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재직 학교에서 근무 만기가 되어 타 학교로 옮기게 됐다. 25년을 남학교에서만 근무한 나는 희망지를 적어내라는 말에 역시 남학교를 1순위로 선택했다. 그런데 뜻밖에 남녀공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여학생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적도 없고 가르쳐 본 적도 없는 나는 갑자기 가슴 두근거리는 소년이 돼버렸다. 더욱이 나는 첫 공학으로 갓 들어온 여학생 반을 맡게 되었다. 여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학급운영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알리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원수지지 않으려거든 아이들 앞에서 회초리를 대지 말아야 하며 작은 일에도 신경을 섬세하게 써 주어야 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의 변화가 무쌍해 잘 웃고 잘 운다는 것쯤은 알고 갔으면 좋았으련만, 난 여학생들의 생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한 대쯤 맞아도 돌아서면 시원하게 풀어지고 마는 남학생의 세계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담임을 시작한 지 두어 주일쯤 지났을까. 아이들의 얼굴이 익어가기 시작했을 때 "선생님, 배가 아파요. 조퇴시켜 주세요"하며 죽을상을 하고 배를 움켜쥐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걸러 한 놈씩 배 아프다는 녀석이 늘어나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이놈들이 나를 물로 보는 거 아냐. 공부하기 싫은 차에 꾀병을 부리는 것이렸다' 나는 더 이상 참고 넘어갈 수 없어 아이들을 따끔하게 야단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양호실 선생님과 상의해 약을 먹으면 어떻겠니"하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녀석들을 조퇴를 고집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놈아! 뭘 잘못 먹어서 안 낫는다는 거야. 너희들 요즘 왜 그렇게 배 아픈 놈이 많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쇠를 먹어도 소화시킬 나이에 녀석들이 엄살을 피우는구나 싶었다. 교실에서도 종종 배아프다며 엎드려 있는 놈들이 있더니만 조퇴하겠다고 졸라대는 녀석들도 늘어나니 정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컸던지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 옆 반 여 선생님이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찾아왔다.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으니 그 선생님은 "김 선생님, 아이들이 꾀병을 부리는게 아니랍니다.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마술에 걸려서 그래요. 정말 모르셨어요"라며 겸연쩍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숫총각도 다 아는 그 사실을 난 왜 몰랐을까. 난 얼굴이 화끈거려 한참을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김종옥 서울 동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