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기나긴 겨울의 통로를 지나 찾아온 봄바람만큼이나 설렌다. 방학 동안 겨울잠을 자는 회색 곰처럼 고요하던 학교는 개학과 함께 알록달록한 물결로 살아 숨 쉰다. 하지만 교육 담당 기자로써 접하는 교육현실은 회색빛에 가깝다. 15년 기자 생활의 절반 정도를 교육 분야에서 보냈지만, 신나고 즐거운 기사를 쓴 기억은 많지 않다. 봄바람도 어찌 못하는 회색빛 교육현실 교육부에서 발표하는 자료는 대부분 ‘OO정책 개선안’, ‘△△제도 내실화 방안’, ‘XX 사고에 대한 종합대책’, ‘◇◇에 대한 실태조사 계획’ 등으로 채워져 있다.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비판이 크다보니 늘 뭔가 뜯어고치고 단속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까르르 웃으며 등교한 아이들이 들어간 곳이 이렇게 암담한 교실이란 말인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지경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보면 어찌됐던 뭔가를 개선하고 내실화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의 시각에서 보면 ‘과연 저 많은 일들이 현장으로 쏟아져 내려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9시 등교’를 보자
2015-03-01 09:00“이것은 침묵의 혁명(silent revolution)이다!” UCLA 파울로 프레이리 연구소장 카를로스 토레스 교수는 제2차 유네스코 세계시민교육회의에서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세계시민교육을 설파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 역시 개회사에서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으로 세계시민교육을 표현하였다. 세계시민교육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46년 유네스코 창립 이래 지속해 온 평화교육, 인권교육, 역사교과서 개편 등의 사업을 통합한 국제이해교육의 연장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유네스코 헌장 서문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화 또한 인간의 마음에서 구축해야 한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는 영구적 세계평화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는 철학이다. 이를 위해 유네스코는 전 세계 약 만개의 ‘유네스코학교’를 지정하고, 국제이해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한국에도 250개의 ‘유네스코학교’가 국제이해교육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주도로 출범한 ‘세계교육우선구상’ 국제이해교육이 세계시민교육이란 이름으로 지구촌에서 다시 부상하게 된 데에는 ‘글로벌교육우선구상(Global Education First Init
2015-03-01 09:00태극권으로 단련된 다부진 몸매와 고집스러워 보이는 뿔테 안경, 스포츠 형 헤어스타일에 무뚝뚝한 인상까지, 영락없는 인파이터다. 처음 본 순간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따뜻한 차 한 잔 내미는 투박한 손끝에서, 툭툭 내뱉는 독특한 말투에서, 웃을 때 입가에 시원한 물수제비를 띄우는 소탈한 인상까지 영락없는 ‘호랑이 선생님’. 가르칠 때는 엄격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자상한 스승이다. 눈발이 매화 꽃잎처럼 날리던 지난 2월, 청주시 서원구 청남로 청주교대 본관 2층 집무실에서 김배철 총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도중 담배 생각이 난다며 잠시 자리를 떴다. 애연가 이거나 스트레스가 많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부가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등 교원 양성기관의 정원감축 방침을 밝히고 정부의 대학평가가 속도를 내고 있어서 인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느 때 보다 빠르고 직선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양성대학총장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 총장은 교육대학의 입장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고 현안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학들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놓여 있는데 교대만 예외 일수는 없겠죠.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현실적 고충을 이해…
2015-03-01 09:00얼마 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윤 일병 사건을 비롯해 군의 사건 사고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우리 부대에도 자살 시도를 했던 병사, 마약을 했던 병사, 전과자(단순 전과자, 소년원 출신), 정신적 결함이 있는 병사 등 관심병사가 20~30% 정도 됩니다. 그런 병사들에게는 모두 일대일 멘토를 지정하고, 제가 직접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서 대화를 합니다. 관심병사들도 모범병사가 돼서 전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대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개성 있는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소외된 병사들의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인성교육의 시작이라고 김 중령은 말한다. “소위 관심병사들도 리더가 잘만 이끌어 주면 나중에 사회에 나가 제 몫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으로 인성교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 중령은 작으나마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인성교육을 강조한다. 삶을 바꾸는 인성교육, 군대에서 이뤄 김 중령의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 독서를 하고 대원들이 아침 운동을 하기 전에 먼저 나가 달리기를 시작한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대원들 한명 한명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서다. 그리곤 매일 아침 30분을 할애 해 아침
2015-03-01 09:00우리 고장 문화재 지킴이 예터밟기 “혹시 용미리 석불입상에 가보셨어요?” 기자를 당황케 하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예터밟기 10기 회장 이창수 학생은 파주의 문화재인 용미리 석불입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고장 파주에 있는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보물 제 93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불상입니다.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불상으로 전쟁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지만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전해져 내려오는 귀한 문화재입니다.” 예터밟기는 ‘1문화재 1지킴’ 활동의 일환으로 2005년 3월 문화재청으로부터 승인과 위촉을 받아 석조문화재 용미리 석불입상을 대상으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해오고 있다. 매주 한 번씩 불상을 찾아가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주변 여건을 관찰해 파주시청이나 관계 기관에 문제점을 건의하기도 한다. 9기 회장 유의성 학생은 문화재 지킴이로서 활동한 성과를 자랑하기도 했다. “용미리 석불입상이 용암사 안에 있습니다. 버스정류장 이름이 용암사로만 표기돼 있어 문화재를 보러 온 사람조차 찾기 어려워 애를 먹었습니다. 우리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파주시청과 버스회사에 건의해 정류장 이름을 ‘용암사 용미리 마애불상’으로 바꿨습니다.“ 학생들은 단지 스펙 쌓기
2015-03-01 09:00우리나라에서는 ‘대학’보다는 ‘대학교’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다. 대개는 대학보다 대학교가 더 크고, 더 높고, 더 좋은 줄 안다. 딴에는 그렇다. 일반적으로 대학은 단과대학을 의미하며, 최근에는 과거의 전문대가 대학으로 일제히 ‘승격’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대학교는 많은 경우 여러 개의 단과대학에다가 대학원까지 갖춘 종합대학을 뜻한다. 대학의 최고 수장은 학장인데, 대학교의 최고 책임자는 총장으로 불린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대학들은 모두 대학교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대학교라는 명칭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university를 그냥 대학으로 번역해 사용한다. 도쿄대학, 교토대학,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북한에서도 굳이 대학교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북한의 유일한 종합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도 끝에 ‘교’ 자를 붙이지 않는다(참고로 북한의 나머지 대학들은 모두 단과대학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약칭은 ‘김대’가 아니라 ‘종합대’이다). 우리의 ‘대학교’는 이름값에 걸맞을까? 우리나라에서 대학교라는 이름의 효시는 1946년에 개교한 서울대학교이다. 그전에 있던 대학들은 ‘교’자 없
2015-03-01 09:00인성교육 대입전형 기대반 우려반 육은 여전히 교육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교육부가 지난 1월 21일 대통령업무보고에서 “대입전형에서 인성교육 결과를 내실 있게 반영하는 우수대학들에 대하여 인센티브를 지원하겠다”며 인성교육 결과의 대입 반영 확대 유도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교ㆍ사대, 유아교육 및 보육 관련 학과들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입시에 인성관련 요소를 확대하도록 할 것임을 제시했다. 교육부의 계획과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사회ㆍ문화ㆍ제도적 문제와 연관된 인성을 단순히 인성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지극히 추상적인 인성 문제를 계량화하여 평가하고, 이를 통해 효과를 강화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인성이 프로그램 하나 한다고, 수업을 개선한다고 바뀌지는 않는다. 또한 토의ㆍ토론ㆍ면접 한 번으로 그 수준을 정확히 판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두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가? 인성교육, 학교 성취평가 반영은 당연 성교육 결과의 대입 반영 확대 유도라는 교육부의 계획을 두고 취지는 맞지만 대입제도와 같이 민감한 내용과 연계된 것을 충분한 준비 없이 무성의하게 발표함으
2015-03-01 09:00최근 잇달아 발생한 반(反)인륜적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국민의 개탄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선장과 일부 선원이 보여줬던 무책임한 행위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등 사회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자성의 목소리는 크지만, 정작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정ㆍ학교ㆍ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실천 운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012년 학교폭력에 의해 자살한 대구 중학생 사건을 계기로 230여 교육ㆍ사회 단체가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을 결성해 실천 운동을 전개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모범사례다. 특히,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ㆍ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은 이러한 범사회적 실천운동을 승화시킬 수 있는 계기는 물론 경쟁과 학력에서 인성 중심으로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분기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교육ㆍ사회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ㆍ가정ㆍ학교가 하나되는 ‘학사모일체’ 이제 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학교ㆍ가정ㆍ사회가 혼연일체가 되는 범국민적인 실천만이 남았으며, 그 선결 과제로 학교와 가정이 우선 하나가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군
2015-03-01 09:00어린 시절 유쾌한 경험과 기억은 두고두고 긍정적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또한 긍정적 정서가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소통ㆍ나눔ㆍ배려ㆍ공감 능력이 훨씬 뛰어나 바른 인성 함양의 원동력이 된다.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그리스어로 ‘장소, 곳, 땅’을 뜻하는 토포스(topos)와 ‘애착,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토포필리아는 개인적이고 심오한 인상과 의미를 갖는 장소에 대한 만남, 즉 장소애를 의미하며, 장소와 인간존재를 이어주는 ‘정서적 관계’라 할 수 있다. 토포필리아(topophilia) 사회교육은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생활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긍정적 정서 및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교육방법이다. 아이들은 얼마만큼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학창시절 교실에서의 가치 있는 활동경험은 교실을 ‘단순히 머물렀던 장소’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이는 한 개인을 지속적이고 다방면에서의 긍정적 변화로 이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실 풍경은 어떠한가?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학급에는 여러 규칙이 있지만 각종 쓰레기들은 교실…
2015-03-01 09:00“선생님, 영빈이 복도에서 뛰었어요.” “선생님, 지호가 여자 화장실 불 껐어요.” “선생님, 은석이가 ….” “선생님, ….” 신학기 시작으로 아이들 파악하랴, 밀려드는 행정업무 처리하랴 정신없는 나를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찾는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어색하고 긴장했던 녀석들이 맞나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차분히 대화하고 안정된 학습 분위기를 만드는 것임을 알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일주일 만에 본색을 드러낸 아이들의 목소리로 교실은 늘 잠잠할 틈이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바빠도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학급 약속’을 정하는 일이다. 물론 ‘바빠 죽겠는데 한가하게 아이들 이야기 다 들어주면서 약속 정할 시간이 있냐’고 반문하실 선생님이 계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학기 첫 달을 놓치면 ‘일 년이 더 꼬이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 시기가 일 년의 학급 분위기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인 것이다. 학급 약속을 정하는 최적기, 문제행동이 일어난 바로 그 때 우리 학급은 따로 날을 잡아서 학급 약속을 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누가 복도에서 뛰는지’, ‘누가 친구를 놀리는지’ 등 선생님께 꼭 무엇인가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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