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푸르른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이 계절에 지구촌의 모습은 아픔 투성이이다. 지진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가고 삶의 기반을 상실했으며 희생자의 절반이 어린이라고 하니 더욱 마음 아프다. 어느 생명이 귀하지 않을까마는 재난에 대처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아비규환의 구렁텅이에서 숨져간 것을 생각하면 슬프기 그지 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 뉴스(연합뉴스, 미디어 다음) 또한 충격적이다. 그것은 위기 청소년에 관한 소식이었다. 각종 범죄나 학교생활 중단, 가정해체 등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위기상황에 노출돼 있는 우리나라의 '위기 청소년'의 수가 17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 청소년 자살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에 비해 무려 181.9%나 급증해 숫자가 3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11일 청소년위원회가 청소년 위기실태 파악을 위해 한국청소년개발원에 의뢰해 조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출, 폭력, 학업중단 등 복합적인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고위기군 청소년은 10월 현재 41만8천명으로 추산됐다는 소식.
이같은 위기 청소년은 외환위기 이후 7년만에 부모의 실직이나 이혼 등 급속한 가정해체의 영향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생활보호대상 청소년은 작년 93만명으로 1997년의 23만9천860명에 비해 무려 288%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자살한 청소년의 수도 1997년 908명에서 작년 2천560명으로 181.9%나 늘어났다.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이 100만명에 달하지만 지역이용시설은 5만명 정도 혜택을 줄 수 있는 수준이 머물고 있고 가출청소년도 10만명이나 되지만 보호시설 3천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는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2명 이상이 심각한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결과임을 전제로 할 때, 수치에 드러나지 않거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청소년까지 합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가 근무하는 작은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25%가 결손가정이거나 가족 해체의 과정을 겪은 아이들임에 비추어, 이미 그 아이들이 내포하거나 보여주고 있는 문제를 일찍 발견하여 계속적으로 치료해 줄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곤 했다. 통계조사에 그치고마는 일이 있을 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다. 언제든지 문제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마음의 상처'가 자리잡고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
고통과 상처가 오히려 인간적인 성숙을 가져 오게 하는 일이 많지만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실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결손 가정에서 자라난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생의 절반을 보낸 지금. 순탄하지 못 했던 가정 환경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나를 옭아 맬 때마다 그 물살에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 이 여기까지 와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살기 위한 몸부림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겪은 가족 해체의 아픔은 시간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며 살고 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까닭없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피해 의식의 저변에는 바로 어린 시절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상처가 웅크리고 앉아서 나를 할퀴게 하는 요인이 되었음을 시간이 지나면 확인하곤 했다.
상처를 옹이로 만들어 더 단단한 나무로 자랄 수 있었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오그라 붙은 영혼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자신감을 팽개치고 뒤로 물러나게 하며 늘 나를 끌어내렸으니...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다. 그런데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상처를 지닌 아이들은 그 증상이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원만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위기의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좌절과 포기는 삶의 원동력인 자신감과 성취감 대신에 무력증과 자살과 일탈 행동으로 자기도 모르게 빠져 들게 한다.
상처를 승화시켜 진주를 만드는 사람들보다 상처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어린이나 청소년기에 당하는 가족 해체나 붕괴의 높은 벽을 딛고 청소년 스스로 바르게 자라기만을 강요하는 일은 대책없는 바람일뿐이다.
이같은 사실은 어느 한 지역만의 특수한 사실이 아니라 거의 일반화된 사실임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밝힌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각급 학교에서 조심스런 조사와 세심한 배려를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각자의 인생이니 그들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느만큼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들어섰다. 앞만 보고 달려온 '교육입국' 의 결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대학 진학률과 뛰어난 인재들이 큰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나무가 지닌 큰 그늘도 함께 안고 있음을 돌아보아야 할 지점에 와 있다. 이제 그늘에서 울고 아파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좀더 따스한 손길을 전할 어른들과 국가의 넓은 어깨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찬바람 부는 세상으로 내몰린 제자들의 휑한 겨울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으로 다가서서 정성스럽게 다독여 줄 따스한 손길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계절이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책임질 수 없는 낮은 자리일지 모르지만 사기를 높여주는 일은 선생님들의 눈길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예민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아닌가?
이제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위기 청소년'의 문제를 진단하고 원인도 밝힌 만큼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일선 학교와 사회 단체에서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책이 입안되어 손에 잡히는 정책을 추진해야 될 것이다. 어린 나무들이 병들어가는 국가라면 어디에서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것인가?
누구도 가족 해체나 붕괴를 통해 결손 가정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원하지도 않은 결과로 그렇게 되어질 뿐이다. 위기 청소년을 가정문제로 돌려 각 가정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이 너무 크다.
상처받은 아이들과 청소년을 지도하고 다독거릴 구체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치료받지 못한 그들의 상처는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제 가정 문제에도 적극적인 선도와 처방을 준비해야만 한다.
의식주에 급급하여 가난을 물리치는 일이 급선무였던 시대를 지난 지금은 정신적인 행복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웰빙'을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가정의 행복이 웰빙의 첫째 가는 조건임을 생각하며 그늘에서 아파하는 위기의 청소년들도 모두 끌어 안는 사회가 진정한 웰빙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