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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장이 된다는 것

청춘의 더운 피로 가슴 뛰던 내 젊은 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되어보고 싶은 사람도 많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혼자 농사일 하시며 힘들게 육남매 키우시는 어머니 걱정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하나로 덜컥 발을 들여놓은 교단. 첫 부임지인 고흥 나로도 백양중학교, 그 낯설고 물 설은 섬에 도착하여 나룻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르르 몰려나와 나를 반기던 아이들의 그 밝고 환한 미소에 눈물이 울컥 솟던 그 순간 나는 다짐했었다. 열심히 가르치자고. 그리고 좋은 선생님 되자고. 그로부터 한해 두해…. 돌아보면 아스라한 교직 인생 30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어떤 때는 세상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도 부럽지 않는 교직만의 보람과 기쁨이 샘처럼 솟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또 가르치는 자만의 말 못할 상처와 아픔이 교차하던 그 애환의 세월들. 그 속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으며 어떤 사람을 길러냈을까. 묻건대 나는 과연 그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이었으며, 세상 앞에 부끄럽지 않는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토록 바라던 교장자격연수 지명을 받고 이렇게 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의 하루하루가 솔직히 내겐 꿈만 같다. 아무나 되지 못하는, 교직인생의 꽃인 단위학교 경영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 꿈만 같고, 그 때를 위해 학교 경영의 기본을 배우는 일 하나하나가 새롭기만 하다.

하지만 설레임도 잠시. 일선 교단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만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만다. 창의적 인재양성과는 거리가 먼 입시중심교육, 난마처럼 얽힌 교직 갈등과 부정적 교단문화, 그러다 보니 깊어만 가는 교육불신, 교권추락. 학교를 들먹이고 교육을 말할라치면 희망 대신 위기를 먼저 들먹이는 시대에, 과연 누가 무엇으로 교육을 살리고 지친 아이들을 구한단 말인가.

학교경영이 힘들다보니 현장에 계시는 많은 관리자들이 “그 좋은 시절 교장 한번 못해보고 이 좋은 시절에는 교사노릇조차 할 수 없으니 내 신세도 참….”이라고들 하면서 내뱉는 푸념을 듣다보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일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좋은 시절의 교장노릇이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는 몰라도, 학교를 마음대로 주물러도 누구 한 사람 시비걸지 않고 불합리한 지시나 명령에도 꼼짝없이 따라오는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라면 오늘날같은 대명천지에 과연 상상이나 할 법한 일인가.

생각하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요즘같은 사회에서 개인적 욕심따위 다 비우고 오직 교육의 본질과 기본만을 생각하며 학교공동체 구성원인 선생님들과 학부모, 지역사회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아이들 하나라도 사람되게 만들고 유능한 인재로 키우는 일에 스스로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이 시대의 교장이야말로 옛날 교장들보나 열배 백배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대통령 옥새가 찍힌 임용장을 가문의 영광쯤으로 받들어 모셔두고, 푹신한 자리에 고개 젖히고 앉아 ‘누가 어떻게하나 보자’며 분주히 머리 굴리는 것만으로 학교가 돌아가던 시절은 이제 까마득한 전설 속에 묻어야 한다. 학교의 수준은 학교장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처럼 학교장이라는 인적 요인이 교육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때 학교장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대적인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교육자로 태어나서 참으로 막중한 학교장의 책무를 두 어깨에 걸머진 사람이라면, 전문성을 지닌 교육지도자, 학교라고 하는 조직의 경영자로서 교육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과 문명사적 전환에 따른 새로운 인재관에 입각한 교육철학,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교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작게는 단위학교를 살려내고 크게는 이 나라 교육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장이라는 자리는,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영광스런 교직인생의 귀결점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나라의 발전과 사랑하는 우리의 후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누군가 걸머지고 가야만 하는 '고난의 십자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 한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행복의 밑거름 되고 나라발전의 초석이 된다는데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학교장이 되면 잘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고, 평소에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노라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에 자주 잠을 설치곤 한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 했던가. 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 숙소인 함덕당(含德堂)의 제호에 담긴 깊은 뜻을 되새기며, 내 스스로 덕을 지닌 학교장이 되어 학교 현장의 자잘한 갈등과 대립을 해소시키는 가운데, 부단한 자기연찬과 솔선수범으로 교육현장 개혁의 최선두에 서서 '즐겁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여생을 헌신함으로써 아이들과 이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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