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가 또 한 명의 매력 넘치는 여배우를 얻었다. 바로 박지현 배우 이야기다. 2017년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로 데뷔한 후 이듬해 공포영화 <곤지암>(감독 정범식)의 주연을 꿰차며, 제39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에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후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을 비롯해 <재벌집 막내아들> 등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래도 대중들에게는 뚜렷한 한 방이 느껴지지 않는 20대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박지현 배우를 대한민국에 각인시킨 작품은 작년 11월 개봉해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히든페이스>(감독 김대우)였다. 조여정 배우와의 투 샷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였고, 송승헌 배우와의 파격적인 베드씬으로 내내 화제가 됐다.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박지현 배우는 “노출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너무 탄탄해 어떡하면 나만의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을지가 너무 설렜다”고 대답했다.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감독 이종석)로 돌아왔다. 동화 작가를 꿈꾸지만, 낮에는 음란물 단속 공무원으로, 밤에는 성인 웹소설 작가로 이중생활을 하는 MZ세대 ‘윤단비’ 역할을 맡았다. 코미디 연기의 대가 성동일 배우와 멋짐과 망가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최시원 배우가 합을 맞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섹시’를 벗고 ‘코미디’로 풀 장착한, 늘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박지현 배우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일인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솔직담백했던 박지현 배우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일단 철판을 깔았습니다. 배우 박지현도, 영화 속 캐릭터 윤단비도 그렇게 사람들이 얼굴을 붉힐 만한 말들은 들어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단비는 부끄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끄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뻔뻔함을 탑재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웃음)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에서 성인 웹소설 작가로 분한 박지현 배우는 영화 속에서 쉴 새 없이 야한 대사를 쏟아낸다. 퇴근 후 늦은 밤, 혼자 야한 상상을 할 때도 박지현 배우는 외설적인 단어를 독백으로 해야 했고, 귀엽게 인사를 건네던 동물 캐릭터들은 검은 그림자 CG로 처리되면서 신음소리를 낸다. 특히 공무원 선배 역할로 나온 최시원 배우와 포장마차 장면을 찍을 때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조연 배우들 사이에서 민망한 단어를 쉴 새 없이 뱉어내며, 술에 취한 연기를 해야 했다. 촬영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뻔뻔함을 장착할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왜 글재주가 이런 데 터지냐고!”
영화 속 윤단비는 신춘문예 대상을 받고 동화 작가로 데뷔한 아버지에 이어, 동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 청년이다. 하지만 데뷔까지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공무원이 된다. 출근 첫날 그의 업무가 불법 음란물 단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좌절한다. 성인 웹소설 회사 황 대표(성동일)의 클래식카를 ‘박살’ 내고 수리비 1억 원이 부족해 성인 웹소설을 쓰기로 ‘악마의 계약’을 맺게 되면서 단비의 이중생활이 펼쳐진다. 힘들어하던 단비에게 친구들과 공무원 선배가 도움을 주고, 어느덧 그는 몰랐던 ‘성스러운 재능’에 눈뜬다.
설정이나 플롯이 어디선가 본 듯하기도 하고, 성동일·최시원이라는 코미디 전문 배우가 나오니 그냥저냥 볼만한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 재밌다. 윤단비 역을 맡은 박지현 배우가 털털하면서도 순수하고, 매력적으로 톡톡하게 살려내는 연기의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데뷔 초부터 인터뷰 때마다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밝혀왔다는 박지현 배우는 평소 애드리브를 치거나 개그를 짜서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데 진심이다. 코미디의 첫 번째는 자신감이요, 둘째는 뻔뻔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는, 하지만 다소 차가워 보이고 도회적인 외모 때문에 코미디 장르에 캐스팅된 적이 없었다. 2025년을 여는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로 생애 첫 코미디 배역에 도전한 박지연 배우는 왜 그렇게 코미디 연기에 목말랐을까? 이번 작품으로 코미디 연기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됐을까?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웃음’이에요. 물론 감동이나 다른 감정들도 중요하지만, 웃음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잖아요. 그만큼 타인을 웃게 만드는 연기는 더 힘들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을 웃기려는 욕심이 좀 많아요. 웃기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요. 코미디 연기에 대한 열정은 강했는데, 제 이미지가 그렇지 않다 보니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어요. ‘어디 한 작품만 들어와 봐라’하고 벼르던 차에 이번 영화를 만난 겁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코미디 쪽으로 길이 좀 열리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죠. 코미디에 대한 갈증이 아직 많이 남았거든요!”(웃음)
“배우는 천직 …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파”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에서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단비는 신춘문예에 탈락하고 고향집으로 간다. 꿈에서 만난 과거의 아버지는 단비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한테서 들은 비밀 하나. 신춘문예 대상을 받으며, 동화 작가로 등단한 아버지의 꿈은 동화 작가가 아닌 야설 작가! “동화를 쓰는 아빠가 제일 멋있어! 나도 커서 동화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어린 단비의 말에, 아버지 역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꿈속의 아버지와 화해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단비처럼, 과연 박지현 배우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저는 정말 운이 좋게도, 제가 커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어렸을 때, 남들보다 좀 더 일찍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꿈을 실행할 용기도 있었던 거 같고요. 운 좋게 지금까지 연기로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이 저는 진짜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굉장히 행복해요. 문제는 이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는 거겠죠. 최대한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요!”(웃음)
그러면서 박지현 배우가 관객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의 단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동화 작가라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수입이 불안정할 테니 등단할 때까지만 공무원을 하겠다고 해서 청소년 보호팀에서 일하게 됐고요. 거기서 만난 선배가 단비를 지켜본 후 단비는 성인 웹소설을 쓸 때 더 즐거워 보이고, 재능도 뛰어난 거 같다고 조언해 주죠. 동화 작가는 아버지의 꿈이었다고 하면서요. 영화를 보실 관객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또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2017년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얼굴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드디어 지난해 영화 <히든페이스>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배우가 됐다. 아직 연기 인생이 채 10년을 지나지 않았지만, 박지현 배우는 자신에게 배우란 ‘천직’이란 걸 오래전부터 알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역할극 놀이를 너무 좋아했어요. 제 방에서는 정말 온갖 소리가 다 들려와요. 언니가 제발 조용히 하라고 할 정도로요. 제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배우들을 따라 하거든요. 최근에는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시리즈 <디스클레이머>를 정말 몰입해서 봤어요. 당연히 연기를 따라 했고요. 지금도 저는 그게 너무 재밌어요. 아무래도 천직을 택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데뷔 8년 차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연기하기를 바란다. 모든 배우가 다른 답을 주겠지만, 박지현 배우만의 오래도록 연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사람보다 한참 더 지혜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발이 지면에 단단히 고정된 느낌으로.
“배우는 항상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선택은 당연하거니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배우·연출자·제작자 등 관계자들에게도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니 좋은 연기를 해서 관객들에게 선택받는 건 물론이고요. 그보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네, 저는 늘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차기작은 넷플릭스에서 천만 배우 김고은과 투톱!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어느덧 충무로 대세 배우가 된 박지현의 차기작은 올 상반기에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감독 조영민)이다. <파묘>(감독 장재현)로 천만 배우로 등극한 김고은 배우와 투톱을 맡아 동경과 질투, 애정과 증오로 얽힌 두 친구로 분해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선보일 예정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로 만났던 인연이 다시 이어진 작품으로도 눈길을 끈다.
“조영민 감독님이 같이 또 작품 하자는 말에 보람을 느꼈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촬영할 때 감독님이 저보고 ‘너는 나중에 꼭 코미디를 해야 해!’라고 말씀하셔서 코미디 작품에 불러주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진지한 작품에 캐스팅하셨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이 작품을 찍으면서 삶을 대하는 가치관이 달라졌을 정도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사진 ● <동화지만 청불입니다>_ (주) 미디어캔 / <히든페이스> _ 스튜디오앤뉴·쏠레어파트너스(유)·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