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의 섬!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섬! 머물수록 자연과 인간, 삶과 예술의 어우러짐이 피부로 느껴지는 여행지가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도(등대섬)로 이루어진 매물도다.
매물도라는 명칭은 섬이 ‘매물’ 즉 ‘메밀’처럼 생겼고,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메밀’ 농사를 지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한 섬의 형태가 군마의 모양을 하고 있어 마미도라고도 했다.
소매물도는 풍광이 아름다워 크라운제과의 쿠크다스CF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고, 중국 진시황제의 신하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가다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들렀다고 한다. 본래 해금도였던 등대섬은 등대도가 공식명칭이지만 등대섬이라는 명칭에 더 애착이 간다.
매물도는 환상의 섬 장사도, 가오리를 닮은 가왕도와 함께 통영시 한산면에 속한다. 하지만 통영시보다 거제시에서 가까워 통영에서 배편으로 1시간 30분 거리를 거제도의 저구항에서는 30여분이면 도착한다.
지난 11월 9일, 청주의 '사람과 산' 산악회원들과 거제도의 저구항을 통해 매물도로 섬 산행을 다녀왔다.
여행자의 들뜬 마음을 모르는 듯 흐린 날씨가 바다를 잿빛으로 만들지만 배들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항구를 오간다. 저구항에서 출항한 유람선이 가라산과 명사해변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면 오른쪽에 뱀처럼 긴 장사도가 있다. 가왕도를 지나면 지금은 무인도가 된 어유도의 물고기를 노려보고 있는 매섬의 뒤편으로 매물도가 나타난다.
대매물도가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사는 북쪽의 당금마을과 남쪽의 대항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비단처럼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당금마을의 이름에서 섬마을의 멋진 풍경이 연상된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원뿔철제탑 '바다를 꿈꾸는 나무', 배불뚝이 여인상 '바다를 품은 여인' 등 눈길을 끄는 조형물들이 맞이한다.
매물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곳곳에 편의시설과 공공미술 조형물이 조성되면서 섬 전체가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 이때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海)를 품으며 섬을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는 탐방로 해품길이 개설되었다.
선착장에서 이정표로 매물도의 지리를 자세히 알아보고 바다백리길을 알리는 파란색 선을 따라 당금마을 선착장-한산초교매물도분교장-당금마을전망대-홍도전망대-대항마을 안부삼거리-어유도전망바위-장군봉전망대-등대섬전망대-꼬들개(꼬돌개)-대항마을-당금마을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6.4km 거리의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 안길을 걸으면 주민들의 삶이 담긴 조형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여행을 더 즐겁게 한다. 골목길에서 공공시설물인 매죽보건진료소, 2005년도에 폐교된 한산초등학교매물도분교장, 매물도발전소를 만난다.
당금마을전망대에 오르면 당금마을과 선착장, 매물도발전소와 매물도분교장, 홍도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줄기, 뒤편의 어유도는 물론 가왕도와 거제도까지 가깝게 보인다. 이곳에서 만나는 염소 가족도 볼거리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매물도분교장을 지나면서 해품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해품길은 손때가 묻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된 자연이 걷는 내내 길동무를 하고, 산길을 돌아설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대매물도의 풍광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해안절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잎에서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동백터널을 지나고 가파른 나무계단 산길을 오르면 뒤편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산길과 어유도 방향의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앞쪽으로 기암절벽과 장군봉이 우뚝 서있다.
홍도전망대에서 능선길을 따라 대항마을 안부삼거리로 내려섰다가 다시 장군봉전망대로 오르는 임도가 꽤 가파르다. 이곳에서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할 곳이 소매물도, 꼬들개, 가익도, 대항마을, 어유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어유도전망바위다. 바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평화로운 대항마을과 선착장, 여객선이 오가는 바다풍경이 멋지다.
장군봉에 오르면 군부대가 철수한 아래편에 장군봉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군마상 조형물이 있는데 이곳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등대섬과 소매물도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멋지다.
장군봉에서 꼬들개를 거쳐 대항마을에 이르는 구간은 편안한 내리막과 평지로 이뤄져 있다. 꼬들개까지 억새와 야생화가 맞이하는 내리막 산길을 걸으며 등대섬과 소매물도의 멋진 풍경을 감상한다. 아래로 내려가면 소매물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서는 만큼 등대섬이 모습을 감춘다.
꼬들개는 소매물도의 북쪽이자 대항마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다. 이곳은 초기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던 지역으로 처음에는 논밭을 일궈 정착했지만 오랜 흉년과 괴질로 쓰러져 죽은 슬픈 역사가 함께한다. 꼬들개라는 이름에 한꺼번에 꼬돌아졌다(꼬꾸라졌다)는 뜻이 숨어있다. 꼬들개 앞 가익도는 부산의 오륙도처럼 물때에 따라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이는 이곳의 명물이다.
일몰이 아름다운 꼬들개에서 대항마을까지 바닷가를 따라 굽이길을 걷는다. 초창기의 정착민들이 힘들게 삶을 일구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해품길은 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들이 매력적이다. 대항마을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길과 높이가 같은 야트막한 지붕들이 이색적이다. 수령 300여년으로 대매물도의 당산나무인 후박나무(경남도기념물 제214호)가 마을 뒤편에 있다.
예술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안목이 특별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뭇조각, 숟가락, 플라스틱파이프 등으로 당금마을이나 대항마을 곳곳에 멋진 문패와 조형물을 만들었다.
대항마을에서 당금마을로 가는 산길에서 귀여운 조형물들이 쉼터를 알리는데 대항마을과 선착장, 소매물도와 가익도, 건너편의 대항마을과 선착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판장에서 물건을 사며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섬 사람들의 인심이 살갑게 느껴진다.
저녁 시간이 되자 당금마을 선착장의 가로등이 불빛을 밝힌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서야 우리 일행을 태운 유람선이 왔던 길을 달려 저구항으로 향한다. 간간이 뿌리는 빗방울이 사방을 더 어둡게 만들지만 등대의 깜빡이는 불빛이 외롭게 바다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