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녀석들과 지난 여름방학 무렵 겪은 일이다. 뜨거운 날씨 탓인지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더없이 산만하고 소란스러웠다. 나 역시 그 날 따라 후텁지근하고 끈적끈적한 공기 때문인지 짜증이 나 있었다. 숨이 턱 막히고 땀이 흐를 지경인 교실, 제각각 떠들어대는 아이들…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참을성에 한계를 느낀 나는 `한 놈을 골라 톡톡히 벌을 줘야겠다'고 맘먹었다. 희생양을 찾기 위해 난 수업을 하며 한참을 아이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제일 딴청을 피우는 한 녀석을 발견했다. 굶주린 늑대가 토끼를 발견한 심정으로 "야, 이호준! 너 이리 나와. 너처럼 수업시간에 떠드는 녀석은 쓴맛을 좀 봐야겠어." "저만 떠든 것도 아닌데 선생님 억울해요." 마지못해 나온 호준이는 내 눈치를 살피고는 "그런데 쓴맛이 뭔데요?"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공부시간을 방해한 네게 중벌을 내리리라. 교실바닥에 엎드려뻗쳐! 그리고 오른 다리 들어!" 잘못을 인정했는지 호준이는 순순히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려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한 녀석을 혼내고 나니 교실이 조용해져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다. 전시효과를 낸 나의 속셈이 효과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벌을 주고 공부를 계속하려는데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한사랑이라는 여자 아이였다. 사랑이는 갑자기 "선생님, 호준이는 얼마나 저렇게 벌을 받아야 하나요?"하면서 내게 물었다. "한 십 분 정도는 받아야겠지…그런데 왜?" 내가 대답하자 사랑이는 다시 "선생님, 그럼 제가 오 분을 도와주면 호준이가 오 분만 벌을 서도 될까요?" 엉뚱한 질문에 어이가 없었던 나는 "글쎄…근데 왜 그래야 하지?" 그러자 사랑이는 "벌 받는 모습이 불쌍해서요"라고 천진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꾸밈없고 사랑스럽던지…벌을 준 내 자신이 왠지 미안할 정도였다. 사랑이는 그렇게 착했다. 부모가 이혼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사랑이는 평소에도 인정이 많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우리 반 개구쟁이들에게는 놀림거리일 수밖에. 아이들은 "사랑이는 호준이를 좋아한데요∼좋아한데요∼"라며 노래를 불러댔다. 교실은 아이들의 웃음꽃으로 금세 물들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에 진 나는 호준이에게 특별사면령(?)을 내리고야 말았다. <최신열 전북 부안동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