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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나를 울린 아이


'우와! 우리 반에 말썽꾸러기들이 참 많네'
내가 처음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혼자 중얼거린 말이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썽꾸러기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 중 훈이도 있었다. 훈이는 귀엽고 애교도 있지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파다했다.
처음에는 훈이를 왜 말썽꾸러기라고 부르는지 몰랐다. 내 앞에서는 그저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특별히 말썽도
부리지 않고, 내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훈이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패가 갈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친할 때는
서로서로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멀어질 때는 마치 남인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뭘까? 한동안 고심했다. 내가 이유를 알아도 그 아이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 했기에 더 힘들었다. 고민하기를 며칠. 할 수 없이 훈이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을 한 명씩 조용히 불렀다. 그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훈이와 관계된 이야기는 대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왕따'
원인은 훈이었다. 훈이가 아이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왕따시키고, 왕따로 지목된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방과후에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우리 반에 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고심했다. 말로만
듣던 왕따를 어떻게 해결할까? 어떻게 훈이를 대할까? 다른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결국 훈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기로 했다. 친구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형 이야기 등. 훈이는 정말 말을 잘했다. 말뿐만 아니라 운동도 잘했다.
때론 농담도 하면서 남을 웃기는 아이였다. 그러면서 나와 훈이는 친해졌고, 서로를 엄마, 아들이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지냈다. 또한 훈이도 다른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했다. 늘 형에게 비교되던 훈이, 아이들을 때리고, 왕따시키던 훈이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훈이는 철이 들었고,
공부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다. 더 이상 예전의 훈이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덧 종업식 날.
"얘들아! 지난 1년간 너희들을 만나 정말 행복했어. 아마 선생님은 창현에서 너희들과 함께 한 시간을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선생님은 이번에 수원으로 이사를 간단다. 그래서 학교도 옮기게 되었어. 선생님이 이 학교에 없어도 더 열심히 학교 생활 하길 바랄게.
늘 건강하고, 멋진 신사, 숙녀로 성장하렴."
순간 우리 반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도 울고, 아이들도 울었다. 첫 발령 받은 학교, 그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아이들. 정말 날 많이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아이들이었다. 그 날 이후 아이들이 이 메일을 많이 보냈다. 그 중에 훈이 메일도 있었다.
`우리 울보 엄마에게. 선생님! 이사가서도 훈이 이 아들 생각하실거죠? 이사가서도 훈이 잊지 마시고, 결혼하셔서 훈이 같이 예쁜 아기 낳으세요.
훈이가 기억이 안 나면 전화하세요. 만날 답장만 쓰지 마시고 저한테 멜 보네세요. 훈이가 보고 싶어도 눈물 흘리지 마시구요. 선생님, 이 다음에
커서 꼭 다시 만나요. 그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사랑하는 아들 훈이 올림.'
훈이 메일을 읽고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 여러 가지로 나를 울린 아이였다. <이진아 경기 세류초등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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