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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슬로시티 청산도 여행

빠른 변화가 오히려 느림이 행복인 세상을 만들었다. '느림은 행복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청산도. 공기가 맑고 하늘ㆍ바다ㆍ산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 자연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청산여수(靑山麗水)로 불린 신선의 섬이다. 지난 4월 29일, 몽벨서청주 산악회원들이 슬로시티 청산도를 다녀왔다. 




장거리 여행은 부지런을 떨고 시간을 잘 활용해야 제대로 구경한다. 밤 12시에 관광버스가 청주를 출발하자 차안은 캄캄한 밤이 되어 모두들 잠을 잔다. 어둠 속의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청산도행 정기여객선에 오른다.

6시에 주도 앞 완도항을 출항한 배가 속도를 내자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완도타워가 멀어져간다. 흐린 날씨와 안개가 바다를 감췄지만 뱃전에는 추억남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도에서 청산도는 남쪽으로 19㎞, 뱃길로는 50여분 거리다. 청산도의 관문인 면소재지 도청항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옛날 주민들이 오가던 이동로가 지금의 '청산도 슬로길'이다. 대형 청산도 표석을 지나면 부둣가에 생활용품을 운반하느라 슬로길을 오갔을 지게들이 줄지어 서있고, 여행객들에게 슬로길 걷기의 시작을 알리고 느림의 의미를 전하는 '느림의 종'을 만난다.

어떤 길이든 길은 길과 연결된다.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걷는다. 도락리 안길에서 낮은 담장과 원색의 지붕, 정이 넘쳤을 좁은 골목을 만난다. 담벼락에 걸려있는 빛이 바랜 청산도의 옛 사진들이 고등어와 삼치가 많이 잡히던 60년대의 풍어기에는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파시(波市)가 열렸을 만큼 번성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마을을 벗어나 섬사람들이 처음 식수로 이용했다는 동구정에서 목을 축인다. 줄지어선 해송과 정자가 안개와 어우러진 남도 바닷가의 갯마을 풍경이 멋지다. 위편에서 영화촬영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유채꽃밭에서 추억을 남기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1박 2일 일정의 청산도 슬로길 여행을 하루에 마치려면 발걸음이 빨라야 한다. 그런데 2011년 세계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세계 슬로길 1호'로 인증 받은 청산도의 풍경에 취해 걸음이 느려진다.

직선보다는 곡선, 인공보다는 자연이 청산도의 자랑거리다. 유채꽃과 보리밭을 구경하며 구부러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논두렁과 밭두렁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임권택 감독의 한국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알려지며 침체기를 걷던 청산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 '봄의 왈츠',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봄볕이 완연한 산등성이에 유채꽃이 만발해 영화촬영지 주변은 사방이 노란색이다. 세트장과 유채꽃 물결, S자형 오름길과 바닷가의 갯마을 풍경, 산중턱의 초분과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 사는 섬사람들의 생활이 이해된다.




화랑포공원에 초분이 있다. 청산도에는 예전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초분(草墳)이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짚으로 만든 가묘에 장례하는 장례법이다. 고기잡이 나간 상주가 임종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일단 초분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뒤 상주가 돌아오면 장례를 치루는 것도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이었으리라.

당리재, 따순기미를 지나 권덕리까지 몇 개의 고개를 넘지만 초보자도 큰 무리가 없다. 산길과 바닷가를 걷다보면 느린우체통을 만나고 유채꽃이 만발한 자연부락을 먼발치로 바라본다. 욕심이 없는 바다가 안개 속에 숨어있다.




다랭이논이 많은 청산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구들장논이다. 산비탈의 논바닥에 구들장을 놓듯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농사에 필요한 만큼의 물만 고이고 남은 물은 아래로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구들장논은 물이 부족한 섬의 환경을 선조들이 지혜로 극복한 농업유산이다.




 



청산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범바위다. 범바위는 바위가 뿜어내는 강한 자기장이 휴대전화와 나침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신비의 바위로 알려져 있다. 기를 쓰고 정상에 오르면 말탄바위와 상도, 권덕리와 보적산, 범바위 전망대가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아래편에서는 반응이 없던 휴대전화가 범바위 정상에 서자 작동한다.

바위를 향해 포효한 호랑이가 울림으로 들려온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크자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는 줄 알고 섬 밖으로 도망쳐 범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출발할 때부터 몸이 아픈 친구가 있어 일행들의 꽁무니가 사라진지 한참 되었다. 보적산 등반을 포기하고 아래편으로 하산하며 청계리와 신풍리의 마을풍경을 구경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청산도의 매력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도청항으로 갔다. 이곳까지 왔으니 완도의 특산물 전복은 맛보고 가야한다. 선착장 주변에 전복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 전복과 갑오징어 안주에 술잔을 주고받을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게 행복이다. 고깃배들이 한가롭게 떠있는 바닷가에서 피로가 풀릴 만큼 술잔을 비웠다. 




오후 3시가 되자 완도행 정기여객선이 도청항을 출항한다. 봄에는 꽃 좋고, 여름에는 물 좋고, 가을에는 먹거리 좋고, 겨울에는 하얀 천지가 아름다워 또 찾아오게 한다는 청산도가 점점 멀어져간다.

여행은 경치 좋은 곳만 구경하는 게 아니다. 여행지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청산도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봐라. 느리면, 조금 뒤에 가면 어떠리. 뱃전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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