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冬柏)은 이름처럼 추운 겨울철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윤기가 흐르는 녹색의 잎 사이로 시나브로 피고 지는 붉은 꽃이 필 때 못지않게 질 때도 아름답다. 우리나라 남쪽은 홀로 봄빛을 자랑하는 동백나무가 있어 춥지 않다.
뭍으로 부는 바람이 제일 먼저 꽃소식을 알리는 섬이 장승포에서 뱃길로 20여분이면 닿는 지심도다. 지난 2월 7일, 청주아름다운산행 회원들이 거제의 지심도로 동백꽃 맞이 산행을 다녀왔다.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는 섬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섬이 하나의 숲으로 보일 만큼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동백섬으로도 불린다.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속하는 면적 0.36㎢의 이 자그마한 섬이 2009년 KBS2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에 소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여객선 출발시간에 맞추느라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새벽 6시에 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어둠 속에 청주종합운동장 앞을 출발한다. 장거리 여행은 차타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지루하지 않다. 그동안의 수면부족을 해결하는 사이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와 공룡나라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온 관광버스가 10시경 장승포의 지심도터미널에 도착한다. 자투리 시간에 주변의 풍경을 둘러본 후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 지심도'를 소개하는 대형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포구 앞 좌판의 건어물을 구경했다.
지심도는 장승포항에서 남동쪽으로 5㎞쯤 떨어져 있다. 이 시간에 여행객이 많은지 장승포와 지심도를 오가는 여객선 동백섬호가 예정시간을 5분 앞당긴 10시 25분 출항한다. 장승포항을 나서 등대를 벗어나면 바로 지심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해안절벽이 나타나고 그 끝으로 대명리조트와 뒤편의 옥녀봉이 보인다. 오가는 어선과 낚싯배를 구경하다보니 10시 45분경 지심도선착장이 눈앞에 있다.
여객선에서 내리면 둥근 무인휴게실과 화장실이 있는 선착장에서 붉은 동백꽃 그림으로 동백꽃이 아름다운 지심도에 온 것을 환영하는 나무표석이 맞이한다. 추억남기기를 한 후 오토바이를 개조한 짐수레나 카트가 지나가면 길가로 비켜서야하는 갈지자 포장길을 200여m 오르는데 동백나무가 우거져 한낮에도 동굴처럼 어두컴컴하다.
현재 지심도에는 국방과학연구소와 2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어 모든 것이 단출하다. 처음 만나는 건물이 뒤편 언덕에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동백하우스 펜션이다. 지심도에는 재미있는 지명들이 많다. 이정표에서 안내하는 대로 해피하우스 민박집 마당을 지나 오른쪽의 지심도 자가발전소 앞에서 해안으로 내려서면 남서쪽으로 툭 튀어나온 마끝 해안절벽에 닿는다. 이곳의 바닷가 풍경이 아름다운데 건너편 해안으로 석유공사 비축기지와 서이말등대가 가깝게 보인다.
마끝 해안에서 올라와 웰빙민박을 지난 후 경사가 완만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으면 국방과학연구소 사거리다. 여기서 정면의 숲길로 들어서면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3개의 포진지와 탄약고를 만난다. 멀리서 보면 군함의 형태를 닮았다는 이 작은 섬이 일제강점기에는 군의 요새로서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주둔하였다. 탄약고 안에 일본군의 포대 설치 상황과 지심도 주민들의 생활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탄약고에서 나와 다시 국방과학 연구소 사거리를 지난 후 숲길을 거슬러 동백터널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새로 지은 목조 화장실, 흔들의자와 망원경이 있는 넓은 활주로가 있다. 지심도에는 후박나무, 곰솔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과 식물이 자라는데 그중 60∼70%를 차지하는 동백나무가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숲 터널을 만들었다. 활주로를 지나면서 동백터널이 시작된다. 바람이 불어오자 왼쪽의 대나무 숲에서 밭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산길에서 일본군 서치라이트 보관소, 방향지시석,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를 만나 일본군이 얼마나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는지 새삼 느낀다. 해안선전망대에서 찬물고랑에서 높은여까지 지심도의 동쪽해안을 내려다보고 망루를 지나면 지심도 끝점전망대인 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에 다다른다. 덩그러니 놓인 바위와 멋진 소나무가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지심도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휴양림이자 최고의 갯바위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전망대를 돌아 나와 벌여가는 길(낚시객만 가세요) 이정표를 따라 해안으로 간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샛끝벌여의 기암괴석 위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으며 바다 건너편의 장승포항과 대명리조트를 바라본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대형선박들도 여러 척 보인다. 멋진 풍경을 벗 삼으며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해안에서 올라와 산길을 걸으면 붉은 동백꽃과 쪽빛바다, 오가는 배와 장승포의 높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지세포 방향이 탁 트인 곳에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과 노천카페가 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풍경을 구경하려면 해안의 낚시터를 오르내려야 한다. 산길을 내려서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몽돌해수욕장으로 간다. 명칭이 몽돌해변이지만 몽돌의 양은 서너 가족 둘러앉을 만큼이다. 해안을 뒤로하고 다시 올라섰다 원시림을 닮은 소로를 따라 노랑바위로 내려간다. 제법 널찍한 노랑바위에서 선착장 주변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다시 산길로 올라선 후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 후박나무를 지나면 처음 들머리에서 만났던 동백하우스 펜션이다. 단체여행은 시간약속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 여기저기 들리며 자유를 누리다 늦게 내려와 첫머리 가게에서 파전을 안주로 급하게 술을 마셨다. 200여m 내려서면 지심도 선착장이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때 묻지 않아 정이 가는 섬 지심도에서 가끔 따라나서는 아내와 쉼표 여행 제대로 했다. 오후 2시 50분 일행들을 태운 여객선이 장승포로 향한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을 배 위에서 바라보니 동백나무 잎들이 햇살에 반짝거린다. 3시 10분 장승포항에 도착할 때까지 지심도가 여객선의 꽁무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휴양림에서 막 돌아와서인지 눈앞에 나타난 장승포의 높은 건물들이 더 화려해 보인다.
3시 25분 장승포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4시 10분 바람의 언덕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대명리조트, 와현해수욕장, 구조라해수욕장, 망치해변,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을 구경한다.
우리 일행이 도장포마을 바닷가로 바람을 몰고 왔나. 차에서 내리니 갑자기 찬바람이 몰아치고 하늘도 잔뜩 흐리다. 여러 번 왔던 곳이지만 자연 방파제처럼 낮게 누워 있는 바람의 언덕과 신선이 놀던 커다란 바위 신선대를 종종걸음으로 둘러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5시 20분 바람의 언덕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리아스식 해안의 굽잇길과 정체가 심한 도심을 달려 6시 20분경 거제포로수용소유적지공원 앞에 있는 부자마을(055-632-8172)에 도착한다. 사장님의 고향이 청주에서 가까운 장기라는데 이곳에서 국물이 시원한 동태찌개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통영대전고속도로 산청휴게소와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르며 밤길을 달려온 관광버스가 10시 30분경 청주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하며 지심도 동백꽃 맞이 산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