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늘 슬며시 곁에 와있다. 갑자기 온 세상을 꽃으로 치장하고 가슴 설레게 하는 봄이 그렇다. 그렇다고 황사에 미세먼지에 봄나들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날도 별반 없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온다고 했다. 백수(白手)로 백수(白叟)를 사는 세상이지만 불현듯 꽃의 향연을 몇 해나 누릴 것인지 따져보는 날은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제법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하루에도 의미가 크다. 지난 4월 29일, 청주시립도서관에서 시구(詩句)에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시울림 회원 16명이 증재록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요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하루에 충청남도 서산의 서산마애삼존불상(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개심사·해미읍성·궁리소나무·간월암, 태안의 대하랑꽃게랑인도교와 청포대해수욕장을 다 돌아보는 일정도 빠듯했다. 그래도 회원들은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에게 속도를 맞추며 시심을 가득 품었다.
8시 30분 청주시립도서관을 출발한 25인승 관광버스가 세종시를 지나쳐 서세종IC로 당진영덕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공주휴게소에 들러 “하하 호호” 즐거워하며 커피도 마셨다. 달리는 차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고덕IC를 빠져나온 관광버스가 녹색세상을 펼쳐놓은 시골의 618번, 609번 지방도를 달려 운산면 용현리의 마애삼존불상 주차장에 도착했다.
백제의 미소로 통하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은 고풍저수지와 가까운 산기슭에 있다. 장승이 입구에서 맞이하는 삼불교를 건너고 돌계단을 올라 관리소를 지나면 강한 비바람을 막아주도록 큰 바위의 아랫부분에 부조로 조각된 삼존불이 백만불짜리 미소로 맞이한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교류하던 시절 백제의 도읍지(부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보원사지를 만난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의하면 마애삼존불상 발견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전해온다. 1959년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이었던 홍사준 박사가 불교가 꽃핀 서산지역으로 현장조사를 나갔다가 지나가던 나무꾼에게 탑이나 불상이 있는지를 물었단다. 그때 나무꾼이 마애삼존불상을 아래의 글과 같이 정확하게 묘사했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있는디유. 양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지유. 근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어박을라고 벼르고 있구만유. 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 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고 있지유”
나무꾼의 말대로 계곡의 층암절벽에 여래입상(2.8m)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보살입상(1.7m), 왼쪽에 반가사유상(1.66m)이 조각되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보여주는 백제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든 개성이 뚜렷한 세 불상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1400년 전에 조각한 불상의 자연스러운 생김새와 편안한 미소가 보면 볼수록 우리네 이웃을 닮았다.
마애삼존불상에서 나와 20여분 거리의 개심사로 향했다. 산중에 멋진 경치가 넓게 펼쳐진 고풍저수지, 소떼 대신 아줌마들이 높은 곳까지 올라가 나물과 고사리를 뜯는 목장지대, 물가에 왕겹벚꽃이 늘어선 신창저수지를 지나면 운산면 신창리에 개심사 주차장이 있다.
상가 끝에 일주문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계곡 옆 산책길과 멋진 소나무를 지나 작은 돌덩어리를 만나면서부터 개심사의 소탈한 분위기에 빠져든다. 일주문을 대신했던 두 개의 돌에 '세심동(洗心洞), 개심사입구(開心寺入口)'가 써있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몇이나 될까. 숲길을 따라가면 가까운 곳에 반영이 아름다운 네모난 연못이 있다.
개심사는 수덕사의 말사로 651년(의자왕 11)에 창건되었을 만큼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지리적으로는 북동쪽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보원사지와 서산마애삼존불상을 상왕산이 가로막고 있다. 대웅전(보물 제143호)ㆍ영산회괘불탱화ㆍ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의 문화재가 있고, 굽은 소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건축자재로 사용한 종루나 심검당이 볼거리다. 심검당의 벽면을 보고 있으면 기둥의 나무들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개심사는 속은 채우지 않고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크기를 키우는 세상의 이치를 거부한다. 고즈넉한 연못과 작은 앞마당, 낮은 축대와 울퉁불퉁한 돌계단,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배우는 화장실 등 공간에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다른 곳보다 늦게 피는 왕겹벚꽃·청겹벚꽃과 어우러지며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서산마애삼존불상, 개심사, 해미읍성은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한 번에 돌아보기 좋은 여행지다. 개심사에서 나와 3번 국도를 15분여 달리면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조선시대의 읍성을 대표하는 해미읍성이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은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으로 밖에서는 수직의 석성이나 안에서는 비스듬한 토성이다. 해안지방에 피해를 입히던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 건립되었고 충청병마절도사영이 1651년 청주읍성으로 옮겨가기까지 230여년 충청도의 군사와 행정을 책임졌다.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했고, 공사를 맡은 구역에 고을 명을 새겨 넣는 실명제로 성을 튼튼하게 쌓았는데 내 고향 청주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 성을 쌓은 흔적도 보인다.
진남문으로 들어서면 초록세상이 공원처럼 펼쳐지고 수령 300여년의 회화나무(충청남도기념물 제172호)와 옥사가 눈에 들어온다. 해미읍성은 1790~1880년대에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회화나무 가지에 철사줄로 매달아 고문했던 곳으로 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로 처형당한 순교성지이다. 옥사에서 나와 민속가옥을 지나면 외삼문과 동헌, 객사와 내아를 만난다.
뒷산으로 올라가 청허정과 송림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요즘은 성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을 금한다. 산에서 내려와 지성루에서 소원나무로 가는 길가에 유채꽃이 노란 물결을 이룬다. 수문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서문 밖으로 가면 순교성지를 알리는 '순교현양비'와 병인 대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 '순교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4월 초부터 10월 말까지는 토요일마다 타악·판굿·줄타기 등 해미읍성 전통문화공연, 4월 말에는 오색연등에 소망을 담는 해미읍성 연등축제, 10월 중순에는 조선시대 생활상 재현 및 체험·지역민속 문화공연·상설프로그램 등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가 진행된다.
29번 국도를 달리다 김좌진장군의 생가와 가까운 상촌교차로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갈산터널을 지나면 서산A지구방조제를 목전에 둔 서부면 궁리의 길가에 분재를 닮은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낮은 언덕 위에서 오가는 차량들과 뒤편의 간척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수령 300여년의 보호수로 1980년대 서산 AB지구 간척사업을 하기 전에는 바로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나무 아래에서 음식을 먹으며 백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겼고, 음력 정월에는 마을의 안녕과 바다의 풍랑을 막기 위해 풍어제를 올리던 당상목이다. 간절히 빌면 이뤄질까. 마침 여성 한 분이 소나무 아래에서 두 손 모은 채 소원을 빌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고프면 뭘 먹든 다 맛있다. 차가 쌩쌩 달리며 소음을 냈지만 소나무 옆 팔각정자에 사이좋게 둘러앉으니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식탁이다. 이곳에서 몇몇 회원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궁리소나무에서 가까운 간월도가 서산A지구방조제와 B지구방조제를 연결한다. 간월도의 어리굴젓과 영양굴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어리굴젓은 생굴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담근 젓갈로 왕에게 올렸던 진상품이다. 여행지에서는 돈쓰는 재미도 한몫한다. 어리굴젓 기념조형물 옆 가게에서 여럿이 젓갈을 팔아줬다.
예전에는 섬이었던 이곳의 바닷가에 작은 암자 간월암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간월암(看月庵)은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하고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으로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도록 육지와 연결된다. 간월암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바닷물이 들어오면 작은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모습을 다 봐야한다.
무학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인물화가 걸려 있는 법당 앞에서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고 바다 건너편으로 안면도의 황도가 가깝게 보인다. 입구에서 만나는 수령 250년의 사철나무와 수령 150년의 팽나무도 볼거리다.
간월암에서 나와 당암포구 앞바다에 떠있는 낚싯배를 구경하며 B지구방조제를 지난다. 원청사거리에서 왼쪽의 안면도 방향으로 달리다 안면대교를 건너면 서쪽으로 안면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백사장항이 보인다.
안면도 초입의 백사장항은 제법 규모가 큰 어항으로 횟집들이 바다를 에워싸듯이 자리 잡은 포구 앞으로 소규모의 어선들이 매달려 있다. 자연산 대하와 꽃게가 유명한 곳으로 갖가지 해산물을 구입하고 싱싱한 회를 먹기에 좋다. 시간이 맞으면 수산시장에서 경매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백사장항과 바다 건너편인 남면의 드르니항을 연결하는 250m 길이의 ‘대하랑꽃게랑해상인도교’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곳에 들르면 누구나 인도교로 두 지역을 오가며 멋진 추억을 남기는데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풍광이 아름답다.
‘드르니’라는 지명은 우리말 ‘들르다’에서 비롯되었다. 드르니의 옛말 '들온이'는 다리가 없던 시절 맞은편의 안면도에서 배를 타고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대서 붙여졌다.
횟집에 편히 앉아 회를 실컷 먹으면 좋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더구나 서해안은 동해안이나 남해안보다 회가 비싸다. 궁하면 통한다고 묘책으로 떠오른 게 백사장항에서 회를 떠 청포대해수욕장에 펴놓고 먹는 것이다.
회를 먹기 위해 잠깐 들른 청포대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우리가 넓은 해수욕장의 주인이다. 이보다 맛있는 광어와 산낙지를 어디서 맛볼 것인가. 매주 만나다보니 볼에 고추장이 좀 묻어도 흉허물이 없는 사이다. 멀리서나마 별주부전 유래비가 바닷가에 있는 자라바위(덕바위)도 구경했다.
청주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는 차안에서 회원 모두 한마디씩 덕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은 다 그렇다. 떠날 때 기대했던 것만큼 후회한다. 문학기행 참고자료에는 ‘도착시간 몰라요’를 강조하고 운전기사님과는 8시 도착을 약속했는데 딱 20분 늦었다. 일주일에 하루지만 그 하루를 늘 긴 인연의 끈으로 꽁꽁 묶어 매는 시울림 회원들이 증재록 선생님의 말씀처럼 하늘과 바다와 땅 위에서 하나의 색으로 시심을 일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