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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눈꽃축제 보고 문수봉 산행하고

겨울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추운 바람이 몰아치는 높은 산에 올라야 한다. 1월 29일, 몽벨서청주산악회원들이 영산 태백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아침 7시 10분경 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어둠속의 시가지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청주를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동편의 산봉우리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다. 증평에서 일행들이 합류하니 관광버스 3대에 빈자리가 없다. 어떤 일이든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면 다 이뤄진다. 몽벨서청주산악회 신광복 산대장이 능력과 신의로 이뤄낸 일이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신 맑은 날씨다. 눈을 감았지만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이 귓가로 들려온다. 1시간 20여분을 부지런히 달린 관광버스가 중앙탑, 중원고구려비와 가까운 중앙탑 휴게소에 정차한다. 열정적인 삶은 힘을 샘솟게 한다. 열정적인 산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서정우님이 이곳에서 합류했다. 중간에 차를 바꿔 탔지만 서로 다른 차를 타고오던 부부에게 자리를 양보해 기분이 좋다.

충주를 지나자 좌우의 산세가 험해진다. 제천, 영월을 지난 버스가 연하계곡 입구의 연화휴게소에 정차한다. 규정이 바뀌었지만 예전에 지은 건물들은 여전히 여자화장실이 부족하다. 이럴 때 남자들이 자연화장실을 찾으면 여자들이 남자화장실까지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국토 전체가 자연화장실인 인도로 보름 전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풍경을 이곳에서 본다.

탄광지대로 알려졌던 사북과 고한을 지나며 바위틈의 토종꿀통, 경작지가 없는 골짜기, 올망졸망 모여 있는 집 등 새로운 풍경들을 만난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강원랜드와 하이원스키장이 언덕위의 작은 집들과 대조적이다.

'여기는 해발 900m입니다' 표지판의 문구가 싸리재(높이 1268m)가 시작되는 지점을 알린다. 두문동터널로 싸리재를 넘어서면 눈으로 뒤덮인 산등성이와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철도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하늘아래 첫 번째 역으로 불리는 추전역도 차창 밖으로 보인다. 산소도시 태백 시내를 지나 태백산도립공원으로 간다.


제19회 눈꽃축제(1.27〜2.5)가 열리고 있는 당골은 관광객과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임시주차장에서 민박촌 입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데 기다리는 줄이 길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불편한 일도 생기고 구경도 제대로 못한다. 여러 번 왔지만 당골의 매표소 입구까지 도로를 800여m 걸으며 초반에 힘을 빼는 것도 처음이다. 석탄박물관 앞 눈꽃축제장의 조각품을 돌아보고 뒤늦게 산으로 향했다.


산길에도 사람들이 많다. 당골에서 700m 거리에 제당골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한 다리를 건너 눈길을 1.6㎞ 걸으면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1.2㎞ 거리에 소문수봉, 오른쪽으로 2㎞ 거리에 문수봉이 있다.

문수봉과 소문수봉 두 곳을 다 돌아보기에는 어느 길로 가든 거리가 비슷하지만 문수봉부터 오르고 소문수봉은 내려오는 길에 들리기로 했다. 오른쪽 산길을 걸어 문수봉으로 향한다. 계곡의 물소리마저 잠재운 겨울산은 "저벅저벅" 눈 밟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친구의 사정으로 혼자 참여한 이번 산행은 오랜만에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많이 하는 시간이었다.




겨울 산행은 새하얀 눈꽃과 찬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주목을 보는 재미가 크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수령이 오래된 주목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문수봉을 500m 남긴 갈림길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게으름을 피우느라 운동이 부족했고, 아픈 다리를 묵묵히 내딛으며 땀을 흘린 뒤라 눈밭에서 먹는 점심이 꿀맛이다. 이게 바로 산행의 묘미이자 육체노동의 대가다.


수만 개의 바위와 돌탑들이 있는 문수봉(높이 1517m)에 올랐다. 문수봉 정상은 겨울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겨울철 날씨치고는 기온이 높고 바람이 적어 눈꽃이 사라진 게 아쉽다. 바위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과 태백산의 주봉 장군봉 방향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문수봉, 문수봉, 부쇠봉, 천제단을 거쳐 장군봉으로 간다는 일행들을 보며 무릎수술 하기 전 직원들과 눈꽃기차여행 왔다 문수봉이 보고 싶어 혼자 뛰다시피 올랐던 일이 생각났다.


문수봉에서 소문수봉(1435m)까지는 능선으로 0.8㎞ 거리이다. 정상표지목이 외롭게 서있는 소문수봉의 앞뒤로 펼쳐지는 풍경이 압권이다. 이곳에서 당골까지의 3.5㎞는 내리막길이다. 비닐로 만든 눈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오리궁둥이를 닮은 오궁썰매타기는 태백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양보와 배려를 배운다. 눈밭에 만들어진 길은 여럿이 통행할 만큼 넓지 않다. 한쪽 발 눈 속에 빠지더라도 가던 발걸음 멈추고 길 양보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이보다 듣기 좋은 소리 어디 있는가.

그런데 태백산 눈길을 산행하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유난히 많다. 우리 국민의 90%가 오른손잡이라 오른쪽으로 통행해야 편리한데 왼쪽 통행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공원처럼 공영방송 등에서 오른쪽 통행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산행하며 선진국민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단군성전과 석탄박물관이다. 석탄박물관 맞은편의 단군성전은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 할아버지를 모신 성역이다. 성전 안에 단군 할아버지의 영령과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개천절에 단군제례를 지낸다.


석탄박물관은 동양 최대 규모로 탄광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소이다. 수요가 급격히 줄어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석탄은 한때 검은 진주라 불리며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전시관과 지하갱도를 돌아보며 석탄에 대한 추억과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박물관에서 나와 한 잔에 천원인 동동주로 갈증을 해소하고 인파에 떠밀려 임시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주고받을수록 커지는 게 정이다. 차에 올라 신광복 산대장이 산지에서 공수해온 굴과 귤을 안주로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니 기분이 좋다.

4시 50분경 관광버스가 청주로 향한다. 피곤했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는 강원도의 풍경을 하나라도 더 담느라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동강휴게소와 중앙탑휴게소를 거쳐 9시경 청주에 도착하기까지 몽벨서청주산악회원들의 산행 모습을 다양하게 담은 CD를 시청했다. 헤어질 때는 다음 산행을 함께 할 것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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