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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위한 마음 챙김 철학] 일상에는 매듭짓기가 필요하다 

 

“10월의 긴 휴일이 충전의 시간이 되려면” 
우리에 갇힌 짐승은 정형행동(stereotypic behavior)에 빠지곤 한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무의미한 동작을 거듭한다는 뜻이다. 고개를 흔들거나, 짧은 거리를 끝없이 왔다 갔다 하는 식이다. 선생님들도 다르지 않다. 교사의 하루는 일과에 얽매어있다. 수업과 업무로 촘촘하게 짜인 시간표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결강과 결근은 학생과 동료들에게 바로 피해를 주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에게도 정형행동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공강시간,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뒤적이거나, 할 일은 산더미인데 고민에 짓눌려 무의미하게 인터넷 서핑에 빠져 있는 시간을 떠올려 보라.


이 점에서 10월의 긴 연휴는 반갑다. 갇힌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한결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교사의 마음은 휴일에도 여전히 학교를 벗어나지 못한다. 힘겨운 학생과의 줄다리기, 동료와의 갈등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를 테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버거운 상황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고민을 감싸안은 채 휴식 같지 않은 휴식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연휴를 보내기 일쑤다. 학교에 복귀할 즈음에도 피로와 무력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테다. 긴 휴일이 쉼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에는 매듭짓기가 필요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기. 기력을 찾기 위한 비법(?)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근심이 가득한 채로 입맛 좋게 먹고, 편안하게 잠들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먼저 고민부터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류학자인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Dimitris Xygalatas)는 의식(ritual)의 중요성을 일러준다. 지갈라타스에 따르면 마음을 가볍게 하는 데는 의식이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장례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누군가 죽었다고 해보자. 사정이 생겨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그이를 일상에서 놓아버리지 못한다. 망자(亡者)도 죽은 자 사이에 자리 잡지 못해 애매한 처지에 놓인다. 제대로 예를 갖추고 난 후에야 비로소 죽은 자도, 산 자도 제 갈 길을 간다. 죽은 이는 기억하고 그리워할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우리는 이제 그이가 다시 오지 못함을 받아들이며 일상을 다잡는다. 이렇듯 의식은 때마다 매듭을 지어주며 의미를 새기고 관계를 정리해 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의례가 ‘쓸데없는 번거로운 짓’으로 여겨질 뿐이다. ‘의식 줄이기’는 업무 간소화에서 빠지지 않는 항목이지 않던가. 입학식과 졸업식은 간단하게 치르고, 개학식과 방학식 같은 행사는 아예 생략되기도 한다. 지갈라타스에 따르면, 의식이 사라지는 분위기는 현대 문명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의례는 왜 필요 없어졌을까?” 
의례는 불안감을 줄이고, 소속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해가 뜨고 지며, 계절이 흘러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삶은 변화무쌍한 일들의 연속이다. 이런 현실에서 거듭되는 의례는 그 자체로 안정감을 준다.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지갈라타스는 앞일이 가늠하기 힘든 불안한 처지일수록 사람들이 의례에 매달리게 된다고 말한다. 


운동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이기고 지는 데는 실력만큼이나 운도 큰 영향을 끼친다. 행운과 불운은 내가 어쩌지 못한다. 그럴수록 자신만의 의식, 리추얼에 매달리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경기할 때마다 똑같은 양말을 신는다든지, 독특한 동작으로 자신의 운동도구를 매만지고 신발을 다듬는 식이다. 이렇게 ‘자기만의 징크스’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 보라. 의례를 치를 때는 같은 동작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했다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리라는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는 탓이다. 


그렇지만 예상대로 진행되는 일에는 이런 강박에 가까운 의식이 자리 잡지 않는다. 옛날에는 언제 폭풍우가 닥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긴 뱃길을 나설 때마다 온갖 의례가 펼쳐지곤 했다. 기상예보가 정확해진 지금은 이런 풍습들이 미신으로 여겨질 뿐이다. 선진국일수록 사회는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그만큼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 가능한 분야도 늘어난다. 이럴수록 불안해하며 마음 졸일 일도 줄어든다. 의례가 우리 현실에서 점점 사라지는 이유다. 


나아가 의례는 공동체를 일구는 역할을 한다. 자부심이 높고 소속감도 강한 집단들은 ‘통과 의례’가 힘든 경우가 많다. 신병 선발과 훈련이 힘든 부대일수록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하고 단결이 잘되지 않던가. 버겁지만 마땅히 치러야 할 절차를 함께 겪을 때, 사람들은 공동의 기억을 만든다. 이러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도 자리 잡는다. 


하지만 공동체는 이제 내 삶의 든든한 울타리라기보다, 오히려 족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SNS 등은 개인 맞춤형으로 나의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 주지 않던가. 공동체가 굳이 필요 없는 순간이 점점 많아지는 셈이다. 이럴수록 공동체를 일구고 소속감을 가꾸는 일, 이를 위해 치러야 할 각종 의식도 점점 필요 없게만 여겨진다. 


“의식은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과연 우리가 의식에 이렇게 소홀해져도 될까? 불안하지 않고 외롭지 않다면 이래도 된다. 그렇지만 연휴에도 온갖 걱정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선생님들은 어떨까? 점점 혼자라는 생각에 교무실에서도 외로움이 올라온다면? 이렇다면 의식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지갈라타스는 인간은 ‘의례적인 종(種)’이라고 잘라 말한다. 삶의 의미와 가치가 의식을 통해 맺어진다는 뜻이다.


학교의 일상은 온갖 의식들로 가득하다. 학급의 하루는 조회로 시작해서 종례로 끝난다. 매주 혹은 매달 교직원회의가 있으며, 학급자치활동이 있다. 입학식과 개학식으로 학년도를 시작해서 졸업식과 종업식으로 한 해를 매듭짓는다. 이 사이에 여러 기념식과 행사들이 때마다 거듭된다. 온갖 의례가 계절의 순환처럼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 셈이다. 


이쯤 되면 연휴에도 좀처럼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 이유가 분명해질 듯싶다. 제대로 휴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질척거리는 일상을 매듭지어 주는 의례가 있어야 했다. 나아가 긴 휴일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의식도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의식이 누군가에 의해서 억지로 주어졌을 때는 별 효과가 없다. 게다가 이제는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떼로 모여 구호를 외치고, 때마다 집회를 열며, 감동(?)을 되새기는 전체주의 사회의 풍경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스스로 다잡는 의례를 선생님 스스로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나는 어느 부분에서 무너져 버렸을까?”
“이 아픔과 고통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긴 휴식 기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 나는 무엇이 바뀌어 있어야 할까?”
“올해의 마무리까지 나는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까?”

 

뜻한 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은 없다. 삶은 언제나 흔들리며 조금씩 어긋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일상을 가다듬으며, 삶의 중심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위의 물음은 삶의 매듭마다 주어지는 의식에서 빠지지 않는 물음들이다. 의미 깊은 의례에서는 좋은 삶을 가다듬는 근본 물음이 빠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이 사라진 채 이루어지는 의식은 ‘허례허식’일 뿐이다. 불안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선생님에게는 심지를 굳게 다잡아 주는 자신만의 의례가 필요하다. 위의 물음을 되새기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보시길 바란다. 

 

‘다시 시작하기’를 활용하자
입학식·개학식 등은 특별하다. 질척거리는 과거에서 벗어나 리셋(reset)될 기회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매월 1일, 매주 월요일도 새출발을 위한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다. 10월의 연휴도 그렇다. 연휴가 끝나는 날, 나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갈라타스의 주장대로라면 휴일도 인류 사회를 꾸리는 의례의 일부다. 휴일과 명절은 일상의 흐름을 끊음으로써 우리에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안긴다. 불안과 헛헛함에 시달리는 선생님에게는 의식이 필요하다. 의미를 되찾는 10월의 연휴가 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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