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시간에는 조금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아이들도 교사를 살피고, 교사도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을 살핀다. 그 어색함을 오래 끌고 가지 않으려고, 수업 내용으로 바로 들어가기보다 아이들이 한 번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곤 한다.
한 번은 외계인 이야기를 했다. 롯데타워에서 쏘는 레이저를 타고 우주선에 다녀왔는데 너무 피곤하다고 말하자 아이들이 금방 웃기 시작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눈빛이 달라진다. 반응이 좋으면 조금 더 간다. 어설픈 춤도 추고, 우스운 목소리도 낸다.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정작 말하는 사람은 민망해진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교사라는 자리는 괜히 조금 점잖아 보여야 할 것 같을 때가 있다. 너무 가볍게 보이는 건 아닐까 싶고, 일부러 우스운 모습을 보이는 일이 어색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 한 번 지나고 나면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쉬는 시간에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아이가 생기고, 다음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해줄 거냐고 묻는다. 수업 시간에도 전보다 질문이 조금 늘고, 교사의 눈치를 보던 아이가 편하게 반응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수업 내용만 듣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가르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피는 것 같다.
‘저 선생님한테 말해도 괜찮을까.’
‘틀려도 괜찮을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이런 분위기를 빨리 알아차린다. 물론 아이들과 가까워졌다고 해서 수업의 기준까지 느슨해질 필요는 없다. 해야 할 활동은 해야 하고, 지켜야 할 약속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관계가 조금 열리고 나면 이런 말을 하기도 편해진다.
“여기까지는 장난이고, 이제 다시 수업으로 돌아오자.”
그 말을 아이들도 덜 날카롭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친근함과 기준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웃을 때는 같이 웃고, 돌아와야 할 때는 다시 수업으로 돌아오면 된다. 아이들에게 먼저 마음을 열라고 말하기 전에, 교사도 조금은 자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때로는 그게 생각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