 군림함으로써 사실상 로마의 제정시대를 열었다. 우구스투스의 치세를 또한 '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고도 하는데,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개선하는 길에 당대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전원(Eclogae)》이라는 시집을 출간케 하였다. 그의 목적은 베르길리우스의 시적 재능을 이용하여 자신의 업적을 선전코자 하였다.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을 알아주는 데에 대한 보답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승리를 찬양하는 대작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아이네이스》, 즉 로마 판 《용비어천가》였다. 이렇게 아우구스투스 시대는 조용하고 전원적인 분위기로 흘러갔다(Pax Romana). 농부들은 다시 밭을 일구러 나가고 도시의 시민들은 혼란 이전의 평상시로 돌아왔으며 군인들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로마제국을 조용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적어도 '군인 황제 시대'이전까지는 말이다. 제국 내의 많은 도시에 교량과 수도가 설치되고 도로가 정비되었으며 제국의 수도 로마 시는 벽돌도시에서 '대리석도시' 상징되는 번영과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직업의 분화 등 사회전체에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졌다. 아우구스투스가 76세의 나이로 죽자, 그의 양자인 티베리우스 및 친족 4명이 제위를 계승하였지만 대체로 무능하였다. 특히 칼리굴라는 광기가 있는 군주였고 네로는 폭군이었다. 팔레스타인서 추방당한 유대인 폭군 네로가 자살하자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Titus Flavius : AD 69~79)가 제위를 계승하였는데, 황제가 되기 전에 유대인의 반란진압에 파견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위에 오른 그 이듬해인 서기 70년 아들 티투스를 보내어 로마군단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파괴토록 하여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아야 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이산(離散)의 유랑민족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추방하였을까? 로마인들이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기 전에 그곳은 이미 헬레니즘 국가의 영토였다. 유대인들은 우상문화를 철저히 배격하여 안티오쿠스 4세와 처절한 싸움을 벌인 바 있었고 이번에는 로마가 헬레니즘 국가를 정복함으로써 '유대인 버릇잡기'가 인수·인계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크게 작용하였다. 예수 탄생 이후 로마제국은 유대인 출신 나자렛 예수, 그리고 유대교와 유대 독립전선 등이 제국을 어지럽히는 근원이라고 생각하여 로마제국을 상대로 무장봉기를 일삼는 유대인들을 아예 소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협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서기 66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못살겠다. 갈아 치우자"며 대대적인 무장반란을 일으키자 서기 70년 로마제국은 티투스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군단을 현지로 파병하여 예루살렘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전이 잿더미가 되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독립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960명의 남녀노소가 '마사다 요새'에서 농성에 돌입하여 처절한 항쟁을 계속하다가 결국 서기 73년에 장렬한 집단자결로 로마제국의 탄압에 항거하였다. 그러나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2000여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를 전전하면서 갖은 핍박을 받고 20세기에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무려 600만 명의 목숨이 희생당하는가 하면, 1948년 이스라엘 공화국 탄생을 시발점으로 지금은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들과 민족적·종교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문화평론가 1989년 개봉, 교육 영화의 전형 영화에 있어 대개의 장르는 그 영역을 대표하는 일종의 전형이 되는 작품들이 있기 마련이다.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 첫 번째 문을 여는 교육 영화의 전형이 되는 작품은 단연 지난 1989년 개봉되어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피터 위어 감독의 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당시 교육 현장에 있었거나, 이후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들치고 이 영화를 접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는 시·공간을 초월해 교사와 학생 상호간에 파생될 수 있는 관계의 빛과 어둠을 공감적인 내용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월튼은 명문 사립고교로 명예와 전통, 규율 그리고 최고가 되는 것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 엄격한 기숙학교이다. 소수 정예의 학생들을 뽑아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리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월튼의 실체는 사실 비인간적인 입시학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긍심으로 가득 찬 이 곳의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불필요한 인격적 관계를 회피하고, 도리어 권위에 의한 지식 전달이 용이하도록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은 이미 죽어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기에 다만 아이들의 머릿속에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어질 따름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이미 세상은 '죽은 지식의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을. 여기에 영어 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된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 분)은 나름의 독특한 교육철학과 교수법으로 경직된 월튼의 완고함과 거기에 억눌린 학생들의 딱딱해진 가슴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키팅의 교육법은 그러나 생각 외로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곧 학생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첫 시간부터 월터 휘트먼의 싯구를 통해 자신을 '선장'으로 호칭해 달라 말하면서 스스로의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과 인격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일방적인 가르침의 원천으로서의 선생과 수동적 대상으로서 학생이 아닌 '카르페 디엠', 곧 '현재를 즐기고, 시간이 있을 때 활짝 핀 장미꽃을 거둘 수 있는' 생의 동료와 친구로서 말이다.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고통만을 강요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교에서 '오늘'의 소중함을 말하는 키팅의 외침은 학생들에게 마치 복음과 같은 소식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키팅의 가르침이 정점을 이루는 곳은 교탁 위에 올라서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설 것을 요구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그는 말한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한 번 봐. 설령 그것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 지라도 시도는 해봐야 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고려하지 말고 너희들의 생각도 고려해 봐. 너희들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해. 늦게 시작할수록 찾기는 더 힘들어 질 거야." 언제나 엄한 아버지 밑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강요받던 모범생 닐은 이렇듯 삶과 조건에 밀려나지 말고 과감하게 상황과 현실에 부딪혀 싸울 것을 요구하는 키팅 선생의 응원에 힘입어 아버지가 반대하는 연극에 출연하기로 결심하고, 뛰어난 형의 그늘에 묻혀 내면에 침잠한 채 살아왔던 토드는 그런 마음을 시로 부르짖을 수 있게 되며, 여자 앞에서 변변한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녹스는 낯선 학생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진심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키팅의 가르침이 늘 좋은 방향의 결실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카르페 디엠'은 도전과 자유의 정신인 것과 동시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방종과 무절제, 일탈의 객기를 불러 올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밤에 기숙사를 빠져 나가 시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비밀모임 '죽은 시인의 사회'를 시작하지만 이내 모임은 점차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들과의 어울림으로 쉽게 변질되고 만다. 더욱이 모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달튼은 치기어린 영웅심에 빠져 공공연하게 교장의 권위에 반항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메시지 이렇듯 자유란 언제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불안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 긴장과 불안이 제거된 자유란 참된 자유의 본질을 잃어버린 거짓에 가깝다. 기성세대는, 그리고 그에 가까운 가치관을 가진 일군의 교육자들은 언제나 '아이들 위해서' 라는 말로 너무나 쉽게 자유를 억압하고 안정과 보호를 추구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키팅은 자유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달튼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말한다. "카르페 디엠은 매 순간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라는 것이지 삶을 가지고 장난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오늘의 어리석은 장난으로 내일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행동은 결코 '현재'의 자유를 소중히 즐기는 사람의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해결의 열쇠는 손쉬운 자유의 박탈이 아니라 그들이 균형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려는 마음, 곧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은 오래 참음의 고되고 지난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랑의 마음에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내와 사랑의 길은 너무나 좁고 협착하여 가려는 이가 극히 적고, 규칙과 질서에 의해 운영되는 효율성의 길은 넓고 안전하여 가려는 이가 많다는 데 현실의 비극이 있다. 영화 속 키팅 선생이 아이들과 만나고 그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다소간의 과장이 섞인 이상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게다가 소수 정예의 엘리트 아이들을 모아놓은 기숙학교의 환경 역시 우리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팅이 아이들을 향해 품고 있었던 뜨겁고 순수한 열정만은 결코 비현실적일 수 없는, 참된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마음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꿈을 향해 날아오르려 했던 닐의 절망적인 죽음과 희생양으로 그에 대한 책임을 빙자한 누명을 쓴 키팅 선생이 학교를 떠나는 비극적인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그의 '진심'은 아이들의 가슴 속에 이미 작은 싹을 틔우고 있었다. 마지막 가는 키팅 선생 앞에서 가장 내성적이었던 토드는 엄격한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상 위로 올라서 그의 가르침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이에 다른 아이들도 잇달아 책상 위로 올라 '선장'인 키팅을 배웅한다. 시인 김지하는 말했다. 아무리 세상과 사람으로 인해 절망할지라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그렇다. 영화 는 말한다. 시인이 살아있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 그런 시대를 애곡할 줄 아는 선생님과 그 통곡을 가슴에 받아 안을 수 있는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Q. 퇴직급여를 계산할 때 재직기간은 어떻게 산정하며 퇴직수당 재직기간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 공무원연금법 제23조 제1항에 의거하여 연금법상의 퇴직급여 지급을 위한 재직기간은 공무원으로 임용된 날이 속하는 달부터 퇴직한 날의 전일 또는 사망한 날이 속하는 달까지의 연·월수에 의해 산정하는 기본재직기간에 임용 전 사병복무기간, 과거 군인·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원 경력이 있어서 해당연금법의 적용을 받았던 기간을 합산한 경우 그 합산 기간을 모두 가산한 기간을 말합니다. 재직기간이 길수록 퇴직 시 퇴직급여액이 많아지는 등 혜택이 크며, 그 기간은 33년을 초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퇴직한 날, 또는 그 다음날에 다시 공무원으로 임용된 때에는 퇴직으로 보지 않아 기본재직기간이 계속 유지(퇴직급여 및 퇴직수당을 미수령한 경우에 한함)됩니다. 그러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의 사용자로서 민간기업의 퇴직금 성격으로 지급하는 퇴직수당 재직기간을 계산할 때는 기본재직기간만을 가지고 산정하며, 휴직·정직 및 직위해제 기간이 있을 경우에는 그 기간의 1/2을 감축(공무상질병 휴식, 병역법에 의한 휴직, 고용휴직 등)하여야 하지만 퇴직수당제도가 시행된 1991년 10월 1일 이전에 임용되어 연금법을 적용 받고 있던 공무원은 기득권을 인정하여 연금법상의 재직기간을 모두 인정합니다. 퇴직수당은 공무원이 1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 또는 사망한 때에 재직기간에 따라 최종보수월액의 10~60%에 상당하는 금액을 퇴직 또는 유족급여와는 별도로 지급됩니다. 퇴직수당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액을 지급하는 사용자의 책임급여이며, 다른 급여와는 달리 재직기간 합산 시 반납하지 않습니다(다만, 퇴직한 날 또는 그 다음날에 다시 임용되어 퇴직수당을 수령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예외).(자료제공=한국교총 교권국)
올해 광주지역 일선 유치원과 고등학교 수업료가 3%씩 오른다. 1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다양한 교수.학습자료의 개발 보급, 교육여건 개선과 확충, 학교신설 및 학교시설 현대화에 대한 투자재원 확보 등을 위해 수업료를 인상키로 했다. 시 교육청은 "하지만 유례없는 폭설사태와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 등을 고려, 인상폭을 최소화 했다"고 밝혔다. 입학금은 전 과정에서 2004년도 금액으로 동결됐다. 고교는 1급지를 기준으로 연간 3만7천200원이 올라 127만800원으로 조정됐으며 유치원은 24만4천800원으로 인상된다. 이번 인상안은 시교육청 홈페이지와 게시판에 공고됐으며 2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친 뒤 1월중 최종 확정된다.
목원대가 교육부의 총장직무대행 임명에 대한 유권해석을 놓고 또다시 학내 구성원간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일 목원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교육부가 발송한 '목원대 총장직무대행 임면에 대한 회신'을 놓고 신-구 총장직무대행을 중심으로 한 이사회, 대학 보직자간 마찰이 우려된다. 교육부는 이 공문을 통해 '총장직무대행 임명이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아 법적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학사일정을 감안 최대한 빠른시일내에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총장 또는 직무대행을 임명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2월말까지 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하라는 교육부총리의 권고도 담겨져 있다. 이에 대해 임동원 전 직무대행측 보직자들은 "이번 교육부의 유권해석으로 현 최태호 직무대행은 물론 현 보직자 모두 직무가 즉각 상실된 것"이라며 "2일 오전 구 보직자들을 중심으로 교무회의를 열어 업무인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 총장직무대행 체제의 보직자들은 "교육부가 2월말까지 학교를 정상화하라고 한 만큼 학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사회에서 새 직무대행 등을 임명하기 전까지 현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맞서 양측간 충돌이 우려된다. 더구나 사태해결의 열쇠를 쥔 이사회도 현 이사장을 지지하는 이사와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사들로 양분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현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이사들은 학내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 이사장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보고 오는 7일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 해임과 총장직무대행 선임 등의 안건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A이사는 "학교를 최대한 빨리 정상화시키기위해 변호사 자문 등을 거쳐 오는 7일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며 "다소간 마찰이 있겠지만 장기적인 학교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사회가 이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이사 3명에 대해 교육경력 등 문제로 지난달 14일 법원에 '이사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상태여서 법원 결정에 따라 이사장해임안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학교법인 관계자는 "오는 7일 이사회 개최를 요구하는 공문이 접수된 상태이나 이사장의 직인이 없어 유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사회 소집을 위해서는 교육부 승인 등 정식 절차를 밟는 게 우선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목원대 한 구성원은 "각 구성원들이 각종 유권해석이나 법원 결정 등을 놓고 자기 입맛에 따라 해석하다 보니까 학교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며 "이사회가 빨리 중심을 잡아 학교 정상화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라며 말했다. 한편 목원대는 지난 6월30일 유근종 총장의 직무가 정지되자 권한대행 체제에 들어갔으나 이사장이 새로운 권한 대행을 임명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과반의 이사들 이 이사장 해임안을 이사회에 제출하고 강행하는 등 학내갈등을 빚어왔다.
경기도교육청은 1일 "올해부터 교원 전문성을 높이고 교육현장에서 잘 가르치는 교사들을 우대하기 위해 '수업우수교사제'를 도입,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 교육청은 이를 위해 다음달 도내 전 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우수교사 공모를 실시한 뒤 오는 10월말까지 교과전문가, 장학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각 응모자들의 수업실시계획서와 교육현장 등을 평가하고 11월께 최종적으로 수업우수교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도 교육청은 일단 올해 각 교과에 걸쳐 모두 100명의 수업우수교사를 선정할 방침이다. 수업우수교사로 선정되는 교사들에게는 인사상 우대와 포상은 물론 장학사.장학관 등 전문직 임용시 가산점이 부여되고 일정액의 연구비도 지원된다. 도 교육청은 앞으로 이같은 수업우수교사 선정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005년 최고의 화두는 ‘교원평가’였다. 1월 4일 이창희 리포터(서울 강현중 교사)가 교원평가가 시기상조임을 강조하는 글을 시작으로 1년 내내 꾸준히 e-리포트란에 올라왔다. 리포터들의 교원평가에 대한 의견은 5월 교원평가 논의가 본격화된 5월과 교육부가 시범평가 강행을 발표한 11월에 많이 탑재됐다. 그들은 주로 정부의 졸속적인 교원평가제 도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정책 실패의 원인을 교사에게 돌리려는 정부의 의도와 여론몰이식 추진방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수석교사제를 시급히 도입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특히 학부모·학생 평가 방식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 외에 평가의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점, 수업 중심 평가로 인한 부작용, 무비판적인 외국 따라 하기에 대한 우려 등이 지적됐다. 여론몰이식 정책 추진 비판 차석찬 리포터(대구 대륜중 교사)는 “교육은 즉흥적이고 일회성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실시하려는 교원평가는 일회성의 즉흥적인 평가다. 특정 여론에 의해 즉흥적으로 여러 검토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수영 리포터(강원 관동중 교사)는 “지지부진한 교육개혁의 물꼬를 교원평가 쪽으로 바꾸려 한다”며 교원평가 출발이 잘못되었다고 꼬집었다. 정병렬 리포터(경북 구룡포여종고 교사)는 “수업평가는 경험 많은 교사가 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비전문적 학부모와 미숙한 학생들이 평가를 한다면 객관성이 결여되고 신뢰성이 떨어질 것은 뻔하다. 어설픈 평가를 받은 교원에 대한 불이익은 누가 책임지나”고 우려했다. 장세진 리포터(전북 전주공고 교사)는 “지금과 같은 교육여건에서는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억지로 강행하려니까 문제인 것이다. 시기상조라는 것이지 교원평가제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고 소리를 높였다. 주5일제 수업에 대한 의견도 시기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탑재됐다. 김은식 리포터(충북 원봉중 교사)는 “내년도에는 격주 휴무제, 2007년도에 전면 시행하려던 계획은 내년도에 전면 시행으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며 아울러 주당 수업시수 축소 등 관계 법령을 수정하는 실질적인 대안 마련으로 변형된 주5일수업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며 전면시행을 앞당길 것을 주문했다. 이처럼 리포터들은 정부의 교육정책 발표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신속하게 현장여론을 전했다. 1월 4일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이기준 전서울대총장이 도덕성 문제로 임명 57시간 30분만에 사퇴를 하자 리포터들은 교육부총리의 자질문제 등에 대한 기사를 탑재했다. 대표적으로 이영관 리포터(경기 송호중 교감)는 “참여정부 들어 2년이 채 안된 사이 경질된 교육부총리가 모두 3명으로 임기가 각각 8개월, 12개월, 3일인데 점점 최단명 각료 기록을 깨고 있다”고 꼬집고 “중병이 든 학교교육을 치유할 믿음직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전문 의사 장관을 고대한다”고 기대했다. 다른 리포터들도 같은 마음을 전했다. 3월 부산시가 스쿨폴리스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가자 학교 폭력과 스쿨폴리스제에 대한 의견들이 많이 탑재됐다. 이창희 리포터(서울 강현중 교사)도 “학교폭력은 어떤 경우든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학교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경찰의 도움은 최후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며 학교문제 해결은 교육당사자들이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용 전기요금에 대한 의견들도 많았다. 특히 리포터들의 교육용전기요금 관련 기사는 지난 12월 7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교육용전기요금을 16.2% 인하하기로 결정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지는 지난 6월 29일 탑재된 서인숙 리포터(경북 상모고 교사)의 리포트를 계기로 교육용전기요금 인하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서 리포터는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던 교장선생님이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하는 학생 3명을 꾸중하는 것을 보았다. 학생에 대한 이러한 에너지 절약 교육은 교육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이지 에너지 사용료로 인해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며 비싼 전기료를 문제를 제기했다. 이 후 학교전기료에 대해 리포터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16.2%의 인하라는 열매를 얻어냈다. 초빙교장제 확대 보도가 나가자 이에 대한 의견들도 많이 탑재됐다. 대개는 우려와 반대 의견이었다. "주5일제 전면 실시하라" 리포터들은 교장 자격 없는 일반인도 언제든지 교장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찬재 리포터(충북 대가초 교감)는 “교장이라는 자리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자격도 없는 교장에게 2세 교육을 맡기려는 것은 자격 없는 조종사가 모는 여객에 몸을 맡기려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생각이다”고 우려했다.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교감자격증 폐지와 공모교장제 도입을 제안한 초·중등교육법 및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다. 리포터들은 교육현실과 교직특성을 모르는 개악법안이라며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학구 리포터(전남 함평 원평초 교감)는 “교원들의 전문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물론 교권을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교원사회에 엄청난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종만 리포터(충북 청원 강외초 교사)는 “학운위가 공모교장 도입 여부와 심사·선발을 결정하도록 한 것은 여론몰이용”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결정할 만큼 지금의 학교운영위가 성숙됐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대통령 비서실이 교육부를 거쳐 일선 학교로 내려보낸 ‘기능직공무원 호칭 개선’에 관한 공문 기사는 리포트란을 뜨겁게 달궜다. 백장현 리포터(대전시교육청 행정지원과)는 “일반직과 장학사들이 같이 근무하는 교육청 등에서는 장학사들이 일반직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행정직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고 해서 교원 권위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찬성했다. 위동환 리포터(서울 금천교 교감)는 “일부 교사들의 일탈에 의해 교권이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교권을 세워주려고 하지 않는 세태 속에서 정부까지 나서서 강요(?)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그렇게 남발해도 되는가”라며 반대했다. "스승의 날, 빨리 지나갔으면" 5월에는 스승의 날과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탑재됐다. 최진규 리포터(충남 서령고 교사)는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왠지 가슴 한쪽이 무거워진다. 각종 매스컴과 시민단체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마치 교사들의 가려진 치부라도 찾아낸 듯, 선심성 '촌지'와 '선물'을 추방하자고 야단법석을 떤다. 그러니 개학과 함께 두 달 남짓 의욕적으로 아이들 지도에 혼신을 다할 무렵에 맞닥뜨리는 '스승의 날'이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올렸다. 대입제도에 대한 의견도 꾸준히 탑재됐다. 조기철 리포터(인천강화고 교사)는 “학습 과정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면에서는 수시모집을 1차에 한해 진행하되 합격자 발표 시점을 대학 수능시험 보기 1주일 전 또는 시험 후 합격자를 발표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며 대입수시모집의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서종훈 리포터(경남 삼가고 교사)는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보면 정말로 일정한 점수에 맞춰 줄 세운다는 것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평가라는 것이 반드시 잘하고 못하는 것을 구별해주는 역할을 해야겠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상대평가는 분명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며 현재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대평가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최홍숙 리포터(충남 옥계초 교사)는 “나이 어린 교장들이 학교를 잘 운영해 갈 수 있으며 교사와 학생들 앞에서 권위가 설 수 있을까? 학교는 회사가 아니다. 새내기와 경력자가 공존하면서 서로 좋은 전통을 물려주고 배우며 인간을 교육하는 곳이다”며 교장 선출보직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옥순 리포터(전남 토지초 연곡분교장 교사)는 “정보화시대라고 하지만 아동의 심신 발달까지 정보화된 것은 아니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며 빨리빨리 조기 입학시켜서 콩나물 기르듯 길러내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가장 자연적이고 인간적이어야 할 학교를 인위적이고 경제적인 잣대로 재는 일만은 삼가해야 한다”며 무리한 학제개편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환희 리포터(강원 문성고 교사)는 “수시 모집에 따른 병폐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가 아이들의 내신 관리 문제라고 본다. 이제 남은 시험은 2학기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뿐이다. 수시 모집에 합격한 학생들이 더 이상 고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선생님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할 때”라며 수시 입학자들의 성적관리에 신경쓰자고 제안했다. 다양한 문제점, 다양한 해법 제시 그 외에 리포터들은 다양한 교육계소식과 교육발전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영대 리포터(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은 “취업과 대학진학에서 실업계 고교의 장점이 많은 만큼 중학교 졸업 예정자들은 실업계 고교 진학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며 실업계 진학을 독려했다. 이상규 리포터(충남 대천중 교사)는 중·고생 아르바이트가 탈선·학업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김선태 리포터(경기 원중초 교장)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에 대해서 이처럼 자연스럽게 친숙하게 만들어 주고, 자연스럽게 그런 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 중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갈 길을 그런 방향 '문화 창조자나 전승자 등'으로 결정하고 노력을 하는 어린이도 나오게 될 것이다”며 문화체험 교육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이은실 리포터(경기 갈매초 교사)는 자신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독서골든벨 대회를 소개하며 형식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독서교육방법을 현장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한교닷컴 리포터들은 다양한 해외교육 소식도 전했다. 오은순 리포터(공주대 교수)는 ‘나의 미국(프랑스) 체험’ 등을 통해 현지 교육소식을 전했다. 이외에 캄보디아 현지 학교에 근무하는 최진희 리포터는 캄보디아의 생생한 교육 실태를 전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