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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상주의 부활과 인성교육 부실을 경계한다

학력평가 성적만을 학력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학력평가로 측정할 수 없는 실기 영역의 내용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력의 개념과 수준을 학년별 교과별로 사전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된다면 교육과정 전 영역을 고르게 평가하는 전인적 성장 발달을 균형 있게 다루는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주용국 | 충남 아산 동덕초 교사


서울시교육청 학력신장방안의 핵심 쟁점인 초등학력평가 부활 문제는 학교 공교육 기능의 회복과, 학력저하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심 끝에 마련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긴 하지만 현재 수많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학력 저하의 문제가 매스컴의 표적이 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계는 그동안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방안은 내용의 적부(適否)를 떠나 학력저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교육적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어떤 교육 방책도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고 해결방안은 무엇인지를 찾아 교육발전에 힘을 보태는 것이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닌가 한다. 이에 초등학력평가 폐지 이후 드러난 초등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초등학력평가를 부활했을 때 예견되는 역기능은 무엇이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초등 교사의 시각에서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학습력은 약화, 학교 불신은 심화
수요자 중심교육이 강조되면서 초등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고 학력평가가 자취를 감추게 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그 결과 교육현장에는 체벌 대신에 학생의 흥미와 요구에 맞는 다양한 교육방법이 활용되고 학력평가 대신에 수행평가라는 새로운 평가 방식이 도입되면서 학교교육은 학문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인간중심 교육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나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떠안게 되었다. 가장 심각하게 느껴졌던 문제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의 학습력이 약화되고 있다.
정기적으로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가 점수화되어 가정에 통지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의 학생들의 학교 학습태도는 진지함과 절실함에서 이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이유에는 교사의 수업방법이 아직도 학생들의 흥미와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한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초등학교에서 학력평가가 폐지된 이후 학생들의 객관적인 학력이 공식적으로 평가되는 일도 없고, 계량화된 성적이 가정에 통지되는 일도 없기 때문에 과거처럼 평가의 결과에 대해 칭찬을 받거나 반성하는 피드백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평가를 하지 않으니까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둘째,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학생들을 학력에 따라 서열화·점수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평가 방식을 다양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수행평가는 평가 절차의 복잡성과 과도한 업무 부담, 그리고 서술식 결과 통지 방법의 비효율성 등으로 학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적당히 칭찬 위주로 가정통신문을 작성하여 보내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 결과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력실태가 어떤지 정확히 모르게 되었으며, 칭찬 위주로 제공되는 자녀의 학력에 대한 학교의 정보 제공을 불신하게 되었고,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학원에 갈 필요가 없는 자녀들까지도 학원으로 보내게 만드는 등 사교육비 증가의 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셋째, 학교 공교육에 대한 경시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학교는 노는 곳이고, 학원은 공부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체벌하면 난리지만, 학원에서 체벌하면 조용하다.’
공교육기관인 학교와 사교육기관인 학원을 직접 비교하는 아이러니한 이야기이다. 누가 만든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학교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식 속에는 학교 공교육의 무력감이 짙게 배어 있다. 학교가 현실과 괴리된 교육 담론으로 시간을 보낼 때 학생 교육의 중심축은 이미 사교육으로 기울었고, 공교육 붕괴라는 말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비 증가, 주입식교육 확산 우려
초등학력평가 폐지 이후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면 현행 학력평가 시스템을 개선하여 학력을 높여보고자 하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안이 나름대로 타당성과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학력평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초등학교에서 성적중심 교육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학력평가를 부활하는 것은 또 다른 교육적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이에 예견되는 역기능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성교육이 위축되고 비행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초등학력평가의 부활은 인간중심교육을 표방해 온 현행 초등교육의 시계를 10년 이전의 과거로 돌려놓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식보다는 인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던 초등교육의 기반이 붕괴되고, 학생들은 과중한 학습 부담과 경쟁으로 고운 심성과 특기를 기르는 전인적 성장 발달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협동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퇴조하고 남을 딛고 일어서는 과도한 경쟁심리가 지배하여 인성교육에 악영향을 미침은 물론 학교교육에 대한 염증을 유발하여 비행 청소년 문제도 더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다.

둘째, 학부모의 사교육비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학력평가 실시로 자녀에 대한 성적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면 지금의 막연한 불안감에서 학원에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학부모가 원하는 수준까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가정교육도 인성보다는 성적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학생들은 피어보지도 못하는 꽃처럼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주입식 교육이 교단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초등학력평가의 부활로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서열화되면 학부모는 자녀의 성적이 높아질 수 있는 교육을 시켜 달라고 학교장에 압력을 가할 것이고, 학교장은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업을 교사에게 강요하게 되면 성적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교사의 교육철학과 수업 자율성은 위축되고, 그 동안의 노력으로 쌓아 왔던 학습자 중심 교육은 퇴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넷째, 학교간 과다한 학력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학력평가 결과 우리 학교 학생들의 성적을 다른 학교 학생들과 비교해 보려고 하는 시도가 일어날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특히 학교장은 학교 교육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타 학교와의 비교를 하게 되고, 학부모 역시 타 학교와 비교하여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성적이 저조하면 거센 항의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학교 간에 과다한 성적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섯째, 학력평가 성적을 학력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고착화될 것이다.
학생들의 학력은 시험 성적으로 모두 대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평가의 객관성과 권위성으로 인하여 시험 성적이 학력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만을 하게 되고 여타 과목이나 영역은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발생하게 된다.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 발달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학력 개념의 균형 있는 정립이 요구된다.

평가예고제 등으로 부작용 줄이자
이상에서 살펴본 학력평가 부활의 역기능들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불식하고 학력저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그 동안 학력 신장에 관심을 갖고 지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적으로나마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학력평가 점수만이 아닌 종합적인 학력의 개념과 도달 수준을 정립하는 일이다.
학력평가 성적만을 학력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학력평가로 측정할 수 없는 실기 영역의 내용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력의 개념과 수준을 학년별 교과별로 사전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학력평가 점수의 도달 정도에 따라 우수학력(90% 이상), 기본학력(70% 이상), 기초학력(60% 이상), 미달학력(60% 미만) 등으로 평정하고, 아울러 교과별로 이수해야 할 필수 실기요소의 성취 정도에 따라 우수학력, 기본학력, 기초학력, 미달학력 등으로 세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학년의 국어과 학력을 평정할 때 학력평가 점수가 90% 이상이고, 필수 실기요소의 성취율이 90% 이상인 학생을 우수학력으로 평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식중심의 평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고, 교육과정 전 영역을 고르게 평가하는 전인적 성장 발달을 균형있게 다루는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사전에 평가계획을 알고 미리 대비하여 공부하도록 평가예고제를 실시하는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방안에도 평가예고제가 계획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평가예고제는 평가를 평가 자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학력 신장과 연계시킬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학력평가를 부활하려는 근본 취지가 학생들을 공부의 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데에 있는 만큼 학생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언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지 사전예고제를 시행하면 학생들의 자율적 노력을 촉진하게 되어 효과적으로 학력 신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셋째, 평가예고제 운영을 위한 사전 여건 조성을 보다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평가예고제가 실질적인 학력신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정에서도 평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넷을 활용한 안내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또한 미리 평가에 대비하여 학생 스스로 실력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문제은행 시스템과 사이버 가정학습 시스템이 제공되어야 한다. 문제은행을 통해 실력을 진단하고 부족한 학습 영역을 사이버 가정학습 시스템을 통해 보충할 수 있는 사이버 학습 운영체제가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평가예고제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에듀넷 홈페이지의 성취도 평가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사이버 상에서 문제를 풀고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그 결과를 즉시 알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문제은행 시스템이 교과별 단원별로 구축되어야 한다. 사이버 가정학습 시스템은 현재의 에듀넷 학습 시스템이 교과별 단원별로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활용만 하면 될 것이다. 다만 에듀넷의 속도가 느린 점은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수업과 학력평가 점수를 직접 연계하는 일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방안을 보면 ‘평가 관련 교원의 책무성 강화’ 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말을 해석하면 학력평가 결과 점수가 낮으면 교사에게 수업을 잘못했다고 문책하겠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무척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학력평가의 결과를 교사의 수업에 관련짓기 시작하면 교사의 수업은 점수 올리기 수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물론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면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당연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과거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점수 올리기 주입식 수업을 하면 보다 쉽게 성적이 향상되는데 굳이 어렵게 수업방법을 개선하려는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수업은 현행과 같이 학생의 흥미와 요구에 맞게 즐거운 수업으로 진행되도록 계속 격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수업방법의 개선은 교육전문가인 교사의 양심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겠고, 학력 신장은 학생의 자율적 노력을 어떻게 격려하고 고취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으로 본다. 교사는 흥미 있는 수업으로, 학생은 자기 노력으로, 학교는 여건 조성으로, 학부모는 격려와 동참으로 학력 신장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점수가 낮다고 교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학력평가 부활의 취지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다섯째, 학생들의 자율적 노력으로 획득하는 학력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
학생들은 수동적 입장에서 평가를 받을 때보다 능동적 입장에서 평가에 참여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중간평가나 기말평가를 실시할 때의 학생 분위기와는 달리 줄넘기 급수제, 워드 급수제 등을 운영해보면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높은 급수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학습과 평가도 바로 이런 학생들의 심리적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기적인 학력평가와 병행하여 학생 스스로 학교에서 정해 놓은 교과목의 학력 급수를 획득해 나가게 하고 그 결과를 학업성적에 반영하는 학력인증제도를 도입하면 일방적인 평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할 수도 있고 학생들의 능동적인 학습 태도를 형성시켜 학력신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학생의 자발성 유도에 초점 맞춰야
지금까지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방안과 관련하여 초등학력평가를 부활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학교 현장의 실태와 예견되는 문제점, 그리고 해결 방안을 살펴보았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학력신장의 요체는 열심히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학생들이 자율적인 노력이 중요한 변수이다. 학생들의 가슴에 공부의 불씨를 심어줄 수만 있다면 눈덩이가 굴러가며 커지듯 학력은 점진적으로 신장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초등학력평가 실시가 여러 가지 교육적 부작용을 극복하고 학력신장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 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국제 경쟁사회에서는 민주적인 인간육성도 중요하지만, 빌 게이트처럼 장차 수많은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실력 있는 인재 양성도 중요하다.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방안이 학교 현장에 뿌리를 내려 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되기를 교육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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