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 혁신, 학령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지역 간 교육격차 문제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참신하고 혁신적인 교육정책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예측이 어려운 전환기에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창립 53주년을 맞았다.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한국 교육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온 KEDI는 지금 어떤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지, 또 해법은 무엇인지 고영선 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 KEDI는 그동안 다양한 교육정책과 새로운 제안으로 교육계에 기여했는데, 창립 53주년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972년 창립돼 그동안 교육정책뿐만 아니라 교육통계사업 등 필수 국가사업도 수행해 왔습니다. 여러 기능 가운데 일부가 분리돼 별도 기관이 설립되기도 했는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한국교육방송공사, 교육학술정보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육아정책연구소 등의 모태가 한국교육개발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정책연구자들을 갈려내 대학에 보냄으로써 우리 교육계 인재 양성에에도 기여했다고 봅니다."
- 53주년 창립기념 정책포럼 기조발제에서 과학으로서의 교육정책에 대해 기조발제를 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교육정책이 목적했던 성과를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정책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목표 달성여부를 파악하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목표달성 또는 미달성의 이유를 분석하여 정책을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목표가 달성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KEDI의 동향 중에는 지역소멸과 교육격차 해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에 양질의 교육제공이나 지역인재 정주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소멸과 교육격차는 우리 교육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교육청 및 교육지원청과 협력하여 공교육을 회복시킴으로써 인구유출을 막고 지역을 살리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가계소득에 따른 격차나 이주배경 여부에 따른 격차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도 소규모 지역 단위의 주체들이 맞춤형 접근을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 새 정부의 주요 교육정책 중 하나인 서울대 10개 만들기와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고등교육 경쟁력이 낮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1차적 원인은 고등교육 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있지만 대학들이 경쟁력 강화를 추진한 동기가 충분치 않다는 것도 주요 원인입니다. 어떻게 해야 지방대학들이 혁신에 나서도록 고민하면서 재정투자를 확대한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방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KEDI에는 교육활동보호센터도 있고, 교권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교권보호와 관련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교권 문제는 단순한 개별 교사의 어려움이 아니라 교육 현장의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사회적 증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것이야 말로 KEDI에 주어진 사회적 책무입니다. 이와 관련해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 제작, 법령 개정 지원, 시·도교육청 교권보호센터 운영 지원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정책개발을 추진하고자 하는데 교직 문화, 교사의 근무 환경에 대한 국제 비교, 교원 인사 제도, 학부모와의 소통 및 관계에 대한 연구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 제4차 산업혁명, AI 디지털 시대 본격화 등 교육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KEDI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운영기조는 무엇입니까.
"AI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큰 고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또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중의 상승, 이주배경학생 증가, 빈번히 발생하는 교권침해, 학교 구성원 간 갈등 심화, 교육교부금 세입 불확실성 증가, 교육자치에 대한 비판 등도 도전 요인입니다. KEDI는 보다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총체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노력할 것입니다. 학생의 성장과 행복을 중심에 두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분석하는 한편 공교육의 본래 목적에 맞게 교육 생태계가 작동하도록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할 것입니다. 또 연구결과를 쉽고 간결하게 일반 국민에게 전달하고, 우리 연구기관의 전문성·중립성과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 끝으로 일선에서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은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새겨할 말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이 말입니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거대한 관료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일선 선생님들이 상부에서 내려보내는 각종 정책과 사업의 집행자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현재에서 벗어나 교사의 주체성을 세우는 일, 이들이 자부심과 보람과 책임감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변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뿐 아니라 일선 선생님도 고민하시고 아이디어를 주시고 함께 계속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도 보다 적극적으로 선생님들의 의견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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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서울 출생(63세) ▲교육부 교육발전특구위원장 ▲전 고용노동부 차관 ▲전 국무조정실 2차장 ▲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부원장 ▲스탠포드대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