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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바담 풍(風)' 교단 문화 이제는 청산해야

신규교사를 뽑는데 면접위원으로 참가를 했다. 실력 있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을 뽑아야 우리 교육이 산다는 생각에 어쩌면 응시자보다 더 긴장된 마음으로 고사장에 들어섰다. 취업난이 극심한 시대에 교사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몇 십대 일의 그 어려운 1차 관문을 통과하고 2차 실기 면접에 응하는 젊은 예비교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빛나 보였다.

스물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풋풋한 나이,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옷차림새, 바른 말투, 겸손한 낯빛. 스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아이들 앞에 세워놓으면 ‘멋쟁이 우리 선생님, 인기짱 우리 선생님, 실력파 우리 선생님’소리를 듣고도 남을만한 모습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합격시켜서 저들의 가슴 속 뜨거운 열정과 꿈, 청순함과 재기발랄함을 우리 교단에 희망의 젖줄로 흘러들게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가며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부단히 연구하는 교사, 제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한시도 잊지 않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생활지도가 어렵다지만 교사가 진정한 이해와 관심의 눈길을 보여준다면 문제 학생들을 충분히 선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장․교감선생님 또는 원로선배님들께서 임상 장학을 해 주신다면 수업기술 향상은 물론 교직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교직관을 비롯해서 교단에 섰을 때 부딪치게 될 여러 가지 상황을 중심으로 그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 자신감에 넘치는 답변들을 쏟아내는 예비교사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고 있노라니, 교직을 지나치게 낭만적인 직업으로 여긴다거나 교육현실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되기도 했지만,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함께 학교 교육의 미래를 희망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없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머잖아 3월이 되면 저들은 그토록 일하고 싶어 했던 교단에 서게 되는 감격을 맛보게 될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밤낮으로 준비하고 공부해서 참으로 힘든 취업의 문턱을 이제야 넘어서는 저들이 아이들로부터 ‘선생님’소리 한번 들어보는 것이 그 동안의 소원이었다는데 그 소원 또한 바로 이루어질 것이다. 남은 것은 오로지,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아이들 가슴 속 타오르는 배움의 불꽃을 활활 지펴주고, 한껏 몸을 낮춘 봉사와 인간애로 아이들 하나하나 사랑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일뿐.

젊은 피를 수혈하게 될 3월의 교단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팔팔한 신규 교사들, 그 생각의 유연함과 빠릿한 움직임을 보다보면 젊음의 특권이 부럽기도 하면서 나이 든 선배 교사들은 그들대로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아 새로운 의욕의 신발 끈을 조임으로써 교단 곳곳에 드리워진 권태의 그늘이 사라지고, 경직된 사고의 틀 또한 조금씩 부서지는 가운데, 언 땅을 뚫고 새로 돋는 싹처럼 학교 전체에 무언가 희망의 기운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단에서 3월이 시작되면 품어 보곤 했던 이 같은 기대와 꿈들이, 현실이 되기는커녕 나 같은 이상주의자의 한낱 상상 속의 신기루가 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취업을 못해 안달이 났을 때는 교단에 설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기 앞에 무슨 일이 주어지건, 어떤 어려움이 닥치건 아이들을 사랑하고 부단히 연구하며 매사에 성실한 선생님 되겠다는 약속을 그리도 철석같이 목청 높이 외치던 사람들이 한 학기 아니 한 달도 못가서 금세 기성교사의 보신주의, 무사안일주의에 물들고 마는 것이다.

학교 현실을 개탄하는 술자리 어디선가 전해들은 이야기 한 토막. 사대를 갓 졸업하고 성적이 우수해서 곧바로 임용된 K 선생님은 부임하자마자, 부잡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들로 구성된 고학년의 학급담임을 맡게 된데다, 일처리경험이 부족함에도 기존교사들이 서로 맡기를 싫어하는 어려운 사무분장까지 떠맡게 되어 교직생활의 시작이 버겁기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토록 서고 싶던 교단이기에, 부족한 지식은 밤새워 연구하면 될 것이고 모르는 것은 선배교사들에게 물어가며 해낼 수 있으리라 믿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아침 여덟시도 되기 전에 조기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은 도회지 변두리 학교였는데, 선생님 안 계시면 교실에서 그저 떠들고 장난치다가 그 소중한 아침 시간들을 낭비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 없어 이른 아침을 서둘러 먹고 출근하여 자율학습을 지도하는가 하면, 밀린 업무가 있거나 교육자료 제작을 해야 할 때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에다, 일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 당직자가 문단속을 하겠다며 퇴근을 독촉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열심이었던 K선생님.

그 학교 교감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은 그 선생님의 성실성과 책임감이 남다름을 알고 수시로 불러 격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될 즈음 K선생님의 학교생활에 조금씩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누구보다도 아침 일찍 나와서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 자습지도를 해주던 그 선생님이 공식 출근 시간이 딱 되어서야 학교에 들어서는가 하면, 일과 끝나기가 무섭게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을 서두르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업무에 큰 문제점을 보이거나 학급관리가 엉망이 된 것은 아니지만 예전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열정이 한 순간에 식어버린 느낌이 들어 하루는 교감이 그를 불러 신상에 무슨 애로가 있나 묻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온 얘기가 참으로 가관이 아니겠는가.

잠자는 시간 조금 줄여야 하는 고통은 있지만, 열심히 연구해서 가르친 만큼 아이들이 공부에 더 흥미 있어 하고, 사사로운 일들 뒤로 미루다보니 손해 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제 간의 일체감이 커진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부지런을 더 한층 채찍질해 가고 있던 어느 날, 선배 교사 한 분이 얘기할 게 있다며 좀 보자고 했다 한다. 평소에 그렇게 대화를 많이 주고받거나 가깝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기에, 따로 좀 보자는 말에 다소 의아해하며 약속장소로 갔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시비조로 하는 말, “네가 그렇게 잘났냐. 응?”하더라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배의 힐난에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한 마음에 얼굴이 벌개져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K선생님은 결국 그 자초지종을 듣게 되는데, 결론인 즉 “네 한 사람, 부지런을 떠는 통에 학교의 다른 모든 선생님들이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으로 비쳐진다. 사람 좀 피곤하게 하지 말고, 어지간히 좀 잘난 체 하라.”는 것이다. 이제 K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존경스럽기만 했던 동료선생님들의 눈이 갑자기 두렵기 시작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열심히 했던 것뿐인데 그러한 선의가 집단에 의해 왜곡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기 혼자 잘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고 왕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 밤을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K 선생님은, 집단 내에서의 고립이 두려워 기성의 낡은 관습과 인식에 맞서 싸우기보다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무력감에 빠진 우리 교단의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우대받고 존경받기보다는 도리어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학교 분위기에서 무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아이들이 무슨 꿈을 먹고 자라겠는가. 학교가 죽었다느니,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느니, 이런 저런 공교육 위기론은 누구 탓도 할 것도 없이 우리 교육계 종사자 모두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설레는 가슴으로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 교사들이 불타는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부정적 현실 앞에 좌절하고 마는 데는 본인들의 의지 부족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보고 배울만한 본(本)’을 보여주는 기성교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학에서 배운 학문적 지식, 한 두 달의 교육실습만으로는 결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없다. 교사로서의 기본적인 품성 내지는 자세는 교육현장에서 몸소 체험을 통해 바르게 배우고 내면화시켜 나가야 하는 덕목인데, 교직생활 초년기를 어떤 학교의 교풍 속에서 어떤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좋은 경험들을 해보느냐에 따라 그 질이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옛날에 발음이 정확치 않는 한 서당선생이 “바담 풍(風)” 하면서 학생들이 똑같이 따라 하길 원했는데, 학생들 역시 “바담 풍(風)”이라고 하니까 화를 내며 회초리로 종아리를 쳤다는데, “바람 풍(風)”이라고 해야 아이들이 “바람 풍(風)”으로 따라 할 것이 아닌가.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다. 경험 많고 지혜로운 선배․ 원로 교사들이 자잘한 근무 자세 하나부터 시작하여 공부 가르치는 세세한 기술에 이르기까지 젊은 신규교사들에게 본을 보이고 솔선수범한다면 교단은 분명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철밥통 꿰어 찼으니 눈치껏 살면서 한 몸 보신하면 그만이라는 퇴영적 사고는 당장 벗어던지고, 선생님들 모두가 서로에게 자극받고 서로가 잘 해보자고 격려하는 풍토 속에서 새로운 삼월을 맞이한다면 우리 교육의 갱생의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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