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중학교 졸업 직후인 17살때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원의 설립자인 주옥로 선생님을 만나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도 못할 형편이었던 나는 큰아버님 덕택으로 중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은 중3때 닥친 큰댁의 파산으로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남의 집 품팔이도 다니며 자포자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나의 학업중단 소식을 들으신 주옥로 선생님께서는 10리도 넘는 우리 집을 물어물어 찾아오시어 방황하던 나를 풀무학원에 입학시켜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시고 안정된 목회자의 길을 걸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농촌의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논, 밭 3만2000평 등 당신의 모든 사재를 털어 1958년 풀무학원을 설립, 40 여 년간 운영하셨다. 주옥로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나의 풀무학원 진학은 단순한 동정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불우 청소년 진학지도가 아닌 그 이상의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성서과목을 가르쳐 주셨는데 성서의 교리보다는 늘 상식과 평범한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는 믿음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인간존중과 일일일생(一日一生)의 생활철학 교육은 학문과 실무를 바탕으로 건실한 인간을 기르는 지고(至高)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한 개인이나 사회의 모든 문제는 거기 소속된 인간의 됨됨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인간교육의 책임에 있어 너와 나의 잘못을 탓할 시기는 지났다. 선생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1일1생'의 가르침을 본받아 나부터 사랑을, 나부터 믿음을, 나부터 양심의 소리에 따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고귀한 희생은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 숨쉴 것을 확신하며 선생님 덕택으로 부족하나마 교단에 있을 수 있음에 행복함을 느낀다. 이병학 <충남당진교육청 학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