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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슬로시티 증도 여행 - 둘째 날

여행 둘째 날, 슬로시티 증도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날이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자 갯벌이 드러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갯풍황토펜션 앞 바닷가를 산책한 후 갯풍식당에서 짱뚱어탕으로 아침을 먹었다.

증도는 아름답고 깨끗한 섬으로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슬로시티다. 달콤한 인생의 미래를 걱정하며 느리게 먹기와 느리게 살기 운동으로 시작된 슬로시티의 모토는 자연과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편안한 삶이다. 담배연기와 공해가 없는 청정의 섬이라 트레킹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좋다.

북동쪽의 산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발달하였고 섬의 모양이 꼭 해마를 닮았다. 2010년 증도대교가 개통된 후부터 차량이 통행하고 사방이 바다라 염전이 많다. 간척지로 생긴 염전과 농지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이채롭다. 방축리의 도덕도 앞은 사적 제274호로 지정된 송·원대유물매장해역으로 수많은 해저유물이 인양되었다.

증도가 또 다른 관심거리가 된 이유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한국의 테레사 수녀, 여자 사도 바울로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의 자취가 서려 있는 섬이라 주민의 90% 이상이 기독교 신자다.

‘천국의 섬, 증도’를 집필한 유승준 작가는 증도를 ‘최소한 두 번은 가야 하는 섬’이라고 했다. 첫 번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작정 가는 즐거운 섬으로, 두 번째는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가는 거룩한 섬으로... 이렇게 두 번을 가면 가지 말라고 해도 또 찾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은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일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펜션을 나서 인근의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으로 갔다.


문준경 전도사(1891~1950)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지런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뜻에 따라 17세에 결혼한 남편이 이미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둔 상태라 생과부로 살았다. 전도사가 된 후 한 해에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아 헤어질 정도로 열심히 신안의 섬 지방을 돌며 18년 동안 교회 100여개를 세웠다. 한국의 사도 바울과 같았던 그녀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수차례 고문을 당했고 6.25사변 때 공산당들에게 맞서다 순교했다.

순교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념관 전면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랑과 열성이 성경과 함께 쌀, 약, 사탕 등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복지목회를 펼치게 했을 것이다.


문준경 전도사가 개척했던 증동리교회 입구에 교인들이 세운 순교기념비가 서있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는 증동리교회 앞 바닷가에 있는데 무덤 옆으로 비석이 서있고 그녀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 문구 ‘여기 도서의 영혼을 사랑하시던 문준경 전도사 잠들다’가 적혀있다.


순교지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짱뚱어다리로 간다. 갯벌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증도의 갯벌은 '국가습지보호지역, 갯벌도립공원,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람사르습지'이다. 신발을 신고 딱딱한 콘크리트길을 걷는 날이 많아 '맨발 갯벌생태여행'이 가슴에 와닿는다.

증도의 명물 짱뚱어다리는 갯벌 위에 떠있는 470m의 나무다리다. 짱뚱어는 청정 갯벌에서만 사는데 이곳에 짱뚱어가 많고 다리의 교각도 짱뚱어가 뛰어가는 모습이다. 다리에 올라서면 밀물 때는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이 들고, 썰물 때는 짱뚱어·칠게·조개 등 갯벌의 자연생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몰이 아름다운 이 다리를 건너면 우전해수욕장의 해변에 닿는다.


우전해수욕장은 길이 4㎞의 제법 규모가 큰 해수욕장으로 모래의 질이 좋고 물이 맑다. 짚으로 만든 파라솔 수십 개가 줄지어 서있는 해변과 앞바다의 풍광도 매우 아름답다. 또한 해수욕장 뒤쪽에 한반도 형상의 울창한 솔숲이 있어 산책하기 좋다.

숲길 끝에 있는 갯벌생태전시관은 신안 일대의 갯벌 생태를 살펴보며 갯벌이 주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 배움의 장이다. 갯벌에 사는 어패류의 습성과 먹이사슬 등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갯벌생태전시관 옆 엘도라도 리조트는 야외수영장·해수사우나·찜질방·불가마한증막을 갖춘 최고급 리조트로 증도의 명물이다.


엘도라도 리조트와 우전리를 지나 길이 끝나는 최남단까지 가면 서쪽 바닷가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갯바위 낚시터가 있다. 모양이 제각각인 바위들이 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과 밀려온 파도가 만든 물보라가 구경거리다. 훗날 이곳에서 자은도까지 다리가 완공되면 증도에서 목포까지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다.


차를 몰아 MBC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 화도를 찾아간다. 화도는 증도의 대초리에서 1.2㎞정도 떨어져 있는 섬으로 해당화가 많이 피어 화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옥황상제의 딸 선화공주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꽃을 가꾼 것이 온 섬에 가득 차게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2001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외딴섬이었으나 현재는 갯벌에 돌을 던져 넣어 만든 징검다리 노두길로 연결되어 갯벌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엿볼 수 있다.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는 관리가 되지 않아 실망스럽지만 노두길은 제법 운치가 있다.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가 동쪽 바다에 있다.


자연이 준 식탁의 보물이 소금이다. 화도에서 나와 태평염전으로 가면 종이에 바둑판을 그려놓은 듯 반듯한 소금밭들이 이어져 새로운 풍경이다. 태평염전은 간척지에 만든 국내최대의 염전으로 질 좋은 갯벌과 청정 바다에서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생산한다. 염부들의 사택, 관리사무실 등이 남아 있고 태평염생식물원, 천일염 생산 체험장, 낙조전망대가 가까이에 있다.




지구의 탄생과 함께 생긴 바다, 그 바다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먹거리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소금이 생명의 근원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직접 가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소금박물관이다. 장인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소금박물관은 1953년에 건축된 석조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해 2007년도에 개관하였는데 태평염전과 더불어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360호)으로 지정되었다.

외부의 생존에 필요한 소금을 찾아 이동하는 맘모스부터 내부의 소금이 시작되는 곳 바다, 소금의 역사와 문화, 미네랄 소금, 지구촌 소금여행 등 전시물을 구경하다보면 저절로 소금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는다. 병풍도를 연결하는 버지선착장이 레스토랑, 소금가게, 소금동굴이 있는 증도소금세상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차를 한참 몰아 지도읍 감정리 점암선착장에 들렀다. 남서해에서 해변이 가장 아름다운 대광해수욕장과 매년 4월에 튤립축제를 여는 임자도가 바다 건너편에 있다. 임자도와 지도읍을 잇는 연육교 공사가 완공되는 2020년부터는 30분 이상 걸리던 나들이가 5분이면 가능하다. 점암은 신안과 울산을 잇는 국도 24호가 시작되는 곳이다.

24번 국도와 고속도로를 갈아타며 청주로 향하는 차안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세월이 가는 속도와 나이가 비례한다더니 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도 날이 금방 어두워진다. 가끔은 여행을 하며 인생 공부를 한다. 가는 세월 어찌 막고 빠른 세월 누굴 탓하랴. 즐겁게 떠난 여행 집에 무사히 도착하는 그게 바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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