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업무 간소화 지침이 마련된 게 1979년, 지금부터 30년 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잡무는 교원의 가장 큰 고충 중에 하나다. 지난해 교총 설문에 따르면 56.7%의 교사가 매주 평균 6건 이상의 공문을 처리하며 10명 중 4명은 공문처리를 위해 주당 7시간 이상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일 교총과 본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학교행정업무개선 방안에 대해 현장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좌담을 마련했다.
업무경감 위한 새 시스템이 되려 업무 늘리는 현실
유명무실 ‘전결규정’ 준수로 결재 시간·절차 줄여야
단순 통계, 국회의원 질의 등은 교육청 자체 해결을
교수/비교수 인력확충 계획 수립, 예산 지원 따라야 사회 = 3월부터 에듀파인의 전면도입으로 학교회계 업무와 공문서 처리 등의 잡무가 늘어났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현장에서 느끼시는 교원잡무의 실태는 어떻습니까.
김광희 = 에듀파인을 만들거나 검토하신 분들은 대부분 회계업무를 하셨던 분들이므로 프로그램에 대한 매뉴얼대로 따라하면 쉬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원들이 느끼기에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행정실 업무가 넘어온 것으로 느껴져 불쾌하기도 합니다. 물건 구입을 위해 알아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며, 전자결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승인이 났는지 확인하거나 승인요청을 일일이 말씀드려야 하므로 업무가 늘어났다는 느낌이 큽니다.
장병희 = 정부에서 교원 업무 경감을 위해 다각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일부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고 이를 시행하고자 할 때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업무의 시작이 되는 현실입니다. 에듀파인도 같은 맥락입니다. 부서별로 예산을 배정받아 그 예산안에서 집행하고 결산하는 제도는 좋습니다. 하지만 교직의 특성상 일반 행정실 직원들이 하여야 할 업무까지도 정확하게 예상하고 집행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듀파인은 이러한 부분까지도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원의 업무를 경감하려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는 시도는 바람직하나 이것이 또 다른 새로운 업무가 되지 않도록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 = 과다한 업무부담은 선생님들의 오랜 고충입니다. 30년이 넘게 문제점이 지적되고, 계획이 발표되고 있음에도 교원의 잡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장병희 = 학교에도 위임전결 규정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또는 관리자의 생각에 따라 유명무실하기도 합니다. 경기도의 경우를 보면, 교장 30%, 교감 30%, 부장이나 담담교사 40%의 전결을 권장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관리자마다 다르나 어떤 관리자는 위의 권장사항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아 주무 부서에서 이러한 사항을 추진하기는 어렵습니다. 교육청 차원에서 일선 학교에 지침을 내려 전결 규정을 잘 준수하게 한다면 교사들에게는 결재 받는 시간과 절차가 감소돼 크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단순한 통계처리나 국회의원 요구사항 등의 업무도 많은데 이 중에는 교육청에서 자체 해결해 주면 될 사안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도 장학사들은 시일을 촉박하게 공문으로 내려 업무 처리를 독촉하는 현실입니다. 교육청에서 장학사들이 정말로 필요한 공문만 생산·시행해 주었으면 합니다.
김광희 = 업무 간소화를 위해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 전에 사용했던 방법과 병행해 시행되므로 업무가 2배로 늘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부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방식을 도입하기 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도입하는 경우도 많아 전에 사용했던 방법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새로운 계획이 밀어붙이기식으로 발표되어 실행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오석규 = 잡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우선 학교를 일반 행정기관과 동일시하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일반 행정기관의 성격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지만 이를 경시 내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점이 문제입니다. 교육행정기관의 편의 위주와 불필요한 행정, 학교 및 교육행정기관을 각종 기관 및 단체가 이용하려는 풍토, 단순 행정사무도 도움 받기 어려운 현실(교무보조 1명 또는 없기도 함) 등이 문제라고 봅니다.
김이경 = 학교의 기능과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교원 인력 구조 및 역할은 수십 년간 변화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원의 업무부담 과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보다 근본 원인은 교사를 교수-학습 전문가로 인식하기보다는 학교 업무를 전 방위적으로 담당하는 직원으로 간주하는 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학교가 선진국형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비수업 교사가 다수 확보되어야 함에도, 현재 우리의 실정은 수업교사 비중이 2007년 초등 96.2%, 중학교 98.1% 등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결국 수업을 담당 교사에게 전가되는 학교 업무가 많고, 따라서 교수-학습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 새롭게 부과되는 추가 업무는 당연히 교사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시킨다고 봅니다. 현재 학교 현장은 끊임없는 교육개혁 시도로 ‘개혁피로증후군’ 현상마저 뚜렷합니다. 시도교육청평가 등 교육행정기관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단위학교에서 기초자료를 확보해 주어야 하고, 유능한 교원을 차출하기도 하므로,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교수-학습에 대한 투입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 = 지난해 10월 교총과 정영희 국회의원이 공동입법 발의한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은 학교행정전담요원의 배치, 학교행정업무의 전문화·표준화·전자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잡무를 경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김이경 = 정부가 새롭게 제안한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업무를 경감시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교사들은 교수-학습 전문가로서 교과지도를 핵심 업무로 하면서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동안 교사들이 담당해 온 학생 상담 및 진학지도, 급식지도, 학부모 상담, 학교경영 지원 및 관련 업무, 공문서 처리 등은 이를 담당하는 지원 인력(support staffs)을 확보해 이관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교사인력 운용 체제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중장기 교수/비교수 인력 확충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현하기 위한 예산 확충이 요구됩니다. 예산을 적극 확충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교원업무경감방안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입니다. 정부가 제안한 교육청 기능개편 등이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학교를 지휘, 감독하는 관할 기관이 아닌, 지원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구체적 실행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장병희 = 그렇습니다. 학교행정전담요원을 배치해 학교행정업무의 전문화·표준화·전자화가 실현된다면 업무경감 효과가 크리라 여겨집니다. 지금도 경기도교육청 및 직속기관에서는 전자결재를 시행하고 있는데 학교는 아직 온·오프 동시 결재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행정업무의 전자화를 통해 전자결재를 시행해 준다면 결재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돼 업무간소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교무부장, 연구부장 등의 주요부장들은 수업이나 교재연구 보다도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행정전담요원을 배치해 준다면 이러한 현상이 많이 줄어들겠지요.
김광희 =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학교행정전담요원의 경우 학교 실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학교 업무를 제대로 알고 처리할 수 있는 부장교사가 최소의 수업시수를 부담하면서 행정업무를 전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행정실의 의미가 학교의 행정을 지원하는 곳이므로 현재 교사들이 하고 있는 업무 중 대부분을 행정실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석규 = 2002년 호주의 학교를 방문해 교육청에서 학교에 전달되는 공문서가 1년에 몇 건이냐고 물었더니 9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약 4000건(현재는 6000~7000건에 달함)이 온다고 했더니 믿기지 않는 눈치더군요. 지역교육청이 개편되면 행정편의 위주에서 장학지원 중심으로 바뀌어 장학사들이 직접 학교에 방문해 학교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등 공문서 감축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행정보조인력 지원도 필요하지만 재정이 뒤따라야 함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단순 업무에 국한되기 때문에 업무처리에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수업전담교사와 행정전담교사로 구분해 행정전담교사의 수업시수를 대폭 줄이고 행정업무를 전담하게 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사회 =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교원잡무 경감은 결국 수업전문성 제고를 통한 학교 경쟁력 강화로 연결이 됩니다.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잡무 경감 외에 어떤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장병희 = 학교에는 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입학식/졸업식/각종 학부모 총회/진학 홍보/입시 설명회/학생동원 행사 등등. 이러한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학교 행사 중에서 반드시 필요한 행사만 하고 불필요한 행사는 과감하게 줄이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광희 = 체육관, 수업교구 확충 등 물질적 지원과 수업시수 경감 및 주5일제 정착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소모품 및 시설 관리, 정보 관련 업무, 원어민 교사 관리 등은 행정실로 업무를 넘겨야 합니다. 행정사무감사와 학교평가도 간소화해 실시하고, 땅 끝까지 떨어진 교권 확립을 위한 제도와 정책이 마련된다면 안정적 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 제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석규 =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방안은 앞서 언급한 행정전담교사와 수업전담교사 도입 외에 교과교실제 운영, 학생생활지도사 도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학생생활지도사의 도입은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생활지도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줌으로써 가르치는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김이경 = 교원의 잡무경감이 교육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육력 제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교원의 마인드 전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중한 잡무로 인해 고생하는 교사는 1/3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는 각종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에 편승한 교사들도 꽤 있다는 것입니다. 교원의 잡무가 경감된 만큼 교수-학습 과정의 관리 및 결과에 대한 책무성은 무거워질 것입니다. 잡무를 줄인 시간이 명실 공히 교수-학습을 향상시키는 시간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교원들 스스로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교수-학습 준비 및 실행, 평가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인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는 교총과 같은 교원 전문단체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