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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삼무(三無)교육 필패론

요즘 우리 공교육의 현실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또 안 되는 일도 없는, ‘그냥 저냥’식 교육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굳이 따지고 들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이건 아니잖아’식 교육이라고 해야 할까.

교원평가의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근무평정에 있어서 교사다면평가의 시범적 적용을 해보고자 했지만 일부 교원단체와 현장 교사들의 반대로 평가단 구성조차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 교직 사회 내부의 극심한 분열만 가중되고 있는 학교 내부의 현실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입시부정 사건, 수능 등급제 시행에 따른 혼란 등 사회적 현안이 된 교육문제의 경우는 그 원인이 오랜 세월 고착된 입시지옥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그 관리를 잘못한 당국을 탓하고 몇 년 앞도 못 내다보는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래저래 교육 불신만 깊어지는 것이다.

일정 부분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정부 5년 동안 21세기를 앞세워 미래사회가 어떻다며 저마다의 혁신을 부르짖는 가운데, 인재양성이니 창의성 교육, 수준별 교육이니 하는 것들이 그 나름의 명분과 함께 무수한 실천과제로 주어졌지만 일선 현장에서 이루어진 성과의 실제를 들여다볼라치면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고 제대로 혁신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으며, 교육현장에서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일 하나하나가 얼마나 진실 되고 절실한 것인가를 자문했을 때 그것의 옳음에 대한 확신이 굳세지 못함에 비추어서는 지금이야말로 교육계 종사자 모두의 총체적 반성과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존재 이유마저 의심받을 정도로 흔들리는 우리의 공교육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탓을 하려고 들면 솔직히 날을 새도 부족할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으로 일선 교육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기 일쑤인 교육부가 없어지면 교육이 금방이라도 바로 될 성 싶기도 하고, 근시안적 탁상행정에다 형식적 성과 지향의 굴레를 못 벗어나고 있는 시․ 도 단위 교육청만 없어지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고, 학교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 이것저것 과업을 제시하기 바쁜 교장․교감 차라리 없어지면 학교가 더 잘 돌아갈 것 같고, 먹고 살 걱정 없도록 정부에서 월급만 팍팍 올려만 준다면 밤 새워 연구에 매진하며 청춘을 교단에 불사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어느 날, 우리의 기대처럼 정말로 그런 것들이 모두 주어진다 했을 때 교육은 절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다. 교육의 실패를 탓하고 원망하는 우리의 마음과 눈길이 온통 밖을 향해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가 없다. 두렵고 아프겠지만, 진정 교육을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혹독한 비판과 엄정한 성찰의 칼날은 우리 자신을 겨누어야만 한다.

교권 실추가 우리 교육의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제발 선생님을 존경 좀 해달라며 구걸할 것이 아니라 절로 존경하게끔 존경받을 언행을 해야 할 것이며, 사교육비 팽창이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교육발전의 암적 요소가 되고 있다면 고액학원을 무조건 못 가게 틀어막기보다는 사교육보다 더 품질 좋은 공교육이게끔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육에는, 제대로 된 교육(교육자)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요소가 빠져있게 되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책임과 철학이다. 분명코 말하지만 사랑 없는 교육, 인간애가 결여된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교육에서 사랑이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 중의 누군가 자기 한 사람 편하자고, 바른 길 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자를 외면한다거나 가르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는가. 그것이 어찌 교육이겠는가.

책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수업시간에 정해진 교육과정을 지식중심으로 단순히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것만으로 교사의 임무가 끝난다면 교사를 전문직으로 보아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을 것이다. 현행 학교 교육시스템은 교육행위는 있지만 그것의 잘잘못을 평가받고 책임지는 시스템이나 제도가 불비한 탓에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라는 무책임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옛 성현 맹자는 자신의 제자 하나라도 잘못되면 그 죄의 무거움이 목에 맷돌을 매고 물속에 들어가야 할 만큼 무겁다했는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자신의 교육활동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 교육정책을 잘못 추진해서 그 피해가 엄청 난대도 어느 정부, 장관 한 사람 책임지는 것을 볼 수 없고 학교교육이 부실해서 아이들 잘못 자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누구 한 사람 ‘내 탓이오’하면서 고개 숙일 줄 모르는 현실에서 학부모로부터 받는 공교육 불신은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화인지도 모른다.

물신주의의 압도 속에서 철학이 송두리째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교육에 철학이 없다는 것 또한 참으로 슬픈 일이다. 무엇을 위해 교육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성마저 상실한 채 세속과의 영합에만 몰두한 채 표류하고 있는 우리 교육에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철학이다. 철학 없는 시인이 글을 쓰면 제 아무리 화려한 비유를 한다한들 값싼 사랑타령에 그치고 말듯, 크게는 교육의 근본이념과 목적, 추구하는 인간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작게는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목표와 그 구현체계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정도(正道)이고 무엇이 근본이며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비뚤어져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짚어나가는, 반성의 철학, 자아비판의 철학이 수반되어야만 우리 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우리 교육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한 나라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있음 또한 모두가 수긍한다. 그렇다면 왜 교육을 살려보고자 몸부림치지 않는가, 아니 몸부림이야 치고 있다지만 제대로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가. 모두가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인들이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면 교육의 문제를 남의 일처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녕 교육의 주체인 우리 교육자들만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교육이 처한 오늘의 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진정한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간절히 소망하건대, 교육을 살리기 위해 지금 각자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되묻는 가운데 사랑과 책임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철학이 있는, 혼이 있는 교육에 저마다 매진한다면 희망찬 교육의 활로는 분명 우리 앞에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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