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머니가 써 두신 편지를 발견했다. 검은색 볼펜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이다. 두어 군데 줄을 긋고 고친 곳이 보인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머니가 초고로 먼저 쓰고, 새 편지지에 다시 깔끔하게 정서해서 보내셨으리라.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하셨다. 어머니 글씨는 강가에 있는 작은 조약돌처럼 동글동글 모나지 않게 쓰여서, 가지런히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눈에 익은 글씨이다. 어머니의 편지 옆에 꽃무늬 봉투 하나가 있다. 열어보니, 아동문학을 하는 정영애 작가가 보낸 편지이다. 어머니의 산문집을 받아보고, 그 소감 인사로 어머니께 보낸 편지이다. 볼펜으로 쓴 굵은 글씨이다. 정 작가는 연로하신 내 어머니가 읽기 좋게, 큼직큼직하고 시원시원한 글씨체로, 마치 기러기 떼가 날아가듯, 글씨들을 썼다. 어머니는, 그 편지에 대해서 답장을 쓰신 것이다. 헤아려 보니 18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편지 가운데는 내가 보낸 편지도 수십 통이 되었다. 47년 전, 군대에서 드렸던 나의 편지는, 어머니를 안심시킨다고 얼마나 의젓했던지(의젓한 척했던지), 꾹꾹 눌러 쓴 글씨가 그 의젓함을 떠받치고 있었다
2020-04-06 11:00지난 1948년, 교육시설 피해에 대한 신속한 복구 지원 및 각종 재난예방사업을 위해 설립된 교육시설재난공제회가 올해 ‘한국교육시설안전원’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지난해 연말 「교육시설법」이 공포되고 1년간의 경과 기간을 거쳐 올 12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박구병 교육시설재난공제회장은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안전원 설립 의미를 설명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시설 복구에서 탈피, 재난과 재해로부터 교육시설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사전예방과 안전교육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선제적 사전 대응이야말로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기 동안 어린 학생부터 교직원까지 기본에 충실한 안전의식을 고취, 재난 발생에 따른 인명과 재산피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현장과 이론 양쪽을 두루 섭렵한 국내 최고 재난관리 전문가로 유명하다. 과거 삼성물산에서 근무하던 시절 성수대교 붕괴를 보며 재난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이후 건설·시설 안전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 특히 삼풍백화점 붕괴 및 우면산 산사태, 강변 테크노마트 흔들림 등 대형 재난현장의…
2020-03-05 10:30뮤지컬 배우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재즈댄스 학원에 덜컥 등록한 적이 있었다. 첫날 학원에 대한 기억. 학원의 모든 벽은 거울.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나의 위치.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복(사실 재즈댄스 할 때 그렇게 예쁜 의상을 입는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어디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할지는 모르는 어정쩡한 자세. 팔짱을 끼고 있기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기도 애매한 내 팔들. 이런 상태에서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그래도 나는 뭔가 열심히 따라 해보려고 애썼는데, 그날 선생님께 들었던 첫 마디는 “김태은 씨~ 탈춤 춰요?” 큰맘 먹고 등록했던 6개월짜리 프로그램에 딱 3번 등원하였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를 외쳤지만, 결국 실속 없는 고집으로 환불 기간도 넘긴 채, 이렇게 태생적 몸치를 극복하고 싶었던 꿈은 저물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아이들 이 기억은 학습부진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관찰할 때 자주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서정(가명)이는 초등학교 때와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선 순간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직감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수준을 인지한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
2020-03-05 10:3001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What we cannot speak about we must pass over in silence).”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의 말이다. 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말은, ‘모르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슨 정치적 압력이 있다든지, 숨겨야 하는 개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든지 하는 이유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잘 모르고 있음에서 나오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어와 앎의 관계를 논리 실증적으로 밝히려 한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면 동의할 수 있는 명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의 언어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영역
2020-03-05 10:30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대학처럼 진로와 적성에 맞춰 교과목을 선택하고 이수기준을 성취하면 졸업을 인정하는 교육제도이다. 이미 미국·유럽의 주요 국가·호주·뉴질랜드 등 서구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중국·홍콩·일본이 시행 중이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고교학점제를 2025년에 전면 실시할 계획이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고교학점제에 회의적이든, 공감하든 대부분 교사는 시행착오를 걱정한다. 해방 이후 내려온 고교 교육과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경제 및 사회·문화적 측면과 연관되어 있으며, 쟁점에 합의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까닭이다. 더구나 시행 시기에 급급하면 학생부종합전형 지지자와 수능 정시 지지자 간에 일어났던 갈등보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즉, 고교학점제는 교육과정 변경에 그치지 않고 대학 서열화가 뚜렷한 교육현실에서 개인의 지위 및 가족 이동과 소비패턴까지 바꾸는 사회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교육청 등 정책당국은 고교학점제의 당위성만 말할 뿐 적극적으로 교사와 학부모 등 여러 계층이나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검토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교육청 일각에서는 아
2020-02-28 15:34권위 지키되 권위주의는 NO. 시무식서 빛난 서번트 리더쉽 경자년(庚子年) 새해, 임채성 서울교대 총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책상엔 인공지능 관련 서적과 지난 연말 열린 AI 콘퍼런스 자료가 펼쳐있었다. 집무실 한편에 큼지막한 망원경이 창가를 향해 있고, 소파 옆 탁자엔 현미경이 놓여있다. 임 총장은 새교육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교육은 멀리 보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며 망원경과 현미경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이제는 AI를 활용해 교과내용을 어떻게 잘 가르치고, AI 시대를 맞아 아이들이 AI를 활용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AI 전문교사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 총장은 서울대 생물교육과를 나와 부산교대에 이어 서울교대에서 줄곧 과학교육을 가르쳤다. 천생 자연과학도인 그는 지난해 11월 제 17대 서울교대 총장에 오른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 서울교대가 교육을 바꾼다’라는 신념으로 훌륭한 초등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싶다.”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공감·내실·미래를 3대 키워드로 삼아 민주적이고 투명한 행정으로
2020-02-05 10:30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의 딜레마 「공직선거법」개정으로 올해 4월 15일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고3 학생 중 일부가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회가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제15조를 개정하여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하한 연령을 기존의 만 19세에서 한 살 더 낮추어 만 18세까지 한 살 낮추었기 때문이다.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만 18세의 전체 유권자는 약 53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중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고3 학생은 약 1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경남일보, 2020.1.12.). 단순히 투표 연령만 한 살 낮춰진 것이 아니라 18세 고3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등 선거운동·정치활동이 가능해졌다(한국교총 보도자료, 2020.1.3.). 그런데 문제는 현행 법령상 선거권만 단지 확대했을 뿐, 이로 인하여 새롭게 선거권을 행사할 학생들을 위한 사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학교가 법제적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강하게 표방해왔는데, 이것이「공직선거법」개정으로 일거에 혼란을 겪을 상황에 처했다.「교육기본법」제6조는 ‘교육의 중립성’ 제목하에 제1항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2020-02-05 10:3001 소년기의 체험 중에 뒤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나의 전인(全人)을 발달시켜 준 것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8㎞ 떨어진 구미 장에 염소를 팔러 갔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 무렵은 나라도 몹시 가난하여 선생님 봉급을 곡식으로 주었다. 집에서 새끼로 낳아 기르던 염소가 자라자, 돈을 마련하려고 염소 두 마리를 팔러 갔다. 한 마리는 아버지가, 다른 한 마리는 내가 끌고서, 이십리 들판을 걸어서 갔다.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염소 중에 고분고분한 염소는 없다. 얼마나 뻗쳐대며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가져가는지, 한 걸음도 순하게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염소의 본성을 온몸으로 배웠다. 첫째, 둘째, 셋째… 하며, 책에 정리된 지식으로 학습한 것이 아니었다. 몸으로 배운 것이다. 염소 본성이 무엇이더냐? 누가 물으면 정리된 언어로 말하기는 어려워도, 나는 안다. 내 몸이 이미 염소의 성질을 알아버렸다. 그날 4학년짜리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염소 팔러 장에 간 아버지께서 시장바닥 장사꾼들의 농간에 속수무책 어리숙한 모습으로 당하신 것이었다. 학교에서 인자함과 위엄을 보이시고, 특히 마을에서는 주민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
2020-02-05 10:30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블록체인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지역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미래사회 수요 맞춤형교육을 통한 미래인재 양성이 그 어느 때 보다 강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지원이 더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한국 과학교육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새로운 미래교육을 탐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우리 교육현실은 여전히 입시위주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학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상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흥미도는 최하위 권에 머물러있다. 이 같은 현실을 현장교사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한국과학창의재단 선정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받은 유현규 강원황지초 교사, 이자랑 인천남고 교사, 차현정 충북과학고 교사 등 3명의 교사로부터 생생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현규(강원황지초) 큰 상을 받고 보니…
2020-01-06 11:00미래라는 시간은 시나브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곤 한다.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패배한 이세돌의 충격은 인류의 충격이기도 했다. 비단 바둑만이 아니다. 뛰어난 계산 및 인지 처리 능력을 가진 AI에 대항할 수 있도록 미래 교육의 방향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인공지능교육학회 한선관 회장(경인교대 교수)은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국가경쟁력은 인공지능 경쟁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 학교교육에서부터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주문했다.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지,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할지, 교과서 개발부터 교사 양성까지 표준화된 툴을 만들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에 지레 겁먹기보다 그것의 알고리즘을 정확히 파악, 활용 능력을 강화하면 인간의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인공지능교육학회가 출범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인공지능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컴퓨터 교육이란 카테고리에 가둬두기에는 이미 덩치가 너무 커졌다.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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