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 자락, 학봉이 보이는 찻집에서시인의 새로운 시집을 받은 날은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된바람 소리가 지나가는 동지 무렵의 겨울은 칠흑처럼어두웠지만, 밤을 새운 그녀의 시들은 저수지의 별로, 우물 속 두레박으로 때로는 본포의 참달맞이꽃이 되었다. 서산대사의 마지막 게송"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과 같고/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구나/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죽고 살고 오고 가는 것이 모두 그와 같도다"에서 뜬구름이란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에게 보여지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저 허공의 수증기가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밖에서 보는 우리는 다만 입자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뜬구름은 삶의 블랙박스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모습이 감추어진 실체가 없는 뜬구름은 또한 인간 개인의 생사를 넘어 만물의 오고 감,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시간 흐름의 장소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고 생성과 사건의 발동기, 시의 탄생을 내포하는 공간, 삶의 배치가 일어나는 곳, 무형식과 형식의 정서가 엉켜있는 곳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시인 박숙희의 삶에 있어서 이러한 뜬구름…
2022-12-20 09:51수원특례시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다. 수원문화재단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작년 이맘 때 모습과는 180도 달라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12월은 업무 파장 분위기였다. 그런데 올해는 그게 아니다. 재단이 활기차다. 분위기가 살아 움직인다. 문화활동에 참여했던 시민도 바삐 움직인다.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보통 때의 연말이라면 수원문화재단 사업에 참가한 시민들은 보조금 회계정산서 제출이나 사업 결과보고서 작성에 바빴다. 그래서 은행이나 세무서 출입해 증빙자료를 갖췄다. 시민 세금 사용에 대한 정확한 사후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마무리 모습이 다르다. 참가한 시민들은 한해 사업을 정리하고 공유한다. 전시회나 발표회라는 피드백을 통해 내년을 대비한다. 이게 크게 달라진 점이다. 수원특례시가 달라진 것도 수원문화재단이 급변한 것도 아니다. 수원이라는 문화도시 환경이 작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바로 수원특례시가 중앙정부에서 지정한 법정 문화도시가 된 것이다. 올해부터 5년간, 1년에 100억 원, 총 500억 원이라는 예산이 지원된다.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정산서 제출과 결과보고서 제출로 도…
2022-12-20 09:34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은? 어느 구름에 비 들었을까라는 제목만으로도 작가의 교육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교육의 가능성, 학생이 지닌 잠재능력을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며 지켜낸 교육자의 삶이 녹아든 제목이라 신선하다. 교육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삶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매우 희망적이면서도 은유적이다. "삶과 분리된 학교 교육은 낡은 방식이다. 단지 교과서 안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이 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면 미래에 없어져야 할 곳 순위에서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학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은 물론 방법을 배우는 작은 사회이다. 친구를 사귀고, 다툼을 해결하고, 선후배나 또래와 사이좋게 지내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법 등을 관계로 맺으면서 보고 배우는 곳이다." -75쪽, '나 하나만이라도' 중에서 글쓰기는 학교 현장에서 가장 지도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이는 매우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도하는 선생님이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성과는 더욱 더디다. 학교 현장에서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사라진 일기 쓰기 지도가 한 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22-12-13 14:54오늘도 변함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의 과정으로 8km의 걷기를 실시했다. 요즘은 왜 이렇게 과거보다 걷기에 더욱 집착을 하는 것일까? 이유인즉 단순한 까닭에 있다. 첫째, 나이를 먹으면서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유발하기 때문이다. 환갑을 지난 나이로는 젊은 사람들처럼 달리기 등 활기찬 운동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도 함께 한다. 따라서 편안하고 안정된 운동 겸 삶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에 이끌리게 된다. 둘째,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실망과 분노가 찾아와 무언가에 몰입하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걷기를 하는 시간만큼은 세상사의 시름을 잊고 비우는 시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걷기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성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사가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할 때, 나만의 고독한 시간을 갖고 싶을 때, 건강을 위해 무리 없이 운동하고 싶을 때,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싶을 때,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친교를 다지고 싶을 때, 세상으로 자신을 내던져 실존에 대한 강한 욕구를 드러내고 싶을 때, 식사 후에 긴장을 풀면서 잠
2022-12-08 16:48어느덧 12월이다. 송년회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 때가 되면 동창회, 친목회를 비롯해 사적, 공적 모임 송년회가 줄을 잇는다. 지난 3일오후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김현광) 문화도시센터가 주최하고 사회적기업 코코코(대표 최윤주)가 주관하는 ‘인문클럽의 밤’ 행사가 책고집(수원시 팔달구 소재)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인문클럽 회원 30여 명이 참석해 한 해 활동을 되돌아보고 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필자는 인문클럽 회원이기에 초대장을 받고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 장소가 장안문 인근 책방이다. 그 앞으로 여러 번 지나간 적은 있어도 건물 안에 들어간 적은 없다. 송년회를 책방에서 한다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대개 송년회하면 먹고 마시고 떠들고 취하고 그러다가 귀가하는 것이 상례 아니던가? 이런 고교 동창 모임이 싫어 당시 회장에게 개선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그동안 해오던 관행, 임원들 설득하기 어렵다." 오늘 모임은 수원특례시 산하재단에서 주관하니 공적인 성격을 띠었다. 때론 재미없고 무미 건조할 수 있다. '괜히 왔구나'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알차게 꾸몄다. 3시간 프로그램인데 지루하지 않고…
2022-12-08 16:40삶에 활력을 주는 포크댄스를 배우고싶다면? 수원에만 있는 포즐사 동아리를 추천하고 싶다. 포즐사란 '포크댄스를 즐기는 사람들'의 약칭이다. 왜 포즐사인가? 취미의 단계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단계가 '아는' 단계, 제2단계는 '좋아하는' 단계, 제3단계는 '즐기는' 단계다. 포즐사는 바로 포크댄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동아리다. 현재 활동하는 포즐사는 제4기다. 1기 포즐사는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2017-2018), 2기 포즐사는 경기문화재단 지원 경기상상캠퍼스(2019-2020), 3기 포즐사는 경기상상캠퍼스 서둔동, 탑동 주민(2021)이다. 제4기는 올해 경기도평생교육학습관 봄과 가을 수료자 중심으로 구성됐다. 현재 10명이 서호청개구리마을(서호초내)에서 매주 1회 모여 포크댄스를 배우며즐기고 있다. 현재 제4기 오희강 회장을 만나 포크댄스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을 인터뷰했다. 그는 포즐사를 어떻게 알고 참가하게 되었을까? 그는 "학창시절 써클활동을 통해서 잠깐 접했봤던 포크댄스에 대한 향수가 늘 있던 중 평생학습관에서 올봄과 가을에 열렸던 '몸치탈출 신중년 포크댄스 완전정복!' 프로그램 정보를 보고 처음 배우게 됐다"고 말했…
2022-12-07 14:44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은 치킨을 미리 시켜서 준비하고, 응원에 동참한다. 현란한 선수들의 개인기와 멋진 골에 몰입하여 경기를 보던 중 심판이 무엇인가로 경기장에 선을 긋는 것이 보였다. 함께 경기를 보던 아들에게 물어보니 ‘배니싱 스프레이(Vanishing Sparay)’라고 한다. 프리킥을 위해 선수들이 자리를 잡느라 우왕좌왕하면 심판은 잔디 구장에 흰색의 스프레이를 뿌려 선수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흰색 스프레이 표시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신기한 ‘선 긋기’로 경기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심판이 정해놓은 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줄었고 한다. 단지 하나의 선을 그어 놓았을 뿐인데, 축구선수들은 선이 없던 때와는 다르게 선을 넘어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선을 넘어가는 순간, 위반이라는 것을 관중석과 중계를 보는 모든 사람이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규칙을 지키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기 위해 법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쓴 책 '귀찮아, 법 없이 살면 안 될까'를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법 전공자로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에게 법을 제대
2022-12-01 14:00서수원 문화 시민리더(분과장 김석)들과 수원시민들이 한자리에모였다. 23일 오전경기상상캠퍼스 청년 1981 탐조책방에서'문화로 읽는 서수원의 다양한 일상'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서수원 리더들은 지역의 일상을 다양한 문화적 가치와 시선으로 재발견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자리는 그 성과를 집약해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제일 먼저 선보인 것은 서예 퍼포먼스. 김서형 리더는 '서수원의 문체'라는 주제로 5미터 헝겊 화폭에 오늘 모임의 성격을 나타내는'문화로 읽는 서수원의 다양한 일상'이라는 문장을 일필휘지하였다. 필자는퍼포먼스가 있기까지 준비과정을 지켜보았다. 바닥에 검은 담요를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흰헝겊을 위에다 고정시키는데 장시간이 소요되었다. '아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숨은 노고가 숨어 있구나!' 다음은 필자가 맡은 신중년 포크댄스. 서수원의 활력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동아리 회원도 네 명 참석했다. 리더들과 함께 참가한 시민은 킨더폴카 '독일'을배우고 즐겼다. 이어 송년회 때 즐기는 굿나잇왈츠 '미국'. 친교를 쌓으며 하하호호 웃는 시간이 되었다. 포크댄스의 특징은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우며 즐길 수 있고 동작이 간단하고 반복되면서 파트너가 바뀌는…
2022-11-30 10:20조선 시대 편지의 형식을 살펴보면 상세한 내용으로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쓴 서간(書簡)과한 자(30센티)의 짧은 글로 소소한 일상을 적은 척독(尺牘)이 있다. 사대부들은 전화가 없던 시대에 편지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벗에게 마음과 정서를 담아 고유의 필체로 편지를 보내고 가슴 설레며 답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중 척독은 짧은 편지로 오히려 긴 여운이 느껴진다. 처마의 빗물은 똑똑똑 떨어지고 향로의 향냄새 솔솔 풍기는데 지금 두엇 친구들과 맨발 벗고 보료에 앉아 연한 연근을 쪼개 먹으며 번뇌를 씻어볼까 하네. 이런 때에 자네가 없어서는 안 되겠네. 자네의 늙은 마누라가 으르렁거리며 자네의 얼굴을 고양이상으로 만들겠지만 위축되지 말게. 문지기가 우산을 받고 갔으니 가랑비쯤이야 족히 피할 수 있을 걸세. 빨리빨리 오시게나. 모이고 흩어짐이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모임이 어찌 자주 있겠는가. 헤어지고 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네. 허균이 이재영에게 이 글은 여름날 허물없는 벗들이 빗소리를 맡으며 어린 연근을 쪼개 먹자고 벗을 부르고 있다. 짧은 글에 오감이 잘 드러나고 친구의 부름에 무서운 마누라가 잔소리하겠지만 위축되지 말라고 농담까지
2022-11-17 16:24우리 역사에서 일제의 식민시대를 생각하면 나라 잃은 슬픔으로 고통과 방황을 했을 선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3.1전국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수많은 비폭력운동에 앞장서 행동했던 애국지사와 민중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은 것이리라. 나라 밖으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시대에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전쟁과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도발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주변의 정세를 교훈 삼아 인류가 평화와 사랑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인도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폭력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정치인 간디는 비노바 바베를 가르켜 '인도가 독립하는 날, 인도의 국기를 맨 처음으로 계양할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비노바는 권력의 바깥에서 재야의 중심인물로 손꼽히며 이타적인 활동과 인격적인 삶으로 모든 인도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했다. 비노바는 폭력 없는 사랑과 감동만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2022-11-17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