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자스탄 지역은 인도에서도 가장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한 땅이다. 광대한 타르사막에 둘러싸인 척박한 땅이지만, 메마른 사막 위에 서 있는 거대한 성과 투명한 호수는 여행자들에게는 인도의 어떤 지역보다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라자스탄은 ‘라지푸트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라지푸트는 라자스탄을 지배했던 전사집단이다. 이들은 자부심으로 가득했고 누구보다 용감했다. 승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조하르’(Johar)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과 아이들은 화장용 장작더미에 몸을 던지는 ‘사티’(Sati) 풍습을 지켰다. 라지푸트족의 이러한 용맹 때문에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무굴제국도 라자스탄 지역만은 무력에 의한 점령 대신 혼인 등을 통한 타협책으로 그들을 끌어안았다고 한다.
사막 위에 우뚝 선 불가사의한 풍경, 메헤랑가르
라지푸트들은 라자스탄의 수많은 성채와 전설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거대한 성채들과 귀족들의 저택인 ‘하벨리’(Haveli)를 건축하며, 그들만의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라지푸트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예로부터 라자스탄 지역은 인도와 주변 국가로 통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게다가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동서 교역로에 자리했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라지푸트들은 평지에 성을 세웠던 인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절벽에 성을 쌓고 자신들의 소왕국을 세워 군림했다. 자이푸르의 자이가르성(Jaigarh Fort),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성(Meherangarh Fort), 자이살메르의 자이살성(Jaisal Castel) 등이 모두 적이 침범하기 힘든 천혜의 절벽에 만들어진 성들이다.
라자스탄에 대한 라지푸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영국 통치기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거대한 왕궁과 엄청난 토지, 막대한 양의 보석과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지배력은 여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성들은 현재 훌륭한 관광자원이 돼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 요새들은 대부분 최고급 호화호텔로 꾸며졌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오래된 성곽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마치 마하라자(인도 왕을 일컫는 말)라도 된 것 같은 호사를 누리곤 한다.
아마도 라자스탄 지역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시는 조드푸르일 것이다. 임수정과 공유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김종욱 찾기’에서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낭만적인 도시로 우리에게 소개된 적이 있다.
조드푸르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메헤랑가르성이다. 여전히 조드푸르의 마하리자가 소유하고 있는 이 거대한 성은 15세기 중엽에 착공하기 시작해 19세기 초에 완성됐다. 125m의 높은 언덕에 웅장하게 선 이 거대한 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인근 왕국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개를 180도 꺾어야만 바라볼 수 있는 이 성은 사막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가사의하게 다가온다. 물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메헤랑가르성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할 곳이 자야폴(Jayapol)이라 불리는 정문이다. 1806년 마하라자 만 싱(Maharaja Man Singh)이 자이푸르와 비카네르왕국의 공격을 막아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문이다. 성문 앞에는 15개의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다. 이것들은 마하라자의 미망인이었던 왕후들이 남긴 것으로 왕의 장례식 때 자신의 몸을 왕의 번제물로 바치는 사티(Sati)의식에 참여한 흔적이다. 사티란 남편인 왕의 죽음에 동참하는 일종의 순종의식으로 인도를 식민통치한 영국정부에 의해 100년 전부터 근절되었다고 한다.
메헤랑가르성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띤다. 사막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붉은 사암을 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암은 특유의 부드러운 재질 덕택에 세밀하게 조각하기가 쉬운데, 메헤랑가르성의 격자 세공을 한 발코니와 섬세한 조각을 새긴 창틀 등은 사암의 이런 특징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메헤랑가르 성채는 라자스탄의 성채들 중에서 가장 남성미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로처럼 뒤엉킨 성채의 내부를 구석구석 돌아본 뒤에는 성채 꼭대기로 올라가 보자. 커다란 대포가 구시가지를 향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대포의 모습과는 달리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드푸르의 풍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벽이 푸른색으로 칠해진 도시는 말 그대로 푸르고 푸르다.
사막 위의 도시 조드푸르가 푸른색에 집착한 이유는 푸른색이 인도의 최상위계급인 브라만의 고유색깔이기 때문이다. 1459년 조드푸르가 마르와르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당시 브라만계급이 다른 계급과의 신분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집에 파란색을 칠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계급들 역시 신분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 염원으로 자신들의 집을 푸른색으로 칠했고, 도시 전체가 푸른색으로 칠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드푸르는 ‘블루 시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메헤랑가드성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구시가지에 닿는다. 골목은 술래잡기하는 아이들과 담배 피우는 노인들, 소 떼들과 오토릭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그리고 이 골목을 계속 따라가면 사르다르마켓에 닿는다. 이곳은 야채와 향료, 인도과자, 직물, 은,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짜이를 마시며 바라보는 메헤랑가드성의 야경도 꼭 한 번 볼만하다.
인도 건축의 정교함을 만나다,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는 동양의 베니스 또는 라자스탄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거울처럼 맑은 피촐라(Pichola) 호숫가에 지어진 이 도시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댐을 건설해 인공호수를 만들고, 산 위에 9km 정도의 산성을 쌓아 도시를 철옹성처럼 만들었다.
우다이푸르는 태양이 떠오르는 도시, 사원의 도시, 라자스탄의 카슈미르, 성스러운 사랑의 도시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다. 이 아름다움의 중심에는 시티 팰리스(City Palace)와 레이크 팰리스(Lake Palace)가 있다.
시티 팰리스는 라자스탄에서 가장 큰 궁전군이다. 우다이푸르를 건설한 우데씽 2세가 처음 지은 후 여러 마하라자가 건물들을 덧붙였다. 궁전의 주요 부분은 박물관으로 개방되는데 한 해에 수십만 명이 다녀갈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네 개의 큰 건물과 작은 건물로 이루어진 궁전은 지붕과 발코니에서 피촐라호수와 아라발리산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반대편으로는 시가지를 포함한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다.
시티 팰리스에서 바라보면 호수 한가운데 하얀색 케이크를 닮은 건물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이 레이크 팰리스로 원래는 왕실의 여름궁전이었지만, 지금은 호화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대리석 건축물과 내부를 치장한 화려한 실크, 형형색색의 벽화, 화려한 목재가구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레이크 팰리스를 인도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 소개하기도 했다.
기본 객실인 2인용 럭셔리룸 이용료는 3만 6천 루피 정도이며, 최상층의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은 60만 루피(약 1,46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인 <옥터퍼시>의 주요 무대로 사용되면서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우다이푸르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50루피 정도) 라낙푸르에 갈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는 오직 하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이나교의 사원인 자이푸사원이다. 오래전 서인도 지역은 서방의 침략을 자주 받았는데, 자이나교도들은 전쟁을 피해 주로 깊은 산속에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자이나교 사원 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사원은 내부 공간의 변화가 다양하고 대리석 조각이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단 위에 꽉 들어차게 세워진 건물은 거대한 성곽처럼 웅장하게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면 크고 작은 돔으로 이루어진 천장과 화려한 장식의 기둥들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또한 밝고 다채로운 내부공간은 다른 힌두교 사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건물 회랑을 걷다 보면 공간의 변화가 너무나 다양해서 그 구성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학자 안영배 교수는 이 사원을 힌두교 사원의 첨탑형 시카라와 피라미드형 지붕, 이슬람 건축의 돔 등을 모두 집대성한 인도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 평하기도 했다.
라자스탄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푸쉬카르다. 푸쉬카르호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이 도시는 힌두교의 성지로 천지창조의 신 브라흐마 손에 들린 연꽃이 지상에 떨어져 호수가 생겼다는 신화를 간직하고 있어, 인도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자가 찾아든다.
도시 가운데 자리한 호수를 따라 돌다 보면 가트(Ghat)가 나온다. 성스러운 물에 영혼의 때와 마음의 죄를 씻어버리려는 힌두인들이 말없이 의식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조용히 꽃을 물에 띄워 보내고, 물에 몸을 담그며, 기도를 올린다.
호수를 나오면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오래되었거나,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숨어 있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다닌다. 릭샤가 이리저리 사람들을 피해 다니고,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를 머리에 인 여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간다. 인도를 물씬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는 골목이다.
인도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라다. 수많은 종교와 이해불능의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 천 년 전의 생활방식과 첨단의 IT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 뜨겁고 건조한 사막과 코뿔소·하마가 살아가는 열대우림이 공존하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인도의 이런 불가사의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라자스탄주로 가보시길. 메마른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황폐한 대지 위에 눈부신 성이 우뚝 서 있는 풍경을 직접 확인해 보시길. 신기루처럼 보이는 그 풍경은 직접 보는 그 순간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손으로 촉감할 수 있는 실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