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청주행복산악회원들이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한 달마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달마산은 산세가 아기자기한데다 산줄기에 유서 깊은 도솔암과 미황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남단인 땅끝에 위치해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아침 6시 20분 용암동 집 옆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간에 몇 번 정차하며 회원들을 태우고 서청주IC로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선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지만 해 뜨는 시간이 빨라져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리는 차안에서 달콤 회장님의 환절기 건강조심과 참여해준 회원들에 대한 감사인사, 석진 산대장님의 산행안내와 처음 참여한 회원소개가 이어졌다.
장성IC를 빠져나온 관광버스가 국도와 지방도를 갈아타며 남쪽으로 향하는데 넓게 펼쳐진 보리밭과 영산강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신북휴게소에 들렀던 버스가 영암읍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월출산이 나타난다. 산행지가 먼 날은 차안에 있는 회원들도 달리는 버스만큼 고생한다. 바다가 나타난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려 11시 5분경 마봉리약수터에 도착했다.
대부분 북쪽인 해남군 현산면 송촌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지만 우리는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산행을 했다.차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하고 약수부터 한 모금 마신다. 임도를 따라 걷는데 동쪽으로 달마산 능선과 철제 통신탑이 눈에 들어온다. 소형차량을 이용하면 통신탑에서 가까운 도솔봉주차장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지만 해발 50여m 되는 지점에서 임도를 따라 시작된 산행이 산길로 들어선 후 직선에 가까운 급경사 계곡 길이 한참동안 이어져 땀을 흘리게 한다. 주차장 전망대에 올라 앞산도 바라보고 방금 지나온 길도 내려다본다.
달마산(높이 489m)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과 북평면에 걸쳐 있는 아름다운 산으로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주차장에서 도솔암 사이에 멋진 바위들이 많아 발걸음이 느리다. 도솔봉(높이 418m)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일행들과 떨어져 홀로 산행을 했다. 통신탑 북쪽의 도솔봉에 오르면 동쪽의 완도, 남쪽의 노화도와 보길도, 서쪽의 진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솔봉에서 내려와 산줄기에 기암괴석이 즐비한 능선을 걸어 도솔암으로 간다.
도솔암은 달마산의 남쪽 끝자락 바위틈에 요새처럼 자리 잡은 암자로 미황사의 열두 개 암자 중 하나다.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수도했던 곳으로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데 천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불타 폐사된 후 수 백 년 동안 터만 남아 있다가 2002년 오대산 월정사 법조 스님의 현몽에 의해 기와를 한장 한장 손으로 올려 32일 만에 지은 것이 지금의 도솔암이란다. 도솔암 옆 빈터에서 점심을 먹는데 호산자님 친구가 막걸리와 소주는 물론 자연에 어울리는 안주까지 내놓는다.
가끔 작아서 더 소중한 것들을 만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한 칸짜리 작은 전각, 한 그루의 나무, 작은 마당이 전부다. 도솔암의 진짜 모습은 삼성각 가는 길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래로 내려가면 삼성각에 닿는데 이곳에서 올려다보면 요새처럼 돌을 쌓아올린 도솔암의 기암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의 다락방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도솔암에서 바라보는 멋진 일몰도 유명하다.
도솔암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한 능선에도 수석전시장이 연달아 펼쳐진다. 수시로 나타나는 높은 봉우리에 오르면 앞으로 진행할 달마봉 방향과 방금 지나온 도솔봉 방향의 날카로운 바위들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동쪽으로 해남 바닷가의 너른 들녘과 완도대교도 눈에 들어온다. 산에 오르지 않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담아가는 것도 산행을 하며 누리는 행복이다. 산행이 힘든 회원 몇 명은 떡봉을 지난 삼거리에서 왼쪽의 하숙골재 방향으로 하산했다.
아직 때가 이르지만 길옆의 양지바른 풀숲에서 예쁘게 꽃을 피운 작은 야생화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유혹한다. 잠깐이지만 눈높이를 맞추느라 땅바닥에 주저앉아 쉬는 것도 휴식이다. 인생살이에 대한 답이나 가르침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야생화와 눈맞춤하며 자연은 계절, 인생은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이럴 때는 꽃 이름 몇 개 몰라도 괜찮다.
바닷가에 있는 산들은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달마산 줄기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가 연달아 나타난다. 두 손까지 사용해 오르내려야 하는 암봉들이 많아 산행 속도가 더디고 산행도 유난히 힘이 든다. 낮은 산은 있어도 쉬운 산은 없다고 했다. 산에서의 사고는 무리한 산행이 원인이다. 가끔은 자신에게 맞춰 목표를 수정하는 것도 지혜다. 달마산의 정상인 불썬봉(달마봉)이 아른거렸지만 대밭삼거리에서 40여분 거리의 부도전으로 향했다. 포기는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게 해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발걸음이 가벼워 콧노래가 나온다.
절이라고 다 같은 절이 아니다. 긴 역사에 맞게 나름대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면 20여 기가 넘는 부도와 부도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도전이 맞이한다. 부도에 조각된 다양하고 독창적인 동물의 문양들이 마음을 휘어잡는데 바닷가의 사찰답게 게, 거북이도 보인다. 부도전 옆 부도암으로 가면 미황사의 창건설화를 전하는 미황사 사적비가 축대아래에 서있다. 부도암과 부도전 뒤편에서 달마봉이 멋진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다. 부도전에서 미황사까지 10여분 거리는 비교적 넓고 편안한 산책길이다.
3시 30분경 미황사에 도착해 사찰을 한 바퀴 돌아본다. 미황사(美黃寺)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달마산 서쪽 기슭 양지바른 터에 자리 잡은 사찰로 749년 의조화상이 창건하였다. 달마산의 바위 능선이 병풍처럼 사찰을 감싸고 있는 멋진 풍경을 어디서 또 볼 것인가.
미황사의 중심건물인 대웅보전은 전각을 단청하지 않아 오히려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늘씬한 기둥과 주초 위에 조각되어 있는 게와 거북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창 번성하던 때에는 큰 사찰이었다지만 지금은 대웅전(보물 제947호), 응진당(보물 제1183호), 명부전, 만하당, 달마전, 임심관, 세심당 등의 전각과 요사채만 남아있어 오히려 편안함이 느껴진다.
불썬봉에 다녀온 회원들 기다리다 4시 50분경 출발한 관광버스가 월출산에 다녀가며 몇 번 들렀던 입소문한정식(010- 3602-3619)으로 갔다. 반찬이 다양하고 주인장의 인심이 좋아 저녁을 먹으며 뒤풀이도 진하게 했다. 우리나라가 작다지만 땅끝은 참 멀다.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 딱 한 번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왔는데도 10시경 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