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80,593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올해도 각급학교에서 국감자료 챙기느라 수업 못하는 일이 벌어질 듯하다. 국회 교육위는 올해부터 국감자료를 CD로 배포한다고 하고, 총리는 국감자료를 국민 일반에게도 공개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종이 자료가 디지털화된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여전해 학교를 포함한 피감기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작년 국감에서 열린우리 복기왕 의원과 민노 최순영 의원은 경북교육청의 교육기자재 입찰 및 구매와 관련된 82만장 2.6톤의 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몽땅 전교조와 전공노에 넘겨 줘 물의를 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불법 사례에 대해 국회윤리위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올해도 이와 유사한 행태가 되풀이 될 것이 뻔하다. 지난 국감 때 교총이 전국에서 80개 학교를 표집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료 제출요구는 8월에서 10월초까지 집중되고 학교당 평균 40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시․도 교육위원들이 요구한 30건보다 더 많다. 교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국감자료 요구 행태는 겨우 몇 시간을 주고 막무가내 식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몇 년치 또는 포괄적으로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연초 교총은 국회에 자료 요구의 절대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방법 및 절차도 반드시 개선할 것을 정식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다. 국회의원들은 과도한 자료를 촉박하게 요구하는 행위야 말로 교사들에게 수업 하지 말고 자료나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과 진배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가 되면 교원들은 기대와 짜증, 허탈함이 교차한다.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가 파헤쳐지고 공교육을 살리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학교로서는 가장 바쁜 9, 10월에 열심히 자료를 챙겨 보내면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부디 올해는 막무가내 식 과도한 국감 자료 요구행태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교 교육 특성화를 위해 시범운영중인 자립형 사립고의 학생당 1년 학비가 많게는 1600만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31일 국회 교육위 소속 최순영(崔順永.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강원 횡성에 위치한 대표적인 자립형사립고인 민족사관고의 지난해 학생 1인당 학비는 1621만원이었다. 부산 해운대고와 전북 전주 상산고의 지난해 학비는 각각 1054만원과 1013만원에 달했다. 이들 자립형 사립고의 등록금은 일반고교의 3배였으며, 기숙사비, 특기적성교육비, 급식비 등이 학비의 나머지를 차지했다. 반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울산 현대청운고(400만원), 경북 포항제철고(331만원), 전남 광양제철고(261만원) 등의 학비는 일반 자립형 사립고의 25% 수준이었다. 최 의원은 "대부분 사학재단들이 현재의 자립형사립고보다 재정 수준이 열악한 만큼 자립형 사립고는 부유층 자녀를 대상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다"며 정부의 자립형사립고 확대 방침에 반대했다.
대전지검 공안부는 지난달 31일 대전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여훈구)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오광록(吳光錄) 대전시교육감에 대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또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오 교육감의 부인 이모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보면 후보자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후보자의 선거업무를 총괄하는 자가 징역형의 선고를 받으면 당선은 무효 처리된다. 오 교육감과 부인 이씨는 교육감 선거를 앞둔 지난해 1월 대전지역 교장 등에게 양주 270여병(시가 880만원)을 선물하고 선거운동기간을 전후해 전화 등을 이용,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다.
학생들의 개인차와 자율성을 고려한 학습과제 제시로 학생 개개인의 과제 산출물이 다양해졌다. 방학 전 교사와 학생의 개인 상담을 통해 자신들의 취약한 점을 보충하도록 하고, 관심 분야에 대한 ‘1집중 탐구’ 과제를 설정하여 조사 관찰 탐구하게 하였으며, 한 가지 이상의 체험 학습을 통해 이성적 감성적 체득의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가능하면 학생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하였고, 가족들과의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동행 동참할 수 있는 과제도 제시하였다. 개학 직후 과제물 전시회를 개최 우수과제물을 관람하도록 하였는데 어설프고 미숙하긴 했지만 학생들이 직접 작성하고 제작한 흔적이 엿보였다. 각종 폐품을 활용한 꾸미기 및 만들기, 동심의 세계가 잘 나타난 그리기, ‘1집중 탐구’ 과제의 해결을 위한 탐구 과정의 기록물 및 사진 자료, 체험학습의 보고서 및 감상문, 부족한 부분에 대한 노력의 산출물,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의 감상문 등 긴 방학 동안의 학생들의 소중한 과제물들이었다. 특히 ‘1집중 탐구’ 과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집중 탐구한 1학년 최지호의 보고물이 눈에 띄었다. 물론 부모님과 동행하여 장애인 편의 시설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고 사진으로도 찍었지만 이 학생은 평생 동안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장애인 주차장’, ‘점자 유도 블록’, ‘장애인 심벌 마크’, ‘리프트’ 등 편의시설에 대해 아주 훌륭한 학습이 되었을 것이다. 2학년 최지연의 ‘배추 씨앗의 싹트기’ 관찰 보고서는 파종하고 싹이 트는 모습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등 키우기 위해 한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느낌을 잘 정리하였다. 또한 변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활용하였다. 식물의 자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갖는 것은 정서순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되었다. 또한 폐품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들은 아동들만의 창의성과 미적 감각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2학년 유승현의 패트병과 컵라면을 활용하여 만든 인형은 야무진 표정과 종이 패션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4학년 이영서의 ‘화목한 우리 가족’이라는 가족 신문에는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가족의 소개는 물론이고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가족을 위해 할 일 등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사고가 잘 표현된 과제물을 보면서 독특한 아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1학생 1집중 탐구’는 어느 특정 분야에 많은 관심과 경험을 통해 폭 넓고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져 전문성(?)을 갖게 된 것 같다. 학생들 개성에 맞게 상담을 통한 과제 부여야 말로 개별화 교육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조전혁 / 인천대 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공동대표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과 관련한 논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대통령의 ‘나쁜 뉴스’라는 평가에 정부․여당 그리고 일부시민단체들은 ‘막말’까지 동원해가며 서울대 때리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수협의회,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등은 "서울대 입시안 파동은 대학의 순수한 교육적 개혁조치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호도한 것이고 헌법이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 침해로 규정한다"며 "이와 유사한 정부 간섭에 강력 대처해 나가겠다"는 말로 서울대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모 경제단체가 주최한 모임에서 통합교과형 논술을 강행할 뜻을 피력했고 나아가 “고교평준화 제도도 재고(再考)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단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논술고사 논란뿐만 아니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고교등급제 논란 등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의 변경은 어김없이 사회적 저항이라는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신뢰할 수 없는 내신, 변별력 없는 수능제도’ 하에서, 대학으로서는 ‘최소한도’의 자율성을 발휘한 고심(苦心)과 타협의 산물이다. 사실 대학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하나다. 물론 우리 헌법은 공익을 위한 기본권 제한을 허용한다. 그러나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나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것이 과연 공익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논증이 없이 서울대의 입시안을 규제할 경우, 정부는 ‘대학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신입생 선발과 관련한 대학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 왔다. “논술고사는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다” “고교등급제는 차별이다” 등 규제의 논리도 다양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러한 규제논리는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안타깝게도 정부의 그 어떤 규제논리도 비합리적이고, 타당하지도 않으며 나아가 반헌법적이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교육과 관련한 많은 실증연구결과는 정부의 규제논리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평준화는 과연 평준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에 정부는 결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 유독 교육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다양한 교육자료들은 학력격차가 현재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며 나아가 확대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몇 가지 증거를 들어보자. PISA 2000년도의 읽기성적을 전국의 고등학교별 평균점수로 살펴보았을 때 전체 150개 학교 중에서 최상위권 학교와 최하위권 학교간의 평균점수차가 무려 200점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다시 인문계 학교만을 비교해 볼 경우에도 150점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자료는 전국의 고등학교별로 실로 엄청난 학력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2001년도 치러진 전국규모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었다. 조사대상 175개 고등학교 중 최상위 10%에 속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체 대상학교 중에서 무려 39.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려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입시자료를 분석한 결과도 학교별 학력격차 현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국 1847개 고등학교 중에서 수능성적 상위 10%에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학교가 823개나 되며, 재학생 전원이 수능성적 상위 10% 이내에 들어 있는 학교가 3개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능점수를 통한 분석 역시 우리나라 고등학교간의 학력격차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증명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고교등급제는 인권침해(人權侵害)’라고 주장하면서 학력격차를 입시사정에 반영한 일부 대학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그들의 공격논리와 정확히 같은 논리로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앞서 소개한 고려대 입시자료 분석에 따르면 823개 학교의 ‘전교 1등’들은 나머지 학교의 전교 50등에도 미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재학생 전원이 수능성적 상위 10%에 속하는 3개 학교에 간다면 이들의 성적은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다. 다소 과장하면 ‘무늬만 1등급’인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무늬만 1등급과 진짜 1등급을 차별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고교등급제 포기는 더 많은 수의 ‘진짜 2등급’과 ‘진짜 3등급’에게 역차별을 강요하는 인권차별이다. 아울러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학력차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대학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필자는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의 인권차별 주장도 옳다. 그러나 똑같은 논리로 그 대척점(對蹠點)인 고교등급제를 포기하는 것 역시 인권차별이다. ‘어떤 것이 옳고, 정확히 그 반대도 옳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그렇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찬반논쟁은 어쩌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은 현재와 같은 학벌주의, 대학서열화 체제 내에서 고교등급제는 서열화를 더욱 강화하고 때마침 맞물린 대학의 선발권 강화는 등급제를 구조화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일부 강경론자들은 이러한 폐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대학마저 평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벌주의가 심각하다는 주장은 어쩌면 피해자(?)들의 과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컨대 작년 국정홍보처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학벌주의에 대한 설문조사는 이런 가능성을 증명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7.7%가 “우리사회에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다”고 대답한 반면, “실제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31.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학벌주의가 실재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민간부문의 빠른 성장은 최근 대부분의 사회영역에서 민간부문이 정부부문을 압도하게끔 만들었다. 능력에 근거하지 않은 학벌주의는 결국 기업 및 단체의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고도지식산업사회에서는 개인의 창의력과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학력주의는 논리적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최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내 모그룹의 신입사원 특강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다. 수강생 프로필을 통해본 신입사원들의 출신대학 분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위 ‘스카이 대학’ 출신은 전체의 20%에 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공계 신입사원의 경우 사회적으로 명문취급을 받지 못하는 어느 지방대학 출신이 가장 많았다. 학벌주의는 실재보다 과장되어 있거나, 사회변화에 따라 빠르게 완화․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와 논거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벌주의에 따른 폐해를 부단히 주장함으로써 사회적 공포를 유발․조장하고, 이를 고교등급제 반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저급(低級) 정치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 등 우리보다 앞선 나라에서도 문제점이 많아 포기하려하는 대학평준화까지 주장하는 것은 그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혹시 이들은 “계급(階級)이 국가나 국민보다 우선되는 가치다”라는 사회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현 교육시스템은 ‘국가에 의한 교육독점’과 ‘평준화’가 잉태한 저주받은 기형아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인을 그대로 두고 어떠한 교육정책에 관한 논의도 결국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교통시스템 자체가 잘못돼 있는데 신호등 한두 개를 고친다고 교통흐름이 나아지겠는가. 오히려 고치려고 나서면 신호체계는 점점 꼬여만 가고 운전자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킴으로써 전체 교통흐름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고치고 또 고쳐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교통체계와 비유하자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나 고교등급제 금지는 녹색신호가 교통사고를 부른다고 섣불리 예단하고 모든 신호등을 적색으로 바꾼 격이다. 일견(一見) 좋은 취지의 정책이 ‘항상’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적 결함’ 때문이다. 현 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결함은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을 억압하는데 있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좋은 학교를 원하고, 학교가 좋은 학생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모두가 좋은 것만을 추구해서 문제가 생기니 차라리 좋은 것을 없애자’는 식과 다름이 없다. 그 구체적인 증거의 하나가 고교평준화가 초래한 ‘하향불평준화(下向不平準化)’다. 그 어떠한 사회시스템도 유인(誘引)구조가 허약할 경우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주의 경제가 왜 망했는가? 사회주의가 내거는 평등, 공평 등의 구호들은 절절(節節)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력을 가졌지만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유인구조는 사회적 자원을 낭비시킨다. 사교육의 기승, 공교육의 피폐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유인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재의 교육시스템 하에서는 학생도, 교사도 학교교육에 충실할 이유가 없다. 학교가 학생들의 놀이터거나 낮잠장소가 된 것도, 교사들이 관료화되고 학교가 관청화된 것도 바로 이런 잘못된 유인구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교육이 지속적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또 다른 주요요인은 교육의 국가독점이다. 우리 교육시스템은 공급주체인 국가가 교육의 유인구조를 결정하는 실로 편향적인 시스템이다. 일반 시장에서라면 유인구조는 거의 절대적으로 소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서 교육소비자인 학부모와 학생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개혁실험이 있었지만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식정보산업사회에서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 개발은 필수적이다. 때문에 현대의 교육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소비자욕구에 부합되는 교육을 원한다. 그러나 최종교육공급자인 일선학교는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어 변신할 수 있는 능력도 의욕도 없다. 예컨대 학생들이 중국어, 일본어, 서반아어를 제2외국어로 수요하더라도 기존교사의 수에 맞추어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공급이라도 수요를 창출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공급과 수요가 각자 따로 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의 교육 게임은 모든 교육주체가 피해자가 되는 ‘잃는 게임(loser's game)’을 피할 수 없다. 현재 비난받고 있는 대학도 역시 피해자의 하나다. 사회에서는 불량품을 양산한다고 아우성이고, 불량원료(?)를 최소화해 품질관리를 하겠다고 하면 차별이니, 정부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느니 온갖 비난을 쏟아 붓고 간섭한다. 대학인들 국․영․수 문제풀이 기술자를 선발하고 싶겠나. 문제는 획일화된 교육과정과 정부간섭에 있다. 세상이 어떻게 또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고집스레 강요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양하고 독특한 가치와 커리큘럼이 서로 경쟁하고,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 자율성이 신장되고 그에 걸 맞는 책임을 지지 않는 한,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엇박자는 계속될 것이고 사회적 혼란과 국론 분열은 가중될 것이다.
이민정 /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사회적으로 파장 일으킨 고교 등급제 작년 9월, 교육부는 일부 사립대가 수시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였다는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단체의 의혹제기를 토대로 서울시내 몇 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고교등급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2005학년도 수시1학기 전형과정에서 일부 대학이 고교간 학력 차이를 학생들의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형태로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것이 밝혀졌다. 이 대학들은 고교 내신성적을 불신하여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성적의 실질반영률은 낮추는 반면 서류평가, 논술․면접의 영향력은 높이고 지원자 출신고교의 최근 3년간 해당 대학의 입학자수, 수능점수 등을 서류전형에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고교등급제는 출신 고교의 진학실적이나 수능성적 등을 토대로 고교의 등급을 매기고, 이 등급에 따라 대학입학 전형시 특정고교 출신 학생들의 내신성적에 가산점이나 감점을 부여하여 고교간 학력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기여입학제․본고사와 더불어 '3불정책'으로 금지되고 있는 사항이다. 이러한 전형방법은 학생 개인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과 관련 없는 외적 요소에 근거한 평가로 공정한 전형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무시한 채 학생을 선발한다면, 우수한 학생들이 역차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교등급제는 간단히 거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개선방향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실재하는 학력차 무시가 오히려 차별 고교등급제는 1999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수목적고 출신 학생에게 적용되던 비교내신제가 폐지되고, 2002학년도 대입전형부터 다양한 전형기준과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이 강조되면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학이 요구하는 특정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미리 선발하기 위하여 도입된 수시모집제도가 각 대학들의 성적 우수학생을 선점하기 위한 조기입학제도로 변질되면서, 대학 측에서의 고교등급제의 필요성은 높아졌다. 내신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능성적 없이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고교등급제는 대학으로서는 상당히 필요성이 높았던 제도였다. 대학을 비롯한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의 도입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러한 차이를 대입전형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성적과 일반고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동일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에 지원한 학생과 학교 측에서 학생성적에 대한 정확한 판단자료를 제공해야하나, 실제로 고교에서 제공하는 전형자료들은 내신 부풀리기 등으로 변별력이 부족하고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2008학년도 이후부터는 내신과 수능 성적이 9등급으로 표기됨에 따라 두 중요한 전형자료의 변별력이 더욱 약화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내신 반영비율 또한 확대해야 되기 때문에 대학 나름의 내신성적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적이지 못한 제도로 용납 어려워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고교등급제의 실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내신성적이 전형자료로서의 효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학 자체의 우수학생 선발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는 바람직하나, 학생 개인의 성취와는 무관한 고교등급제는 교육적이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우선, 고교등급제는 학생 개인의 성적이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출신학교 학생들의 성취수준이든 진학실적이든 외부기준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특히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국의 고등학생의 약 60%가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다. 대학입학이 학생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출신학교나 거주지역에 의해서 영향 받게 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고교등급제는 대학이 원하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수시모집의 취지를 부정하고, 오히려 경쟁적으로 다른 대학보다 먼저 성적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원래 수시모집제도는 학업성적이라는 획일화된 학생선발기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특기와 적성, 경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여 대학교육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더하고자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였으나, 우수학생의 기준을 성적으로만 판단하는 대학들의 안일한 태도로 인하여 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입시준비가 가정환경, 사교육 등 배경변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현실에서 고교등급제 도입은 교육여건이 불리한 처지의 학생들이 선발될 여지를 차단할 우려가 있으며 이는 계층간․지역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 문제 일반적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대학의 고유 권한이며 대학의 자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고교등급제를 비롯한 기여입학제, 본고사 등 그 실시 여부는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정부차원에서 항상 규제가 있어왔으며, 현재까지도 3불정책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대학입시에 규제를 가하게 되는 것은 학생선발을 위한 교육적 필요가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에서부터 출발한다. 대학에서의 학생선발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적 선발까지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집단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 또한 존중해야 하지만 사회적 공공성도 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교등급제 문제도 이러한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 사이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학생선발 편의를 위하여 고교등급제를 활성화 할 경우, 대학에서 선호하는 지역과 학교로의 학생 이동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겐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어 지역간․계층간 갈등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간 학력차로 인하여 대학들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형방법을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기는 어렵다. 즉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교육의 사회적 공공성의 가치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교등급제 문제에 한해서는 대학의 자율성보다는 사회적 공공성 측면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시가 사회에서의 선발기능을 대신한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기능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학생선발에 공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학교별 학력차가 존재한다고 해도 학교별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고교등급제는 대학입시에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일부 대학의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대학을 공격대상으로 삼아 갈등을 증폭시켜 대학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PAGE BREAK]여전히 존재하는 학교 간 학력의 격차 대학입시에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여전히 학교간 학력차 문제는 남아있다. 교육에 있어 평등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이는 교육기회의 평등이지 교육결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입시규제나 변별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들 또한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고교등급제도 학생선발에 대한 변별력이 확보되지 못하여 고교간 학력격차를 변칙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질적인 학력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도외시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나 불평등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목고나 성취수준이 높은 학교 재학생의 경우는 역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력차이는 인정하되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와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지역간․학교간 학력차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교육여건을 비롯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아닌지, 지역간․학교간 학력차를 줄이고 모든 학생의 학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살펴보고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다. 고교등급제 논쟁은 대학의 고교 내신성적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고교 내신성적 자료가 학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였다면 고교등급제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학교생활기록부를 교과성적 위주의 서열화 자료가 아닌, 학생의 학업성취기준 도달 정도에 대한 객관적 제시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대평가로 성적을 표기할 경우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 본고사를 비롯한 내신 이외의 다른 대학별 전형들이 불가피해진다. 둘째, 고교 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학년별․교과별 교육과정에 따라 학업성취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근거하여 학생들의 성취도 수준을 엄정하게 평가하여 교사평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이렇게 작성된 고교 학업성취 결과를 대학별․모집단위별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측은 다양한 전형방법 개발해야 대학은 학생선발에 있어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대학은 성적위주의 학생선발에서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는 데에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대학교육에 필요한 자질을 타당하고 신뢰롭게 평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모집단위별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학의 학생선발은 그 자체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발기능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공공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학교간 학력차를 반영하여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이라면 누구든 적절한 고등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불리한 계층에 대한 배려 또한 필요하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지역간․학교간 학력격차를 없애는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학생 개인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교육여건 불평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학력격차의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기회의 평등한 제공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수준에서 학력진단 평가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부진학생에 대한 책임지도를 강화하고 학생의 수준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및 다양한 교수․학습자료를 개발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불평등한 교육여건으로부터 학력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소외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학대를 통하여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대학의 학생선발은 일반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는 일정 부분 사회적 선발기능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과 더불어 사회적 공공성 또한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 고교등급제는 대학의 고교 내신에 대한 불신, 학생선발의 변별력 저하 등으로 인하여 대학이 자율적으로 개발한 전형방법이지만 학생 개인의 성적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교 등급을 나누고 이를 전형에 반영한 것은 공평하지도 신뢰롭지도 못하다.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서는 신뢰로운 내신성적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하며, 대학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교육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학생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에서 학력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현호 /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일부 사립대학들의 통합형 논술을 통한 학생선발과, 특목고학생들을 동일계 선발이 아닌 특기자 선발로 확대함으로써 특목고 특혜라는 신(新)고교등급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잘하는 학생이 피해보는 것은 문제 논란의 핵심은 내신을 강화하여 대학입시를 치름으로써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절감하자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대학입장에서는 학교마다 실력이 다른데 일률적인 내신적용과 내신의 비중 강화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를 살펴보면 평준화지역, 비평준화지역, 특수목적고, 자립형사립고, 실업계고 등 다양한 형태가 있고, 학생들의 학력도 도농간, 강남북간의 차이에서 보듯이 지역별, 학군별, 학교별 차이가 완연하다. 일부 대도시에만 평준화가 존재하지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에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교육과정과 학력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하게 학교 내(內) 상대평가를 통하여 입시에 비중을 높인다는 것도 비정상적인 말이다. 교육부의 2008 학년도 대학입시안이 상대평가로 인한 내신비중의 강화로 인하여 현재 고1 교실은 큰 혼란을 맞고 있다.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고액의 사교육과, 고위층자녀로 무장된 듯한 여론과 언론의 비판은 어이없을 정도다. 3불 정책(본고사 금지, 기여입학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을 찬성하는 쪽이 기득권층이라고 하는 의견이 있는데, 노력하여 공부를 잘하는 것도 기득권층인지 묻고 싶다. 필자가 특목고에서 학생을 지도한 경험에 따르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바른 가정교육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학생들로 대부분 서민의 자녀이고, 바른 국가관과 창의성을 지닌 이 나라의 인재임에 틀림이 없다. 내신 비중의 확대는 곧 이러한 수월성 교육을 받고 있는 일부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등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평준화라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지만, 똑똑한 인재를 키워 성장시키는 것도 국가의 몫인데, 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면 이 제도도 문제가 있다. 모든 고교 내신 동일취급은 부적절 이 때문에 고교등급제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어려운 가정환경․사회적 조건과 교육인프라 등의 제약으로 인하여 가능성의 기회조차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대학에 농어촌 전형이나, 서울대 입시안의 예를 들면 어려운 지역의 실정을 감안하여 지역할당제 등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하고 잘하는 학생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특목고의 경우 일반계고처럼 학생들이 0.05%, 0.1%라는 내신을 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전교 1등의 석차백분율도 7~8% 정도이다. 따라서 정시모집의 일반전형으로는 일반계고 학생들에게 내신성적에서 뒤져 수능이나 논리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도 입시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만회해 주기 위한 특목고에 일부 쿼터를 정해 선발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신(新)고교등급제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전국 2095개의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수시든, 지역할당이든, 정시든 진학시킨 고등학교는 823곳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고교의 내신을 동일하게 취급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이것이 평등에 어긋나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횡포라 운운하는 것은 진정으로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본다. 학생 선발의 권한은 대학에 맡겨야 고교등급제를 그 대학에서 실시하든 실시하지 않던,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살아남아야(?)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시스템을 못 갖추고 일부지역에 편향적이라면 그 대학은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고 지역주의 대학으로 낙인찍혀 사회적 인식이 추락하고, 대학으로서의 위상의 실추와 나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실력이 있는 학생이 그 대학을 못 갔다면 그 좋은 실력으로 자신을 뽑아주는 더 좋은 대학을 가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평등지상주위와 학력지상주위를 부추기는 일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더 이상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없어야 하겠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하여 학생 선발권과 관련한 일련의 사항은 대학에 맡기는 것이 옳으며, 우리는 그 대학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과 조언을 하고 늘 지켜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위태로운 공사현장의 희귀조 멸종위기의 세계적인 희귀조 검은머리갈매기(Larus saundersi, 환경부 지정 법정보호동물 36호) 20여 쌍이 인천신공항 화물청사 인근 마른 갯벌에서 집단 번식하고 있다. 둥지에는 2∼3개 알들을 산란하고 있다. 암수가 교대로 둥지를 지켰고 먹이를 구하러 10㎞이상이나 떨어진 갯벌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둥지는 비교적 메마른 굳은 땅 위에 마른 칠면초를 이용했으며 둥지간 거리가 10∼20m정도로 밀도가 높았다. 이들은 지나가는 차량과 공사중인 포크레인에는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았으나 반경 2㎞이내에 사람이 들어오면 일제히 비상하여 사람의 머리 위 1m까지 하강하여 공격하는 등 괭이갈매기보다 대담한 공격성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곧 빠지면 3분이 채 못돼서 둥지로 돌아가 안정을 되찾았다. 6년 만에 1/5로 줄어들어… 지난 1999년 4월 22일 필자는 인천광역시 영종도 신공항 주건물 공사현장에서 동북쪽으로 3㎞ 떨어진 메마른 갯벌에서 번식중인 검은머리갈매기들을 처음 발견하여 환경부에 보고했었다. 이때 이곳에서 번식중인 검은머리갈매기 개체수는 100여 쌍이 넘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05년 6월에 그 숫자는 1/5이하로 격감했다. 이곳은 3면이 수로로 둘러싸여 천적이 접근하기 어렵고, 칠면초, 해옥나물 등 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이들의 번식지로 최적이다. 그러나 이곳도 매립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공사가 완성된 이후면 검은머리갈매기들은 더 이상 이곳에서 번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지구상에 7000여 마리가 생존해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습지보존연대회의(RAMSA)에서는 그 1%인 70마리가 서식하면 람사사이트로 지정하고 있다. 람사협약에 가입한 한국에서 그 기준을 따르면 영종도 신공항은 당연히 들어설 수 없는 곳에 건설되었다. 희귀조류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검은머리갈매기들은 번식을 위한 산란에 27∼29일이 소요되며, 성장에는 29∼32일이 걸리는 등 산란과 날기 위한 기초 성장에 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한국 순천만과 중국남부에서 주로 서식하며 낙동강에서는 겨울철에 50∼60여 마리가 발견된다. 97년 순천만에서 최대 개체인 1100여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전 세계에 7000여 마리 가 있으며 한국에 1100여 마리 정도가 오간다. 한국, 북한, 중국을 포함한 발해만과 내륙인 몽골지역에서 서식하는 검은머리갈매기는 주로 한국의 경기만에서 번식한다. 번식에 성공하면, 한국의 서남해안 갯벌을 따라 이동, 겨울철에는 전남 순천만과 일본 해안가, 중국남부에서 월동한다. 월동지인 일본에서는 해마다 검은머리갈매기의 숫자를 카운트하며 그 보호에 혈안인 데 비해 정작 번식지인 한국에서는 일부 조류에 관련된 학자나 환경단체에서만 이슈를 제기할 뿐 그 존재가치를 모르고 있다. 번식지를 보전하기 위한 배려 필요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이름을 붙인 전 세계의 동·식물은 약 140만 종. 이들 중 하루 평균 136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적어도 매년 250∼300여 종에 이르는 야생 동·식물이 한반도 내에서 멸종되고 있다. 검은머리갈매기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국제관문인 인천공항에 첫 도착한 외국인들이 멸종위기의 국제보호조인 검은머리갈매기가 대규모로 서식하는 광경을 본다면 한국의 대한 인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모순 속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관계당국인 환경부와 건설교통부는 지금이라도 검은머리갈매기의 영종도 번식지를 매립하지 말고 내년에도 이들이 찾아와 안전한 번식을 하도록 범 국가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 이곳은 주요건물이 들어설 곳이 아니고 활주로에 인접한 배후습지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안전운항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존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귀여운 검은머리갈매기의 새끼들의 모습을 새교육 9월호에서 확인해 보세요.
조현호ㅣ울산 옥현초 교사 절터 찾아가는 길 벌써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네요. ‘시간은 화살처럼 난다’는 서양 격언이 실감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합시다. 이번 호와 다음 호는 옛 절터를 찾아갑니다. 절터란 절이 있던 곳입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퇴락하여 망한 절도 있고, 외침으로 스러진 절도 있으며 이념에 의한 탄압으로 종적을 감춘 곳도 있습니다. 회암사터나 미륵사터, 청룡사터처럼 웅장한 규모의 절터도 있고 초석 몇 개만 달랑 남은 작은 규모의 절터도 있습니다. 황량한 들판이나 우거진 숲속에서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며 줄곧 그 자리를 지키는 그곳에 가면 ‘아, 내 속에 내가 있었구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유물이나 유적은 나그네로 하여금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흔한 들꽃 하나도 보물이 되어 다가옵니다. 그럼, 절터로 떠나볼까요? 호국사찰 금당엔 소나무가 주인으로 - 원원사터 원원사는 안혜, 낭융 등 네 대덕이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안혜와 낭융의 제자였던 광학과 대연 등은 고려 건국시 해적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명랑법사의 법맥을 이어받았는데 명랑은 신인종(神印宗)의 시조였습니다. 그 자신 또한 문무왕때 당나라를 비법으로 물리쳐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원원사는 법(法)으로써 외침을 극복하고자 했던 호국사찰로 창건되었습니다. 높은 축대 가운데에는 돌계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계단을 오르면 쌍탑과 석등이 나타납니다. 쌍탑은 윗기단에 십이지신상을,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고부조로 새겼습니다. 통일 이후 탑에서 인왕상을 대신하여 사천왕상이 등장하고 윗기단에서처럼 십이지신상이 처음 등장하는 점이 인정되어 최근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탑과 서탑을 오가며 12지 동물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안타깝게도 양쪽 탑 어디에도 뱀을 볼 수 없습니다. 아직 문화재 안내판조차 세워지지 않은 이 탑은 대표적인 ‘초고속 승진형’문화재입니다. 이전까지 이 탑은 사적에 뭉뚱그려 포함될 뿐 국가나 시·도로부터 지정 유형문화재로는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화답사 붐을 일으킨 한 교수가 문화재계 수장이 되면서 국가지정 유형문화재인 보물로 격상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지위가 격상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복권에 당첨되어 소위 대박 맞은 경우라 하지 않을까요. 시대를 잘 타면 사람도, 문화재도 출세하나 봅니다. 탑은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가지정 보물이 되었지만 제 마음속 보물은 두 탑을 바라보고 있는 금당터입니다. 금당 주인인 부처는 사라졌고 그 자리엔 초석을 비껴가며 굵직하게 잘 자라준 소나무들이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원원사의 폐망과 함께 흙이 덮이고 그 위에 작은 씨앗들이 날아와 금당의 새 주인으로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요. 그래서 감히 그 연륜에 존경하는 마음을 보태고 싶은 것입니다. 나를 묻으러 가는 길 - 무장사터 '무장사'라 하면 저는 개구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니까 지난 3월 경칩이 막 지났을 때였습니다. 절터로 가는 길은 갓 겨울잠에서 깨어난 연갈색 개구리들로 지천이었습니다. 막 땅을 헤집고 나온 놈들이라 사람을 피하지 않아 행여 밟을까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떼며 계곡으로 들어갔었지요. 지난 7월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제 제 색을 입고 건강하게 자란 놈들이 곳곳에서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미타조상사적비가 서있었을 비좌 안에는 무당개구리 몇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어 마치 이 절터를 지키는 금와보살인듯 했습니다. 《삼국유사》 편에는 신라 38대 원성왕의 아버지가 숙부 파진찬을 추모하여 무장사를 세웠고, 소성대왕의 비 계화왕후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 위쪽에 아미타전을 짓고 아미타불상을 조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장사(?藏寺)란 이름은 태종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 깊은 골짜기에 병기와 투구를 감추어 둔 곳이라 해서 유래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이 입지했던 곳은 경주 동북쪽 암곡리 북쪽으로 골짜기가 깊고 험준한 곳입니다. 암곡(暗谷)이라는 지명에서 예상하셨겠지만 지금도 비포장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오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급한 사람은 절터를 찾기도 전에 포기하고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걸으면서 활엽수 가득한 숲을 감상하고, 계곡을 열 번 남짓 가로지르면서도 물이 옷에 젖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속세에서 알게 모르게 습득한 사악함을 모두 버려야만 나타나는 절터, 그래서 이곳은 나를 묻어 감추러 가는 길입니다. 현재 아미타조상사적비의 이수와 귀부, 삼층석탑이 남아있습니다. 사적비의 비신은 없어졌지만 일부 비편을 통해 이곳이 무장사임이 밝혀져 기록과 유물이 일치하는 곳입니다. 귀부는 창림사터의 그것과 같이 특이하게 쌍귀부입니다만 목이 절단되는 등 파손상태가 심합니다. 특히, 비좌 둘레에 십이지상을 조각하여 희귀한 경우를 보여주네요. 현재 여덟 종류의 십이지가 확인되지만 나머지는 파괴되어 볼 수 없습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 3층 몸매를 가진 전형적인 통일 후 석탑입니다. 탑 윗기단엔 안상(眼象)이 두 면석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나눔의 미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왕실의 원찰로, 통일 후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무기와 투구를 묻어두었다는 이 절은 고려 중기 경에 폐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자가 우주를 받들고, 극락조가 날아다니고 - 영암사터 저는 경남 합천 삼가란 곳에 초임발령을 받았습니다. 영암사는 초임지에서 가까이 있었는데 직원연수로 처음 다녀온 후로는 그 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학교 아저씨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려 절이 나타날 쯤이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듯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해야 했습니다. 특히 가는 길에 만나는 오래된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울 때면 그 아름다움에 취했고, 모산재 깊숙한 땅속에서 나오는 약수는 감로수와 같았지요. 초임이라서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 힘들었을 때면 이곳에 와 쌍사자석등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심기일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영암사터는 내겐 발령동기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 친구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찾아도 한적한 느낌이 좋았었죠. 하지만 이제는 황매산과 모산재를 등산하려는 사람들에겐 명물이 되었고 특히 절터를 답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답사1번지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가진 매력이 무엇이냐고요? 한둘이 아닙니다. 우선 절터를 들어섰을 때 잘 다듬어진 석축이 눈에 들어옵니다. 돌못으로 석축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고 치성과 같이 요철을 두어 조형미가 풍깁니다. 특히, 쌍사자석등이 자리한 석축은 자칫 사각이 주는 밋밋함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돌출한 석축 좌우에 무지개 모양의 둥근 계단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계단 폭이 아주 좁아서 겸손하라는 계시를 던집니다. 쌍사자석등은 석축 아래에 서서 바위산인 모산재를 배경으로 올려다 볼 때 최고의 멋을 부립니다. 석등을 한가운데 두고 내 몸뚱이를 좌우로 조금씩 이동하면 모산재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과히 영암사 답사의 절정이라 하겠습니다. 이 석등은 풍화에 의한 상처를 보이지만 매끈한 속리산 쌍사자석등보다는 인간적이고 박물관에 갇혀있는 중흥사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젖살 오른 사자 두 마리가 모산재의 절경을, 푸른 하늘을, 우주를 받치는 모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금당터를 지키는 역할은 여섯 마리 사자가 맡았습니다. 사자의 형상이 확실한 놈들도 있지만 개와 같이 귀를 반쯤 접은 넉살좋은 놈들도 있습니다. 삼면에 두 마리씩 자리하고 있는데 북쪽 면에는 새기지 않은 것이 이색적입니다. 아마 신령스런 바위들이 있기에 권속이 필요 없나 봅니다. 금당터 사면 계단에 만들어진 난간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가릉빈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극락정토에 산다는 이 새는 사람의 형상인데 날개를 가지고 있어 극락조라고도 하지요. 이 금당이 곧 극락정토임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정작 이 친구 이름이 영암사였는지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일대에 수많은 절들이 있었는데 이곳이 영암사임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서금당지에 남은 귀부 두 점의 주인공도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영암(靈巖)이라는 이름마냥 사력 또한 신령스러운 곳이라 봐야겠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사랑 - 만복사터 생육신이었던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 아래 용장사에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습니다. 금오신화 중 의 배경이 남원 땅 만복사터입니다. 만복사저포기는 노총각 양생과 왜란 통에 죽은 처녀귀신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애틋한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김시습이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만복사는 퇴락하였던가 봅니다.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해서 이긴 양생에게 드디어 천생배필이 등장하고 두 사람이 절에서 사랑을 나누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자방이 있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자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 가지였다. 양생은 그녀가 혼령임을 알게 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여인이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는데도 말입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사흘 저녁이나 잇따라 재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양생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정업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랑과 영혼’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었지요? 그 영화의 원조격인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오늘도 만복사 넓은 터에 애잔하게 전해오고 있답니다. 이름 잃은 그대여 사료가 남아있어 그나마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곳도 많지만 대부분의 절터는 이름도 없이 그 지역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장항리절터가 그러합니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한 자락에 우뚝 솟아있는 절터인데 불대좌와 쌍탑, 금당터가 남아있습니다. 장항리(獐項里)라는 지명답게 국보 236호로 지정된 서탑이 고개를 쑥 내민 듯 우르러 보입니다. 이곳 쌍탑 배치는 독특합니다. 금당터 중심에 자리한 불대좌를 중심으로 해서 두 탑이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이웃한 감은사탑이 금당을 뒤로 두고 쌍탑으로 서 있는 것과 같이 일반적인 쌍탑 배치 형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죠. 그 이유는 훼손이 심한 동탑이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절터가 서 있는 곳 양쪽으로 계곡물이 흐르는데 물난리를 맞으면서 절터가 유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쪽 절터의 유실이 심해서 동탑이 계곡에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동탑 부재를 모아 비교적 안전한 서탑쪽으로 옮겨 두었던 겁니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은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강합니다. 아래기단에는 비천상을 새겨 두었고 윗기단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두었습니다. 관덕마을이란 어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아기자기함이 이 절터에서 느껴집니다. 이정표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한참을 헤매다가 마을뒷길을 따라 절터에 올랐을 때 저는 이미 감상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감상은 과거에 만났던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냅니다. 자그마한 탑이 비천상으로, 사천왕으로, 돌사자로 치장을 하고는 혼자서 절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한참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죠. 이름마저 잃고 동네 마을 이름을 갖다 붙여 놓았지만 분명 이 절도 분황사처럼 향기로운 이름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대, 관덕동 석탑에게 그대 / 안으면 쏙 안길 듯 / 어이해 홀로 골바람 맞고 서 계신가 / 몸서리치는 내 사랑아 / 그대 / 사천왕으로, 보살로 예쁜 화장을 하고 / 돌사자로 하여금 너를 돋우게 하여 / 맘껏 멋 부리려는 구나 / 천녀들이 날개 달아 / 부처의 나라로 데려갈 듯하구나……. / 그대, 자네 / 그 자리 잘 지키고 계시게나 / 첫사랑에 목멘 사람 있거든 / 그를 데리고 꼭 찾아옴세…….
충북 지역의 자랑으로 자리 메김 "동문회를 비롯한 지역 주민과 함께 한 개교 100주년 행사를 통해 청산초등학교는 새 역사를 쓸 것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특히 인구 약 4000명에 불과한 작은 면소재지에 위치한 초등학교가 약 9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은 옥천뿐만 아니라 충북 전체에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난 4월 청산초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탑 설치 및 기념 식수, 학생들의 학예 발표회, 사진 전시회, 시화전 등의 행사를 가졌다. 특히 동문들의 힘으로 건립된 100주년 기념탑은 청산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이 학교 졸업생인 박수용 조각가에 의해 제작된 기념탑은 현재의 지구와 미래의 지구 모습을 형상화하여, 미래를 짊어져 나갈 청산초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41회 졸업생 박명식 씨는 "우리 모교는 신교육의 산실로 조동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학교다. 100주년 기념탑의 의미에 맞게 앞으로도 많은 인물들이 탄생하길 기원한다"며 "객지로 간 후배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또한 명예졸업장 수여라는 뜻 깊은 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26∼30회 졸업생 104명을 대상으로 한글 졸업장을 다시 수여한 것. 일제 시대 조국을 잃어버린 아픔 속에서 일본이름과 일본어로 된 졸업장을 갖고 있는 것을 아쉬워한 동문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이를 위해 동문회와 학교가 함께 수소문을 하여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연락이 끊긴 동문을 제외한 전원에게 우리말 졸업장을 전달했다. 새로운 졸업장 수여는 졸업생들에게 매우 감격스러운 행사였다. 청산초는 앞으로도 도서관 증축, 전자도서관 신축, 100주년 사료관 건립 등의 사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며, 특히 100주년 사료관을 위한 자료 수집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행사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인근 학교뿐만 아니라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전국의 학교에서 문의를 해 오고 있다. 새로운 학교로 바꾸기 위한 다짐 이러한 행사들은 청산초등학교를 새롭게 바꾸어 나가는 데 도화선이 되고 있다. 곽중섭 교감은 "이번 100주년 기념 사업을 통해 청산면을 하나로 묶는 계기를 마련했다. 앞으로 동문회, 지역주민과 힘을 모아 원어민 영어 교사 배치, 교원 보충, 시설 확충 등을 통해 새로운 학교로 탈바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학교지만, 다른 농어촌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농(離農) 현상에 따른 학생 수 감소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청산초를 위한 말이다. 이 학교 교무부장인 진순장 교사 역시 "즐겁게 일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것을 사명감으로 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우리 학교는 앞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곽 교감과 진 교사의 말은 "학교가 100주년이 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100주년 기념행사 때 옛날 학교 사진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학교가 자랑스러웠다"며 애교심을 숨기지 않은 김창희군(5학년)의 이야기 속에 그대로 나타났다. 올해 열린 제4회 전국지용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아 학교의 큰 자랑인 새내기 송유진 교사 역시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3, 4대가 함께 모여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학교의 역사적 무게감을 경험하게 되어 큰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역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엄성용 dyddl96@kfta.or.kr
이대영 /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실 장학사 최근 2008년 논술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면서 꼭 나오는 이야기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공교육만으로는 준비가 안 되고, 사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마치 공교육의 한계성과 사교육의 우월성을 대조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공교육 신뢰회복의 방안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속성을 비교하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공교육에는 경쟁이 없고, 사교육에는 경쟁이 있다고 한다. 교사는 ‘철밥통’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학원강사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도 한다. 공교육은 원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일정조건이 갖춰진 일반 다수를 위한 것이고, 사교육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대상에 맞춘 교육으로 본다. 교사는 잡무가 많지만, 학원강사는 잡무 없이 수업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알고 있다. 공교육에는 투자가 별로 없지만, 사교육은 적극적인 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전인교육을 해야 하지만, 학원은 오직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만을 가르치면 되기 때문에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보는 시각의 일 부분이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입시가 치열한 교육현실에서 우리의 학부모․학생들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공교육은 항상 ‘피해자(被害者)’고 사교육은 ‘피의자(被疑者)’로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는 우리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공교육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교육을 도입하였다. 특기적성교육이란 명목으로 행하는 교과관련 방과후교육활동, 학원강사를 동원한 교육방송(EBS) 강의, 일부 학교에서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시행하는 논술특강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기존의 인식을 거꾸로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점이 많은 사교육이 오히려 부실한 공교육 때문에 악으로 매도당하는 ‘피해자(被害者)’라고 말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치열함과 서비스 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수입면에서도 교사와 강사는 대조된다. 학원강사는 돈을 많이 벌고 교사는 봉급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언론에서 말하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강사는 극소수이다. 그들을 학원강사 전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상당수의 학원강사는 현직교사보다 적은 수입에 신분보장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직교사 못지않은 잡무에도 시달리고 있다. 강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간, 소위 수명도 짧다. 굳이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을 하려면 상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교육은 환경적으로 좋은 조건이다. 대상은 공부하려고 제 발로 찾아오는 적극적 수요자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강좌이니만큼 어느 정도 대상의 수준도 비슷하다. 강사를 다른 업무로 이끄는 제약하는 공문도 없다. 넓은 범위보다는 좁은 범위를 세분화해서 깊이 있게 가르칠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강의한다. 그러면 학원강사는 어떤 생각, 어떤 상황인가. 학원강사는 학생을 소비자로 본다. 따라서 자신의 강의를 상품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 상품을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선택하게하기 위해서 최선의 마케팅을 하는데, 수업의 질은 기본이고 수업의 디자인과 효율성, 수업의 개성과 차별성 등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정서를 자극하려는 노력을 한다. 심지어는 사생활도 접고 오로지 재미있는 수업방법의 연구에만 몰입하는 강사들도 많다. 학생이 질문하면 학원강사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그 문제와 연관된 참고자료를 학생에게 준다. 참고서의 선택도 단순히 부교재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강사는 거의 모든 참고서를 자신이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 수강생들에게 적절한 참고서의 선택을 도와준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교재와 프린트물 제작하고, 수강생 모집 전략을 짜며, 홈피나 싸이월드, 카페, 블로그의 수강생 질문에 답변을 달아준다. 그들 나름대로의 잡무(?)인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주말이 없다. 오히려 주말이면 수업이 더 많아진다. 한가로이 휴일을 즐길 여유가 없다. 여유를 가지면 다른 강사에게 지기 때문이다. 흔히 학원강사는 지식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강사들에게 학생들은 스승의 날 꽃을 선물한다. 졸업 후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군에 입대한다며 작별인사를 하기도 한다. 학원강사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진지하게 자문을 구한다. 학원사회를 정글이라고 한다. 무서운 정글에도 꽃은 핀다. 이것을 공교육에 종사하는 주체인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반면에 교사는 어떤가? 물론 학교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해서 비판의 말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쟁은 적절한 긴장을 가져온다. 적절한 긴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 어떤 사회치고 경쟁 없는 사회가 있던가? 그리고 학교도 교육은 서비스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젠 교사라는 권위 의식보다는 학생을 서비스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자극하여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우리 한번 사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해보자. 기왕에 입시교육도 공교육이 하려고 하면 오히려 사교육보다 나을 수 있다. 공교육에는 검증 받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만능이다. 개성과 실력에서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우수하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수능모의평가는 이미 그 신뢰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입시자료집의 발간이나 입시 설명회도 이제 어느 사교육기관에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시교육연구원이 펴낸 입시자료집은 사교육의 전문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니 사교육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식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입시교육도 전인교육도 할 수 있다. 서술형 평가의 예시문항 같은 것은 사교육에서는 할 수 없는 분야이다. 공교육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가자. 통합형 논술고사가 시행되면 공교육에서는 대처가 힘들고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교육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교사는 왜 못한단 말인가?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팀을 짜서 영어교사는 영어논술을, 수학교사는 수리논술을, 과학교사는 과학 관련 심층면접 문제를 왜 가르치지 못한단 말인가?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수준별로 분반수업을 하면서 각각 해당분야에 대한 논술강의를 하면 된다. 하루 이틀 공부하면 충분히 논술의 경향과 방향을 잡아 가르 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일부 학교는 이런 수업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학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체능 교사들도 충분히 논술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술 전문가에게 예술적 지식을 배운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중에 누가 통합교과적 논술에 강할 것인가? 각 교과 전공별로 50~100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학원이 어디 있는가? 교사가 해당 대학을 찾아가서 논술경향을 듣고자 한다면 어느 대학이 마다하겠는가? 투철한 교직관과 깊이 있는 교과지식을 가진 우수한 교사들을 왜 무능하다 하는가? 국가가 도와주고, 교육청이 도와주며, 교사 스스로 인식을 바꾼다면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할 리 없다. 학원강사가 능력도 우수하고 시간도 많아서 지도를 잘 한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교사는 그렇게 안 해도 별 지장이 없지만 학원강사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영어 선생님은 4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고, 과학 선생님은 6시 40분이니 두 시간 반 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종이 울렸는데 저 학부형은 왜 아직 자리를 뜨지 않는 거야? 이번 면담 후에 바로 다음 면담이 있어서 시간이 늦어지면 낭팬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여유 있게 순서 안배를 할 걸 그랬나 봐." "일본어 선생님은 6시부터 저녁을 드시기로 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 시간동안 식사를 하고 오는 게 좋겠어요. 어차피 밤 8시 반 까지는 학교에 있어야 할 테니까 우선 밥부터 먹고 오자고요." 한국과는 반대로 1학기 겨울방학을 마치고 7월 중순 경부터 2학기가 시작된 호주 퀸스랜드 주의 한 고등학교의 어느 이틀간의 저녁풍경이다. 평소라면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건만, 이 날만은 3시 30분경부터 학부형들이 몰고 온 차들로 교정이 다시금 붐비기 시작해서 밤늦은 시간까지 좀체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날은 자녀들의 학교생활과 학업성취도를 교사들로부터 전해 듣고 자녀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전교 차원의 면담일로 지난 한 학기 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을 털어놓기 위해 학부형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호주의 각급 학교는 학기말과 학년말 두 차례에 걸쳐 전 학부형과 전 교직원이 자리를 함께 하는 면담(Parent Teacher Interviews)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각 학과 담당교사는 물론이고 담임과 학부형이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는 기회도 학기말에 주워지는 첫 번째 면담시간을 통해 이뤄진다. 면담은 학기말과 학년말에 담임교사 및 학과 담당 교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학부형 측에서 신청을 할 수도 있다. 면담을 희망하는 학부형들은 1학기 성적표와 함께 각 가정으로 보내오는 인터뷰 신청 용지에 원하는 시간을 적어내면 다른 학부형들과 겹치지 않는 한에서 학교 측에서 안배를 하여 최종 면담 시간을 통보하는 것으로 주선된다. 면담 기간은 보통 학기가 시작된 지 1주일쯤 후이며 2일간에 걸쳐 실시된다. 하루의 수업을 마친 교사들은 4시부터 8시까지, 저녁식사 시간 30분을 빼고는 꼬박 4시간을 학부형들에게 제시할 시험답안이나 성적산출근거 자료, 학생들의 품행이나 행동발달 상황 등을 체크한 기록표를 꼼꼼히 준비하고 상담에 임하는 고된 시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각 가정에 할당된 면담시간은 최대한 10분이기 때문에 부모들 또한 묻고자 하는 요지를 잘 정리해서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 중언부언했다가는 자칫 알고 싶은 것을 놓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시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신청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잠재력이 있는 학생인데, 수업 중에 꾀를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집중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다음번 시험에는 꼭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집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교우관계는 무난합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고, 누구보다 명랑한 성격이라 급우들의 인기를 끌지요." 이 학교 10학년(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과학 교사를 만나기 위해 면담 신청을 했다는 마이클씨(43)는 앞 사람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3~4분 늦게 시작된 면담이 기어이 10분을 채우지 못하고 말허리를 잘렸다며 아쉬워했다. 자기 뒤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학부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의 과학 성적이 무난하고 학교생활에도 별 무리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만족해했다. 전 교직원과 전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하는 면담장소는 체육관이나 강당을 이용한다. 마치 군부대의 면회 장소처럼 긴 평상을 줄맞춰 늘여놓은 후 각 과목 담당 교사들의 명패를 꽂아 놓는다. 60여명이 넘는 교사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10분 간격으로 드나드는 학부형들을 맞이한다. 강당의 단상 한쪽에는 교무주임이나 학생주임이 매 10분마다 면담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을 친다. 종이 울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부형들과 뒤이어 교사들을 만나러 들어오는 학부형들로 순간 혼잡이 빚어지기도 한다. 강당을 무시로 오가며 학부형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이틀을 함께 보낸다. 웅성대는 강당에서 잡음을 무시해가며 두 귀를 모아 자녀들의 시험성적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교사들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머리가 서로 닿을 듯 집중하는 진지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학부형들은 만나고자 하는 교사들의 시간순서를 거듭 확인하며 강당 로비에 비치된 커피와 차, 다과 등을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선생님들의 스케줄과 같이하여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 시간을 대비하기도 한다. 호주의 각 학교는 한 해 두 차례 치러지는 일제 면담기간을 가장 중요한 학내 행사로 꼽는다. 교사와 학부형, 학생 간에 충분한 의사전달과 협력, 교류의 기회를 마련한 후 학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정돈된 상태에서 다시금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주어지는 공식적인 일제 면담기간이 지나게 되면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학부형들이 교사를 만날 기회는 좀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1년 내내 심지어 아이의 담임선생 얼굴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면담기간 외에는 체육대회나 학예회 등 학내 행사가 열릴 때에도 담임선생을 만나 인사를 하거나 자녀가 상을 받았다 해도 보통은 선생님을 따로 만나지 않는다. 이처럼 교사와 학부형간의 공개된 장소, 공개된 시간 속의 만남이 주어지는 호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간혹 불거져 나오는 촌지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장과 교감, 주임교사, 평교사 할 것 없이 전 교직원이 한 장소에 한데 모여 학부형들을 만나고 엄격하게 짜여진 시간표대로 앞 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봉투'를 건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 학기 초만 되면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을 만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고, 교사들 또한 학부형들을 만나고 싶어도 공연한 오해를 살까 염려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도 호주와 유사한 투명한 면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각 대학의 졸업식이 한창이던 지난 7월초 중국 교육계에는 신동이라 불리던 한 대학생의 퇴학 소식에 술렁였다. 심양공업대학에 재학 중인 왕쓰한(王思涵)이라는 학생은 지난 2001년, 14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대학입시에 참가하여 대입 커트라인을 상회하는 점수를 받고 이 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반을 하여 영재중학교에 입학한 후, 6년인 중고등학교 과정을 4년 만에 끝내고 불과 14살에 대학에 들어간 소위 ‘영재’ 학생이었다. 중고 과정 4년에 마치고 대학입학 그러나 이 학생의 화려한 경력은 여기서 그치게 된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대학 첫 해에는 3과목이나 낙제를 받았다. 이후 4년간의 대학 과정동안 낙제된 과목의 수가 늘었고, 마침내 졸업을 해야 할 올해 7월 성적불량으로 졸업자격을 상실하고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통보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동으로 불리던 한 소년의 몰락은 중국 교육계 내에서 현행 영재교육의 방식이 과연 영재를 길러내기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영재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중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점수와 등수로 모든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평가한다는데 있다. 중국의 국가적 특성상 즉, 많은 인구와 많은 학생,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대학 및 취업기회로 인하여 학생들에 대한 점수화 및 서열화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시험점수에만 의존하는 평가 및 선발방식은 중국 교육의 여러 방면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영재교육에 있어서도 영재교육의 본래 취지에 맞게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 영재성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이 아닌, 반복적인 암기와 쉴 틈 없이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교육을 통하여 남들보다 시험에 빨리 합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식이 문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서 언급한 이 학생의 경우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일은 공부와 잠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어린 나이 때부터 또래들의 몇 배에 달하는 집중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하루에 고작 4~5시간의 잠을 자고 공부한 결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시험대비 교육방식이 문제로 지적 하지만 이 학생이 대학에 입학한 후 이전과는 달리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처리해야 되었고, 학습조건 역시 과거 영재학교에서는 한 반에 14명 정도의 소수학생을 대상으로 교사가 집중적인 지도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는데, 대학에서는 한 강의실에 몇 십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동시에 강의를 듣게 되면서 이 학생은 자연히 교수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때문에 교사에 의존한 교육에 익숙하던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특히 영재교육의 특성상 수학이나 영어교육에만 집중한 탓에 다른 과목들, 즉 지리나 정치 등 사회과학에서는 수업을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또한 학습 외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대학 동료들과도 나이차 때문에 교류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는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와 잠이 전부이던 그에게 대학은 한숨이 전부인 세상으로 변했다. 그 결과 그는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을 명받아 특별한 배려 조치가 없는 한 이전에 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입학한 대학을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마쳐야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번 일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중국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중국 교육, 특히 영재교육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영재교육은 교육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다양한 유형의 영재학교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데, 이들 학교는 대량의 신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영아부터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경의 한 영재학교의 경우 10살이 될 때까지 대학생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9개월의 영아부터 10세에 이르는 16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잘못된 영재교육에 아이들만 상처 이렇듯 졸속으로 다량의 지식전수만을 목적으로 세워진 이 영재학교의 난립 및 그를 통한 영재 만들기 교육 열풍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교육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200의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100정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100의 능력은 여유분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상황은 200의 능력을 가진 아이에게 300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개인의 능력을 초과하는 기대로 인하여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둘째, 각급 학교들이 사적인 이익만을 너무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들 즉,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들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영재학생이 몇 단계의 월반을 통하여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 중․고등학교에서 월반하여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학교의 큰 명예로 생각하고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대학을 들어갈 경우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학교생활 및 학업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 낙오되는 경우 많다. 셋째, 중국인들 사이에 만연된 신동콤플렉스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신동, 영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영재성을 지닌 아이들은 그에 합당한 영재교육을 받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현재 중국의 실정은 영재성이 보인다는 주관적인 부모의 생각으로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영재 만들기 교육을 통하여 영재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재는 결국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아동 본인의 일생에 큰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영재교육 장치 및 교육방법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사이비 영재교육 열풍은 학부모들에게는 일시적인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아이들 당사자에게는 결국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신동학생의 경우처럼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신동도 아니고, 평범한 학생도 못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러한 결과를 놓고 현재 중국 교육계에서는 학생 본인의 태만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전반적인 영재교육 시스템의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인간은 왜 사랑을 하고 나서 후손을 낳고 죽는 것일까?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당연히 하는 일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과 죽음은 섹스를 하는 생물에게만 나타나는 숙명적인 현상이다. 섹스의 즐거움이 있는 대신에 죽음의 고통이 있는 게 바로 인간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아메바 같은 하등동물에는 죽음도 사랑도 없다. 예를 들어 아메바는 환경만 적당히 주어지면 자신의 몸을 둘로 갈라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낸다. 이때 만들어진 두 개체는 같은 유전 정보를 갖는 복제품이다. 물론 아메바도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갈라져 나간 복제품이 대를 이어 수억 년 동안 계속 복제품을 남기게 된다. 돌연변이와 진화의 원동력 정자와 난자는 우리의 몸이 만들어 낸 가장 신선한 세포이다. 비록 몸은 바이러스나 기생충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우리 몸속 깊숙한 곳에 있는 생식세포에서 지금 바로 탄생한 정자와 난자는 청정 무공해 세포인 셈이다. 그래야 새로 태어난 아기는 기생충과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늘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해야 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낡고 병든 '생존 기계'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낡은 기계는 버리고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쓰는 게 더 유리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기생충과의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지금도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1년 동안 유럽에서 2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서운 에이즈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 수명은 거의 절반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우리의 몸에는 지난 수십억 년 동안 기생충과 전쟁을 벌여 온 상처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상이 기생충과 맞서 싸우면서 습득해 유전자를 통해 물려준 면역 체계가 그것이다. 천연두에 대한 면역 능력이 없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퍼뜨린 천연두에 맥없이 쓰러져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때로는 기생생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우리 몸의 부속품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체 세포의 에너지 생산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이다. 세포 내의 발전소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는 수십억 년 전 인간이 하찮은 하등동물이었을 때 우리 몸에 기생해 살림을 차렸다. 세포 내 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미토콘드리아만이 자신의 유전 정보를 지닌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생의 증거다. 다행히 미토콘드리아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걷고 뛸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인간의 염색체에는 박테리아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가 2백 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유전자들은 인간이 아직 하등한 무척추동물이었을 때 박테리아 감염 과정에서 우리 몸에 들어와 살림을 차린 것이다. 우리의 몸은 박테리아와 하등동물의 유전자를 짜깁기해서 만든 셈이다. 때로는 바이러스가 여러 숙주를 옮겨 다니면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사람한테 옮기기도 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유전자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잠자고 있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일도 한다. 인간은 바이러스에 맞서 면역 체계를 만들어 전쟁을 벌여 왔지만 한편으로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와 진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에 똥구멍을 가렵게 했던 기생충도 우리 몸에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긁적거리면 어머니는 요충약을 먹였다. 요충은 항문을 가렵게 하지만 그다지 위험한 기생충은 아니다. 일부 의사는 우리 몸이 이 기생충과의 싸움을 통해 조금씩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유아기 때는 오히려 우리 면역 체계의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몸속의 세균은 1㎏ 사실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매우 아늑한 집이다. 음식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고,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10m의 소화관 융모 조직은 표면적이 테니스 코트만큼이나 넓어 호화판 호텔과도 같다. 소화관에 사는 장내 세균은 무려 100조 개. 인체 내 세포의 개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다. 세균을 다 합쳐 놓으면 무게가 1㎏이나 된다. 사람의 대변에서 수분을 빼면 무려 40%가 세균이다. 인체 내에 사는 장내 세균은 500종이나 된다. 사람의 배설물에 대해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내장에는 1200종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다. 이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거나 잡아먹어 대장 내의 세균 생태계를 조절한다. 장내 세균 가운데는 병원균도 있지만, 유산균이나 젖산균 등 유익한 세균도 많다. 장내 세균의 역할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그다지 많은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소화를 돕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장내의 유익한 세균(Probiotics)이 병원균을 물리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을 분해하거나 생성을 억제하고, 소화관의 벽을 두껍게 해 면역 기능까지 높여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유익한 세균은 '제3의 장기'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세균은 수백만 년 동안 사람과 싸우고 한편으로는 공생 관계를 이루며 진화해 마치 장기처럼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박테리아를 이용한 치료법 어떻게 해서 유산균이 암을 억제할까? 서울대 미생물학자인 지근억 교수는 쥐에게 대장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과 함께 비피더스균을 먹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유익한 세균인 비피더스를 대장암 유발물질과 함께 먹인 쥐는 대장암 발생률이 현저히 줄었다. 또한 비피더스를 먹은 쥐는 장관 벽이 두꺼워지면서 면역세포가 활성화됐다. 만일 우리 몸속에 세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나 동물을 보면 쉽게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세균이 전혀 없는 인공 환경에서 사육한 무균동물은 몸이 허약해 항상 비실거린다. 무균동물은 장의 융모가 거의 발달하지 않고, 맹장은 기형적으로 크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이처럼 '약골'인 무균 쥐에게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를 먹인 결과 소장의 융모세포가 빠르게 늘면서 창자벽이 두꺼워져 소화관 형태가 정상적으로 바뀌었다. 무균동물의 똥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똥에서 냄새가 나고 방귀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도 모두 장에 세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똥 냄새는 장내 세균이 음식을 소화한 뒤 내놓는 분비물이 주원인이다. 사람도 냄새가 나지 않는 똥을 쌀 때가 있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누는 똥이다. 태아의 장은 무균 상태여서 세균이 없다. 그러나 아기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음식을 통해 대장균, 유산균 등 수많은 세균이 장에 침입한다. 그래서 태어난 지 며칠만 지나도 아기의 똥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장내 세균들은 다른 생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양분과 에너지 그리고 서식처를 놓고 경쟁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침입자와 맞선다. 요즘에는 이를 이용해 유익한 세균을 인체에 투입해 병원균을 죽이거나, 병원균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박테리오 테라피'까지 등장하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 항생제연구소 펜티 후오비넨 박사는 항생제의 내성이 증가해 기존의 항생제로는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게 되자 병원균과 싸우는 새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 그는 유익한 세균으로 병원체를 몰아내는 '박테리오 테라피'를 유력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박테리오 테라피로 병을 고친 사례는 많다. 뉴욕 몬테피오레 병원은 장염 환자의 항문에 남편의 똥을 밀어 넣어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항생제 남용으로 장내 세균 집단의 생태계 균형이 무너져 장염에 걸린 환자의 대장 생태계를 남편의 똥 속에 있는 장내 세균으로 복원한 것이다. 스웨덴 룬드비 병원 연구팀은 지난해 유산균인 스트렙토코커스를 어린이의 코에 스프레이처럼 뿌려 중이염 치료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중이염 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했으나, 유익한 세균까지 모두 죽는 등 부작용이 컸다. 심한 방광염 환자는 카테터를 삽입해 소변을 보지만, 카테터 때문에 방광이 감염돼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휴스턴 소재 베일러 대학 의대 연구팀은 카테터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미리 해가 없는 세균인 대장균을 환자의 방광에 주입한 결과 치명적인 병원균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2003년에 보고했다. 그렇다면 제3의 장기인 장내 세균을 잘 기르고 장내 생태계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생활 습관은 어떤 것일까? 유익한 세균을 가꾸려면 첫째, 부패 과정에서 독소를 내는 지방과 단백질을 과식하지 말고 식이섬유가 많은 야채와 과일을 먹어야 한다. 둘째, 항생제를 남용하면 안 된다. 셋째, 나이가 들수록 장내 유산균인 비피더스균이 줄어들므로 유산균 음료 등을 마시는 것이 좋다. 넷째, 적절한 운동을 해서 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털이 없는 것이 생존에 유리 최근 들어 사람이 털 없는 짐승이 된 것도 세균이나 기생충과의 싸움 때문이었다는 학설이 나오고 있다. 동물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은 매우 우스꽝스런 존재다. 머리만 빼고 온몸에 털이 거의 없다. 왜 사람은 235종의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털이 없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털이 없는 포유류는 매우 드물다. 포유동물은 자신의 몸을 일정한 온도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털이 필요하다. 원래 육지에 살던 젖먹이 동물이었던 고래나 해마는 바다로 간 뒤 털을 벗었다. 매끈한 몸이 스피드를 내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알몸이 된 것도 고래처럼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막연히 체온 조절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나와 있을 뿐이다. 인간이 서늘한 숲의 그늘에서 영장류로 살던 때에는 털이 필요했다. 그런데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지구를 덮치면서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에 급격한 기후 변화가 온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숲이 사바나 초원으로 바뀐 것이다. 나무에 매달려 사는 대신 초원에서 걷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인간은 직립을 하게 됐고 털이 빠졌다는 게 지금까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가설은 허점이 많아 도전을 받아왔다. 알몸으로 초원에서 뙤약볕을 쪼이면 털이 있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열을 흡수해 해롭다. 또 밤에는 춥다. 사바나 초원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는 알몸이 오히려 불리한 것이다. 왜 인간이 알몸을 선택했는지 설명해 주는 흥미로운 이론이 2003년 논문으로 발표됐다. 영국 레딩 대학 마크 페이겔 교수는 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이와 벼룩 같은 기생충과 이들이 퍼뜨리는 전염병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털이 빠지게 됐다고 논문을 통해 주장했다. 털이 없는 것이 생존에 유리해 자연선택이 됐고, 털이 없는 게 더 섹스어필해 성적 선택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공작의 꼬리 깃털이 커진 이유가 섹스어필이 이유였듯이 벌거숭이 인간이 상대를 유인하는 데 더 유리했고 따라서 후세에 더 많은 유전자를 남겼다는 것이다. 남성의 몸에 털이 더 많은 이유 털 없는 상대를 좋아하는 본능은 지금도 뿌리깊게 남아 있다. 요즘 여성들은 겨드랑이와 다리에 난 털을 깎는다. 남자도 매일 면도를 한다. 페이겔 교수는 이것이 모두 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한 행위라고 본다. 예를 들어 털이 전혀 없는 부위인 등을 드러낸 옷을 입은 여성 모델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도 남성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나는 벼룩이나 이가 없는 괜찮은 파트너'라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여성은 남성보다 더 털이 적을까? 페이겔 박사는 털이 없는 여성의 성적 선택 압력이 남성보다 더 높았다고 본다. 요즘도 남성은 애인의 몸에 털이 난 것을 보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성도 털이 적은 남성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결정적인 선택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이유야 어쨌든 인류가 털을 벗은 것은 언제쯤일까? 미국 유타 대학 로저스 교수는 피부색을 결정하는 MC1R 유전자를 분석해 120만 년 이전에 털을 벗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 유전자는 피부색을 결정한다. 멜라닌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느냐 끄느냐에 따라 자외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검은 갈색이 되도 하고 자외선 차단 기능이 별로 없는 적황색이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의 조상은 털이 빠지면서 한편으로는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검은색 피부를 갖게 됐지만 그 이전에는 침팬지처럼 털 속의 피부가 흑인도 흰색이었다. MC1R 유전자가 검은 색 피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20만 년 전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독일 라이프치히 진화인류학연구소 마크 스톤킹 박사는 옷에 붙어사는 이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 시기를 약 5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수십만 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도 조악한 옷을 입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꽤 있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흔히들 우리나라는 빈부차가 크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혹 그렇다면 얼마나 그런가? 최근 들어서는 어떤가? 전보다 격차가 커지고 있을까 줄어들고 있을까? 빈부차를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크게는 재산 크기와 소득 크기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 혹은 현금·예금·증권 같은 금융자산을 합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달마다 혹은 해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즉 소득 크기로 알아보는 방법이다. 먼저 재산 크기로 알아보자. 극소수의 사람이 사유지 절반 소유 최근 화제가 된 뉴스로, 우리나라의 땅 소유 편중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려주는 흥미로운 통계치가 발표됐다. 행정자치부에서 2004년 말 현재 전국의 토지 소유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은 총 99642㎢. 전체 국토 가운데 사유지가 전체의 57%이다. 사유지를 나눠 갖고 있는 사람 수는 모두 1397만 명. 우리나라 총인구 4871만 명 가운데 28.7%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전 인구의 71.3%에 해당하는 3474만 명이 제 땅을 한 평도 갖고 있지 못하다. 반면 극소수 사람들이 엄청난 면적을 소유해 큰 부를 누리고 있다. 면적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사유지의 51.5%를 국민 가운데 상위 1%에 해당하는 48만7000명이 소유하고 있다. 서울시 면적의 48.7배다. 상위 5%의 땅 부자들이 소유하는 토지 면적은 전체의 82.7%, 서울시 면적의 78.5배나 된다. 땅 소유자들끼리만 놓고 봐도 편중도가 심하다. 면적 기준으로 상위 1%(13만9000명)가 전체 사유지의 31%를, 상위 5%가 전체 사유지의 59%를, 상위 10%가 73%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0명이 전체 사유지의 0.7%(서울시 면적의 0.6배)를 갖고 있고, 이들의 평균 소유면적은 115만 평. 서울 여의도 면적(254만 평)의 절반이다. 심각한 땅 소유편중 보여주는 통계 토지 가액으로 따지면 편중도가 더 심하다. 2004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토 전체의 평가액은 1771조 원이다. 공시지가란 이른바 '지가 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감정평가사라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매년 1월 1일(기준일) 현재 땅 시세를 조사해 공시한 토지 1㎡ 당 평가액. 공시지가는 보통 민간에서 땅을 거래할 때보다는 가격이 낮지만 거래의 기준값이 되고, 정부에서 개발 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할 때 땅 주인에게 보상해주는 금액의 기준이 된다. 전체 국토 가운데 사유지는 공시지가 평가액으로 전체의 65%에 해당한다. 공시지가 평가액 기준으로 보면 상위 1%가 37.8%를, 상위 5%는 67.9%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보유자들끼리만 놓고 따지면 가액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 사유지 가액의 22%를, 상위 5%가 44%를, 상위 10%가 56%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0명이 차지하고 있는 사유지의 평균가액이 1인당 510억 원이나 된다. 사업자 가구에서 부집중도 높은 편 소득 크기로 빈부격차를 알아보려 할 때는 정부 통계기관에서 내놓는 소득배율지표를 활용하면 편리하다. '10분위 소득배율(혹은 소득 10분위배율)', '5분위 소득배율' 같은 것인데, 소득 크기로 빈부차를 나타내는 지표다. '10분위 소득배율'은 소득이 가장 높은 10% 해당자('10분위'라고 한다)의 평균소득이 소득 최하위 10% 해당자(1분위)의 평균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내는 지표다. 10분위 소득배율은 이렇게 구한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올린 소득을 크기 순으로 최하위 10%(1분위)부터 최상위 10%(10분위)까지 10개 계층으로 나눈다. 그래놓고 최상위 10%의 소득 평균치를 최하위 10%의 소득 평균치로 나눈다. 이렇게 하면 최상위 10%의 소득이 최하위 10%의 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낼 수 있다. 당연히 10분위 소득배율 수치는 소득격차가 높을수록, 부의 집중도가 높을수록 커진다. 5분위 소득배율(혹은 '소득 5분위배율')도 10분위 소득배율을 구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구한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올린 소득을 크기 순으로 5개 계층으로 나누고 상위 20%(5분위)의 소득 평균치가 하위20%(1분위) 평균 소득의 몇 배나 큰지 구한다. 5분위 소득배율은 상위 20% 해당자(5분위)의 평균소득이 하위 20% 해당자(1분위)의 평균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냄으로써 소득차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청이 매월 전국의 표본 가구(농가 혹은 어가가 아니면서 근로자와 자영업자, 무직자를 포함)를 '전국 가구'로, 도시 거주 2인 이상 근로자가구 표본을 '도시근로자가구'로 규정해 '가계수지동향'을 조사하고 분기별로 발표한다. 이 통계에 5분위 소득배율로 파악한 소득분배 동향을 싣고 있다. 5분위배율 산출을 위해 통계청은 표본으로 고른 가구에 매달 가계부를 쓰게 하고 있다. 통계청이 올해 5월 19일 발표한 '2005년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전국 3470개 도시 거주 근로자가구의 5분위 소득배율은 5.87(배)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17포인트 증가했다. 소득 5분위배율이 5.87배라는 것은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에 비해 5.87배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658만73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6% 증가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는 2.5% 늘어난 112만3000원에 머물렀다. 도시근로자가구의 5분위 소득배율은 1/4분기 기준으로 1997년 4.81에서 외환위기 여파로 98년 5.52로 올라선 이후 99년 5.85, 2000년 5.56, 2001년 5.76, 2002년 5.40, 2003년 5.47 등을 기록했다. 그랬던 것이 2004년엔 5.87로 도시근로자가구를 상대로 5분위 소득배율을 조사해 발표하기 시작한 지난 198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지난 25년을 두고 보면 소득 격차가 작년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얘기다. '전국 가구' 기준으로도 올해 1분기 소득 5분위배율은 8.22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0.47포인트 증가했다. 이것 역시 이 분야 통계조사를 시작한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통계청이 '가계수지동향'과 따로 조사 발표하는 '가구소비실태조사결과'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2000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2인 이상 비농어가 2만7000가구를 상대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가구별 5분위 소득배율이 2000년 6.75로 5년 전인 1996년에 비해 2.01포인트 높아졌다. 근로자가구보다는 사업자가구에서 소득격차나 부의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통계청, 2000년 가구소비실태조사결과, 2002년 4월 발표) 통계로 보여지는 것보다 심각한 격차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해마다 커져 이젠 세계 13위권 안에 든다. 그렇지만 소득분배가 나빠지고 있어서 많은 국민들이 나라 경제 규모가 성장하더라도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은 함께 늘어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수의 국민은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자신과 자신의 가구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쪽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질까? 통계청 말로는, 고소득 계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데 비해 저소득층의 소득은 증가세가 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왜 그런가? 오늘날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세계가 점점 더 머리 좋고 열심히 일하는 소수와 머리도 좋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다수의 사회로 옮아가고 있어서일까? 세계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일하는 소수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대별되는 20:80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에서라면 혹 모를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근로소득에 비해 땅과 집 같은 부동산에 기반을 둔 자산소득의 격차가 너무 크고, 자산소득의 성장세가 근로소득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땅 소유나 금융자산 편중도에 다른 자산 보유 격차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빈부격차는 소득격차 통계로 나타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실제로 한국은행과 국민은행이 조사해 밝힌 통계만 봐도, 2002년 현재 국내 소득 상위 5%의 부자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 금융자산 총액의 38%, 상위 20% 가구의 금융자산이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71%를 차지한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소득 하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에 비해 62배나 많다.(삼성경제연구소 CEO Information, 외환위기 5년 한국 경제의 흐름과 과제, 2002. 11. 27) 현실이 이렇다 보니 통계청이 발표하는 빈부차 관련 통계, 특히 소득격차 통계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분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소득격차를 분석하는 지표로 소득배율지표 외에 흔히 쓰는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라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지니 계수란 이탈리아의 통계학자 지니(C. Gini)가 제시한 소득 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숫자로 0에서 1까지 표시하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포가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균등하지 않다. 보통 0.4를 넘는 소득 분배는 매우 불균등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도시근로자의 가계 소득을 대상으로 구해본 지니 계수는 지난 1996년 0.290, 97년 0.283에서 98년 0.316, 99년 0.320, 2000년 0.317, 2001년 0.319로 높아졌다. 외국과 비교하면 2000년 우리나라의 지니계수(0.317)는 일본(99년, 0.301)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미국(0.460), 대만(0.326) 보다 낮다.(재정경제부 국정감사 자료, 2002. 9. 12) 지니계수로 보면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나라의 소득분배는 미국, 대만보다 균등한 편이다―이렇게 말한다면 듣는 이로서는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니계수 산출 방법에도 문제가 좀 있다. 국내 도시 가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무직 가구의 비중(표본 기준)은 1996년 7.6%에서 2000년 12.7%로 급증했으나, 이들 무직 가구의 존재는 지니계수 산출 작업에서 제외된다.(한국개발연구원, 분배 관련 통계 개선 방안 보고서, 2002. 11. 12) 지니계수 산출에 이용하는 통계청 도시가계조사도 무직자나 자영업자 같은 비근로자가구와 1인가구, 농어가 등 비도시가구는 통계에 넣지 않는다.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 한층 커져 빈부격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이다. 다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기에 유리하고 재산의 사적 소유와 상속을 법으로 보장하므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고착되기 쉽다. 우리나라에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지는 이면에 부자들의 탈세와 법제의 허점을 악용한 재산 증식 행위가 만연해, 서민층의 상대적 빈곤과 심리적 박탈감을 한층 키우고 있어서 특히 문제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고치는 쪽으로 법제도를 고치고, 조세나 사회보장 관련 정책을 적극 구사해 빈부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서민층의 불만은 당연히 빈부격차에 비례해 커질 것이고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일 지역 매스컴을 대서특필하는 시청 직원의 뇌물수수 사건과, 인륜을 의심케 하는 한 아버지의 일가족 몰살 강력사건들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준 일화가 예전에 있었기에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교육청의 직원으로 온 지 1년여가 지나가고 있다. 한 3년전 이맘때쯤 중학교 직원으로 있을 때 있었던 한 학생의 미담(美談) 하나가 생각나 지금도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게 한다. 3년전 가을경에 교장선생님께서 운동부를 위문차 방문하는데 격려금을 업무추진비에서 10만원 인출하라고 하셨다. 급히 가셔야 하기 때문에 융통해서 먼저 달라고 하셔서 결재판에 봉투를 껴 넣은채 교장실에 가다가 갑자기 뒷 건물에 일이 있어서 올라갔다 왔는데 결재판에 있어야 할 봉투가 빠졌다. 부랴부랴 다시 뒷 건물에 가봤는데 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책상 위 아래를 샅샅이 훑어봐도 보이지 않았다. 불과 5분여에 생긴 일이었다. 뒷건물에 갔을 때는 쉬는 시간이라서 학생들의 내왕이 빈번한 관계로 돈 봉투가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10만원이라는 돈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돈이긴 하지만 영 개운치 않은 뒷맛이었다. 차라리 어려운 사람 도와줬거나 술 한 잔 먹어서 없앤 돈이라면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생겼다. '그래, 내가 관리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에이, 재수없다.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10만원 현금을 주워 오겠나'하고 체념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하루가 지났는데 2학년 부장선생님이 내려오더니 "혹시 봉투 잃어 버리지 않았어요?"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기에 왜 그러시냐 했더니 자기 반 남학생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봉투를 발견하여 무엇인가 하고 보니 현금이 10만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큰 현금이기에 오히려 어떻게 그냥 가져갈까 하는 貪心(탐심)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일어났다고 한다. 약간 고민한 후에 담임 선생님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봉투를 보니 찾았다는 기쁨도 컸지만 아직도 세상 인심이 썩지는 않았구나, 세상의 동량지재가 될 우리 학생들이 양심을 지키며 살고 있구나 하는 희망이 살아났다. 아마도 지금 그 학생은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어 앞날을 설계하며 학교에 열심히 다닐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세상 인심을 탓하며 돈 봉투 회수에 대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남학생의 양심을 지킨 일화는 지금도 내게 깨끗한 양심을 지키며 공직자 생활을 하라는 따끔한 일침(一針)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몇 년 전 철로에 떨어진 취객이 열차에 받히기 전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던 의인 박모씨가 생각난다. 그는 자기가 한일에 대하여 극구 알리기를 원치 않았던 의인(義人) 중의 의인이었지만 이 미담만은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일조할 것 같아서 이렇게 몇자 적어봤다. 마오쩌둥의 '작은 불씨 하나가 너른 들판을 불사른다'는 말처럼 모든 공직자들의 올바른 초심(初心)이 정년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고등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자리를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토요일인 10일 오후 전경련회관에서 고교 1-3학년 150여명이 참가하는 '제1회 고등학생 진로 탐색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전경련의 대학생 경제 동아리인 미래엘리트클럽(EIC) 등이 주관하는 것으로, 동아리 소속 대학생 70여명이 참석해 고교생들의 진로와 관련한 상담을 맡게 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고교생들에게 대학 학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의 다양한 학과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로탐색과 구체적인 대학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고교생에 대한 대학생들의 진로 상담 외에 행사장에 대학 및 학과별 자료를 준비하고 단과대학별 학과에 대한 설명의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 행사에 참가를 희망하는 고교생은 전경련 홈페이지(www.fki.or.kr)의 주요회의행사 항목을 참고해 신청하면 된다.
31일 서울 강서구 공진중학교는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별자리 여행의 김지현작가는 우주에 산재해 있는 은하계에대한 자료들을 준비해와 밤하늘로 가는 길을 학생들과 함께 열어 나갔다.
울산지검 공안부는 31일 김석기 교육감을 구속기소한데 이어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나머지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최봉길(교육위원)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최 후보의 지인으로 알려진 A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를 벌였고, A씨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후보는 지난달 울산시교육감 선거에 출마, 일부 학교운영위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기부행위와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울산시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으며, 최 후보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또 최 후보와 함께 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최만규 전 교육감에 대해서도 선관위 고발 내용과 경찰의 수사 자료 등을 토대로 본격적인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