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가 '김영옥'이란 이름 석 자를 접한 것은 3월 초순이었다. 평소 자주 들르던 문학공모전 사이트인 '오즈'란 곳을 방문했다가 영웅, 김영옥 선생을 추모하는 독후감을 공모한다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김영옥?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김영옥이면 여자 영웅? 여자 영웅 중에서 유관순 열사말고 또 유명한 영웅이 있었나? 이상한 공모전도 다 있군. 출판사에서 책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이겠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이왕 내친김이니 성별이나 한번 알아볼 생각으로 소개된 웹사이트를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바로 공모전 홈페이지가 열렸다. 깔끔하고 세련된 화면 구성과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니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언뜻 우측 상단에 '영웅, 김영옥 추모 독후감 공모전'이란 광고가 보였다. 바로 그 배너를 클릭하자 공모전에 대한 안내문과 함께 하단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흑백사진이 나타났다.
사진을 보니 남자였다. 그것도 아주 연로한 할아버지였다. 남자 영웅이라면 순간적으로 이순신 장군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군. 분명 '어떤 시답잖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분칠하고 과장해서 내놓은 자서전이겠지'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저런 의구심을 품으며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참가비도 없고 책을 사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읽을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일단 책을 팔아먹기 위한 가짜 공모전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김영옥이란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대상도서 읽기로 들어간 뒤 우선 책머리를 클릭해 보았다. 이 방법은 필자가 무슨 책을 읽던 제일 먼저 하는 버릇이었다. 그동안의 독서 경험으로 보아 서문만 훑어보면 대충 그 책의 지적 수준이라든가 대략적인 내용까지도 짐작할 수 있어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문을 읽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문장 한 구절을 발견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한우성 씨의 말이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걸고 보증한다는 말에, 책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믿고 공들여 읽기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김영옥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엠파스 검색창에 '영웅+김영옥'을 넣고 엔터를 치자 '한국계 전쟁영웅', '한우성' 등 많은 관련 자료가 떴다. 그 중 제일 관심이 가는 글귀가 '故 김영옥 대령, 태극무공훈장 수여'란 단어였다. 이름 앞의 '故'란 관형어로 보아 이미 사망했을 테고, 또 태극무공훈장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엄청난 가치가 있는 훈장이 아닌가. 도대체 김영옥이 누구이기에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았단 말인가.
호기심이 새록새록 일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사이트를 클릭하자 김영옥 님에 대한 설명이 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최고무공훈장까지 받고 미국에서도 특별무공훈장을 비롯하여 10여 개의 이름 있는 훈장까지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왜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자 호기심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기사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항해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2005년 9월 25일 문화방송의 'mbc스페셜'이란 프로그램에서 김영옥 씨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낸 것을 알아냈다. 인터넷 서비스인 '다시보기'를 통해 그 프로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방송을 보는 55분 내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뭐랄까 마치 500년 전의 이순신 장군이 다시 환생한 느낌마저 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전쟁에서 세운 불멸의 업적. 부하에 대한 깊은 사랑과 휴머니즘.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운명을 주관하는 신까지 감동시켜가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점이 장군과 너무도 흡사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 백인사회에 적응하기조차 힘든 것이 현실인데, 김영옥 님은 미국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이구동성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비록 이민 1세의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위상과 지혜로운 모습을 유럽과 미국 사회에 널리 알린 김영옥 선생님을 우리 정부는 왜 진작에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혹시 나만 문외한이라서 그런가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웅, 김영옥'을 아느냐고 물어봐도 내 주변사람들 중엔 그를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내가 무지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홍보부족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오늘날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영웅주의라고 말한다. 미국은 쉽게 영웅을 받아들이고 또 영웅도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강도를 잡다 목숨을 잃은 경찰관, 911 테러 때 순직한 소방관,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숨져간 일등병, 심지어 CIA나 FBI 요원들까지도 영웅 대접을 받으며 사후엔 동상까지 세워준다고 한다. 6·25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건만 지금도 어디어디에서 미군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하면 한걸음에 달려와 많은 비용을 들여 유골을 수습해 가는 미국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자국의 영웅을 아끼고 보살피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mbc스페셜에서 김영옥이란 인물을 만난 뒤 나는 일주일에 걸쳐 인터넷으로 '영웅 김영옥'이란 책을 다시 읽었다.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은 그분의 뒤안길을 좀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방송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흔이 넘게 이 땅에 살면서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김영옥이란 영웅을 이제 서야 알았다는 것이 죄송했던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김영옥 님에 대한 홍보를 서둘러 우리 국민들이 자긍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영웅, 김영옥'을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하고 교과서에도 실어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제2의 제3의 김영옥이 계속해서 탄생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 만연되어 있는 각종 부정부패도 뿌리뽑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김영옥. 가짜 공모전이란 불손한 생각까지 갖게 만들었던 인물 김영옥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고매한 사람이었다. 또한 '영웅, 김영옥'은 그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 끝없는 회의를 품고 살아가던 리포터에게 정답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영옥 님께 삼가 존경을 표한다. 군인으로서의 용맹함과 죽어서도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땅 하와이에 묻히길 원했던 수구초심, 약자들에게 베푸는 따스한 인정과 봉사정신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걸어온 발자취가 이토록 예술적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