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집을 떠나 가까운 곳에 다녀오는 일이 나들이다. 지난 11월 22일부터 이틀간 청주의 나드리관광여행사(010-5185-2033) 정상옥 사장이 지인들과 함께하는 홍도와 흑산도 나들이를 추진했다. 여러 번 다녀온 곳이고 다른 일정이 있었지만 정 사장과의 인연 때문에 선뜻 따라나섰다.
도로와 교통이 발달했어도 청주에서 목포까지는 4시간여 거리다. 가는 길이 멀다보니 오전 7시 20분 청주체육관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와 무안광주고속도로 함평나비휴게소에 잠깐씩만 들른다. 여행은 낯모르는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어울리게 한다. 대화를 나눠보니 야근하고 아침에 퇴근해 여행길에 오른 일행도 있다. 11시 25분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앞에 도착하기까지 차안의 분위기가 가족여행을 닮았다.
제주식당(061-244-1967)에서 맛있는 찌개로 점심을 먹고 바로 옆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갔다. 쾌속선이 바다를 향한 모습이 역동적인 건물의 광장에 조형물 ‘내고향 섬마을 이야기’가 서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의 목포종합예술갤러리로 가면 조망이 좋아 목포를 상징하는 유달산과 시내, 목포항과 대형여객선이 한눈에 보인다. 2층 대합실 오른편에 목포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안내하는 관광홍보관도 있다.
홍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15㎞ 거리의 망망대해에 있다. 12시 30분 목포항을 출항한 여객선이 유달산 앞 목포대교, 팔금도와 안좌도 사이의 신안1교,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의 서남문대교를 차례로 지난다. 천사의 섬을 자랑하는 신안 바다에서 여러 개의 섬을 만난다. 먼 바다로 나가자 배 멀미 하지 않을 만큼 파도가 세어진다.
창밖 풍경이 지루해질 무렵 흑산도가 망망대해에서 실루엣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배안에서 먼발치로 흑산도를 바라본지 40여분만인 오후 2시 45분경 홍도항에 도착했다. 홍도는 행정구역상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속하고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붉은 옷을 입은 섬이라하여 홍의도로 불리다가 해질녘이면 바닷물과 섬이 온통 붉게 물들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길게 줄서 여객선에서 내린다. 이곳은 지형 때문에 좁은 골목길과 리어카 매달린 오토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특징인데 새로운 숙박시설이 많이 들어섰다.
홍도의 명승 33경은 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돌아봐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여객선에서 내려 바로 2시간 30분 동안 시계방향으로 홍도 일주 유람선관광을 했다.
홍도는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감탄시킨다. 여행의 주인공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찬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굵어지는 궂은 날씨였지만 날씨 탓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홍도의 바닷가에서 첫 번째 만난 절경은 가운데가 뻥 뚫린 남문이다. 남문과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어울려 만든 풍경이 기기묘묘하다. 남문 주변과 병풍바위를 지나면 만나는 칼바위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배가 머물며 기념사진 촬영할 시간을 준다.
2년 전에도 만났던 입담 좋은 해설사가 두개의 마을 홍도1구와 2구, 몽돌이 깔려 있는 홍도해수욕장, 홍갈색을 띤 규암질 바위, 해안가에 직립한 기암절벽, 벼랑의 바위에 뿌리내린 분재 소나무, 봉황새동굴·실금리굴·석화굴 등 여기저기 뚫려있는 동굴, 홍도의 최고봉 깃대봉과 최근에 생긴 일출전망대, 해안의 전망을 내려다보는 홍도등대, 섬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 기둥바위·시루떡바위·원숭이바위·도담바위·거북바위·만물상·슬픈여바위·공작새바위 등 기암괴석에 얽힌 다양한 전설을 유머를 섞어가며 자세히 소개한다. 유람선의 갑판에서 작은 어선에서 파는 싱싱한 회를 사먹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흑산도초등학교 홍도분교장을 지나 깃대봉 등산로 방향으로 나무계단을 20여분 오르면 홍도항, 홍도해수욕장, 양산봉, 인접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유람선에서 내리니 어두컴컴하다. 홍도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탑아일랜드(061-246-7777)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는데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
홍도항의 아름다운 야경을 구경하며 흑산도초등학교 홍도분교장까지 산책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만 하면 재미가 덜하다. 여행의 참맛은 그 속에 들어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야 느낄 수 있다. 불빛을 환하게 밝힌 홍도항의 포구에서 싱싱한 해산물들이 유혹한다. 일행들과 회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막 숙소로 왔는데 정 사장이 푸짐하게 회를 떠다놓고 술자리를 만든다. 정을 주고받기 제일 편한 게 술이다. 해변나이트까지 일행을 바꿔가며 오랜 시간 자리를 같이했다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린 후 5시 50분경 이른 아침을 먹었다. 일행들과 랜턴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일출 전망대로 향했다. 나무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도착하니 멋진 소나무 세 그루가 맞이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출시간이 지난 7시 20까지 기다렸으나 흐린 날씨 때문에 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신선한 공기를 실컷 마셨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홍도1구와 깃대봉, 남문바위와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내려오는 길에 당제를 지내는 죽항당산,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구경했다.
8시 홍도항을 출항한 여객선이 45분 후 홍도보다 3배 큰 흑산항에 도착했다. 여객선에서 내리면 입구에서 기암괴석과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 흑산도 표석이 반긴다. 흑산도는 제법 큰 섬이지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에 위치하여 옛날에는 유배지였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으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과 조선 말기의 유학자 최익현을 비롯해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이미자의 히트곡 '흑산도 아가씨'도 이곳이 배경이다.
흑산도의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을 돌아보는 일주도로가 있다. 여객선터미널 옆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라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고 산지가 대부분인 흑산도 일주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걸쭉한 농담을 곁들여 흑산도의 역사와 풍경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배낭기미해변을 지나 12령 굽잇길을 오르면 산중턱에 흑산도아가씨노래비가 있다. 이곳에서 상리산 정상이나 전망대에 오르면 내·외망덕도와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차창 밖으로 도로변 어촌마을의 풍경과 지도바위, 솔섬, 샛개해변, 면암최익현선생유배지, 여자바위(구멍바위)를 구경하며 흑산항으로 간다. 버스투어 중간에 PT병에 담은 인동초 막걸리를 7천원에 파는 코스도 있다.
흑산도는 양식업을 하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자 홍탁의 고장이라 홍어와 인동초 막걸리를 꼭 먹어봐야 한다. 버스투어가 끝난 후 홍탁삼합 원조인 '우리식당 할머니집'을 비롯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항구 주변의 모습을 돌아보려 했지만 일행들과 어울려 홍탁을 먹으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2년 전에는 마을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뒤편의 쉼터에서 마을 주민을 만나 바다 위에서 생선 시장이 열릴 만큼 고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의 흑산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옛 흑산항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카메라에 담은 후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홍탁을 먹었다.
11시 30분 일행들을 태운 여객선이 흑산항을 출항해 목포로 향한다. 왔던 길을 되짚어 부지런히 달리는 여객선이 1시 30분경 목포항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했다. 제주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가까운 목포종합수산시장으로 갔다. 시장을 대충 돌아보고 조업준비 중인 어선을 구경했다. 바다가 없는 내륙도 충북사람들에게는 회가 최고다. 회와 세발낙지를 안주로 소주도 서너 잔 마셨다.
목포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청주에 도착할 때까지 차안에서 진한 정이 이어졌다. 이번 여행은 구질구질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라 해질녘 섬 전체가 붉게 물드는 석양이나 신비한 모습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 먼저 주머니를 여는 인심좋은 사람들을 만나 여행 내내 좋아하는 회를 배불리 먹으며 주고받은 술잔만큼 살아가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물론 깨끗하고 깔끔한 숙소와 음식 맛있는 식당을 찾아낸 나드리관광여행사 정상옥 사장의 세밀한 준비와 세심한 배려 덕분에 눈과 입에 마음까지 즐거웠던 여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