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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의 교단춘추] 극심한 갈등사회에서 교육의 역할❷

순진한 실재론 극복

 

헤이트는 <행복의 가설>에서 ‘세계 평화와 사회 화합에 가장 큰 장애물’ 후보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순진한 실재론(naive realism)’을 들겠다고 이야기한다(Haidt, 2006: 135-136). 순진한 실재론이 무엇이기에 이를 세계 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왜 순진한 실재론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순진한 실재론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순진한 실재론이란?
프린스턴대학의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과 스탠퍼드대학의 리 로스(Lee Ross)는 인간이 가진 편견에 대해 가르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편견을 극복하게 할 수 있을지 실험했다. 많은 연구 결과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이기적인 편견에 대해 배우고, 그 지식을 다른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는 데 적용하는 일을 매우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그들 자신을 평가할 때는 별 효과가 없었다’(Haidt, 2006: 135)고 밝혔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접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에게 보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내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달리 생각하는 이유는 아직 관련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사적인 이익이나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고 경향을 ‘순진한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순진한 실재론자들은 많은 사람이 이데올로기와 사리사욕에 영향을 받고 있음이 극히 명백하다고 믿으면서도, 자신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한다. 이는 집단 차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개인 그리고 집단 사이의 갈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순진한 실재론에 빠지는 이유
● 지각의 불완전성
우리 인간은 왜 순진한 실재론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크리츨로(Critchlow, 2019)의 저서 <운명의 과학>은 인간 지각의 불완전성과 자기중심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 환경을 지각해서 그로부터 일관성 있는 모형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축한 현실이 ‘모든 신념 소프트웨어가 가동되는 밑바탕 플랫폼’이 된다. 우리 인간은 개인 ‘맞춤형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각은 뇌가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이란 ‘뇌의 물리적 구성과 과거 경험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고유의 환각을 바탕으로’ 한다(Critchlow, 2019: 166-167).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라쇼몽(羅生門)>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에 개봉한 <라쇼몽>은 살해된 사무라이(남편)에 관한 범죄 미스터리 영화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여 전 세계에 처음으로 일본영화를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사무라이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된 산적과 사건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무라이 아내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자, 무당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와 그의 진술도 듣게 된다. 하지만 역시 진술이 서로 달라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영화는 ‘각각의 인물마다 왜 진술이 모두 다른지 그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진실은 하나일지라도 얼마든지 사람마다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해석하는 데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세상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위키백과, <라쇼몽>). 그렇다면 ‘거대하고 정교하고 강력한 뇌’가 세상의 정확한 현실이 아니라 근사치(주관적 환상)를 제공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현실을 제공하기에는 뇌가 ‘바빠도 너무 바쁘다.’ 뇌는 매 순간 오감을 통해 입력되는 1천만 개 이상의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지각은 뇌가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사실상 무한히 많은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잠정적인 버전의 현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뇌는 귀·눈·코 그리고 다른 감각기관에서 유입되는 신호들을 전하를 띤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으로 변환해서 그 이온들을 신경세포 안팎으로 펌프질을 해야 한다. 또 뇌는 그 결과로 생기는 전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회로판인 커넥톰 여기저기로 시속 400km의 속도로 내보내야 한다(Critchlow, 2019: 165). 이렇게 ‘방대한 과제를 처리하려면 지름길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지름길이 오류로 이어진다.’ 

 

● 뇌의 자기 중심성
뇌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은 심리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자기중심적이다. 외모만 비슷해도 우호적이 되고, 역으로 외모만 달라도 적대적이 된다. 유사한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와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아예 뇌의 작동 부위가 달라진다(사이언스 타임즈, 2008). 자신과 비슷한지 아닌지에 따라 뇌의 작동 부위가 달라지는 것이 인종문제나 종교문제, 그리고 계층 간 사회적 갈등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사회적 갈등은 이러한 뇌 탓일 수도 있다고 그는 결론짓고 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소통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편협하고 왜곡된 현실에 갇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으므로 보다 건강한 버전의 현실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 뇌의 보수성
뇌는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로부터 지속적으로 의미를 추출해 내려는 일종의 ‘신념 엔진’이다. 뇌는 자기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입력을 분류하고 상호 참조해서 패턴을 생성함으로써 신념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뇌가 무언가에 대한 신념을 구축하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더라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Critchlow, 2019: 201-203). 이렇게 형성된 신념이나 의식은 현상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뇌의 이러한 불완전성·자기중심성 그리고 보수성으로 인해 우리는 나름의 편향된 신념체계를 갖게 되고, 일단 그러한 신념체계를 갖게 되면 개인의 신념체계에 부합하는 이론만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즉 프로닌과 로스가 말한 ‘순진한 실재론’에 빠지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이 이 한계에 갇혀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순진한 실재론에서의 탈출 가능성
그러면 뇌가 이렇게 생겼으니 편향된 신념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개인이나 집단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신념은 일종의 ‘정신적 습관’으로 몸의 습관보다 바꾸기가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신념이 전혀 바뀌지 않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의 생각(신념)이 일정 부분 바뀌게 되었음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가 갇혀있는 사고의 틀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새로운 경험 혹은 새로운 의견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구축한 현실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해서 실험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더 정확한 그림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쉬운 것은 아니다. 뇌는 자신의 세계관과 의견에 대한 문제 제기에 저항하는 습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보면 뇌는 선천적으로 보수적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부분과 균형을 잡기 위한 또 다른 메커니즘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새로움을 탐구하고 추구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개념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즐기도록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이것은 인간이 집단의식을 형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Critchlow, 2019: 182).’ 


편향된 신념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능력은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자기객관화 능력이다. 잠시 집중만 하면, 앉아서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또 다른 내가 멀리에서 내려다보게 할 수 있다. 내가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생각을 전개해 가고 있는지도 분석할 수 있다. 대화와 논쟁은 인간 뇌와 사유구조의 한계를 서로가 인정할 때, 그리고 인간이 가진 새로운 개념과 세계관 공유를 즐기는 능력, 객관화 능력 등을 전제할 때에 가능하다. 

 

순진한 실재론 탈출과 교육의 역할
교육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개인들이 순진한 실재론에 빠져 있음을 깨닫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뇌의 보수성을 인식하도록 하되, 그러면서도 뇌가 새로운 경험과 관점을 즐기는 역량을 갖고 있음도 깨닫게 하고 이 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SNS로 인한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를 깨닫고, 여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인간의 자기객관화 능력을 명상 등의 훈련을 통해 길러주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사고·논쟁 그리고 세상을 해석할 때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지금은 시대를 구할 영웅을 기다릴 때가 아니라,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되어야 할 때이다. 우리 인간이 그러한 차원으로 나아가면 마음의 행복, 사회의 화합, 세계의 평화가 한 발 더 가까이 오게 될 것이다. 교육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도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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